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도서관 박영숙 관장 인터뷰
도서관 문화의 가능성: 사람과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
좁은 교실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고, 그것도 모자라 1부와 2부로 나누어 수업하던 ‘국민학교’ 시절, 도서관이라는 단어는 국어 사전에만 등록된 이야기로만 알았습니다. 나라 형편이 좀 나아진 중고등학교 때에도 도서관은 별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시험 기간에 임박해서는 가끔 정독 도서관에 100원인가를 내고 입장을 했는데 여전히 ‘도서관이라 쓰고 시험 공부 하는 곳이라 읽던‘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최근 한국의 도서관 현황 통계를 찾아 보았더니 아직 주요 선진국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하드웨어는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습니다. 특히 2003년 ‘기적의 도서관’ 프로그램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도서관 붐이 일었고 민간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실천한 결과 우리 삶의 주변 곳곳에 도서관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공간으로서의 확장이 개선되었다는 것일 뿐 도서관이 구동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스템, 콘텐츠는 여전히 함량 미달인 사례가 많은 듯 합니다. 오롯이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형식과 내용을 갖춘 곳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기사를 통해 본 파주 출판단지 안에 조성된 '지혜의 숲'이라 명명된 도서관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6월 19일 파주 출판단지에 개관한 한 도서관 《지혜의 숲》(출처)
보도에 따르면 ‘이 도서관은 약 890㎡(270여 평)에 이르는 로비와 복도를 이용해 서가를 만들었으며, 8m높이 3.1Km 길이의 서가에 20만권을 먼저 비치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책을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의 테마 파크요 책장의 전시장 같은 느낌을 줍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리페브르는 『공간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적 생산물이자 상호작용 혹은 반작용에 의해 공간은 생산 자체에 개입한다.”
복도를 따라 3.1km 이어진 그 압도적 스케일은 도서관의 주인인 사람을 밀어내고 있으며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아닌 사람을 소외시키는 물리력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오늘 만나게 될 용인의 《느티나무 도서관》은 그 대척점에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과 장서가 주인이 아니라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주목하고, 책을 매개로 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 미묘한 떨림과 파장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도서관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성원: 서울 구로동쪽에서 빈민운동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도서관을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박영숙: 저는 중고등학교 내내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가까운 친구들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기도 했고요. 그러다 대학 선배가 공부방을 하자는 제안을 해 1학년때부터 상계동이나 난지도 등 빈민지역에서 공부방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활동을 하다보니 그 사람들이 대상화된다고나 할까, 대상들만 분리해서 고민하지 그 사람들과의 관계에는 소홀하게 된다는 점이 안타깝게 생각되었어요. 또 하나는 철거반대운동의 일환으로 공부방 활동을 하지, 사람 한 명 한 명의 삶이나 배움, 성장 같은 것에는 우선순위를 두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통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람이 살기 위한 최저생계도 절박한 문제이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무엇이 됐든 자신이 하고 싶은,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우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 안에서 서비스를 받는 사람으로만 머물면 밖의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지 못한다, 그래서 울타리를 뛰어 넘는 일이 필요하고 벽을 허물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때 「유네스코 공공 도서관 선언」을 만나게 됐거든요.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는 나이,인종,성별,종교,국적,언어,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균등한 접근 원칙에 따라 제공된다’ 그런 권리가 보장되는 도서관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도서관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성원: 성북구 3곳에 이어 지금은 파주시 시립도서관 4곳을 위탁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지자체에서 이렇게 선생님께 위탁을 맡기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박영숙: 우리나라에서 자료 서비스가 이뤄지고 관외 대출까지 가능한 지금의 도서관 형태가 갖춰진 것은 90년대라고 해요. 