인간의 본성과 삶의 질
성선설? 성악설? 당혹스런 뉴스를 접할 때면 때때로 사람의 성정에 관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역사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é Ortega y Gasset)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가 있을 뿐이다.”. 타고난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나고 자라며 무슨 학습을 했으며 각종의 상황들에 어떻게 대응하고 선택을 해 왔는지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우선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교육 환경과 내용이 참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육의 내용은 과도한 지식습득 위주이고 작동원리는 치열한 경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선한 심성의 아이라 할지라도 종국에는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절박하게 혁신이 필요한 영역은 교육계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데 현재의 교육현실을 보면 우리의 미래 모습은 디스토피아처럼 우울해 보입니다.
한국인의 삶의 질은 OECD에서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삶의 질 지표는 11개 항목 –주거, 소득, 직업, 교육, 환경,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공동체, 시민참여, 고용- 을 평가해 삶의 질을 가늠하는 지표인데 2013년 자료를 보면 우리 사회는 1위 호주 7.91에 비해 현저히 낮은 5.35를 기록했습니다. 이 지표에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공동체’ 부문입니다. 이 항목이 다른 지표에 비해 현격히 낮은 1.6점입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전체 점수가 5.35점으로 매우 낮은데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이 바로 ‘공동체’ 영역인 것입니다. 한국의 공동체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숫자로 확인하는 가슴 아픈 순간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레토릭
이렇게 보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신뢰와 연대의 관계망 복원입니다. 여기에는 아이들의 참여도 포함됩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라는 레토릭은 흔히 아이들을 현재로부터 유예시키는 오류를 낳기 쉽습니다. 미래를 위해 남겨둔 자원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옹골차게 키워야 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경주마처럼 차안대(遮眼帶)를 쓰고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그것이 곧 그 아이의 역사와 삶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그런 역사를 써온 아이일지라도 성인이 되어 자신의 옆을 돌아보고 손을 내밀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기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에 대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만큼 난망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재단>에서 하는 나눔교육에 눈길이 갔습니다. 블로그에 소개된 프로그램의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 <반디>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나눔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와 사회 변화를 위해 좋은 돈(모금)을 만들어 직접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구성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 1월 5일부터 2월 26일까지 다섯 번에 걸쳐 교육이 진행됐고, 5인 이내로 구성된 총 8개의 모둠이 자기들만의 특색을 살려 다양한 모금 활동을 펼쳤다.”
나눔교육 장면을 연상하면 흔히 전문강사의 나눔에 대한 인지교육을 쉽게 떠올리지만 <반디>는 팀웍을 통해 모금의 방법을 찾게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고 그 해결의 일환으로 모금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반디>프로젝트에는 초등학교 5~6학년 13명, 중학생 16명이 총8개의 모둠으로 나뉘어 참여를 하였고 각 모둠별로 청소년 전문가 1인씩 멘토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반디> 프로젝트를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성과는 아동들이 지역문제 해결자로서 자원봉사자로서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좋은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데 있으며, 나눔교육 참여자들이 책임성, 존중, 지역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의를 키워내고자 하는 실천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인지 중심 교육을 벗어난 실천 중심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매우 남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먼저 <반디>프로젝트를 담당한 아름다운재단의 안효미 간사를 만나 보았습니다.
정성원: <반디> 프로젝트를 어떻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성원: 나눔교육이라고 하면 자칫 자선으로 축소돼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번 <반디>의 경우에는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조한 점에서 매우 새롭고 차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지역사회 문제에는 관심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이들이 지역사회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끄집어 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효미: 에피소드 중 하나가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멘토분들과 워크숍을 했는데요. 그분들이 아이들 관점에서 생각하는 지역사회문제는 바퀴벌레나 쓰레기 등과 같은 생활적이지만 지엽적인 부분이 많지 않을까 했는데 실제 아이들은 환경이나 편견, 학력차별이나 이기주의 같은, 오히려 이런 문제가 많이 언급되었어요. 부모님한테 들은 것일 수 있지만 본인들이 그런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아이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아이들이 사회문제, 지역사회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보면서 시작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팀은 재개발문제에 대해 얘기하게 됐어요. 그 아이가 사는 지역이 재개발 지역이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거든요. 가로등이나 이런 것을, 실제 자기 동생이 그런 것 때문에 다쳤는데도 잘 안 고쳐주고. 이런 부분을 지역사회 문제로 언급했는데 실제로 이들이 했던 활동은 재개발 백사지역의 문제를 자기문제화 하고 개인적 시야를 넘어 이웃에게 확장해서 보는 점도 참 기특했습니다.
