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감정적 삶①] 『외딴방』 우는 것 역시 하나의 실천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Mar 10, 2015

<Book 너머>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선정, 책과 함께 읽어 내려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 한켠에 묻어두었던 고민일수도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전혀 관심 없던 주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너머의 생각들을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편집자주)


[감정적 삶]에 관한 첫 번째 책

외딴방 (문학동네, 1995)


18세기 근대 철학의 등장 이후, 이성중심주의에 의해 인간의 감정은 홀대되어 온 듯 보인다. 감정, 정서, 마음, 기분은 불확실하고 변덕스럽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함으로써 진지한 학문적 연구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암암리에 우리는 감정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그것을 외면 혹은 추방해왔다. 공적 영역은 냉혹하리만큼 차가운 이성과 합리성을 요구하고, 긍정적이고 명랑한 사람들은 인성은 물론이고 세계관이 건전하리라고 아무런 근거없이 확신한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고 통곡하는 이들은 사회의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악의적인 댓글이나 일베의 폭식투쟁이 보여주듯이 조롱 혹은 박해의 대상조차 된다. 슬픔은 빨리 극복해야 할 부정적 감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감정은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혹시 그것이 감당하기 두려운 어떤 모순 혹은 억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은폐하고 봉합하며 살아가는 부조리한 세계, 수치스러운 진실들이 귀환해오는 것이 불편하고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


외딴방(1995)은 곧 영미권에서 번역될 것이라는 기사가 보여주듯이 신경숙의 대표작인데 재난의 시대를 맞아 슬픔이 도처에 있음에도 함께 슬퍼해주는 능력을 점차로 상실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희생자를 애도하는 일의 가치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구로공단 노동체험에 뿌리를 박은 자전적 성장담으로서 한 내성적인 소녀가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예술가 소설에 속한다. 70년대 빈한한 농가 출신의 는 고등학교 진학이 좌절되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나이가 어린 탓에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빌려 구로공단의 동남전기주식회사에 취직해 낮에 노동을 하고 밤에 산업체 부설 야간학교에 다니며 결국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관청의 수기 공모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출세담, 즉 역경을 헤치고 꿈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로 기억하면 안 된다. 가난한 소녀를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구로공단 여공인 희재언니와의 짧지만 운명이 되어버린 인연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작가를 탄생시킨 것은 이렇다 할 사회적 명분이 아니다. 어쩌면 운명이 그녀를 작가로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며칠 간 집을 비우니 자신의 자취방에 자물쇠를 채워달라는 희재의 부탁으로 는 그녀의 죽음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오래 전 애도와 멜랑콜리(1917)라는 짧은 논문에서 사랑하는 이를 상실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망각하지 못한 채 쉬이 해소되지 않는 슬픔을 선고받은 멜랑콜리 환자의 심인성 구조를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애도멜랑콜리는 모두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후의 반응으로 고통스러운 낙심’ ‘세계에 대한 무관심’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 ‘억제’(자아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의 저하) 등의 특징을 공유한다. , 어떤 대상의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이 자아를 위축시킴으로써 자아의 활동을 축소시킨 것이다. 그러나 멜랑콜리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실자를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슬픔 속에 가둔다는 점에서 애도와 다르다.


