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열세 살 여공의 삶』 특별하고 평범했던 한 여성의 자기 역사 쓰기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Sep 03, 2014

우리들의 서재

『열 세 살 여공의 삶』(신순애 저, 한겨레출판, 2014)

 

특별하고 평범했던 한 여성의 삶

 

이 책은 평화시장 ‘이름 없는 여공’의 자기 성장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온 열세 살의 어린 소녀는 평화시장의 시다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미싱사로, 노동운동가로 그리고 청소년 활동가로 살아간다. 그녀는 다시 ‘공부’를 통해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는다. 가난한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그녀는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생이 되고, 다시 대학원생이 된다. 그리고 논문의 형식을 빌려 자기 이야기를 정리한다. 열세 살 소녀였던 여공은 60대가 되어 자신의 생애를 연구한 연구자가 되었다.
『열세 살 여공의 삶』은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한 여성의 생애사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삶을 통해 톺아볼 수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여성의 특별한 생애를 만나볼 수도 있고,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 속에 우리가 겪었던 보통의 삶을 만나볼 수도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는 저자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한국 근대화 과정 속에 나타난 전형적인 농촌의 몰락과 도시빈민의 형성, 그리고 어린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이 한 사람의 생애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열세 살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저자는 ‘7번시다’로 도시 생활을 시작한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 시절, 저자의 삶은 평범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와 닮아 있다(실제 나의 어머니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요즘 같으면 중학교에 겨우 갈 나이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는 막연하게 들었던 절대 빈곤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이 책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인 이야기여야 한다는 뚜렷한 소명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평화시장의 노동 환경과 노동자들의 일상이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 당시 봉제공장의 다락방에 앉아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구체적인 일상의 묘사들 덕에 우리는 당대 역사를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후반부에는 저자가 노동운동가로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전태일이 평화시장의 청계피복노조에 뿌려놓은 씨앗은 그녀를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특별한 노동자로 변화시킨다. 공부를 가르쳐준다 하여 우연히 찾아간 곳에서 그녀는 노동운동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여기부터 그녀는 ‘7번시다’가 아니라 청계노조원이자 노동운동가 신순애 이다. 그리고 더 이상 고용주나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또한 노동 일반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주체이다. 하지만 노동운동가로서 그녀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다. 생계를 위해 미싱사로서도 열심히 살아야했고, 노동자를 위한 희생적인 삶도 감수해야 했다. 노동운동가로서 이룬 것도 많지만, 저자 개인은 많은 것을 잃기도 한다. 수배자 생활을 감수해야 했으며 감옥 생활도 해야 했다. ‘평범한’ 일상인으로 돌아온 후에도 경찰의 감시는 늘 그녀를 괴롭혔다. 결혼과 육아는 그녀를 집 ‘안’에 가둬 놓기도 하였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가난한 시절 자기희생과 고된 노동으로 살아야 했던 한국의 여성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볼 수 있고,  후반부에서는 엄혹하던 시절 세상을 바꾸고자 애썼으나 역사 속에 잊혀진 여성 운동가들의 보통의 삶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보통의 역사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특별한 관심을 저자의 삶에 투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애사가 갖는 힘은 독자와의 삶과 끊임없이 접속하는데 있을 것이다. 교육학을 전공한 나에게 눈에 들어온 저자의 생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훌륭한 학습자로서의 모습이다. 저자는 ‘가방 끈이 긴 사람’이 그런 것처럼 머리로만 세상을 배우지 않는다. 저자는 함께 일했던 시다와 미싱사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함께 싸웠던 동료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지식인들과의 구체적인 관계맺음을 통해 성장한다. 『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고(故) 조영래 변호사와의 조우도 인상 깊다. 『전태일 평전』에 실제 이름 없는 여공으로 등장하는 저자는 평전을 준비하던 조영래 변호사의 만남을 상세히 기록한다. 그 장면들은 매우 드라마틱하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통해 어떻게 교류하고 상호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교육자로서의 모습이다. 이 책에는 교육자로서의 저자의 모습이 여러 번 등장한다. 실제 한글교실을 운영했던 사례는 오늘날 문해교육 현장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가 활용한 문해교육 방법론에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처음부터 교재를 활용하지 않았다. 저자는 먼저 노동자들이 자주 보고 사용하는 상호 쓰기부터 한글교육을 시작한다. 한글교실에서 노동자들이 처음 접한 것은 ㄱ, ㄴ, ㄷ, ㄹ이 아니었다. ‘다림사, 삼정사, 연희사’ 등 평상시에 그들이 쓰던 말이었다. 교사로서 저자는 ‘노동자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다림사에서 일했던 거 알지? 명희는 연희사에서 미상사로 일하지. 선희는 복진사에서 오야 미싱사지. 삼정사에서 공순녀가 일하지. 현대사에서는 미선이가 일하고. 죽림사에서는 재덕이가 일하지. 예진사에서는 예진이가 일하지. 미진사는 명옥이가 일하는 데인 거 알지?”(228-229p)


