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살아가겠다』 현장 인문학자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이야기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un 24, 2014

우리들의 서재

『살아가겠다』 (고병권 저, 삶창, 2014)

 

“살아가겠다” 이 말에는 일종의 삶에 대한 결연함이 느껴진다. 흘러가는 세상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방해하는 어떤 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는 우리는 “살아가겠다”는 생의 의지가 읽힌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세월호 이후 한동안(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나는 깊은 자괴감과 무력함에 빠져 있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기성세대로서 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교육학자로서, 선생으로서, 시민으로서, 아버지로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얼마나 애쓰고 노력했던가. 어느 순간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나는 청년 시절의 꿈을 일상의 윗목에 던져 놓고 살았던 것은 아닌가. 제도권 학자로서 얻는 안락함이 세상의 평온함이라 착각하며, 정작 세상의 부조리함에 눈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 나 스스로가 그 부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지금보다 불안하고 서툴렀지만, 치열하고 순진(!)했던 청년 시절의 나를 여러 번 뒤돌아보았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던 첫걸음의 순수함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과정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이 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삶에 대한 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의 부제처럼 저자가 만난 삶, 사건, 사람에 대한 책이다. 제도권 밖에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인문학자답게, 저자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우리의 삶과 마주한 진지한 성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독자들은 저자가 만나고 겪고 느낀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세상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사유와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는 나의 삶에 공명을 일으켜서 나를 머뭇거리게 했던, 저자가 만난 삶, 사건, 그리고 사람에 대한 몇 개의 장면을 되짚어 보는 것으로 이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첫 번째 장면은 삶으로서 대학의 풍경이다.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교수자의 삶과 지식이 분리된 오늘날의 대학에 대해 비판한다. 이는 가르침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이다. 대학이 취업사관학교가 되어가고 있는 오늘날 교육자의 역할은 정보 전달자나 취업 매니저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교육자로서의 책무, 즉 “살아온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살아가야 하는” 책무는 사라졌다. 가르친다는 것은 삶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인데 어느새 가르침이라는 전문성은 교육자의 삶과 괴리된 무엇이 되었다. 따라서 삶으로서 가르침의 회복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로 되돌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장면은 대학로에 있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펼쳐진다. 여기에서 저자는 특별한 배움의 장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배움 이전의 배움’이다. 이런 배움은 꿈과 열정을 얻는 일과 같다. 배움 이전에 일어나는 정서적 각성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교육심리학에서 말하는 학습동기와는 다르다. 이 ‘각성’은 보다 실존적이다. 예를 들어 노들장애인야학 학생들의 배움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의 차별에 대해 끊임없는 저항과 학습이 언제나 공존한다. 세상과 마주하고 부딪히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꿈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꿈은 배움의 바탕이 된다. 따라서 “노들이라는 학교의 의의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것에 있지 않고 새로운 ‘욕망’이 생겨나게 한 것에 있다.”

세 번째는 책 읽기와 삶 읽기가 만나는 ‘사건’이다. 저자는 여기에서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실제로 했던 인문학 강좌의 장면을 보여준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장애들과 함께 읽는 장면은 인상 깊다. 노들의 학생들이 니체를 만나는 순간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를 함께 읽는 장면을 보자.

 

마침내 하나의 불꽃이 일었다. 차라투스트라가 신체에 대해 “우리 안에 맹수들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할 때였다... (중략)... 그런데 그 구절을 읽을 때, 갑자기 여러 학생들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었다. 소리를 지리고 손을 휘젓고 휠체어를 들썩였다. B는 급작스레 근육의 강직이 일었고, C는 자기를 손으로 가리켰으며, D는 “내가 그렇다”고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117~118p).

 

책이 삶과 조우하는 순간, “불꽃이 일고”, 몸이 반응하며, 영혼이 요동친다. 이렇게 우리가 읽는 글은 우리의 구체적 삶과 만나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네 번째는 밀양에서 마주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이라는 사건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오랫동안 송전탑 반대운동을 해온 밀양의 노인들과 만난다. 밀양의 노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듯 보상이 아니다. 밀양 노인들의 바람은 “오직 이대로만 살다가 죽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 않다.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러기에 밀양 노인들의 주장은 삶에 대한 날것의 경험과 그 경험에서 비롯된 성찰을 담고 있다. 밀양 노인들의 놀라운 지혜는 여기에서 발현된다. 글을 모르고 배운 것이 적어도, 이들은 직관적으로 부조리한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간파하며, 그것을 폭로한다. 그리고 이 지혜는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는 데 중요한 힘이 된다.

 

서울 같은 데 밤을 보면 꽃밭이거든. 그런 전기를 쓰면서 왜 전기가 모자라다고 하냔 말야.(180p).

 

마지막으로 저자가 (글로, 또는 직접)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사모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다. 영원한 노동자의 벗 전태일, 장애인운동의 김주영, 쌍용자동차의 김동민, 청년운동의 김영경, 밀양의 이계삼, W-ing 인문학 아카데미의 최정은, 이수영이 이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세상과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살아갔던, 그리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 이야기한 삶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응축된다. 이들이 바로 가르침과 삶을 분리시키지 않고, 배움 이전의 배움 위에서 살아가며, 글, 몸, 영혼이 불꽃 튀듯 조우하고, 구체적 삶의 실천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의 뜻이 의미 있게 와 닿는다. “살아가겠다”는 저자가 삶을 마주하는 방식이자 우리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보여준 그런 사람들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에게 말을 걸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말은 또한 독자들에게 건네는 조심스러운, 그러나 강력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후회와 자괴감으로 과거만을 회상하고 머물러 있는 그런 삶이 아니라, 또는 당연한 것으로 주어진 대로 사는 그런 삶이 아니라, 여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처럼 살아가라고, 그렇게 구체적인 삶, 사건, 사람들과 만나면서 살아가라고, 느낀대로, 배운대로, 열망한대로 살아가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이점에서 저자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우리에게 삶이란 그냥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꿈과 의지를 갖고 바꿔나가며 ‘살아가겠다’고 세계에 공표하는 욕망의 장이다. 그래야 한다.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수)

