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으로 책을 이해하는 방법, 공독(共讀)
- <숭례문학당> 이야기
『태백산맥』과 『소나기』
대학시절 『태백산맥』에 흠뻑 빠졌었습니다. 스토리도 흥미진진했지만 전라도 토속어를 어찌 그리 찰지게 표현할 수 있는지 숱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따끈한 책을 손에 쥐면 빨리 읽는 게 아까워 일부러 늑장을 부리며 책장을 넘겼는데 그건 마치 허기진 사람이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손가락을 빠는 듯한 고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역시나 따듯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봐야 제 맛입니다. 군것질거리 하나 손에 쥐면 금상첨화일테고요. 하지만 사회과학 영역의 책을 읽을 때면 왠지 자세가 달라집니다. 아무래도 책상 앞에 앉거나 정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소설은 온몸으로 흡수하지만 사회과학류는 주로 머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읽는 자세에도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입니다.
저자에 의해 책이 탈고되고 공표되는 순간 그 책은 낱낱이 해체되고 저자의 의도나 주제와는 무관하게 독자들에 의해 해석되고 취사선택될 수 있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저는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세상사 자기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님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와는 다른 해석을 하는 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책이 수학교과서가 아닌 이상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만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사람이 자라고 처한 환경이 다른 그 컨텍스트가 텍스트에 대한 상이한 해석을 뽑아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모여 서로 공유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한권의 책에서 실로 다양한 수십 권의 변주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최근 들어 함께 읽는 공독(共讀)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공독은 극단적인 주관적 해석에의 심취를 제어하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의 확인을 통해 자신을 더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자신의 언어로 말함으로서 뿌연 안개를 헤치고 나오는 명료성을 끌어올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함께 읽기는 혼자 읽기의 고단함과 나태함을 서로의 격려라는 품앗이를 통해 독서 엔진을 하나 더 장착하게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함께 읽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모임은 꽤 오래 전부터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수유+너머>와 같은 방식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수유+너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문학적인 기본바탕이 필요하기도 하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직장인을 위한 문턱 없는 공독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숭례문학당>입니다. 창 밖으로 숭례문이 보이는 공간을 주 모임처로 사용하고 있는 <숭례문학당>의 신기수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정성원: 숭례문학당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신기수: 90년대 기업의 노사분규 현장에 있었다. 사측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투쟁으로 변하고, 회사도 노조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아쉬움이 많았다. 건강한 노사화합의 기업문화,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책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조직문화를 바꾸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독서경영 교육회사’((주)행복한상상-편집자 주)라는 타이틀을 단 건 그 때문이다. 소통의 수단이 글과 말인데, 화법에 서툴러서 관계를 그르치는 일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으로 끊임없이 성찰하지 않으면 독선과 오만, 편견과 아집에 빠진다. 그런데 인문학 독서를 많이 한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한 건 그 때문이다. 초기에는 글쓰기, 즉 서평을 중심으로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데 서평을 배우고 싶어하는 일반인은 많지 않아서 진입장벽이 더 낮은 독서토론에 집중했다. 독서토론을 해보니 의외로 재미도 있거니와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성찰의 효과가 대단했다. 치유로 가장 좋은 방법이 말로 푸는 거니까.
정성원: 최소한의 이윤이 발생해야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데, 숭례문학당은 수익모델과는 거리가 있지 않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례문학당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기수: 애초에 독서경영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은 건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 기본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주로 도서관에서 진행되다 보니 요청이 많이 왔는데, 도서관에는 저자나 개별 강사들이 출강하는 정도고, 회사가 진행할 만한 예산이 없다.
독서토론이 그동안 독서모임 운영자에 따라 사적인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주로 주부들이 치유의 모임 형식으로 많이 진행했다. 또 다른 독서모임은 비즈니스 독서모임인데 주로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를 읽고, 세미나 형식으로 사례를 접하고 각오를 다지는 데 주안점을 두는 모임이다.
