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공통체』 다중이 만드는 대안적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ul 09, 2014

우리들의 서재

『공통체』(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 책, 2014)

 

『공통체-자본과 국가 너머의 세상』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저자들 특유의 철학과 이론, 게다가 스피노자 칸트 마르크스 들뢰즈 가타리 푸코 등으로부터 가져다가 저자들 나름의 방식으로 고쳐 쓰는 개념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더구나 『공통체』는 『제국』『다중』과 3부작을 이루면서 개념 틀과 문제의식이 진화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바 그 전모를 파악하는 일은 ‘보통 독자’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체』는 ‘보통 독자’의 눈에 번쩍 하는 통찰로 가득하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특별히 의미심장한 역할을 하는 두 개념은 가난과 사랑이다. (…)빈자는 결핍이 아닌 가능성에 의해 정의된다. (…)우리의 과제는 빈자의 생산성과 가능성을 힘으로 전환시키는 방법들을 찾는 것이 될 것이다.” 서문의 이 구절만으로도 『공통체』는 펼쳐볼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가난한 자의 가능성. 바싹 마른 열정에 불을 댕길만하지 않은가?

 

네그리와 하트에 따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외부’는 없다. 저자들은 말한다. 당신들은 너무 자주 저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위안을 받고 싶어 하고, 힘을 얻고 싶어해왔다. 당신들은 언제나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저 너머 어딘가의 유토피아를 갈망했다. 그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라. 저 너머는 없다. 당신들의 위안, 당신들의 힘, 당신들이 바라는 세상은 바로 이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내부에서 작동하는 힘의 메커니즘과 승리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자, 함께 출발하자!

 

저자들은 이를 위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면목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샅샅이 훑어나간다. 소유공화국, 빈자 다중, 근대성-반근대성-대안근대성, 자본의 위기와 다중의 시간(카이로스), 미국 헤게모니의 실패와 반란의 계보학, 다가올 대격변을 알려줄 예보적 사건들과 흐름들, 새로운 혁명의 제도화…. 사랑, 신체의 특이성, 악과 싸우는 방법, 메트로폴리스, 행복을 제도화하기 등 각 챕터에 부록처럼 달린 보론 또한 그들의 사유가 어떤 범위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그들은 명쾌하다. 그들은 일관성이 있다. 수많은 철학자와 이론을 검토하지만 그들의 논지는 선명하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공유된 공통적 부를 제도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건을 정의하고자 할 뿐 아니라 대초원을 불사를 불씨를 포착하고자 한다.”

 

그들의 주장은 옳은가? 유감스럽게도, 나의 대답은 모른다다. 그들의 명제를 검증하여 판단할 능력이 내겐 모자란다. 다만, 그들이 다중의 힘을 신뢰하며,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새로운 가치 생산의 주역이 된 다중이 질곡과 억압과 수탈을 끊어낼 주체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확신하며, 혁명의 길이 비록 어지러이 교차하고 때론 테르미도르적 반동으로 얼룩지겠지만 그래도 웃으며 승리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히 감지할 수 있다. 누구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서 던진, 그들의 주장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지금이 아니라 먼 훗날로 미뤄져야 한다. 그들의 주장은 옳았는가? 그들의 철학은 세상을 변혁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공통체』의 마지막 챕터 ‘혁명’은 월트 휘트먼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빈번히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활자화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그 진정한 핵심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 아직 깨어나지 못한 단어라는 사실은 아무리 반복해 말해도 오히려 부족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것에 공명하고 그 공명이 수차 분노의 폭풍이 되어 펜이나 입을 통해 그 음절들을 표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생각에 민주주의는 아직 역사적 사건으로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아직 쓰이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위대한 단어이다.”(「민주주의의 전망」) 휘트먼이 19세기 시인이라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자들은 21세기 초엽 현시점에서도 민주주의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며, 그 역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위대한 단어라고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 대목에서 한국의 상황에 이를 대입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공통적인 것을 향한 모든 기획은 우리가 공유하는 부와 자원의 관리에 적합한 집단적 자치의 형식을 발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공통적인 것은 스스로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통합적 선거제도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보다 완전하고 참여적인 자치 형식의 발명 또한 함축한다. 다시 한 번 민주주의가 이론과 실천이 다루어야 할 사안이자 문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근원적 민주주의를 현실 정치의 좁은 스펙트럼에 피상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일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일단 여기서 멈추자.)