희재언니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슬픔, 멜랑콜리의 원인이었음은 가 자신의 소녀시절을 인생에서 통째로 비워버린 데서 드러난다. 그녀는 산업체 고등학교의 동창생인 하계숙으로부터 너는 왜 우리들과 함께 했던 시절은 쓰지 않느냐, 혹시 그때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냐하는 질책어린 전화를 받을 만큼 구로공단 시절을 함구해왔다. 그러나 침묵과 공백은 단순히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추억이 되지 못하는 현재임을 암시한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적 시간 속에서 희재언니와의 시간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의 내면 속에 합체되어있는 희재언니와 자기를 분리함으로써 이별을 준비하는 애도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사랑하는 이를 쉬이 잊으려 하는 것을 비정으로, 반대로 비워내지 않으려 하는 것을 윤리로 보았지만, 충실히 기억하고 회상할 때 서서히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애도의 역설이다. , 잘 기억해야만 잘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래도록 상실한 이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과정이 슬픔의 극복을 보장하는 이치와 같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치르는 장례식에, ‘의 글쓰기를 이름도 갖지 못한 채 그녀의 내면 속에서 출몰하는 유령인 희재언니를 위무하는 추도문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개인적인 추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시기 한국의 경제부흥을 이끈 산업전사로 호명되던 여공의 삶에 구체적인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애도의 성격을 갖는다. 심지어 여공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에 맞서는 대항적 기억을 발굴해내는 기억투쟁, 즉 기억서사의 양상조차 띤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역사의 기념비가 된다는 것은 기실 애도되기보다 잊혀지거나 은폐되는 것과 같다. 이는 기억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 국가권력이나 지배계급의 관점 혹은 욕망에 의해 조작·왜곡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6-70년대 산업화기의 여공들은 기적적 경제성장을 이룬 산업화의 역군으로 미화됨으로써 기실 망각되어왔다. 이러한 판단을 증명하듯 한국의 경공업 중심의 산업화 과정에서 시골의 빈한한 농가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도시로 대거 이주해 전체 노동시장에서 대규모의 노동력을 공급하였지만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는 희박하며, 심지어 대중의 집단무의식을 드러내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서사장르에서도 여공의 존재를 찾아보기 거의 불가능하다. 외딴방한 시대가 꼴깍 삼켜버렸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흥행 영화인 <국제시장>이 증명하듯 역사의 회한어린 슬픔 속에서 주로 그리움과 죄책감의 대상이 된 것은 아버지, 즉 남성들로 현대사는 젠더화되어 왔다. 신경숙은 우리가 삼켜버린 존재인 여공을 산업전사라는 호명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희재언니라는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한 사람의 구체적인 인간으로 되살려냈다.

나아가 이 작품은 단순히 희재언니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에 머무는 게 아니라 70년대 산업화기 구로공단의 여성노동과 생활세계를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여공에 대한 상상적인 상상력을 전복한다. 여공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까지 가족의 생계를 돌보던 누이가 아니라 열악하고 부조리한 노동조건과 성차별에 맞서 자신들의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고투한 주체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동일방직 여성노조의 똥물 사건이나 YH노조 김경숙의 의문투성이 죽음이 증명하듯이 여성노동자는 그저 희생자가 아니라 한국민주화의 실질적 주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된 누이라는 지극히 사적이고 성별화된 상상력 속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저평가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고도성장 중인 도시 서울에서 가난을 극복하지도 꿈을 실현할 수도 없었던 희재언니의 죽음은 단순히 임신과 낙태로 이어지는 불운한 개인사의 귀결이 아니라 70년대 말 여성들이 주도한 민주노조가 권위적인 국가와 가부장적인 사측으로부터 와해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한 개인의 죽음은 기실 공동체가 함께 아파해야 할 사회적 애도의 대상인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13년 송년미사에 따르면 우리는 점차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역사상 모든 인류가 슬픔을 같이 나눌 공동의 문화적 양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 죽음은 기피되어 상품화된 의료 시스템에 내맡겨져 있다. 그런데 기억되지 못한다면 제대로 죽은 것도 아니다. 사회 집단이 망자의 죽음을 등록할 때 망자는 잊혀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제의를 통해 상실을 공동체 내에 새길 때 상실은 이제 더는 개인의 경험에 머물지 않는다. , 장례의식은 죽어서도 잠들지 못하는 존재를 제대로 된 조상으로 만들어주는 기능을 한다. 인류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장례식은 망자가 자동으로 조상이 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치러진다. 이렇듯 애도와 매장 의식을 마치고 나면 사회구조가 변하고 관례에 따라 새로운 조상과 후손의 관계가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망자가 조상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는 이들의 권리와 의무를 재분배하고 역할도 다시 할당한다. 망자는 산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집단을 재편함으로써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우리는 왜 우울할까, 동녘사이언스, p138)


신경숙의 외딴방이 오래 전 발간되었음에도 다시 주목되는 것은 우리는 타자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있으며, 타자에 대한 보살핌과 우애가 곧 정의로운 공동체의 조건임을 글쓰기를 통해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는 희재언니가 자살한 후 대인기피, 고립, 불면증 등 심인성 증상에 시달리는데, 이는 우리가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관계적 자아임을 암시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은 감정 혹은 마음은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고 있는 타자의 존재를 발견하게 함으로써 이기주의를 벗어나는 윤리의 원천임을 암시한다. 그녀는 특히 애도의 윤리적 가치를 주목하게 만든다. 슬픔이 우리 각자를 고독의 벽 안으로 밀어 넣고 생산력을 제로로 만들기 때문에 서둘러 벗어나야 할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섬세하게 만드는 정치적 자원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슬퍼하는 것,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우는 것 역시 하나의 실천이 될 수 있다. 그것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_김은하(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외딴방.jpg 

외딴방(신경숙 저, 문학동네,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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