노동자들이 다니는 공장 이름에서 시작한 한글교육은 사람 이름, 동네 이름, 공장에서 사용하는 말, 옷 이름, 시장 이름에 대한 학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난 후에야 국어책으로 공부를 한다. 저자는 노동자들의 삶과 거리가 먼 책 속의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주어(주체)로 등장하는 그 세계에서 글 읽기와 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브라질의 교육학자인 프레이리(Freire)는 문해 읽기가 세계 읽기(reading world)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글을 배우는 일과 살아가는 일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글과 삶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문해 교육자로서 저자의 경험은 평생교육학에서 중요하게 조명되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명량>처럼 극화된 매체를 통해 ‘역사적 사건’에 몰입할 수도 있고, 이론적인 역사서를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생애가 역사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효과적인 매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간 시간의 퇴적물이기도 하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간 세상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역사와 만나고, 역사가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7번시다’였던 한 소녀가 어떻게 역사적 주체로 성장하게 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성장과정은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삶의 원형을 보여줄 것이다.

 

저자는 기성학자가 연구하지 않았기에 스스로의 역사를 쓰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이 글의 부제 “한 여성노동자의 자기 역사 쓰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스스로 쓴 자기 역사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역사가들(또는 지식인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이점에서 이 책은 역사를 만들어간 주체가 어떻게 역사를 스스로 쓸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1970년대 노동운동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으로, 특별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만이 역사의 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기 역사 쓰기는 역사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표명하는 일이자, 훌륭한 주체됨의 경험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아름다운전태일, 2009)을 함께 읽기를 바란다. 당시 야학 학습자들의 편지와 일기 글을 모아 놓은 『비바람 속에 피어난 꽃』(한윤수 엮음, 마음향기, 2005)도 함께 읽는다면, 당시 ‘열세살 여공’와 비슷한 또래가 겪었던 도시의 일상을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 우리 민초들의 겪었던 고된 일상을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사회이론서인 『계급과 빈곤』(조희연 저, 한울, 1993)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가 실천한 문해교육 방법론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프레이리와 마세도가 함께 쓴 『문해교육-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학이시습, 2014)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역사는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켜줄 수 있는 학습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여기에다 ‘자기 역사 쓰기’에 대한 강한 충동을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이런 충동은 세계와 적극적으로 대면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주체됨의 욕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상상력을 덧붙여 본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자기 역사로 가득 찬 도서관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보다 살아 숨 쉬고 흥미진진한 사고(史庫)가 또 있을까?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열세살여공의삶.jpg

『열세 살 여공의 삶』(신순애 저, 한겨레출판, 2014)

 

<목차>

 

추천사-김수행
추천사-최영희
저자 서문

 

1장 서론

2장 1960~19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삶과 청계노조

3장 '공순이'의 탄생

4장 '여공'에서 '노동자'로

5장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 간 여성 노조 활동가들

 

나오며
참고 문헌
부록-평화시장 공장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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