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자립과 완전고용으로 일궈낸 비공식 여성 노동자들의 성장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여전히 팽배한 여성의 불평등과 빈곤
매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다양한 소식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지구촌 여성의 현실을 본다.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여성들의 인상 깊은 활약상으로 이전보다 향상된 여성의 위상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갈등과 학대로 얼룩진 여성의 일상들이 연이어 보도된다. 여성과 관련된 격차를 줄이는 노력은 국제안보공조, 국제경제개발 협력 및 인권개선 등 유엔(UN)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은 지난 2000년에 새천년 개발 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를 천명하고, 국제 빈곤퇴치를 위하여 2015년까지 최우선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8개의 세부목표를 정하였는데, 남녀 간 성평등 촉진과 여성 역량강화도 그 중 하나이다.
2000년 이후 유엔은 매년 새천년 개발 목표 보고서를 발간하여 8대 세부목표달성을 위한 유엔의 노력과 발전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개발도상국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리 증진에 대한 국제적인 노력과 성과, 전반적인 현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개발도상국 내 초중등 교육의 경우 남녀 간의 진학률 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나 고등교육 단계에서는 불평등이 발생하는 지역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여성의 임금노동시장으로의 유입은 증가하고 있으나 직업의 질이나 임금수준이 남성에 비해 저조하다는 등의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작은 가판을 열거나 품삯으로 돈을 버는 비공식 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빈곤층 내 최빈곤 계층 – 여성 비공식 노동자
인도의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는 비공식 노동자로 자영업에 종사하는 빈곤 여성들을 조직화한 노동조합으로 1972년 설립된 회원 기반 조직이다. 《SEWA》는 지역, 종교, 카스트를 초월해 비공식 노동자인 가난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회원 자격을 가질 수 있다. 설립 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SEWA는 여성 비공식 자영업 노동자 노동조합, 130여 개의 협동조합, 181개의 농촌 생산자 모임, 은행, 주택, 보험, 보육, 보건, 교육기관 등을 운영하며, 인도의 비공식 자영업 여성 노동자의 자립과 평등을 실현하는 하나의 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해왔다. 외진 시골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위치하고 있는 SEWA 지부에는 2012년 현재 총175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 SEWA 홈페이지 화면(출처: www.sewa.org)
40여 년전 인도 사회의 빈곤계층 중에서도 가장 빈곤한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자립을 위하여 SEWA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조직화였다. 인도의 경우 거리 행상, 바느질, 부엌, 농사일 등을 포함하는 품삯 업종, 여타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에서 정식 법적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는 일용 노동자들이 비공식 노동자에 포함된다. 이들의 특징은 정식 계약서에 기반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를 맺고 노동을 제공하지 못하며, 따라서 인도 정부에서 법적으로 보장하는 다양한 노동자의 권리와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또한 일반적인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는 공식 노동조합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소외계층이다. 인도에서 비공식 노동자는 고용시장 인력의 86%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 여성의 94%가 비공식 부문의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고, 여성 비공식 노동자 중 63%는 농어촌과 같은 시골지역에 살고 있다. SEWA의 목표는 무기력하고 배운 것이 없는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교육함으로써 그들에게 자립과 고용안정을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설립 당시부터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을 자영(Self-employed) 여성이라 칭하며 스스로의 삶을 이끄는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SEWA의 시작
SEWA의 시작은 인도 섬유산업의 주지역인 아메다바드(Ahmedabad) 섬유 노동조합의 여성분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주로 이 지역의 섬유 공장에서 일용 노동자로 손수레를 가지고 옷감을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SEWA의 설립자 엘라 바트(Ela Bhatt)는 1970년 초반 섬유 노조의 법무담당으로 일하면서 이 지역의 섬유 공장이나 상점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일하고 있는 비공식 노동자들이며, 이들의 대부분은 섬유노조의 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한 활동으로도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임을 알게 된다. 섬유노조는 여성 노동자들을 고용자와의 불평등한 관계에서 불이익을 받는 노동자로 간주하지 않고, 단지 남편을 도와 가계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주부들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의 여성 법무 담당인 엘라 바트에게 찾아와 그들이 늘 겪는 어려움(공장주의 일당 미지급, 열악한 노동조건, 들쑥날쑥 변하는 일당 등)을 토로하곤 하였다.