전국의 읍면동이 3,500여개인데 느티나무 도서관이 문을 열 때만 해도 전국 공공 도서관은 400개 정도 밖에 안됐거든요. 근데 지금은 근 900여개의 도서관이 갖춰 졌으니 짧은 시간 안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이죠. 하지만 그런 양적 확대에 비해 그 안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에 대해 충분히 배우고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공공 도서관의 경우 건립부터 실제 운영까지 그 대부분이 조례나 근거 규정에 의해서 작동되잖아요. 개폐 시간부터 대출 방법, 서비스 내용 등등 모든 것이 규정에 의해 움직이다보니 당연히 활력이 떨이지게 되죠. 그런 면에서 느티나무 도서관은 사립이다 보니 그런 경계가 없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운영되니 공공 도서관에 비해 활력이 생기게 되고. 그런 면에서 저희의 경험과 내용을 새로 만들어지는 공공 도서관에 접목 시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저희 도서관 운영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하지만 단지 도서관 하나 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도서관 운동을 하는 곳인데, 그런 면에서 저희가 해 온 일들, 경험, 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은 매우 큰 기회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저희 사례와 경험을 이야기하면 공립 도서관 쪽에서는 ‘그건 너희가 사립이어서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어요. 마치 벽 같은 것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공립의 틀 안에서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하는 것도 무척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성원: 조금 전에 ‘도서관 운동’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박영숙: 워낙 도서관 자체가 부족했으니까 동네마다 도서관을 만드는 것 자체도 운동이고요. 또 하나는 도서관의 서비스 체계를 바꾸는 것인데요. 저희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도서관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에요.
도서관의 운영 원리는 자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령기에 어디 가서 누구에게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스스로 책을 찾아 배우는 일이 평생동안, 그리고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삶이 달라질 겁니다. 도서관이 그런 배움을 체득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공립 도서관에 가면 칸막이가 있잖아요. 일종의 소통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인데 탁자에 둘러 앉아 함께 읽고 토론하고 함께 영화도 보고, 이런 도서관의 자연스러운 일상인 배움의 상호작용, 배움의 문화가 도서관 밖 사람들의 삶터 속으로 스며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성원: 최근 십여년간 도서관의 하드웨어는 상당히 발전했지만 그것이 구동되는 소프트웨어의 변화나 발전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정부의 도서관 정책은 어떻습니까?
박영숙: 도서관의 3요소를 공간, 책,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중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저는 단연코 사람입니다. 사람이 있으면 공간과 책을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의 심각한 문제가 도서관 계획을 세울 때 부지나 공간에만 관심을 두지 충분한 인력이나 장서, 장서도 사실 그 도서관이 위치하는 지역의 특색을 잘 반영해야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고민이나 준비없이 건물만 세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건물 다 만들고 열쇠만 넘겨줘요.
저희가 성북구 위탁운영 맡을 때 좋았던 것은 다행히 몇 개월 전에 사람을 채용해서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어떤 책을 구비할 지, 공간은 어떻게 할 지, 가구는 무엇이 좋을 지를 오랜기간 논의해서 그것이 설계에 반영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도서관 운동을 한다면 이런 준비과정부터 도서관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사람들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지난 십여년 동안 도서관이 이렇게 많이 늘어나게 된 계기는 작은 도서관이라는 개념이에요. 보통 도서관을 만들 때 100억 정도 소요된다고 해요. 그런데 4년 임기 지자체장이 그걸 하기 쉽지 않죠. 부지도 그렇고 예산도 그렇고 사서 인력 티오 만드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런데 민간에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사회적 관심도 늘어나니까 거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이런 사회적 관심이 주는 메시지를 잘 파악해서 제대로 된 공공 도서관을 만드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간이야 재원이 부족하니까 당연히 장서나 공간도 부족하죠. 하지만 지자체에서는 제대로 된 공간과 충분한 장서를 구비해서 작은 도서관에 보낸 사회적 관심과 에너지를 수렴해야 하는데 지금 보면 그런 정책 대신에 작은 도서관을 의식적으로 늘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나 합니다. 그래서 이제 문제점이나 한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원: 《느티나무 도서관》은 공간이 참 특이한데요, 공간의 콘셉트는 무엇인지요?
