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인터뷰_김민남(<지식과세상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전 경북대 교육학과 교수)
경험을 갈무리하는 기회를 주어야 마음의 두려움이 없어진다
“김민남? 어떤 분이야?”
저희 웹진 ‘와’ 담당자가 차기 인터뷰 대상자를 추천했을 때 보인 저의 첫 번째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학계에 관해서는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 들었고 게다가 대구에서 오랫동안 재직하셨다는 말에 일단 웹 검색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구라고 하는, 정치적 다양성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지역에서 30여년 넘게 살아오신 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개인적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일단 “경북대 김민남 교수”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했더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에 2005년 기사입니다만 ‘대구경북 시민신문’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은 “은둔하는 한국의 프레이리 경북대 김민남교수”였습니다. 기사 제목이야 핵심을 표현하되 이목을 집중시켜야만 하는 속성이 있기에 약간의 과장이 섞일 수 있다고 봅니다만 어쨌든 프레이리라고 표현한 것을 미루어 짐작컨대 낮은 곳에 시선을 두고 계신 분일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토지문제에 천착하고 계신 전강수교수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거목을 만났다. 불모의 땅에서 꽃을 피우고 계신다. 대구 교육계의 대부 김민남교수님. 한 사람이 이렇게 넓은 그늘을 드리울 수도 있구나. 내 모르는 사이에 이 땅에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을 타인의 평가에 근거해 일방적으로 정의하는 것도 온당한 일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올곧게 살아오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대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역시민사회 활동의 동기와 배경
정성원 : 인터뷰 오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지역사회에서 많은 일을 하셨고 또 하고 계시더라고요. 대구사회연구소 제1대 소장, 대구참여연대 대표도 역임하셨고 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이사장, 문화공동체 새벗 이사장, 새벗도서관 이사장, 사람대사람 고문 등 다양한 역할들을 하셨던데요. 시민사회 일이라고 하는 것이 권한은 별로 없고 책임만 많이 있는 일들이잖아요. 다양한 일들을 이름만 걸어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오셨는데 이렇게 일을 하시게 된 배경, 동기는 무엇인가요?
김민남 : 대체로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일을 했습니다. 대구 같은 곳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잘 안했습니다. 누군가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했습니다. 단순한 동기입니다. 그리고 젊은 친구들도 뭔가 지역에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신들과 같이 하기를 원하고 있었고요. 그것에 제가 남들보다 조금 앞서서 동의를 했습니다.
(끝인가요? (일동 웃음))
네, 아주 간단한 동기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에는 우리 사회의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더 깊이는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배재되고 있는 현상을 우리가 조금 관심을 두면 다 돌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나 제가 이런 일을 하면 그런 사람들의 고통이 전면적으로 노출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뒤쳐져 있는 사람들의 고통이 굉장히 깊은데도 불구하고 밖으로 노출이 잘 안됩니다. 어떤 문제를 제가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분들의 고통을 밖으로 노출시켜보자 라는 것이 제가 동의하게 된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육 관련한 명칭을 보면 DJ 시절에는 <새교육공동체위원회>이었는데 참여정부 시절에는 <교육혁신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만큼 교육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되며, 중장기 교육‧교육인적자원정책의 비전과 방향정립에 관한 사항, 주요 교육정책의 입안에 관한 사항, 교육체제 혁신에 관한 사항, 교육재정 및 교육복지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는 매우 중요한 기구이다. 그리고 인수위 시절, 당시 교육부총리였던 윤덕홍씨와 함께 교육부총리 후보로 거론되었던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씨의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은 교육에 관한 개혁 드라이브로 인식되었다. 게다가 ‘중앙’ 인물이 아니라 ‘지방’ 중심의 개혁적 인사를 중심으로 진용을 구성하였으며 김민남교수는 이 위원회의 선임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혁신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
정성원 : 이력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2003-2005년 참여정부 시절에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 활동인데요. 활동을 하시다가 일종의 좌절을 맛보시고 그만두셨잖아요. 교육개혁과 관련해서는 혁신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고 특히 7차 교육의 뼈대를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그것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민남 : 우리 교육에는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구조적인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제도 하나를 건드려서 구조적인 문제에 충격을 가한다고 한다면 그 제도는 아마도 사람 선발 문제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입직과 입학이라고 하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겪지 못하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입직과 입학은 하나의 관문입니다. 그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너무 어렵거든요. 입직과 입학이라고 중립적으로 말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면 ‘일류 입직’이고 ‘일류 입학’입니다.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쏟아 붓는 재정‧사회적인 투입은 너무나 낭비적입니다. 또 입직과 입학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삶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 같고요. 그런 의미에서 선발의 관문을 옥죄고 있는 제도적인 규칙과 관행들에 집중을 해서 구조적인 문제에 충격을 가하자는 것이 제 기본적인 생각이었고 같이 일하는 분들도 동의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하면 구조는 바꾸기 어려워도 제도는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런 문제의식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불가능한 일이구나 라는 것을 대학에서 입학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교육부 사람들, 기업에 있는 사람 등과 논의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성적우수자 라는 언어 이외에는 어떤 언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성적우수자라는 언어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거나 비판하거나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해서, 그것이 학교 교육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대학 혹은 직장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밤새 얘기를 해도 조금의 근사치를 발견할 수도 없었습니다.
