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큰 그림 그리기 《빅 픽처 스쿨》
12초 마다 한 명의 학생이 학교 중퇴
“미국에서는 12초에 한 명 꼴로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올해에 2,631,033명의 학생들이 중퇴한다는 말입니다.”
충격적이고 다소 자극적이기까지 한 이 통계를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가 있다. 바로 《빅 픽처 러닝(Big Picture Learning)》이 그 주인공.
빅 픽처 러닝은 1995년 교육이론가 엘리엇 와쇼(Elliot Washor)와 데니스 리트키(Dennis Littky)에 의해 미국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에 설립되었다. 데니스와 엘리엇은 공립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으로서 30년 동안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 혁신에 매진했는데, “교육은 모든 사람들이 신경써야할 일(Education is everyone's business)”을 모토로 내세우며 교육 체계가 급진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혁신적인 교육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엘리엇과 데니스가 새로운 교육에 대한 실험을 꿈 꿀 때 즈음 로드 아일랜드 주정부는 교육 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있었는데 이 때 데니스와 엘리엇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별적인 교육에 집중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안했고, 이것이 성사되어 《빅 픽처 스쿨(Big Picture School)》이 설립되기에 이른다. 로드 아일랜드에 처음 설립 시 50명의 신입생으로 출발했던 학교는 현재 5개 나라에 131개의 학교를 둘 정도로 성공적인 확산을 자랑하고 있다.
▲빅 픽처 스쿨 네트워크/빅 픽처 러닝(http://www.bigpicture.org/) 홈페이지에서 갈무리
빅 픽처 러닝은 스스로의 사명을 “거시적 차원에서 한 나라의 교육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한 학생의 교육에도 집중하는 것(the education of a nation, one student at a time)”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교육에 관한 근본적인 재설계에 헌신하는 비영리기관으로 이들은 현실 세계와 지역 공동체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혁신적이면서도 개인에게 맞춰진 학습 환경을 만들어 미국 교육 시스템의 중요한 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을 비전으로 갖고 있다. 빅 픽처 러닝의 사명에 있어 그 핵심은 모든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것에 있다. 특별히 이는 도시 주변부의 소외된 학생들이 성공을 달성하는 것을 돕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를 위해 빅 픽처 러닝은 혁신적인 학습 환경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학습 모델을 연구하고 복제하며, 교육자들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의 리더로 봉사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활동을 한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박한 시작, 그러나 엄청난 성과
1996년 메트로폴리탄 지역 직업 및 기술 센터(Metropolitan Regional Career and Technical Center, 줄여서 Met로 부름)에서 6개의 학교, 50명의 신입생으로 출발했다. 이들 대부분은 전통적인 학교에서 소외되었던 흑인 또는 라틴계 학생들이었는데 2000년 첫 졸업생을 배출하던 해, 놀랍게도 이들의 졸업률은 96%. 98%의 졸업생은 상급 교육기관으로 진학했고 50만 달러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이들 대부분은 가족 중 첫 번째로 고등학교 학위를 얻게 되는 셈이었으며, 80% 가까운 학생들은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셈이었다.
이런 성과는 미국 전역으로부터의 관심을 얻기 충분했고,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Met에서 진행된 빅 픽처 스쿨을 최고의 고등학교이자 미국에 더 필요한 학교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2001년에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부터의 후원을 바탕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빅 픽처 스쿨이 시도 되었고, 2008년경에는 60개 이상의 빅 픽처 스쿨이 14개 주에서 운영되기에 이른다. 또한 호주,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에서는 빅 픽처 러닝을 활용한 학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생겨난 지 10년 이내에 빅 픽처 스쿨은 복제되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현재는 미국인들에게 공교육의 시스템을 새롭게 생각할 것을 도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수치를 통해 이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교육 모델’의 성과는 자명하다. 미국에 있는 67개의 빅 픽처 스쿨의 전체 졸업률은 92%로 이는 전국의 학교 졸업률 66%와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많은 빅 픽처 스쿨들이 다양한 인구와 인종들을 지원하고 있다. 첫 번째 빅 픽처 스쿨인 로드 아일랜드의 학교는 80%가 넘는 학생들이 학교 급식 보조금을 수급할 수 있는 학생들이고, 34%의 학생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 74%의 학생들이 대학 또는 전문 기술 훈련 프로그램에 진학했는데, 이는 전국 평균인 68%와 비교되는 수치다. 이렇게 상급학교로 진학한 학생들 중 75%의 학생들은 자기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기도 하다.