▲SEWA 설립자 엘라 바트가 유엔에서 연설하는 장면(출처)
엘라 바트는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비공식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길거리 가판을 벌이고 야채나 수공예품 장사를 하는 여성, 여타 공장이나 부잣집에 일용직 노동과 도우미로 일하는 여성 등)을 조직하여 노조를 만들어 자신들의 권리와 함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노동운동을 시작하였다. 노조는 비공식 노동을 하는 여성들을 자영업자로 지칭하며 그 이름을 자영 여성 연합회 즉, 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로 명명한다. 엘라 바트가 설립 당시 SEWA를 통해 이루고자한 것은 글자를 읽지도 못할 만큼 교육수준이 낮은 여성 한 명 한 명이 그들의 빈곤을 혼자서 퇴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노조를 이루어 하나의 목소리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획득하는 것으로 그들의 삶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었다. SEWA는 이렇듯 주로 여성 비공식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업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 활동을 벌이는 여성 노동으로 시작되었다.
엘라 바트는 SEWA 설립 후 첫 해 활발한 캠페인성 노동운동의 결과로 몇 개의 중요한 여성 노동자의 권리가 쟁취되었음에도 이들의 삶은 여전히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고민을 하게 되는데, 빈곤층 여성 노동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의 사채업자에게 융자한 돈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하루하루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사채업자에게 고이자로 빌려 쓰고, 힘든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사채업자에게 진 빚을 갚는데 쓰고 있었다. 엘라 바트를 비롯한 SEWA의 리더들은 SEWA 회원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저이자로 융자가 가능한 은행인 것을 인지하게 된다. SEWA 리더들은 은행 설립을 위한 자본금을 어디서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SEWA 설립 철학에서 찾았다. 회원들 한 명 한 명이 가지고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아지는 자금이라면 은행을 열 수 있는 최소한의 자본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2년 동안 6,287명의 회원들로부터 모금된 약 14,000달러(미화)의 자본금으로 1974년에 인도 마이크로크레디트 금융의 선도은행이 된 《SEWA 협동조합 은행》이 문을 열게 된다.
자본가만이 은행을 만들 수 있다는 기존 관념을 깨버린 SEWA의 혁신 철학은 SEWA 협동조합 은행의 운영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SEWA 협동조합 은행의 주고객인 SEWA 회원들의 대부분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여성이다. 이들이 은행계좌를 열기 위해 서명이나 복잡한 문서를 작성하는 것 대신 명함판 사진을 제출하여 신분을 확인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또 은행방문은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시급을 못 받게 된다는 것을 파악한 후, SEWA 회원들이 다른 회원들을 직접 방문하여 은행의 수금업무를 진행하였다. 이처럼 혁신적인 운영방식을 적용한 SEWA 협동조합 은행은 성장을 거듭하여 2012년에는 약 371,000명의 이용고객과 미화 2백만 달러의 수탁고를 기록하였다. 1970년대 후반 SEWA 협동조합 은행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은행지점이 개설되기 어려운 외딴 지역에서 SEWA의 회원들이 직접 신용자조모임(Credit Self-Help Group)을 만들어 운영하였다. 회원들은 모임의 리더를 선출하고 모임에서는 회원들의 예금을 집단으로 모으고 집단의 결정으로 융자를 해주는 마을금고를 운영하게 된다. 이때 SEWA는 마을금고 설립과 운영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지식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여 신용자조모임을 지원하였다.
SEWA의 진화
▲아메다바드 지역의 SEWA 회원(출처)
SEWA는 40년간 스스로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배우며 성장해왔다. 은행은 자립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고, 그 후 SEWA의 회원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다수의 모임과 기관, 사업체 등을 만들어 가면서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 집단의 힘과 능력을 증명해보였다. SEWA가 지난 40여 년간 조직해온 다양한 대표 조직들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설립 년도).