우리는 이 독서토론 모임을 소통의 조직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모델화하기 위해서 ‘논제’를 개발하고, 코디네이터로서 진행자의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인문학 도서를 위주로 토론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효과를 얻었다. 지식을 얻는 게 아니라 지혜를 얻는 달까. 속풀이를 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자기 성찰,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위장이 나빠서 한약을 먹었는데 몸의 체질이 개선되는 효과랄까. 애초에 독서토론의 효과가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처음 독서토론에 참석한 사람이 ‘교회에 온 것 같다’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영혼의 해방구다. 그런데 마약처럼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영혼을 빛나게 한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모태신앙을 가진 열혈 종교인이 독서토론을 만나면서 그간의 종교활동이 허깨비임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객관적인 거리두기를 통해서다. 책과 저자에게 몰입돼 허우적거리지 않고, 책에 충분히 몰입하면서 그 한계에 대해서도 함께 의견과 소감을 나누는 자리다. 우리가 숭례문학당을 하는 보람도 책에 빠진 사람들, 독서토론의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이렇게 보람 있는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무기력해져 있던 주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청춘, 인생의 후반기에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답답한 중년, 외롭지 않은 노후를 고민하는 장년의 삶들이 책이라는 계기를 만나, 독서토론이라는 시간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들을 보는 게 기쁨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종교도, 학교도, 국가도 하지 못하는 걸 우리가 한다고 말한다.(웃음) 지금까지 즐겁게 할 수 있었던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사업이 되냐”고 걱정하시는데, 한 4년 정도 힘들게 기반을 닦았다. 이제는 굶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돈 안되고, 재미는 있는 학습모임이 많아졌다.
▲숭례문학당 신기수 대표
신기수대표는 ‘논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논쟁꺼리’를 사전에 준비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사람을 코디네이터라고 부르는데 좋은 논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코디네이터가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숭례문학당>을 운영하고 있는 ㈜행복한상상에서는 독서토론을 제대로 진행하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독서토론 리더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서토론이 한담으로 일관하거나 얼굴 붉히는 심각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 코디네이터의 적절한 운영능력이 필요하고 또 사전에 논제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숭례문학당>에서 쓴 『이젠, 함께 읽기다』에 보면 논제는 자유논제, 선택논제, 찬반논제로 구분되는데 자유논제는 일종의 ‘입풀기 논제’와 같이 가볍게 책 전체의 내용에 대한 소감 나누기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선택논제는 중간 정도의 수준으로 참여자들이 자신의 가치관과 관점을 드러내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찬반논제의 경우 토론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발언하도록 유도하면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소통하도록 만드는데 본격적으로, 토론의 맛을 느끼는 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정성원: 숭례문학당 안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소개를 부탁합니다.
신기수: 서평독토, 낭독모임, 영화토론, 산책독토, 여행독토, 건축토론, 전시토론, 강연토론. 무엇이든 토론하는 모임이다. 강연토론의 경우 아무리 유명한 사람의 강연보다 끝나고 하는 우리들만의 강연토론이 더 재밌다고 한다. 인문학이 지식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제 목소리로 발언해야지, 누구의 말을 듣기만 하는 '강연쇼핑'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동영상 강의는 그런 점에서 권하지 않는다. 숭례문학당 프로그램은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우리의 경쟁력은 온라인으로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수익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행사는 도움이 되는 편이다. 주로 도서관의 북콘서트를 하는데, 도서관 예산이 빤하다 보니, 북 뮤지션들의 일자리 창출이나 작가들과의 연대의 의미가 크다. 그런데 이런 기반을 가지고 지자체든, 단체든, 기업이든 할 수 있는 거니까 열심히 한다. 무엇보다 너무 재밌기도 하고, 보람도 크니까.
정성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별, 연령별, 직업별 특징이 있습니까?
신기수: 학력의 격차가 크다. 유학파 박사부터 고졸 학력자까지. 오히려 다양해서 더 재밌고 깨닫는 것도 많다. 토론이라는 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수록 평소에 보지 못하는 부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니까. 정치적인 성향도 다양하다. 토론을 하다 보면 당연히 정치적인 지향이 보이지만 정치색을 가능한 배제한다. 이게 숭례문학당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진영을 나누지 않고 섞인다. 토론에서 옮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는 거지 누군가가 결론을 내지 않는다.
또 ‘수유+너머’나 다른 인문학공동체에 비하면 문턱이 훨씬 낮다. 숭례문학당에 오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여기에 왔다고 한다. 수준 높은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문학에 이제 갓 입문하려는 초보 독서가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큰 변화가 겪는다. 그동안 자신의 삶이 왜 문제였는지, 왜 풀리지 않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또 공부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 열광한다.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이었던 사람들이 많지만, 뒤늦게 책 읽는 재미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많다. 세상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찾으면서 살았는데, 여기 와서 공부하면서 혼란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주위 사람들이 정해놓은 길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걸 자각하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언지를 계속 자문하는 과정이니 그동안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자신을 찾아가는 치유도 일어나고, 이런 생각을 혼자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면서 자신감을 찾는다. 그런 과정을 겪으니 삶이 너무너무 행복하다고들 말한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오히려 한계가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자신만의 프레임, 고정관념 때문이다. 그런데 왕멍(중국의 학자-편집자 주)처럼 “나는 학생이다”(관련도서 『나는 학생이다』, 들녘)라고, 겸손하게 배우는 사람은 발전이 크다. 이채로운 건, 학교 공부는 못했지만 사회성이 있는 사람이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물론 학교 다닐 때 모범생은 학습력이 좋으니까 자신의 무엇이 문제인지 금방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도 많다.
