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동학이야기』 발로 누비며 사유한 동학의 깨달음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un 11, 2014

우리들의 서재

『동학이야기』 (김지하, 솔출판사, 1994)

 

“동학은 살아 생동하는 본디 생명의 거대한 요구에 따라, 

모든 중생이 한 생명이라는 생명 사상의 요구에 따라 그것을 자르고 죽이는 온갖 형태의 죽임에 맞서 

모든 생명을 살리고자 일어난 조직적 생명 운동입니다.” _ 김지하

 

내가 동학에 대해 깊이 알게 된 것은 시인 김지하의 『동학이야기』를 만나고부터였다. 1993년 4월, 군 제대와 동시에 바쁘게 복학했던 나는 ‘87체제’가 도둑처럼 사라진 텅 빈 대학 교정을 넋 잃고 오가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뜨겁게 소리쳤고 온몸으로 던졌던 그 장소들의 잔상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 잔상이 솟구칠 때마다 스스로 저항할 수 없는 자괴감으로 빠져드는 기이하고 낯선 무력감, 무력(無力)의 몸뚱이로 있는 내 안의 ‘몸나’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 해 나는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enmatt, 1921~1990)가 1962년에 발표한 희곡 <물리학자들Die Physiker>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연극기획에 완전히 올인했다. 무대를 만들고 배우로도 나섰다. 현실에서의 나와 무대 위에서의 나는 참으로 역설적인 상황국면으로 빠져들었다. 현실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몰락하는 나와 인류의 몰락을 피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남기로 한 나(아인슈타인 역)의 대치가 거의 1년 내내 계속되었으니까 말이다. 서울시립대 극예술연구회 역사상 최대의 빅쇼였다는 평가와 달리 나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좌절의 늪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style="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size: 14px;">그가 ‘독재’ 유신의 시대와 ‘쿠데타’ 반역의 시대를 견디며, 고통과 억압에 찬 현실로부터 ‘낱생명’의 귀한 모심, 살림, 율려(律呂), 역동(逆動), 다물(多勿)에 이르는 사유의 과정은 동학의 삼칠주(三七呪)에 이르러서야 큰 우물이 된다. 삼칠주는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로 1860년 음력 4월 5일 오전 11시에 수운이 종교적 영성으로 체험하고 깨우친 것을 정리한 핵심내용이다. 주문을 소리 내어 말하고 그 뜻을 깨달아 실천하면 오래도록 죽지 않는다고 한다. 앞의 8자를 강령주문(降靈呪文)이라 하고, 뒤의 13자를 본주문(本呪文)이라 한다. 풀어 말하면, 하느님의 신령이 직접 인간의 몸에 내려 기화(氣化)하기를 기원하는 주문으로서, “지극하고 신령한 기운이여/ 내 안에 내려 지피소서,/ 그 맑고 밝은 신령이여/ 청하고 비오니/ 내 안에서 크게 지피소서./ 한 얼을 깨달아 모시니/ 무궁한 천지에 얼나 하나 마음,/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으리니/ 모든 앎이 하나 마음.”(필자 역)이다.

 

선생은 이승만과 그 이후,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노태우 군부쿠데타 세력들이 야기한 수 없는 민중학살의 민중순교를 지켜보면서, 또한 그러면서도 들풀처럼 일어나 들불처럼 번졌던 4.19혁명과 5.18항쟁을 동학에 빗대어 재사유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성화’(제1장)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 물음 물음의 과정에서 그가 깨닫는 것은 서양의 진화론적 세계관, 즉 ‘진화(進化)’라는 정복적 확장성이 불러 올 파괴적 세계가 아니라 ‘동학의 진화’, 즉 모든 민족 모든 자연 모든 생명의 전일적 우주생명이 드넓은 성화를 실현시켜야 후천개벽이 온다는 사실이다. 왜 민중은 밟히고 지는 폭력에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를 깊이, 더 깊이,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사유한 뒤 선생이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 민중 스스로 ‘드넓은 성화’의 주체임을 잊지 않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 예감에 찬 미래를 시적 상상을 통해 끊임없이 현재로 호명한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서 선생은 21세기를 율려(律呂) 철학에 바탕을 둔 창조적 역동과 생명모심, 후천개벽의 시대로 예지한다. 율려란 무엇인가?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쓴 『부도지』에는 천지창조의 주인공으로 율려를 말한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별들이 나타났고, 우주의 어머니인 마고(麻姑)를 잉태했다. 마고는 홀로 선천(先天)을 남자로 하고 후천(後天)을 여자로 하여 배우자가 없이 궁희(穹姬)와 소희(巢姬)를 낳고, 궁희와 소희도 역시 선천과 후천의 정을 받아 결혼하지 아니하고 네 천인(天人)과 네 천녀(天女)를 낳았다. 율려가 다시 부활하여 지상에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氣), 화(火), 수(水), 토(土)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더니 풀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마고는 율려를 타고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만들었으며, 천인과 천녀들은 하늘의 본음(本音)으로 만물을 다스렸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우주 어머니 마고를 잉태한 율려의 섬광(별빛)과 천지자연의 창조. 선생은 이 카오스모스적인 율려 개념과 테야르 드 샤르댕(Chardin, Pierre Teilhard De, 1881~1955)의 통일적 세계관과 ‘오메가의 점(點)’을 뒤섞어 혼합사유로 나아간다. 진화의 최종단계에서 ‘정신형성’이라는 인간의 사회적 성화를 말하는 샤르댕의 이론은 이단시 되었으나 지금 그 논의는 매우 뜨겁다. 선생은 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 1861~1925)의 신지학과 인지학,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 1919~ )의 가이아 이론,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생기론과 노마드론 등에 이르기까지 서구사상을 종회무진하며 들쑤신다. 그렇게 들쑤셔서 맥놀이로 몰고 가는 선생의 사유는 참으로 웅혼하다. 글들은 모색의 궁리를 펼치면서 나아가다가 문득 문득 사상의 ‘말뿌리’를 낚아채 흑점 같은 개념들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 그 개념어들은 생명의 담지자인 민중들의 생명운동에 쉼 없이 가 닿는다. 선생은 결국 깨어있는 민중과 창조적 생명운동이 펼치는 새 세상의 개벽, 즉 활사개공(活私開共)의 세계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동학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녔다. 선생께서도 책으로서만이 아니라 직접 역사의 사유지/공유지/공공지(公共知)를 발로 누비며 사유했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이 기행의 일각(一覺)이다. 그 숨결, 그 혼, 그 그늘, 그 검고 흰 빛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지 않고서는 시적 환유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역사서를 읽는다 한들 그렇게 바로 그곳들에서 그들과 함께 나누지 않고서야 어떻게 다 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제2장. 은적암 기행
제3장. 앵산기행
제4장. 구릿골에서 남녘땅 뱃노래
제5장. 나는 법이다

 

이렇게 이어진 글의 순서는 오롯이 발 그늘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올해 발 그늘의 빚을 갚기 위해 기행을 떠날 예정이다. 올해는 동학 120년이지 않는가. 동학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이곳저곳을 누빌 것이다. 21세기, 아직 신새벽의 여명은 밝지 않았다. 그러나 곧 동이 터 오리라. 그 동트는 새벽의 ‘동’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동학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일이지 않겠는가!

 

글_김종길(미술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동학이야기(1).jpg

『동학이야기』 김지하, 솔출판사, 1994

 

<목차>

 

001. 인간의 사회적 성화
002. 은적암 기행
003. 앵산기행
004. 구릿골에서 남녘땅 뱃노래
005. 나는 법이다
006. 인위와 안위적 무위
007. 후천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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