-. SEWA 협동조합 은행 (1974)
-. 퍼스트 우유 협동조합 (1979)
-. 아나수야 뉴스레터 (1982)
-. SEWA 전국 연합회 (1982)
-. 퍼스트 기능인 협동조합 (1982)
-. 비디오 SEWA (1984)
-. 퍼스트 어린이 보육 협동조합 (1986)
-. 퍼스트 나무 재배자 협동조합 (1986)
-. 퍼스트 야채 및 과일상 협동조합 (1989)
-. SEWA 아카데미 (1990)
-. 퍼스트 보건 /돌봄 협동조합 (1990)
-. 퍼스트 염전농 협동조합 (1991)
-. 비모 SEWA 보험 (1992)
-. SEWA 협동조합 연합 (1993)
-. 구야라트 마힐라 주택 신탁 (1994)
-. 퍼스트 조산인 협동조합 (1994)
-. 쿠치 수공예 연합 (1995)
-. SEWA 그램 마힐라 하트 마켓팅 (1999)
-. SEWA 무역 촉진 센터 (2000)
-. 지방 도시 유통 센터 (2004)
SEWA는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을 위한 노조로 시작되었지만, 진화과정에서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는데 요구되는 다양한 요인들을 찾아내어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그들이 주체가 되어 조직들을 운영해왔다. SEWA는 섬유공장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도시(아메다바드)에서 시작되었지만, 발전과정에서 그들보다 더 빈곤한 지역인 벽촌지역의 문맹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도 조직화하고 자립하는 기반을 마련해왔다.
이러한 진화과정이 혁신으로 이해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 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인 문맹 여성과 비공식 노동자들을 조직화하여, 완전고용(full-employment)와 자립(self-reliance)의 달성을 가능하게 한 노하우 때문이다. SEWA가 강조하는 완전고용이란 여성 비공식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의식주 안정성, 보건과 교육이 보장되는 사회적 안정성을 보장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고, 자립이란 완전고용이 여성 비공식 노동자 개인이나 집단의 자주적인 의사결정과 활동을 통해 성취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완전고용과 자립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SEWA 성장의 원동력
SEWA 혁신의 첫 시작은 조직화를 통한 자생력 획득이다. SEWA는 설립 당시부터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빈곤 퇴치의 핵심은 조직화를 통한 자생력 배양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빈곤의 뿌리가 개인의 부족함보다는 사회와 시스템의 부조리에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고 조직화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SEWA는 힘없는 여성 노동자들도 조직화를 통해 얻어지는 의미 있는 힘을 회원들의 현실적인 필요에 집중하여 사용함으로써 더 큰 조직화가 가능해지는 선순환의 전략을 구사하였다. 또한 조직화하는 힘을 일회성으로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식적인 모임이나 조직, 기관을 만들어 그들의 집단적 능력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SEWA는 설립 당시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법적인 노동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조직으로 시작, 노점상들의 합법적 상행위 라이센스 취득, 일용직 노동자들의 채불 문제 해결과 같은 이슈를 풀기 위한 캠페인성 활동에 집중하여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을 회원으로 모으고 조직화하였다. 이러한 현실적 필요의 1차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한 후 곧 이것만으로는 이들의 삶을 개선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협동조합 은행을 설립한다. 협동조합 은행을 통해 저리의 융자가 가능해지자 각 지역별로 여성 노동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역량을 사업화할 수 있는 영역에 다양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해 나간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가계수입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주거환경의 개선과 보건, 보육, 보험 서비스의 제공이 필수적이라는 회원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이것들이 가능한 협동조합과 다양한 연합회 등을 설립한다.
이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풀기위해 SEWA의 회원이 된 여성 노동자들은 조직화의 과정을 거치며, 여성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그에 요구되는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참여와 자립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SEWA는 여성 노동자들이 어떤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하고,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조직 내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해왔다.