연령은 초등 5학년부터 은퇴한 60대까지 다양하다. 30대 여성들이 가장 많고, 남자들은 전부 술집으로 간 건지 골프장으로 간 건지, 70% 정도가 여성이다. 여초현상은 책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업군은 회사원이 많고, 공무원도 좀 된다. 조직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새로운 탈출구로 공부하는 학습공동체를 찾는 셈이다. 사서, 교사, 변호사, 건축가, 강사, 교수, 회사원, 대학생까지 다양하다. 프리랜서가 많은 편인데, 백수 즉 취업 예비군도 많다. 어떤 측면에서 이 사람들은 정규직에 목매지 않는 사람들인데,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거나 찾는 사람들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처럼 아무래도 책 읽을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 은퇴한 사람들이 인생 후반기를 준비하기 위해서 오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해 글쓰기를 배우러 오기도 한다.
처음에는 성인 독서, 글쓰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는데 참여하신 분들이 10년 일찍, 20년 일찍 이런 프로그램을 접했으면 인생이 달라졌겠다면서 자녀들 프로그램을 개설해 달라고 요청해 자연스럽게 아이들 프로그램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유료 프로그램으로 하다가 사교육 업체로 보이는 게 강사도,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거 같아서 재능기부 프로그램으로 바꿨다. ‘정답이 없는’ 독서토론이 기치다. 아이들이 너무 재밌어 한다. 주입식 암기가 아니니 당연하다.
▲영화토론모임(사진제공: 숭례문학당)
정성원: 혼자 읽기와 함께 읽기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좀 해 주시지요.
신기수: 신독(愼獨)이라는 말처럼 혼자서 '고독'을 즐기면서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립’되어서는 곤란하다. 치열한 공부를 위해서 혼자 읽기도 해야 하지만, 그걸 검증하고 또 나누기 위해서 함께 읽어야 한다. 과거에는 지식의 시대여서 그걸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식이 널려 있고, 언제 어디서든 검색해 볼 수 있는 지금 시대에는 그 지식을 어떻게 연결시키고, 조합시키느냐가 중요하다. 통섭이며, 융합이란 것도 학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개인마다 경험과 생각,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암묵지, 영감, 통찰이 있는데 스파크를 일으킬 마당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공론장이나 댓글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나. 그걸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악플이 된다.
담론을 형성할 공간이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만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함께 읽기는 얘기를 나누는 공간이자 지혜를 모으는 마당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즉 우연한 만남을 자주 하기 위해서는, 통찰과 영감을 위해서는 업무회의나 브레인스토밍 같은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결과를 목적하지 않고 재미로 하다 보면 불현듯 멋진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나.
정성원: <숭례문학당>은 재미와 의미를 추구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신기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듯이 ‘오래 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김정운 (전)교수가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재미있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문화이다. 이념의 시대가 지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정치적 환경도 재미나 웃음을 찾기에는 뒷통수가 뜨겁기도 하다.
그런데 운동(movement)도 재미있게 해야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독서운동도 마찬가지다. 하는 사람이 재밌지 않는데 누가 재밌겠나. 지사적 운동으로 하는 사람도 힘들고, 계몽당하는 사람도 힘들다. 우리는 ‘재미주의자’들이다. 그렇다고 재미만 있으면 안되니까, 의미, 가치가 있어야 한다. 찰나적 재미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는 재미. 공부의 재미가 바로 그건데, 공부하는 재미를 다 탈색시켜버렸다. 온갖 시험과 결과 중심주의가. 헛된 욕망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가치 있고 또 재미있는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가치주의자’들이기도 하다.
정성원: <숭례문학당>의 경험을 토대로 『이젠, 함께 읽기다』를 쓰셨는데 그 책 발간의 의미는?