빅 픽처 러닝의 교육 철학과 모델
이런 교육을 구현하는 중심에는 각 학생에게 맞는 개인화된 커리큘럼이 존재한다. 이는 구체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인턴십을 통해 구현되는데, 시청부터 지역에 있는 스케이트보드샵까지 학생들이 직접 인턴십을 경험하고 자신이 배우기로 선택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간다. 어른들과 함께 일하고 소통하는 것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을 배우며, 자신이 신뢰하는 전문가로부터의 가이드를 얻고, 그 전문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다. 이러한 교육은 직업 교육과 학문적 교육의 전통적 구분을 깨뜨리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직장과 학교의 연결을 강화시켰고 배움이 학교 밖의 실제 환경에 적절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빅 픽처 러닝의 핵심 요소, LTI
각 학생의 개인 학습 계획은 부모, 선생님, 인턴십 멘토들과 함께 작성되며, 이 과정을 통해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학생의 발달에 책임의식을 갖게 되고 학생은 자신의 학습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알려야 하는 책임을 갖게 된다. 교육 평가는 대중 전시, 상담자와 함께 하는 주별 체크인 만남, 일지 작성, 포트폴리오에 대한 발표를 포함하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경력을 가져갈 현실 세계의 평가를 반영하는 것들이다.
학생들을 한 개인으로 대하는 것에 대한 강조점은 학생의 가족들을 포함한다. 빅 픽처 스쿨은 학생들이 자신의 부모 역시 배우는 사람일 경우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학교의 성인 교육 프로그램은 공통의 유대감을 가진 부모들로 구성된 지지자 그룹을 형성하며 빈곤과 사회적인 불리함의 고리를 끊는데 도움을 준다. ‘부모 리더십 훈련소’는 부모들이 학교에 더 잘 참여하도록 권한을 강화시키며, 이웃들 간의 관계를 되살리는 것에 열심이도록 만든다. 가족들은 커리큘럼 기획 모임과 학생의 작품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며 결국 좋은 멘토가 된다.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전화나 집 방문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이는 학생을 지원하는 좋은 자원이 된다.
빅 픽처 러닝의 교육 모델을 잘 요약해 보여주는 그림은 위와 같다. 학생 개개인의 욕구와 흥미에 맞춰진 학습을 위해 15명 이하로 이뤄지며 ‘어드바이저리(Advisory)’라고 불리는 학생 그룹을 운영한다. 이 그룹에서 학생은 담임선생님 격인 ‘어드바이저(advisor)’의 지원을 받게 된다. 학습의 중심은 늘 학생 개인에게 맞춰져 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인턴십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성인 멘토와 부모 및 가족의 지원을 통해 학습을 성공적으로 이어간다.
빅 픽처 러닝의 3가지 원칙과 5가지 학습 목표
좀 더 자세히 빅 픽처 러닝을 들여다보자.
빅 픽처 러닝의 요소들은 아래의 3가지의 원칙에 기초하여 디자인 된다.
첫째, 배움은 각 학생들의 흥미와 목표에 기반해야 한다.
둘째, 한 학생의 커리큘럼은 반드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장소와 연관성을 가져야만 한다.