박영숙: 처음 문 열었던 상가 지하 공간에서 7년간 있으면서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 지 욕구가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지 수없이 돌아다니면서 보고 배우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컨셉이 밋밋함과 여백이었어요. 설계사에게 ‘밋밋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무척 당황하더라구요(웃음). 저는 이 건물이 이용자, 시민과 함께 늙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색이든 다 어울릴 수 있도록 외벽에 칠을 하지 않았고요, 또 가급적이면 고정식 구조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은 유기체라고 생각해요. 종이책도 전자정보로 바뀌고 있고 비디오 테잎이 DVD로 바뀌었지만 그것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잖아요. 게다가 이용자층도 바뀔 수 있고 당연히 활동양식도 바뀌게 될 것이고요. 공간이 그런 변화를 방해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런 변화와 함께 호흡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세대는 도서관에서 감동 받은 기억이 없잖아요. 저는 이용자들이 도서관에서 충분히 감동받고 환대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참 어렵더라구요. 글자로 써서 붙인다고 될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작고 사소한 것에서 문득 감동받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높이도 일일이 다 재 보았어요. 아이들에게 맞는 것, 어른들에게 맞는 높이..... 그리고 기능적인 고려도 많이 하려고 했어요.
작은 간난 아이가 칭얼댈 수 있는데 그럴 때 서가 옆에 작은 포대기를 두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조금 큰 애가 칭얼댈 때 이용할 수 있는 보행기를 둔다든지...... 그런데 지금도 어려워요. 예산이 수반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저는 다른 기관을 방문할 때 공간의 배치나 특성 등을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단지 예쁘게, 특이하게 꾸몄다는 인테리어적 측면이 아니라 얼마나 이용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는지를 보게 되는데 따라서 공간을 보면 그 기관의 가치나 철학의 편린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왜 이곳이 도서관의 모범적인 전형으로 회자되고 있는지를 알수 있을 듯 합니다.
왼쪽은 이용자, 주민과 함께 천천히 자연스럽게 늙어 갈, 그래서 어떤 덧칠도 거부한 회색빛 건물 정경 사진이고 오른쪽은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수신자 부담용 전화기를 설치한 모습입니다.
이곳은 3층 건물인데 단순히 좌석만 평면적으로 놓여 있는 여느 도서관과는 달리 부모와 자녀, 청소년, 어린아이의 특성을 반영하여 입체적으로 설계를 해 놓았습니다.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그러나 년간 최소 4억 5천만 원이 소요되는 재정적 압박에 늘상 놓여 있습니다. 한때 경기도청의 자료구입비 일부를 지원 받았으나 경기도청의 자료구입비가 년간 0원이라는, 이 기가막힌 상황 속에서 그마저도 끊겼고 이젠 오로지 박영숙관장님의 수고와 기부자들의 후원으로 어렵게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성원: 적은 인원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이 도서관의 정체성을 담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박영숙: 4년 째 꾸준히 하고 있는 게 ‘동네 엄마 워크숍’ ‘동네 아빠 워크숍’이에요. 처음 도서관을 시작할 때는 어린이 도서관이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책 읽히기와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요구했는데 그게 답이 아니더라구요. 아이들의 문화, 책에 대해 엄마들이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질리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했죠. 그래서 저희가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이 남들, 자식 신경쓰지 말고 당신에게 책이 어떤 의미인지, 지금 삶이 어떠한지, 가슴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 옆에 있는 친구는 누구인지...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하려고 했어요.