이와 같은 성과는 집단적 자립(Self-Reliance)으로 현실에 필요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완전고용(Full Employment)이라는 두 가지 큰 원칙하에 SEWA의 활동이 이루어졌기 가능했다. 또한 SEWA가 이런 원칙을 40년간 훼손하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운영의 묘를 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이 두 원칙을 지키는데 가장 적절한 운영 방식을 찾아 유연함을 유지하며 조직을 성장시켜 왔다. 노동운동을 주장하면서 협동조합 설립에 반대하지 않았고, 도시 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의 다수가 주변의 시골 지역에서 이주해 온 여성들임을 인지하자, 즉각 시골지역의 마을리더를 선발하여 시골 지역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나갔다. 또한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지속적인 수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감의 부재라는 것을 인지하자, 지역별로 여성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지역 코디네이터와 마을리더가 모여 마을의 여성노동자와 함께 찾아낸 후(예: 전통자수기술) 이것을 상품화하고 판로를 개척했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역에 따라 업종에 따라 여성노동자 스스로 모임을 조직화하고, SEWA는 운영에 필요한 지원과 교육만을 제공할 뿐, 그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별로 나타난 수요가 전국적으로 힘을 모아 중앙정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을 땐 SEWA가 직접 나서 전국 연합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SEWA는 필요에 따라 지역별 조직과 전국적 조직을 만들고 연합했다. 이미 짜여진 계획에 따라 지역별 업종별 조직을 만들고 난 뒤 SEWA의 산하조직이 여성 회원들의 필요를 찾아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SEWA는 그들을 반얀나무라고 칭할 만큼 반얀나무의 가지가 자연스럽게 여기 저기 뻗어나가듯 다양한 조직과 그룹이 생겨났다.
유연함과 함께 SEWA가 지속적으로 강조한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 무엇을 하든 그들이 주인의식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 SEWA의 중앙지도부가 주도하기보다는 회원들이 스스로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내고, SEWA는 이를 충족할 방안을 만들어내는데 요구되는 지원만을 제공하는데 집중하였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SEWA는 여성 노동자 회원들의 교육과 역량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역별 업종별로 여성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음을 자각하도록 하는 교육과 함께 문제해결의 리더로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리더십을 강화하는 교육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회원으로 가입하여 공식적인 조직화를 통해 1차적인 주인의식을 느끼도록 한 후, SEWA 조직을 통해 진행되는 다양한 활동의 참여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움의 동기를 느끼도록 설계하였다.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교육
SEWA는 회원들의 역량 강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협동조합이나 소액금융기관 등의 자매기관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991년 세워진 「SEWA아카데미」는 교육훈련을 통해 여성들을 성장시키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SEWA아카데미는 스스로를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대학’이라고 칭하며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아카데미의 주요 프로그램은 교육훈련과 문해교육, 연구활동, 커뮤니케이션 등이다.
▲SEWA 아카데미 모습(출처)
1) 교육훈련
SEWA아카데미는 2012년 한 해 동안 10,820명의 회원들에게 442개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밝히고 있다. 프로그램은 SEWA 일반 회원 대상의 입문 프로그램부터 지역의 회원을 모으는 조직화, 지역 조직을 이끄는 지역리더를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프로그램까지 그 대상과 내용이 광범위하다. 교육의 주제는 직업, 젠더, 풀뿌리 조직화 방법,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교육 같은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예전에는 SEWA의 본부가 있는 아메다바드에서만 교육이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국내외 SEWA 지사에서도 교육훈련에 참여할 수 있다. SEWA의 교육 프로그램의 특징은 1차 대상인 여성 비공식 노동자 중 많은 이들이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학습자 참여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학습자들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문제가 주어지고, 역할 학습, 토론, 그림그리기, 게임, 노래, 영상 시청 등의 다양한 방식을 이용하여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찾아본다. 각 교육 프로그램에서 쓰이는 독특한 방식은 교육 방법은 매뉴얼로 제작되어 배포되기도 한다.
또 한 가지의 특징은 교육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이 SEWA 활동을 효과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하여 외부인에게도 널리 공유될 수 있는 스킬(비디오 제작, 사진 찍기, 풀뿌리 사례 조사 방법 교육, 강사 양성 등)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또 SEWA의 성과와 경험을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널리 확산시키기 위하여 외부 참여자(주로 연구자, 국제개발 전문가, 정책 입안자 등)를 대상으로 회원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Exposure-Dialogue Programmes, EDPs)을 진행하는데, 이를 통해 회원들은 자신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 SEWA 비회원들과 공유한다. SEWA아카데미는 SEWA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하는데, 주로 청소년 시기 여성들이 보다 다양한 구직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컴퓨터, 보건 분야의 교육훈련을 제공한다.