처음에 내부논의를 통해 제안했던 것이 교육부나 다른 곳의 논의를 해가는 과정에서 이것저것이 깎여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럴 바에는 바꾸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람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으로 바꾸어서 그것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서 제안했던 선발제도를 부정하는데 가장 간단한 이유가 ‘이념지향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논의가 불가능한 그런 언어로 차단할 때 더 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성원 : 학교에서 소수의 성적우수자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데요. 원론적으로 접근하면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민남 : 지금 학교는 성적우수자를 만들어내는 프로세스입니다. 교육과정, 교육활동이 문제풀이입니다. 전국의 모든 교실이 문제풀이입니다. 이것이 고등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입니다. 그것이 교육활동입니다. 그 프로세스를 거쳐야 성적우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여전히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은 아이들의 학습활동을 신장시켜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성적이 아니고. 결국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정신상태가 학습활동에 대한 추동력입니다. 물론 ‘성적을 잘 받아야지’, ‘좋은 대학 가야지’ 라는 외적보상에 의해서도 학습활동은 촉구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미봉적이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하게 그 사람의 학습활동을 추동하고 일으켜내는 것은 그 아이의 내적인 상태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흥미, 소질, 적성, 포부 등으로 말하겠지요. 진부한 말이지만 여전히 교육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그 말을 써야 합니다. 그것에 의해 일어나야 학습활동이 지속가능합니다.
우리도 다 경험했잖아요. 성적을 받기 위해서 교실에서 문제풀이 한 것은 ‘얻은 지식’입니다. 문제풀이 수업을 통해 ‘얻은 지식’ ‘학력’입니다. 학력은 교실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머릿속에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 대학 선생님들도 수업을 하면 다 알 거예요. 무엇을 배우고 나왔는지를 모르는 것. 금방 머릿속에서 다 사라져버리고 없거든요. 그러나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서, 우리가 탐구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런 활동이 교육활동의 중심이지요. 그런 활동을 통해 얻은, 갈무리된 지식은 평생 안 잊어버려집니다. 자기 속에서 작동합니다.
▲<지식과세상협동조합>에서 만난 김민남 교수님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정성원 :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교육의 본질이 내적 활동을 추동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김민남 : 서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관료들의 마인드가 그런지, 그런 정책을 펴면 아이들 교육이 살아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상상이 안 됩니다. 우리는 늘 말하잖아요. 교육은 현장에 맡겨줘야 한다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이건 못하는 아이이건 그 아이들을 담당하는 교사, 학교, 운동장. 거기서부터 뭔가 싸우고 울고불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적합한, 몰두할 수 있는 주제들이 선정되고 몰두할 수 있는 경험이 쌓여야 그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나와서도 뭔가 자기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우리 교육은 어떤 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 아닐까요. 그 이후의 뭔가를 하는 것은 아이에게 맡기면 됩니다.
공교육은 어떤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두려움 없는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마음을 길러주는데 가장 기본이 앎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않고는 세상만사가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경험을 갈무리하는 기회를 주어야 마음의 두려움이 없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학교는 경험을 차단시키는 곳입니다. 경험을 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성찰과 반성입니다. 숙제는 경험을 갈무리하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지금의 숙제는 학교 교육의 연장입니다. 자기 경험을 갈무리하는 기회를 교사가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그것 없이 우리 인간 마음에 두려움이 없을까요.
정성원 : 선생님 말씀의 요지는 학생들에게는 자신을 경험을 갈무리하게 하는 것, 교사는 그것을 안내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죠?