또 학교 밖 청소년 등 같은 세대인 청소년 문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회에서는 좋지 않게 볼 수도 있는데 자기와 똑같은 또래들이 나쁘다 이런 식의 감정적 판단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른들의 편견을 깨트리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거든요. 저도 시작할 때 아이들이 그런 이슈들을 잘 끄집어낼 수 있을까 우려했었는데 실제로 진행하다 보면 아이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미성숙할거라는 편견으로 그동안 발언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지 않았을 수 있고 또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묻지 않았던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원: 참가자들이 스스로 모금을 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을 좀 설명해 주시죠.
안효미: 모금하는 방법 역시 온라인이든 거리에 나가서 판매를 하던지 전부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한 것이었고 온라인 모금도 자신들이 의견을 모아서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온라인 모금은 ‘다음’을 통해 진행했는데 서류심사가 꽤 까다롭고 절차도 복잡해서 너무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갔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아이들이 처음으로 거리 모금에 나섰는데 물론 호의적이고 격려를 해 주는 어른도 많았지만 반면에 공부나 하지 왜 이런 거 하고 있냐는 비난을 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 표현에 대해 아이들이 마음 상하거나 위축될 수 있기 때문에 멘토 선생이 다독여주고 신경을 많이 써 주셨죠. 또 하나는 어떤 친구가 모금계획을 세웠는데 학교 선생님이 앵벌이라는 표현을 하시더라고요. 모금하는 것과 앵벌이가 무엇이 왜 다른지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힘들어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성취감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에 아이들이 큰 힘을 얻는 것 같았습니다. 모금을 실천의 중요한 방법으로 상정한 것도 자신에게 있는 것을 기부하는, 나 혼자 하는 것은 이제 할 수 있지만 나와 함께 동참하는 사람의 힘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이었습니다.
▲환경보호 캠페인과 친환경수세미를 판매하며 모금활동을 하는 모여라 북클럽+팀(제공: 아름다운재단)
정성원: 아이들 반응이 제각각일 수 있지만 그래도 보편적인 반응은 무엇인가요.
안효미: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가 가장 일반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많은 품과 노력을 들이고, 또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지만 이것을 다 완수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과 함께 해주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또 이런 비영리단체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자기들이 한번 해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거리 캠페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참여를 할 거라고 해요.
정성원: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안효미: <반디>사업을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재단이 서울에 위치해 있고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한계들이 있어요. 더 많은 청소년들이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올해에는 재단에서 모집하는 것도 있지만 학교에서 동아리 형태로 진행할 것과 다른 단체에서 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단체와 함께 하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에서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고 싶다고 하면 반디활동을 했던 멘토분들이 가서 멘토가 되어 함께 진행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이고, 재단은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다른 단체나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메타포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대도시는 이런 나눔교육 기회들이 많은데 지방은 부족하잖아요. 재단이 중심이 돼서 하지 않더라도 지방에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계획입니다.
<반디>프로젝트를 입안부터 실행 그리고 사후 결과까지를 주의 깊게 보고 분석하여 그 개선점까지 꼼꼼하게 제시한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 연구결과는 6월 23일 아름다운재단에서 주최하는 ‘나눔교육 사업설명회’ 시간에 자세하게 공유될 예정인데 미리 두 분(이민영교수 고려사이버대학/ 윤민화 박사 후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BK+21 연구원)을 먼저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 분이 서로 보완해가며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발언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정성원: 현재 국내의 나눔교육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많은 비영리 기관들이 나눔교육을 하고 있어요. 조직의 문제라기보다 지금은 나눔교육의 가치를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인지적으로 나눔이 왜 중요한지 알아야한다, 그래서 정보제공 중심이 가장 많죠. 그리고 실제로 모금기관에서는 이런 활동을 기관의 기부자가 되는 형태로 연결을 시키죠. 사실 이런 과정에서 비영리기관들도 고민을 많이 하죠. 다 알만한 주요한 큰 기관들은 아이들에게 모금을 하는 저금통을 나눠주는 것에서 벗어나 교육도 시키고 편지도 쓰게 하고 아이들이 워크북 형태로 작업할 수 있도록 교재도 많이 개발하고, 고민을 많이 하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상에는 지역사회에 있는 학교에 정보를 주고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선생님들이 인지교육을 시키거나 학교에서 요청이 올 때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형태가 대다수입니다. 아닌 경우는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서 지역사회 센터나 복지관에 참여해서 일정 기간의 교육을 이수 받고 자원봉사 형태로 하는 형태. 그렇게 크게 나눠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빈 구멍이 무엇이냐,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민영 교수(좌)와 윤민화 박사(우)
정성원: 지금 말씀하신 인지교육 중심의 나눔교육에 비해 <반디>교육이 갖는 차별성은 무엇입니까?