2) 문해교육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여성들의 능력을 확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8세에서 50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SEWA아카데미를 통해 문해교육을 받고 있다. 직접 방문해 교육을 받기 어려운 여성들을 위해 동영상 강의를 촬영, 상영 장비가 장치된 차량을 커뮤니티 곳곳에 파견해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을 위한 독서 토론 클럽은 글이나 기사를 읽고 주제 토론을 하는 활동으로 청소년들의 논리력 향상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문해교육의 일부로 컴퓨터를 사용하여 정보를 채득하고 글을 작성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3) 연구활동
빈곤 여성 이슈가 제대로 연구되고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SEWA 아카데미는 외부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관련 연구물 및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특히 지역 내에서 연구조사가 가능한 여성 전문연구원을 길러내기 위해 연구지원팀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결과로 2008년에는 19개의 연구과제가 진행됐는데 이 연구의 기초 자료는 모두 풀뿌리 여성연구원의 기여로 가능하였다. SEWA의 기록보관소 역할을 수행하는 간행물 센터도 SEWA아카데미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센터는 여름 휴가철이면 회원 자녀를 위한 특별 책 전시회를 진행하는데 영화 상영, 그림공작 교실, 동화 구연 등의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 회원과 자녀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4) 커뮤니케이션
SEWA는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정보를 나누는 것을 넘어,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SEWA아카데미에서 격주로 발행하는 SEWA의 뉴스레터 「아나수야(Anasooya)」는 1982년 창간하여 SEWA의 활동과 여성들이 처한 이슈를 담아내고 있다. 「아카쉬간가(Akashganga)」는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잡지로, 아카쉬간가 클럽은 이들이 지역 SEWA도서관이나 기록 보관소를 이용하도록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
▲SEWA 아카데미 비디오 제작(좌) 및 루디 노 라디오 녹음 모습(우)
특히 <비디오 SEWA(Video SEWA)>와 <루디 노 라디오(Rudi no Radio)> 같은 연계 조직은 영상이나 라디오 같은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통해 여성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극대화 하고 있다. <비디오 SEWA>는 빈곤 여성들과 테크놀로지라는 조합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결과물을 외부에 공유하는 작업을 달성해내고 있다. 영상 촬영과 제작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역량강화를 달성할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같은 여성들에게도 자극이 되어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여성들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누릴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으로 전하는 중요한 툴을 스스로가 운용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긍심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여성들이 제작한 비디오는 BBC, UN 등에 자료로 사용되거나 컨퍼런스를 통해 상영되면서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내고 있기도 하다. 2005년 시작된 <루디 노 라디오>는 편지와 전화를 활용, 여성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여성들의 이야기가 전국, 지역 라디오 채널을 통해 송출되고 있으며 2012년 2,095개에 달하는 프로그램이 이것을 통해 방송되었다. <루디 노 라디오>는 2011년 《아시아 커먼웰스 교육 미디어 센터(The Commonwealth Education Media Centre for Asia, CEMCA)》로부터 우수 창작 혁신 프로그램상을 받는 등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SEWA 아카데미는 교육을 통해 경제나 교육, 커뮤니케이션 등의 공식적인 부문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목소리를 신장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 정책 결정자들을 상대할 수 있게 한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여성들의 능력을 발전시키고 그 영향력이 주위에 전파될 수 있게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한 교육훈련을 넘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은 비공식 여성 노동자의 집단적 자립을 실천하는 SEWA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공한 혁신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40년 역사를 통해 글조차 읽지 못하며 자신의 빈곤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인지조차 못했던 인도의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 SEWA의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SEWA가 만들어낸 성과는 국제개발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많은 연구자, 정책입안자, 활동가들에게 배움의 대상이 되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지구촌의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개발 활동을 소개하는 지면이 아닌, 혁신을 통한 평생교육을 생각해보는 지면을 통해 소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혁신이란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접근방법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특히 새롭게 시도되는 방법과 절차에 많이 주목한다. 하지만 모든 사회혁신의 사례에는 새롭게 시도되는 방법과 절차를 새롭게 제안해보고 운영해보는 사회혁신가 또는 사회혁신기관, 그러한 방법과 프로그램의 적용대상자로서 자신의 문제이자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나가는 혁신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존재한다. 결국 어떠한 혁신적인 프로그램과 방법이라 할지라도 이들 두 집단의 운영 과정에서 어떠한 철학적 공감대나 원칙이 존재하지 않고 지켜지지 못한다면, 그러한 혁신 프로그램에서 기대되는 효과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SEWA의 사례는 바로 그러한 사회혁신의 필수 요소인 철학적 원칙과 공감대를 SEWA와 SEWA 회원 사이에 40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고수한 결과로 만들어진 사회혁신의 지속과 확산을 보여준다.