신기수: 우리 사회가 이제 소유의 시대에서 공유의 시대로 가고 있다. 혼자만의 성공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공존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다. 독서도 지식을 축적하거나 입신출세가 아니라 소통의 도구이자 세상을 보는 창(窓)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더 독서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가 입신출세와 성공을 위해서 독서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전문직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의사든, 변호사든, 교수든 직업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다 컴퓨터가 모든 걸 대체하는 사회에서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 융합, 통섭, 편집력이 중요하다. 그걸 얻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토론이다. 내용 없는 수다가 아니라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해 필요한 게 책이다. 이제 책을 읽지 않고, 토론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도, 세상을 이끌어갈 수도 없게 되었다.
이번 책은 ‘책의 가치’가 아니라, ‘독서토론의 가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접근한 책이라고 자부한다. 그것도 재미없는 학술서나 매뉴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으로 토론하면서 변화한 사람들, 책을 많이 읽었지만 아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천태만상, 현장 사례를 담은 재미도 있는 사례집이자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정성원: 학습 없는 시민사회는 치명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읽기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기수: 우리 사회가 무엇이든 성취에 초점을 두다 보니, 공부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공부는 시험을 위해서만 하니 시험 끝나고는 할 필요도 없다. 의외로 전문직 종사자들이 편협하고 자신의 분야밖에 모르는데, 독서를 너무 싫어하고 수준도 너무 낮은 걸 보고 놀랐다. 어떤 참석자들은 돈 안되는 문학, 쓸 데 없는 소설을 왜 읽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엄청나게 읽거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열린 사고, 유연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좌성향의 사람들도 일상의 삶에 치여 공부하지 않는 것 같다. 시민사회가 소득 수준만 올라가서 되는 게 아니라 ‘교양’이 있어야 하는데, 오페라나 와인이나 전시회 같은 데만 간다고 높아지는 건 아니지 않나. 기본은 책이다. 이제 운동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재미로서의 독서를 하다 보면,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교양은 저절로 생기지 않을까.
어려운 고전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다. 인문학 입문서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혼자가 외로우니까 함께 읽으면 된다. 우선 낭독도 하고, 강연회도 다니고, 내 얘기가 더 하고 싶으면 토론을 하면 된다. 그런 모임들이 학습공동체고.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하면 그게 평생학습이 아니겠는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시작하면 된다. 맨날 보는 사람들하고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 친구들과 하면 된다.
그렇게 재미를 붙인 다음에 직장에서, 가정에서 전파하면 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과 가정을 바꾸지 않고 행복할 리가 없지 않나. 직장과 가정이 바뀌면 사회는 당연히 바뀌는 거고. 어찌 보면 간단하고 명쾌하다. 이제, 함께 읽고 토론하자!
『이젠, 함께 읽기다』를 읽다 보면 니체의 다음과 같은 준엄한 꾸짖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은 뒤 최악의 독자가 되지 않도록 하라. 최악의 독자라는 것은 약탈을 일삼는 도적과 같다. 결국 그들은 무엇인가 값나가는 것은 없는지 혈안이 되어 책의 이곳저곳을 적당히 훑다가 이윽고 책 속에서 자기 상황에 맞는 것, 지금 자신이 써먹을 수 있는 것, 도움이 될 법한 도구를 끄집어내어 훔친다. 그리고 그들이 훔친 것만을 마치 책의 모든 내용인 양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을 삼가지 않는다. 결국 그 책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물론, 그 책 전체와 저자를 더럽힌다.(『니체의 말』 니체 저, 삼호미디어)
아예 독서를 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에 기실 니체가 통렬히 비판한 최악의 독자는 그리 많지도 않은 실정입니다. 그러나 니체의 일갈을 따라가다 보면 자의적/주관적 해석, 그리고 그것을 마치 보편적 진리인양 주장하는 것의 폐해를 만나게 됩니다. 결국 책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넘어서서 입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공독이 꽤 유력한 진지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숭례문학당도 좋고 인근의 도서관도 좋습니다. 함께 읽는 모임에 참여해서 자신이 해석한 빛깔만이 아니라 타인의 칼라도 한번 맛보시기 바랍니다. 무지개는 단색이 아니라 일곱색깔의 조화를 통해 더 아름답게 빛나는 법이니까요.
☞ 숭례문학당 www.isangsang.kr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 수원시평생학습관 도요새책방에서는 다양한 함께 읽기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추천하고 모임 개설을 요청하실 수도 있습니다.
(도요새책방 '함께 읽기 모임' 자세히 보기 http://www.doyoli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