먼저 접근의 차별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나눔교육을 받아서 후원자가 되는 실천 정도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모금가가 되도록 하는 것. 사회적 이슈를 몸으로 느끼고 설득의 메시지를 만들어서 그걸로 시민을 설득해서 모금을 할 수 있는 능동적 모금가로 키워나간다는 것이죠. 실천적 모금가로 키우는 것으로 차별성을 만들어내니까 아이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관심, 사랑, 내 정보, 내 시간, 이것들을 나누기 시작했고 또 다른 사람들이 후원을 하도록 선순환하는 나눔 실천가로서의 성장이 보입니다.
두 번째는 교실 중심이었기 때문에 교사에 의존했었는데 이것을 실천중심의 적극적인 모금활동가로 키우려다 보니까 성인 멘토가 필요한 거예요. 아이들이 처음 하니까 서툴잖아요. 그럴 때 뭔가 숨통을 틔게 해주는 성인 멘토들의 지원이 큰 변화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사가 하는 것은 가르쳐주는 것인데 멘토는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어주고 질문하고 아이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얘기해주는, 이런 역할이었다는 거죠.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 스스로 민주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훈련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실천 활동에서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교사 중심이 아니라 멘토 중심이 되어서 아이들이 스스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 또 모금이라는 것이 돈이 관련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거리에 나가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호자 역할을 해주는 시스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 번째는 이번 <반디>의 성과로 무엇을 볼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나눔교육을 했는데 뭐가 달라졌어? 하는 거죠. 그동안 나눔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친사회성이 향상되도록 하는 것, 내가 그동안 이기적으로 행동했는데 이타적으로 바뀌었어, 그리고 마음만 이타적으로 바뀐 게 아니라 친사회성에는 내가 적극적으로 할 의지까지 생겼어, 이런 것을 주로 성과라고 보았어요. 저희들은 아동 청소년이 자기들의 삶을 사회로 확장하고 그 속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뭔가 관여도 하고 관심도 갖고 그런 능동적 시민성을 키우고 싶었던 거죠. 친사회성도 포함되지만 그것을 넘어 청소년들이 지역사회 문제와 그 해결을 지원하는 조직을 이해하고 참여하는 능동적 시민성을 키우는 것을 큰 성과와 차별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정성원: 이번에 참여한 아이들의 실제 변화를 알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가 양적, 질적으로 아이들의 변화를 체크해보았는데 아주 크게 뭔가가 바뀌어졌다 기보다, <반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런 겁니다. 자기들도 인지적인 나눔교육을 받아 봤지만 실질적으로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길거리에 나가서 직접 뭔가를 한다는 것은 처음이거든요. 모금을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어른들이 ‘정말 잘하네’ ‘진짜 이런 일도 하니’ 이런 것에 흐뭇해하고 뿌듯해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서 공부나 하지 뭐 이런 걸 하고 있냐’ 이런 세상의 다양한 반응에 대해 상당히 좀 민감해합니다. 이런 것을 본인이 직접 체험을 했기 때문에 ‘아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하니까 이렇게 반응하는 거구나 다음에는 어떻게 얘기해야할까’ ‘좀 더 이분들에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잘 전달하는 방법이 뭘까’ 이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예요.