동네 엄마, 동네 아빠라는 말이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단지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동네의 엄마 아빠’라는, 또 하나는 일상의 삶터에서 늘상 만나는 사람들, 그런 의미가 담겨 있어요. 처음에는 이런 모임을 하기 참 어려웠는데 담당하시는 분들이 많이 애를 쓰셔서 지금은 조금 자리가 잡혔습니다. 특히 100세 시대 인생 2막에 대해 이야기 많이 나누고 있어요. 다들 너무 열심히 사느라 그런 생각은 할 겨를이 없잖아요. 이제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도서관 참 좋은 것 같아요.
또 하나 이주민센터와 연계하여 십여년 째 여러 언어로 된 자료를 많이 수집했습니다. 이주민들도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저희들이 가장 조심한 것이 역시 대상화하지 않는 거였어요. 오히려 거꾸로 이주민들이 와서 자원활동을 하도록, 뭐랄까 소외계층이어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경험을 갖고 있으니까 이곳 사람에게 자신들 모국어로 된 책을 읽어주는, 자기 고향 문화도 소개시켜 주고, 이런 걸 매일 하고 있거든요. 오늘도 3시에 스리랑카에서 온 분이 책을 읽어 줄 거예요.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도 점자 책을 읽어주는 대면낭독봉사의 대상자로만 여길 게 아니라 그분들이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어요. 경계를 좀 허물고, 통합이라는 게 모아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살 수 있는, 삶의 소양을 기르면 좋겠다, 그런 바람에서 점자도 만들고 그러는데 저희한데 참 중요했어요. 누군가에게 공공 서비스를 하는 것은 나라에서 할 일이잖아요. 우리가 같이 체득해서 같이 실천하는 것, 시민역량이랄까 그런 공공성을 우리 스스로가 가질 때 사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시장이 누가 되든 영향을 덜 받지 않겠어요. 보일 듯 말 듯한 소소한 일상적인 프로그램, 모여서 책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고 그런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정성원: 마지막으로 관장님에게 도서관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영숙: 저의 책 부제 후보작 중 하나가 ‘도서관, 세상의 희망을 풀무질하다’에요. 도서관이 세상의 심장을 두드리고 풀무처럼 뭔가 기운을 불어 넣어서, 우리가 딱딱하게 굳어지지 않고 가슴이 뛰도록 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사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전제로 된 이야기인데요. 사람이 가진 생명력, 어떤 가능성이 오롯이 발현될 수 있도록 톡 건드려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거기에 탁 스위치를 켜지 못하고 돌아 돌아 다른 것을 너무 찾아서 갖추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에 대해 스스로 느끼고, 그래서 그런 존엄함을 자기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주변 평가에 매달리고 실패를 두려워하고, 그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자유를 꿈꾸면서 도서관 운동을 시작했는데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될 때 세상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영숙관장님은 최근 도서관 15년의 경험을 『꿈꿀 권리』라는 책을 통해 풀어 놓았는데 그 책의 부제가 ‘어떻게 나 같은 놈한테 책을 주냐고’ 입니다. 이 부제의 주인공은 일종의 장발장 같은 친구입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아서 가출을 하고, 오갈 데 없는 친구를 도서관에서 품어 주었는데 때때로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돈 될 만한 물건을 훔쳐다 팔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십여년. 아이는 그 기간 동안 도서관 주변을 맴돌면서 성장하여 이제 어느덧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꿈꿀 권리』라는 책을 읽고 실명으로 일종의 독후감을 실었는데 박영숙관장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못 믿었어요. 이 사람이 도대체 아무것도 아닌 나한테 왜 이렇게 자상하게 굴지? 왜 이렇게 나한테 착하게 대해 주지? 그런 생각들만 들다가 하루 일 년 이 년 지나다 보니 진심이라는걸 알겠더라구요”
도서관은 구제 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진심’으로 인해 그 친구는 이제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박영숙관장님의 그 진심은 비단 이 친구뿐 아니라 지역의 사람들에게로 향하고 있고 그 마음이 도서관 공간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그런 공간이라면 언제든 달려가 못다 꾼 꿈을 한번 꾸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습니다.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