구글을 통해 SEWA의 사례를 연구한 연구보고서를 검색해보면 수많은 보고서들을 쉽게 찾을 수 있고, 보고서마다 SEWA의 여성들이 아래로부터 조직화에 성공한 요인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특히 SEWA의 분산적이면서 유연한 운영방식과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주목한다. 이러한 정보는 SEWA처럼 확산 단계에 있는 여타 사회혁신 사례에도 유용하게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SEWA의 사례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학습 포인트는 SEWA가 설립 초창기부터 확고하게 설정된 집단적 자립과 완전고용이라는 원칙이며, 언제나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여타 다른 운영과 확산의 세부 방법들은 언제나 유연하게 변화시켜온 점이라는 것이다.
SEWA가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역시 이러한 원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운영되어 왔다. 집단적 자립이 가능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난 뒤, 여성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공하였다. 교육 프로그램의 주제 뿐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의 전달 방식도 회원들이 직접 참여하여 배워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철학은 자연스럽게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SEWA의 다양한 조직과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강화 프로그램,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설립과 운영이 가능한 협동조합,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제작과 운영이 가능한 라디오와 비디오 프로그램,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수행할 수 있는 풀뿌리 사례 연구 프로그램 등으로 확산해 나간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SEWA의 두 원칙이 설립 당시 설립자의 계획에는 명확히 정의된 것이 아니었다. SEWA의 설립자 엘라 바트가 만들어낸 초창기 SEWA는 인도의 가장 취약한 계층 중 하나인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통한 집단의 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SEWA가 다른 여성 노동운동과 차별된 점은 끊임없이 SEWA의 회원들과 함께 그들의 현실 속 문제를 공유하면서,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인도의 여성 비공식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집단의 힘뿐만이 아닌, 집단의 힘을 이용한 스스로의 자립이며, 자립은 완전고용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원칙과 철학의 깨달음이 SEWA 중앙리더와 회원들 사이에 함께 공유되고 지켜오면서 그 외 부수적인 다양한 혁신적인 프로그램과 방법들이 만들어지고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혁신적인 교육, 혁신을 위한 교육, 교육을 통한 혁신… 교육과 혁신이라는 두개의 주제어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조합이 있다. 각기 다른 조합은 혁신과 교육 중에 무엇에 방점을 둘 것인가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조합이 만들어지든지 혁신과 교육을 함께 생각해본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SEWA의 사례를 통해 다시 한 번 상기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과 교육을 통해 현재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사회의 필요를 풀기 위해 우리가 꼭 지켜가야 할 원칙과 가치는 무엇인지를 학습자와 함께 파악하고 공유하는 일이다. 혁신과 교육의 시작과 지속가능의 힘은 혁신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의 원칙과 철학을 늘 파악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글_김정원, 금민정(스프레드아이)
☞ SEWA http://www.sewa.org/
☞ 아메다바드 http://www.welcometoahmedabad.com/
☞ SEWA 아카데미 http://www.sewaacademy.org/
☞ 루디 노 라디오 http://www.radiosewa.org/
☞ <A sun has risen in my heart> 등 관련 영상 http://www.videosewa.org/ourwork.htm
<참고자료>
◦ Blaxall, J. (2004) India’s 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SEWA) – Empowerment through Mobilization of Poor Women on a Large Scale, World Bank
Datta, R. (2003) From Development to Empowerment: The 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 in India, International Journal of Politics, Culture and Society, Vol. 16, No. 3, Spring 2003
◦ ILO (2014) Chapter 7. Self Employment Women’s Association (SEWA), India, Learning from Catalyst of Rural Transformation,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Kapoor, A. (2007) The SEWA way: Shaping another future for informal labour, Futures. 39 (2007) 554-568
◦ SEWA Annual Report 2012
◦ SEWA Annual Report 2008
◦ UN (2014)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Report 2014, 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