 

살아가겠다(표지).jpg

『살아가겠다』 (고병권, 삶창, 2014)


<목차>

 

책을 내며_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1부 삶
당신의 삶에서 당신의 철학을 본다
대학의 앎은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가
탈시설, 그 ‘함께-삶’을 위하여
밤에 열린 어느 장애인 학교

 

2부 사건
책을 읽어주던 남자_배움의 사건으로서의 책 읽기
민주주의, 그 새로운 무한정성_월가 점거운동에 대한 하나의 보고
점거와 총파업_장애인 운동으로부터
탄원하는 노인들

 

3부 사람
헤아릴 수 없는 이름, 전태일
김주영, 그의 삶과 용기를 기억하라
우리의 투쟁은 생명의 저지선을 함게 만드는 일이다_쌍용자동차 고동민
당신의 일, 그게 바로 내 일이다_청년유니온 김영경
이 싸움엔 별수 없는 내 몫이 있다_밀양 이계삼
다만 일주일을 하루씩 잘 살아내겠다_W-ing 인문학 아카데미 최정은 이수영

수강신청이나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여기를 클릭하셔서 회원가입 후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회원가입 하신 분은 우측 상단에서 로그인을 하시면 수강신청 혹은 댓글을 다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학교는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배우는 시민주도 평생학습 플랫폼입니다.
 지식, 재능, 경험,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은 누구나 학교를 열고
 배움의 기회를 갖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1. 1410
    대나무 쪼개기
    기간 2023-11-29~2023-11-29
    시간 17:00~18:00
    강사 이정민
    장소 2관 공방
    Read More
  2. 1409
    라탄 미니전등갓 만들기
    기간 2023-09-21~2023-09-21
    시간 13:00~16:00 (약 3시간 소요)
    강사 김은숙
    장소 2관 208호
    Read More
  3. 1408
    칼라링수채화&드로잉스케치
    기간 2023-09-06~2023-11-29
    시간 매주 수요일 10시~12시
    강사 이정희
    장소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작업실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4. 1407
    커피향기 나는 기타교실
    기간 2023-07-01~2023-11-25
    시간 매주 토, 11:00~14:00
    강사 안수희
    장소 2관 304호 퉁소바위 음악실
    Read More
  5. 1406
    퀼트로 소품 만들기
    기간 2023-07-03~2023-11-29
    시간 10:00~15:00 매주 월수
    강사 박순옥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6. 1405
    커피&칼라링 수채화(수요반)
    기간 2023-07-05~2023-08-23
    시간 매주 수, 10:00~12:00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7. 1404
    자이언트 해바라기 만들기
    기간 2023-06-29~2023-06-29
    시간 10:00~12:00
    강사 민현숙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8. 1403
    실생활에 꼭 필요한 금융지식 STEP!
    기간 2023-04-28~2023-04-28
    시간 15시 ~ 16시
    강사 윤가현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9. 1402
    영어야 놀자
    기간 2023-04-29~2023-06-24
    시간 11:00~11:50 (토요일)
    강사 이다인
    장소 2관 208호
    Read More
  10. 1401
    우화, 이젠 톡(talk)으로 만나요!
    기간 2023-03-29~2023-03-29
    시간 10~11시
    강사 김은주
    장소 2관 203호
    Read More
  11. 1400
    신중년 포크댄스 모여라
    기간 2023-03-10~2023-03-31
    시간 매주 금요일, 10:30-12:00
    강사 이영관
    장소 서호초등학교 내 수원청개구리마을 2층 댄스실
    Read More
  12. 1399
    MBTI를 활용한 자기 이해
    기간 2023-02-22~2023-02-22
    시간 14:00~16:00
    강사 박지현
    장소 2관 고고장
    Read More
  13. 1398
    학습동아리와 함께 하는 현대낙화(인두화) - (2/20)
    기간 2023-02-20~2023-02-20
    시간 15시~17시
    강사 조혜성
    장소 2관 209호
    Read More
  14. 1397
    이작가! 칼라링수채화(금요반/외부진행)
    기간 2023-03-17~2023-05-26
    시간 원데이) 매주 금요일:10시~12시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15. 1396
    이작가! 칼라링수채화(토요반/외부진행)
    기간 2023-03-18~2023-05-27
    시간 매주 토요일 10:00~12:00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16. 1395
    라탄 차롱 도시락 만들기
    기간 2023-02-23~2023-02-23
    시간 12:00~16:00
    강사 김은숙
    장소 2관 거북이공방
    Read More
  17. 1392
    와펜으로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
    기간 2023-01-13~2023-01-13
    시간 14:00-15:00
    강사 -
    장소 2관 203호
    Read More
  18. 1394
    기(氣)체조. 통찰명상
    기간 2023-02-13~2023-02-27
    시간 매주 월,수,금 오후 7시~ 8시 40분
    강사 신 순 옥
    장소 2관 예체능실
    Read More
  19. 1393
    학습동아리와 함께 하는 현대낙화(인두화)
    기간 2023-01-31~2023-01-31
    시간 10시30분~12시
    강사 조혜성
    장소 209호
    Read More
  20. 1391
    민체 캘리그라피 기초 (저녁반)
    기간 2023-02-13~2023-02-13
    시간 월 19:00-21:00
    강사 허성희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77 Next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