김민남 : 네 그렇습니다. 물론 안내하는 데에는 지도도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역할을 저해하는 시스템의 요소
정성원 : 제대로 안 되는 것이 물론 교사 역량의 부족도 있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교육 현장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교사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요인이랄까 이런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민남 : 여러 가지로 얘기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 아니겠습니까. 학교가 정책을 세울 수도 없는 곳이고. 교사도 아이들을 만나면, 현장에 가면 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현장은 정책을 세울 수 없는 곳입니다. 정책을 세우는 것은 전부 중앙에, 현장에 없는 사람들이 책상 위에서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교사도 학교도 자기 정책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말로 하기 보다는 그 구조적인 문제를 터주기 위해 건드릴 수 있는 게 제도로서의 선발 문제였다 라는 겁니다. 구조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제도는 선발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모든 문제를 선발에 환원시켜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발문제를 얘기하는 이유는 현장을 살리고자 충격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도 교사도 시련을 겪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사들도 자기 수업 연구에 학생 지도에 고민을 해야 하는데 고민을 안 합니다. 진도를 나가는 것이 우리 교육입니다. 진도 낙오가 되면 그 다음은 안 합니다. 이런 것이 현장입니다. 학생과 아이들에게 현장에서 모색하고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
정성원 : 구조와 제도의 미비, 미흡으로 인해서 좌절하고 고민하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희망, 격려의 메시지를 남기신다면요.
김민남 : 처음부터 구조의 문제를 보고 되니 안되니 판단하지 말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낫게 하는 것, 아이들이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교사가 정책을 세워서 교실에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따지지 말고 참여하십시오. 뒤에 서서 되겠느냐 안되겠느냐 하지 말고요.
제도의 문제를 얘기하지만 현장 교사들에 대한 불만도 있습니다. 참교육을 외쳤던 사람들도 결국 모두 구조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20년 전, 전교조 운동이 일어났을 때 국민적 성원이 얼마나 대단했습니까. 그때 전교조 교사들이 뭐라고 하고 나왔습니까.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주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전교조 교사 너희들도 싫다고 합니다. 열화와 같이 밑에서부터 일어났던 교육 운동이 20-25년이 지난 사이에 왜 사라져버렸을까요. 그 점에서 전교조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도 합니다. 교사 개개인들의 ‘현실이 그렇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패배주의, 변명처럼 얘기하는 것은 안 됩니다. 현실 때문에 더 비탄에 빠지는 것은 아이들과 학부모입니다. 현실 타령을 하지 말고 현실과 싸워야죠. 교사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으려면 조직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단위 학교 평교사 운동으로 새출발하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 교무실에 서너명만 목소리를 내면 교무실이 바뀝니다.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서로 편이 되어주고 가치에 동조하고 제안을 하고 발의를 하면 교무실이 바뀝니다. 그런 것을 전교조가 중요한 사업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단위마다 서너명의 평교사들이 서로 동의하고 격려할 수 있는, 그런 뿌리를 사업으로 삼아야 지속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민남 교수님(좌)과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우)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정성원 : 교육을 둘러싼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학생과 교사이고 그 외에 학교 당국과 학부모도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겠죠. 학부모라 하면 대명사처럼 치맛바람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학부모도 우리사회의 시민이고 학교교육의 구성요인으로 변화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민남 : 저는 학부모, 학교, 교육당국 모두 교육권이 있다는 말을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의 당사자는 교사와 학생입니다. 그 외 모든 사람은 관여자입니다. 학부모도 대통령도 관여자입니다. 관여자가 관여할 수 있는 범위를 스스로 한정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관여자가 당사자의 자리에 와서 온갖 배치를 다합니다. 아이들도 배치하고 교사도 배치하고 다 하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학부모 단체이건 보수적인 학부모 단체이건 교육의 관여자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높여줄 곳은 정치인데 정치는 그렇게 외면하면서 만만하기 짝이 없는 교육에는 온갖 당사자 자리에 서서 간섭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제풀이이고 성적이기 때문에 교실이 너무나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실 교실은 그렇게 노출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교실은 어느 정도 노출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적 중심 안에서는 아이들도 교사도 알알이 옷 벗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것은 교실이 아니지요. 우리가 왜 교육을 전문적인 활동이라고 말합니까. 전문적 결정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사자들의 의사결정이 최고의 가치이다, 라는 것이 최고의 전문성 아니겠습니까.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고 말하는 대신에 우리가 하는 일을 기꺼이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학교, 교실, 지역의 차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교실이 왜 동일한 수업을 해야 하나요. 전국 학교의 운동장에서 왜 똑같은 활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학교 하나만 가면 전국 학교를 다 알 수 있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사들 관계, 교사와 교장의 관계, 교사와 교육청의 관계, 학생과 교사의 관계,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를 한 학교만 보면 다 똑같습니다.