저희가 느낀 것은 교육을 인지적으로 했을 때는 머리로 이해하는데, 실질적으로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대상으로 펀드레이징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문제해결이 되더라 라는 실질적인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가 필요한가 하는 부분을 아이들이 배우고 또 모금한 돈을 가지고 독거노인이나 기관에 기부하러 갔을 때 이분들이 보여주는 환대에 대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실체적 뿌듯함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반디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변화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디교육을 하기 전에는 추상적으로 말을 했어요. 연예인 ‘션’이나 이런 사람들이 타인에게 뭔가 기부를 하는 좋은 시민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했다가 나중에는 상당히 구체화되고 실질화됐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문제들을 이제는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찰하고 생각하게 된 것,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이 많은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성과를 평가할 때 저희 내부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죠. 그동안의 평가들은 사전조사를 하고 프로그램 끝난 후 사후조사를 통해 비교하고, 통계집단을 만들어서 실험설계를 하고,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발표도 했었는데 현장에 계시는 실무자들은 그거 뻥이야 그런 거죠.(일동 웃음) 저희들이 연구 평가할 때 그동안 많이 했던 설문지나 조사도구의 평가보다 반응적인 평가방법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활동하는 곳 가운데서 변화하는 지점을 찾으려고 했죠. 아이들이 어느 지점에서 눈빛이 변하고 행동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때가 언제인가 하는. 그런데 거기 온 아이들은 이미 준비된 아이들, 다른 기관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은 똑똑한 아이들이었어요. 나눔이 뭔지 다 알고 왔어요. 계획을 세우는데도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저희도 잘 모르는 빈부격차, 신자유주의 이런 거 다 써요. 근데 이런 문제를 지역사회에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면 거기서 딱 막혀요.
논술준비를 많이 하는 세대잖아요. 아이들이 신문도 많이 읽어요. 아는 지식도 많아요. 그래서 문제를 지적하라고 하면 술술 나와요. 그런데 그것이 너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이 되어 있어? 그러면 딱 막히는 거죠. 자기와는 떨어진 문제, 제3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문제를 나랑 연결시키는 것에 매우 어려워해요.
두 번째는 그렇게 해서 나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러면 아이들이 ‘여기는 신호등을 달고요’ ‘안전표지판을 만들고요’ 다 했어요. 이제 다 할 거야, 그럼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봐. 그러면 ‘진짜 해요?’ ‘정말 해야 되요?’라고 해요. 저는 그 지점이 변화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지금까지 너무 많이 계획 세우는 것을 해봤어요. 그런 훈련은 많이 받았는데 직접 하려고하니까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당황스러워 하면서 그때부터 갑자기 ‘학원 때문에 바쁘고요’ ‘과제물이 많아요’ ‘엄마 허락을 받아야 해요’ 그러면서 생활세계와 연결된 모습이 나오는 거죠. 그런 교육을 받으면서 실제로 직접 한다는 것이 큰 변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원: 양적 데이터로서 의미가 있었던 것은 있습니까?
재미있었던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의미한 통계가 나왔는데요. 하나는 “나는 지역사회문제들에 대해 알고 있다”에 대해 <반디>교육을 받았던 이전에 비해 그 이후의 수치가 높게 나왔다는 점입니다. 긍정적인 변화죠. 또 하나는 “나는 미래에 지역 사회단체에서 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변화 수치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관, 단체를 조사하게 되었고 몇몇 모둠은 실제 그 기관에 가서 교육도 받고 그랬어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사회단체가 자신의 선택지 중 하나로 눈에 들어오게 된 거죠. 이 프로그램 자체가 지역사회와 협업이 잘 안됐어요. 시간의 제약이라는 문제도 있었고 아이들 구성 자체도 같은 지역에서 온 팀도 있지만 지역기반이 다른 모둠이 많아서 실제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해서 해당 지역의 많은 비영리단체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활동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정성원: 앞으로 <반디>교육은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까요.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눔교육의 지속성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부모님이 참여자와 다르게 생각하면 그 속에 충돌이 발생하게 되잖아요. 부모님 또한 그런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받아 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반디> 시작할 때나 혹은 중간중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 그래서 프로그램 구성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처음 기획했을 때는 지역사회 베이스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안됐죠. 지역사회가 이 모델을 가지고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해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하는 청소년 대상 나눔교육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지역문제와 기관을 함께 정해요. 그래서 내가 모금을 할 때 이 기관의 서포트도 받고 모금한 돈을 그 기관에 기부하는 거예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백하건데 저도 나눔교육은 단지 ‘착한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쯤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인지가 아닌 실천 그리고 지역사회의 문제와 결합되는 순간 나눔교육은 착한 사람을 넘어 당당한 지역사회의 일원, 책임감 있는 시민을 안받침 하는 학습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디>의 경우 참가자들이 너무 바빠 팀원끼리도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자유학기제와 결합하게 되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고 콘텐츠가 부족한 학교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의 자원과 학교 당국이 나눔교육을 통해 결합할 수 있다면 꽤 유의미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 봤습니다. 관심있는 지역과 기관은 아름다운재단에 문의하시길.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아름다운재단 나눔교육 블로그: http://bfki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