셋째, 한 학생의 능력은 그 학생의 작업의 질에 의해 엄밀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원칙 아래에서 빅 픽처 러닝은 고등학교 졸업생이라면 반드시 논리적인 추론을 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며, 지역사회의 능동적 구성원으로서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빅 픽처 스쿨에는 모든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고전이란 것은 없다고 말한다. 활용 가능한 정보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한 학생이 알아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배우는가(How to Learn)'에 관한 것이 된다.
따라서 빅 픽처 러닝은 다음과 같은 5가지의 학습 목표를 가지는데 이는 빅 픽처 러닝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들이다. 이는 개념, 기술, 능력을 바라보는 틀이면서 동시에 개인 맞춤형 커리큘럼을 형성하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1) 경험에 기반한 추론 : 과학자와 같이 사고하도록 돕는 것으로, 의사 결정과 가설 검증을 위해 경험적 증거 및 논리적 과정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특정 과학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를 사회학이나 예술 이론에 적용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실험하고 싶은 아이디어는?”, “무엇이 나의 가설인가?”, “어떤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2) 측정이 가능한 추론 : 수학자와 같이 사고하도록 돕는 것으로, 수치를 이해하고 불확실성을 분석하며 사물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공부하도록 돕는다. “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수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이 정보를 공식이나 도형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어떤 예측을 만들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3) 의사소통 : 청중을 이해하고 글을 쓰고, 읽고, 표현하고, 잘 듣는 것을 돕는다. “나는 어떻게 써야하는가?”, “나의 주요 생각은 무엇인가?”, “누가 나의 청중인가?”, “기술은 어떻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4) 사회적 추론 : 역사학자나 인류학자처럼 사고하도록 돕는 것으로,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고 사회적 이슈를 이해하며 윤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돕도록 한다.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 문제는 다양한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누가 이 문제에 신경을 쓰고 누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등의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5) 개인의 질 추구 :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추구하도록 돕는다. 존경심을 표하는 것, 책임감, 조직력, 리더십, 향상을 위한 노력 등이 해당한다. “존경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과 더 공감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문제에 관해 더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들을 던지게 한다. |
빅 픽처 러닝이 기존의 학습과 구별되는 점 10가지
철저하게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춰진 학습을 강조하는 빅 픽처 러닝. 이들은 자신들이 기존의 학습과 차별화 되는 요소로 10가지를 정리해 설명하고 있다. 그 10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빅 뱅 컨퍼런스 모습(홈페이지에서 갈무리)
한 학생의 성장과 성공을 위한 지원
빅 픽처 러닝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15명 규모로 반 구성을 제한하고 다년간 한 담임 선생님이 학생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보는 것, 학생 한 명을 위해 지역사회 멘토, 가족들이 총 동원되는 것은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빅 픽처 러닝은 학생 개개인에게 매우 높은 기준들을 제시하고 있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 학생이 오직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서의 실용적인 학습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생활 능력과 사고력을 기르는 것은 빅 픽처 러닝 모델을 통해 배워야 할 장점이다.
필자는 이 모델이 한국의 공교육 체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이 모델이 학교 체계에도 도입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평생학습 영역과 시민사회의 학습 영역에도 적용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습 모델을 운영하는데 있어 예산과 좋은 교육자를 확보하는 것의 문제는 있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욕구에 집중하는 문화적 토양은 평생학습과 시민사회 영역에 더욱 잘 형성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학습을 지원하는 어드바이저 또는 코디네이터가 15명의 학습자를 맡아 지역사회의 공공기관과 시민사회기관, 기업들에서 활동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하고 이 과정을 기록해 본다면 어떨까? 단시간의 요식적인 직업 체험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신의 욕구와 흥미를 진지하게 발견하고 이를 발달시킬 수 있는 최적의 기관과 전문가를 연결해준다면 어떨까? 큰 그림을 그리는 교육이 한국에도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
글_이성은(前다음세대재단 유스보이스 매니저)
☞ 빅 픽처 러닝 홈페이지 : http://www.bigpictur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