조금 과도한 말이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농촌에는 교육이 없잖아요. 한 교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산에서 교사를 하다가 경북 영주로 옮겼는데요, 와서 보니 왜 단위 학교가 교육과정 수준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지, 입시나 성적이 아니라 커리큘럼을 왜 고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여기 아이들은 무기력하고, 졸업을 해도 갈 때도 없고, 영주에 남아 있으면 자영업 같은 작은 식당밖에 할 것이 없고. 이 아이들을 데리고 문제풀이를 할 수도 없고. 문제풀이를 한다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영주에 있는 대학을 간들 이 아이들은 무엇을 알겠습니까. 여기에 와보니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수준에서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보고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를 생각해봐야겠다는 절실한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우리교육은 서울중심, 중앙중심이지요.
김민남선생님이 현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식과세상>이라는 단체는 2014년 2월에 결성되었고 그해 12월에 협동조합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 단체는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교수를 포함한 총9명의 교수‧교사가 이사를 맡고 있고 대구 수성로에 사무실을 두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소개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목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시민, 학생, 학부모, 교사, 청년, 취약계층들과 함께 지식과 문화를 나누는 사업을 연대와 협력, 자치와 자립의 정신으로 진행함으로서 학습하는 사회공동체 만들기를 목적으로 합니다.“
다양한 강좌가 아니라 주제와 깊이에 방점이 찍혀 있는 강좌와 튜터가 있는 책읽기 등을 통해 인문정신의 고양과 연대, 학습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식과세상>의 창립 배경
정성원 : 지금부터는 <지식과세상>협동조합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어떤 과정과 계기를 통해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민남 : 이것도 간단합니다. 저도 선생을 하다 나왔잖아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계속 해야죠. 학교를 떠났다고 해서 제가 사람들과 얘기하고 책을 보고 하는 것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요. 이것을 계속 연장하고 싶었고, 이 연장하는 일에 동료들이 협력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성격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까지는 제도권 속의 학생을 상대로 했다면 제도권을 벗어나서 시민을 대상으로 하니까요. 대상이 바뀌면 목적과 내용도 바뀌어야 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할까. 다시 제도적 용어를 빌리면 평생학습이라는 것에 저희들이 동참하는 것 아닐까요. 사람들이 강의 몇 번 듣고 뭔가를 깨우쳤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참 많은 강좌가 개최되더라고요. 백화점에서든 어디서든. 공짜로 많이 이루어지던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정말로 평생학습은 학습을 평생 하는 거잖아요. 가르침을 평생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경험을 갈무리 하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잖아요. 그 경험을 어떻게 하면 갈무리해서 한 줄이라도 기록해볼 수 있을까. 일상으로서 가지는 것이 개인이나 한국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희는 강좌를 하지만 단기적 일회용 강좌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그 주제를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캐는 식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이라고 하면 학교 방식의 수학이 아니라 ‘수학은 즐기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수학이 왜 즐기는 것인가’ 답을 내어가는 방식으로 합니다.
저희 기관에서 제일 중심에 두는 것이 뭐냐면, 국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체계를 마련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음악을 하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농사를 짓는 사람들, 교육을 하는 사람 등등. 그런 숨어있는 사람들을 무대에 불러내고 자신의 삶을 노출시키고 그것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핵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회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특히 대구 사회를 바꾸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정치적 다양성이 없는 것은 정말 난감한 일입니다. 이것을 욕하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대구 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소수의 몇 사람, 중앙과 결부되어 있는 몇 사람이 아니고 이런 생존체계를 마련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조금이라도 커가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그래야 바뀌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내심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민남 선생님과 함께하는 책읽기’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모습(출처:지식과세상협동조합 사이트)
<지식과세상>의 수입과 운영 상황
정성원 : 현재 사무실도 내야하고 기관 운영을 하려면 최소한의 수입이 있어야 할 텐데요, 강좌 수강료 정도 이외에 다른 수입이 있나요?
