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思考>
교육 및 비영리단체, 교육 프로그램, 사회혁신 프로젝트, 지역 및 마을 운동 등 다양한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새로운 관점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다른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팁 하나, 작은 실마리라도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
공사 현장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은 안전모, 철골, 크레인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영국 런던의 한 재개발 현장에는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 공사 현장에서 이용하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만든 이동식 정원이 그것이다. 영국에서 스킵(Skip)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덤프트럭에 실리는 커다란 쓰레기통을 말한다. 보통 건설 현장에서는 이 커다란 쓰레기통에 폐기물을 담아 폐기물 처리장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런던 킹스 크로스 재개발 현장의 쓰레기통에는 쓰레기 대신 흙과 여러 가지 과일, 야채들이 자라고 있다.
▲스킵 가든 전경(위)과 가든을 둘러보는 공사장 인부와 시민(아래)(출처: 글로벌 제너레이션)
공사 현장에 나타난 이동식 정원
킹스 크로스 지역의 재개발은 15년 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런던 중심으로부터 북동쪽, 두 기차역(세인트 판크라스역과 킹스 크로스역)이 만나는 이곳은 조지안 시대(1714년~1830년)에는 온천이었고 빅토리안 시대(1837년~1901년)에는 공장과 물류 창고가 있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역사(驛舍)에 필요한 야적장과 창고로만 이용되다가 토지 활용도가 떨어지고 이 일대는 쇠퇴하였다. 노숙자들이 모여들고 마약거래와 범죄율이 높아지면서 지역 이미지는 매우 나빠졌다. 이에 토지 소유주인 런던 콘티넨탈 레일웨이와 DHL 로지스틱스가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개발 업자, 주민, 주변 상인, 구청 및 런던 시청과 5년간의 긴 논의 끝에 2006년 마스터 플랜이 완성되었다. 2007년 워털루에서 킹스 크로스로 이동한 유로스타 역사가 재개발의 촉매제가 되어 이 지역은 단계별로 활발히 재개발 중에 있다. 2011년부터 학교, 아파트, 상업 시설, 공원 등이 들어섰으며 2020년 완공될 예정이다.
킹스 크로스 재개발 공사 현장에서 10여 년째 운영 중인 스킵 가든은 주민들과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폴 리첸스(Paul Richens)라는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스킵 가든은 <글로벌 제너레이션(global generation)>이라는 자선 단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8만 2천 평에 달하고 공사 기간이 15년이 넘는 재개발 부지에서 스킵 가든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곱 개의 스킵은 공사 진행과 땅의 소유권 변화에 따라 비어 있는 부지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실제로 지난 10년 간 3번의 이사를 했다. 스킵에 이용되는 흙은 공사 현장의 흙을 사용할 수 없어 다른 곳에서 가지고 왔지만 스킵 가든을 구성하는 많은 재료들은 대부분이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재활용품들이며 자연 친화적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지렁이를 키워 직접 비료를 만들고 농작물들을 교대로 심으며 빗물을 모아 농작물에 줄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스킵 가든 이사하는 날(출처: 글로벌 제너레이션)
가든에 심는 농작물의 선정도 조금은 특별하다. 스킵 가든을 만든 폴은 대형 슈퍼의 확장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농작물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대형 슈퍼에서 판매하는 과일과 채소의 주요 선정 조건은 장기간 저장과 쉬운 유통이기에, 멍이 쉽게 들거나 빨리 상하는 토종 과일과 채소 품종들은 맛과 풍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식탁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이다. 스킵 가든에서는 사라져 가는 다양한 품종들을 찾아 심고자 노력한다. 또한 가든에서 나온 사과, 배, 포도 등의 과일과 채소들은 스킵 가든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페와 주변 식당으로 공급되어 많은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원에 둘러앉은 사람들
스킵 가든의 가장 큰 역할은 커뮤니티 형성과 주민 참여이다. 글로벌 제너레이션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에는 주변 학교의 아이들이 참여하고 있다. ‘나, 우리 그리고 지구’ 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가고 유지할 수 있을지 같이 생각해 보고 가든 프로젝트를 통해 직접 체험 할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은 주변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서 씨를 뿌리고 채소와 과일을 가꾸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인공적인 환경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주민들, 상인들,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참여 또한 많다. 글로벌 제너레이션 사람들은 스킵 가든을 ‘수천 개의 손에 의해 가꿔 지는 가든’이라고 부른다. 요일 별로 아니면 짬 날 때마다 사람들은 가든에 와서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스킵 가든과 같이 운영되는 가든 카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동네 사랑방이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안전모를 그대로 쓰고 가든 카페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잠시나마 즐기고 간다. 또한 글로벌 제너레이션에서 운영하고 있는 많은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스킵 가든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올해는 런던대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스킵 가든에 그들이 디자인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다. 학생들의 독특한 작품과 가든이 어우러져 더 재미있는 공간이 되었다.
▲스킵 가든 카페(위, 글로벌 제너레이션)와 청소년 참여 프로그램 모습(아래, 가디언)
많은 단체와 사람들은이 스킵 가든을 지원하고 있다. 킹스 크로스를 개발하고 스킵 가든에 땅을 빌려 주고 있는 회사인 킹스 크로스 파트너십, 캄덴과 이슬링턴 구청, 복권 기금 등 많은 기업, 관공서 그리고 개인들이 조금씩 내는 돈으로 가든은 운영된다. 또한 이 프로젝트는 킹스 크로스 주변에 있는 많은 기업과 상인들에게 그들이 지역 주민들과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곱 개의 스킵으로 만들어진 이 정원은 8만 평이 넘는 킹스 크로스 재개발에서는 아주 작은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 작은 프로젝트가 지역 주민들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대단하다. 장기간 지속되는 재개발 과정 속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 그것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하게 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숙제를 아이들과 함께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는 장소와 환경을 제공한다. 2020년 재개발이 끝날 무렵에는 더 이상 빌릴 땅이 없어 킹스 크로스에서는 사라질 지도 모르지만 아이들과 주민들과 함께 했던 자연과 환경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글_김미경(영국 스프레드아이 사회혁신연구소 객원연구원)
<참고 자료>
http://www.globalgeneration.org.uk/
http://www.kingscross.co.uk/skip-garden
http://www.kingscrossandstpancras.com/global-generation-skip-garden-cafe/
http://www.theguardian.com/sustainability/community-projects-celeb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