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탁네트워크, 남산강학원, 인문서당 강원의 청년 열 명이 뭉쳐 「길벗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는 말 그대로 ‘길에서 벗을 삼는다’ 혹은 ‘길에 버려지다’라는 의미이다. ‘함께 길을 나선다’ 이외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프로젝트! 사연은 이러하다.

먼저, 문탁네트워크. 문탁 주변엔 대학을 안 가거나 못 간 친구들이 꽤 있었고, 막상 대학을 갔다 하더라도 재미가 없어서 혹은 시시해서 혹은 비전이 없어서 대학을 때려 치거나 휴학을 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청년들이 제법 있었다. 아, 이 아까운 청춘들을 어찌할꼬! 난 문탁이 이들의 새로운 학교, 새로운 놀이터가 되기를 바랐다. 대학생 세미나도 꾸리고 다양한 청년동아리들을 인큐베이팅 했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문탁 식구가 되어간다. 즉 처음엔 강좌나 세미나를 통해 수줍게 문탁에 접속한다. 모든 게 낯설다. 그러다 기존 회원의 꼬임에 빠져 혹은 새로운 욕망이 생겨 세미나를 하나쯤 더한다. 어느 날 ‘문탁에서 밥 먹는 자, 모두 문탁에서 밥을 한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공동체 주방에서 밥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일주일에 나흘, 닷새, 심지어 매일 매일 문탁에 나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청년들도 이런 경로를 밟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도 훌쩍 “저는 해방촌에 가서 ‘빈집활동’을 좀 해 보겠어요”라고 떠나고, 문탁의 근로장학생으로 파지사유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도 훌쩍 인도로 떠나 몇 달을 헤매다가 돌아온다. 청년들의 신체는 결코 구체적인 시공간에 가둘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청년들의 신체는 공동체에서 일상을 꾸리는 신체가 아니었다. 나는 너무 ‘올드’했었다.

남산강학원의 경우는 문탁과 오히려 반대였다. 그곳엔 이미 이런 저런 경로로 공동체에 접속한 젊은이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공동체에서 제공한 일종의 기숙사에서 집단적으로 살고 있었고, 아침식사부터 하루 세끼를 공동체에서 해결하고 있었고, 거의 하루 종일 공동체의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주방지기, 강좌지기 등 공동체 주요 활동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 친구들이 세상 밖으로 나간 게 아니라 공동체 안으로 숨은 듯이 보였다. 세상을 향한 질문도 자신의 실존에 대한 탐색도 치열해보이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상황을 “무기력한 좀비들이 공동체를 배회한다”고 부르고 있었다.

문탁의 주변 청년들을 모으고, 또 남산강학원 청년들의 잠재력을 터뜨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길벗 프로젝트」이다. 「길벗 프로젝트」는 젊은이들의 로드스쿨이다. 그러나 이 로드스쿨은 여행학교가 아니다. 말 그대로 길 위에 세워진 학교이다. 20대의 공부를, 신체를 특정한 시공간에 가둘 수 없다는, 가둘 필요가 없다는 의미의 로드스쿨이다. 비장소적학교. 네트워크로서의 학교. 활동으로서의 학교. 한 마디로 흐름으로만 존재하는 학교이다. 로드스쿨은 구성원의 멤버십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능력으로만, 그것을 매번 다시 꾸리는 흐름으로만 존재한다.

도대체 구체적으로 그게 뭔데?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모르겠다는 것은 그것이 어떻게 진화할지 미리 기획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길벗 프로젝트」는 매호 주제가 있는 무크지를 내는 학교가 될지도 모르겠다(무크지-학교). 어쩌면 「길벗 프로젝트」는 매년 한권씩 자신의 공부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학교가 될지도 모르겠다(단행본-학교). 어쩌면 「길벗 프로젝트」는 주기적으로 청년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학교가 될지도 모르겠다(청년렉처-학교). 이들의 연구도 20대의 연애, 성, 자립 같은 고전적 주제부터 밀양(이건 문탁의 공통주제이다)이나 장애인(남산강학원 젊은이들은 장애인활동보조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 같은 문제를 종횡으로 횡단하게 될 것이다. 열 명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도 이 열 명이 계속 가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길벗 프로젝트!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올 여름 이들 열 명은 20일간의 중국 오지 여행을 떠난다. 잘 모르는 친구들끼리 지지고 볶으면서 오로지 몸만을 쓰는 여행. 나는 딱 하나를 주문했다. 얘들아, 살아서 돌아와^^ 진짜 길벗은 그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글_이희경(문탁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