김민남 : 시작하면서 동료 선생님들이 조금씩 돈을 내서 만들었는데요, 운영자금은 아직 조금 남아있습니다. 사무실 공간은 참교육 학부모회 공간을 쓰고, 젊은 친구들이 교육관련 연구소로도 쓰고 일부 교사들 모임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남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조합원 중심의, 지식을 생산하는, 지식을 대중화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사람, 그 지식을 관리하는 사람 중심의 조합인데, 대체로 그런 분들은 먹고 살만 합니다. 그런 분들이 재정 부담을 해야죠. 기본적으로는 자체적인 재정 부담을 생각하고요. 생존체계를 마련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야기 마당을 만드는 분들에게는 참여수당을 드려야하고, 비정기적 인사들을 가능한 많이 초대해서 강의를 하도록 하고 그분들에게는 강사료를 지불해야죠. 그것은 생산자인 저희들이 부담을 하는 것과 후원자들을 발굴하는 것 두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강좌를 하더라도 공짜로 하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수강료를 정하기는 하지만 수강료를 내는 함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내게 하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강좌 안내 게시판(좌)과 자율적으로 수강료를 낼 수 있는 함(우)
학습공동체에 대한 지향
정성원 : 전강수 선생님이 이곳에 와서 강의를 하신 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신 것을 봤습니다. “전국의 페친 여러분, 대구의 지식과세상협동조합에 주목하십시오. 단연 발군입니다.”라고 써놓으셨더라고요. 선생님은 어떤 점에 지식과세상이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지식과세상 홍보문안을 봤더니 학습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하던데요. 지금 당장은 실현되지 어렵더라도 가능성이랄까 혹은 경로랄까 이런 것은 무엇일까요.
김민남 : 두렵지요. 그렇지만 일단 두려우면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지만, 지식생산자라고 하면 대학에 있거나, 학교 교사이거나, 일단은 우리가 생존체계를 구성하면서 자기 삶에서 앎을 구성한 사람들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입니다. 그들은 그래도 이 사회에서 혜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기 지식을 바깥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은 혜택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끼리는 혜택 받은 만큼 조금씩이라도 그 혜택을 돌려주는 식으로 노력봉사로 내놓자 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 헌신적으로 동의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두렵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더 이 말을 알맹이 있게 하고,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을 만드는 사람들을 얼마나 더 많이 불러내느냐에 조합의 승패가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생각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평생교육은 백화점에서 다 하고 있더라고요. 대구에서도 서울에 유명한 사람을 강사로 부르면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더라고요. 저는 그게 평생교육을 다 망치고 있다고 봅니다. 평생교육이 어째서 강의 몇 번 듣는 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내가 놓치지 않으려면 자기 경험을 다듬어서 만들어가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할 텐데, 백화점에 조금 돈 있는,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우리사회를 대변하고요.
학부모들에게 체계를 갖춘 모듈 형태의, 적어도 4회 정도 한 주제를 가지고 한다면 안 옵니다. 대체로 60-90분 강의 한차례 듣는 것, 그것은 교육 아니지요. 그것은 공짜심리지요.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무엇을 얻는다고 할 때는 마음에 굉장히 고통을 겪어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교육은 마음의 고통을 겪게 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번 강의 듣고 베토벤을 알고 상대성원리를 아는 것은 공짜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심리가 우리 사교육을 부추긴다고 봅니다. 아무리 뭐라 그래도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시련을 겪는 곳입니다. 뭔가를 해야 합니다. 학원에 가면 다 해줍니다. 요령껏. 문제풀이 요령을 알려주고 출제경향을 가르쳐줍니다. 그거 공짜 아닙니까. 그것을 통해 성적을 얻었지만 성적을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는 학력은 나중에는 공짜심리만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냥 되는 것이 없나, 누구를 통해서 되는 것이 없나. 이런 것밖에 안 퍼뜨리지요. 이런 것을 하고 있어요 지금. 교육은 이런 사회문화적인 배경 없이는 안 되요.
정성원: 오랜 시간 성실하게 응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김민남: 멀리 대구까지 오셨는데 충분한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민남선생님은 사무실과 자택의 유격거리가 상당하지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십니다.
“왜 매일 나오시나요? 그렇게 일이 많으세요?”
“제가 상근자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하하하”
현 73세. 아마 한국에서 가장 연로한 상근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번 만나서 어떻게 상대방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함에 있어 가장 낮은 자세로 임하는 태도, 그것 하나만으로도 신뢰와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고희가 넘은 연배와 명예교수 신분이라면 년 간 몇 차례 회의나 행사장에서 격려 말씀 정도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김민남선생님은 여전한 현역, 짱짱한 현직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2013년에는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 참여연대 회원에게 국정원의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역할을 뜨거운 언어로 표현하기도 했고 오늘도 한국의 교육, 그 틀 안에 있는 아이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민남선생님은 가장 연로한 상근자가 아니라 가장 열정적인 상근자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식과세상> 그리고 김민남선생님의 건강과 안녕을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글&인터뷰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정리_이보라(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