 

저자들이 볼 때 비참함이란 부나 자원의 결핍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의 결핍을 의미한다. 오늘날 다중은 힘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비참하다. 그러나 다중은 힘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다. 왜냐 하면 이 다중이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과거 산업시대의 가치가 노동을 통해 생산되었다고 한다면, 지식정보시대인 현재의 가치는 다중이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이미지, 아이디어, 언어, 지식, 코드, 정동(情動), 감정 등을 통해 생산된다. 다중은 이처럼 가치를 생산하는 원천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박탈당한 채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중은 당당하게 다음 세 가지를 요구해야 한다. 첫째, 모든 정부는 모든 이에게 기본적 생활수단을 제공하라! 정부는 기본소득과 진정으로 보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둘째, 모든 정치와 자치에 대한 평등한 참여를 보장하라! 이를 위해 필수적인 교육과 사회적, 기술적 지식 및 기능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사적 소유에 장벽에 막혀 있는 공통적인 것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도 보장하라! 부연하자면, 특허제도로 보호되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코드만이 아니라, 사회적 지식과 기술, 다시 말해 사회적 갈등을 피하고 행복한 마주침을 촉진하는 수단도 모든 정부가 보장해야 한다.

 

저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요구는 혁명으로 가는 첫 걸음일 따름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시작하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대편인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요구 자체가 혁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리라는 것을, 자본에 맞서야 할 빈자 다중이 자신들의 처지와 형편 때문에 첫 관문을 넘어서는 싸움을 벌이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저자들도 잘 안다. 번역본 기준 500쪽이 넘는 책을 쓴 이유, 이 한 권만이 아니라 3부작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풀어야 했던 이유, 이에 보태어 『선언』을 별도로 써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혁명의 열정과 비전이 사그라진 시대에 혁명을 이야기하는 자에게는 온 사방으로부터 공격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우파의 강력한 탄압은 불을 보듯 뻔하다. 네그리가 자신의 나라에서 교수직을 빼앗긴 채 수감되고 이후 두 번이나 망명을 해야 했던 사정도 이해가 된다. 게다가 정통 좌파로부터도 강력한 비난이 쏟아졌다. 노동자 대오가 있던 자리에 정통 좌파들에겐 모호하기 짝이 없는 ‘빈자 다중’을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제국이라든가, 다중이라는 저자들의 핵심 개념에 격렬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게 당연하다.

 

저자들을 비판도 수긍도 할 능력이 없는 ‘보통 독자’는 박학다식하고 머리 좋은 저자들이 지금 현란한 ‘지적 놀이’를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저자들의 통찰력 반짝이는 주장에서 눈을 떼기도 어렵다. 내가 홀린 듯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보통 독자’였기 때문일 게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현실적 실천에 대한 확인과 증명을 찾고 있다. 그것들이 혁명적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부족한 것은 혁명이다. 우리는 건초더미에 초점을 맞추는 일을 멈추고 바늘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요동치는 혁명의 운과 더불어 성공하거나 실패할 것이다.”(193p)

 

“정체성을 폐지하는 이 혁명적 과정은 괴물스럽고 폭력적이며 트라우마를 낳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 자신을 구하려 하지 말라. 사실 희생되어야 할 것은 바로 당신의 자아이다. (…)혁명은 소심한 겁쟁이의 과업이 아니다. 혁명은 괴물들의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될 수 있는 바를 찾기 위해 지금의 당신을 잃어야 한다.”(464p)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공통체.jpg

『공통체』(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지음,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 책, 2014)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1부 공화국, 그리고 빈자 다중
1.1 소유 공화국
1.2 생산적인 신체들
1.3 빈자 다중
*신체에 관하여 1 - 사건으로서의 삶정치

 

2부 근대성, 그리고 대안근대성의 풍경들
2.1 저항으로서의 반근대성
2.2 근대성의 양면성
2.3 대안근대성
*인간에 관하여 1 - 삶정치적 이성

 

3부 자본, 그리고 공통의 부를 둘러싼 투쟁
3.1 자본 구성의 변형
3.2 위기에서 엑서더스로 향하는 계급투쟁
3.3 다중의 카이로스
*특이성에 관하여 1 - 사랑에 사로잡히다

 

간주곡: 악과 싸우는 힘

 

4부 제국, 돌아오다
4.1 실패한 쿠데타의 짧은 역사
4.2 미국 헤게모니 이후
4.3 반란의 계보
*신체에 관하여 2 - 메트로폴리스

 

5부 자본을 넘어서?
5.1 경제적 이행의 조건들
5.2 자본주의가 남긴 것
5.3 단층선을 따라 일어나는 전진(前震)
*인간에 관하여 2 - 문턱을 넘어서

 

6부 혁명
6.1 혁명적 평행론
6.2 반란적 교차
6.3 혁명 다스리기
*특이성에 관하여 2 - 행복을 제도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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