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부쳐: 애도를 넘어 성찰로Ⅱ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 하자
세월호에 대한 메타인지(Metacognition)
일전에 EBS에서 방송한 「교육대기획-학교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았습니다.
10부작 시리즈 중 한 파트가 사교육 관련한 내용이고 거기에는 선행학습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실험 사례가 나오는데 거기서 언급된 주요 내용이 ‘인지에 대한 인지’ 즉, 메타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실험은 이렇습니다.
고1과정까지 선행학습을 한 중3 학생들에게 20문항의 시험 문제를 보여준 후 자신이 풀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의 개수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그 문제를 풀은 결과와 대조를 해 보았는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분명히 배운 내용이고 자신이 충분히 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치는 그 생각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 실력이 부족함에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인지능력, 즉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선행학습을 비판하는 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비단 우리 학교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참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제일처럼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얀 국화꽃을 헌화했습니다. 밀도가 조금 헐거워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처연한 세월을 건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적 애도는 수차례 반복되어 왔고 재난은 여전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에 마주치게 됩니다. 우리는 재난을 대비하는 방안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마치 선행학습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자신한 학생들의 생각과 실제 문제풀이 결과와의 현격한 격차처럼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인재가 겹친 재난 속에서 이제 우리들은 이것을 예방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메타인지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화려한 스펙의 과외선생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을 하는 힘인 것처럼 이번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슬픔에 자기의 에너지를 다 쏟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뇌와 언어로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야 이 슬픔 속에서 그나마 대안을 길어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광명시평생학습원의 의미 있는 행보
지난 5월 8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토론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광명시평생학습원(이하 광명학습원)을 찾아갔습니다. 외부로 개방된 토론이 아니라 광명학습원 직원들만의 내부 토론회였습니다.
광명학습원 구성원들은 세월호와 관련하여 팀별로 여러 차례 논의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개인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팀별로 대안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원장님을 비롯한 전체 직원이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팀별 발표를 하면서 각자의 소회를 공유한 것입니다. 또한 광명학습원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이런 논의를 광명시 시민사회 관계자들로 폭을 넓혀 지난 16일에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칫 감정의 과잉 속에 시간이 지나면 곧 휘발될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의 시각으로 차분하게 정리하고 뿐만 아니라 팀 단위로 해결방안을 찾아보고 이것을 지역과 더불어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은, 생각하기는 쉽지만 그러나 막상 실행하기는 결코 간단치 않은 과정입니다. 어쩌면 이런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광명학습원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명학습원 평생교육팀에서 근무하는 손미혜씨는 이번 토론 과정에서 느낀 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맡겨진 일만 했는데 함께 토론하는 과정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떨리는 듯한 마음을 느꼈고 자신감도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시민으로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게 되었고 시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같은 팀에 근무하는 김혜영씨도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전했습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나라인지 겁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보면서 내가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가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런 희망을 가져야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은 이번 내부 토론회를 제안한 광명학습원의 신민선원장님과의 서면 인터뷰 내용입니다.
정성원: 왜 이런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신민선: 세월호가 던진 화두는 과연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바로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부정과 실책, 형식적인 절차에 사로잡힌 관료들의 행위, 상식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행태들,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현장의 모습들을 접할 때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모든 문제의 출발과 결론이 오직 무능한 정부에 대한 실망과 성토로 이어지는 모습에 과연 이러한 접근만이 과연 해답이고 문제 해결인가? 문제해결이 된다면 과연 끝인가?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유로운 사회, 인간적인 사회가 학습사회라면, 평생학습사회를 부르짖고 있는 지역 현장에서 우리는 진실로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온전하게 있었다는 것인가? 또 그러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던가? 주체화된 시민성과 평생학습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세월호가 남긴 그 파장에 과연 평생학습의 몫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개인의 몫은 무엇인가? 끊임없는 질문과 의문이 가슴 저 밑에서부터 시작되면서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이러한 혼란은 그간 평생학습 현장에 있었다는 존재에 대한 흔들림과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까지 이어지는 처절함이었다. 세월호가 던져주는 삶에 대한 어려운 질문과 우리들의 모습에서 사회적 신뢰와 인간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 우리의 비루한 자화상을 발견하면서, 순간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러한 개인적 고백이 이런 모임을 진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것을 함께 공유하고 공론화하지 않으면 내가 갖고 있는 책임과 책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러한 사고가 났으니 춤추고 노래하는 학습동아리들의 가무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가슴에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진 노란 리본을 다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스스로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확인이라고나 할까? 함께 평생학습을 고민하고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 문제를 드러내놓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함께 치유하고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 보고 싶었다.
정성원: 사전에 기대하는 바가 있었습니까.
신민선: 물론 기대는 있었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다시 한 번 광명시 평생학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였다. 일을 하다보면 정말 해야 할 일과 가치를 놓치고 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중요한 할 일 보다 급한 일을 하다보면 일의 본질과 방향성을 잊기도 하고 잃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혹시 이런 모임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는 길을 잃어버렸던 평생학습의 존재 의미를 들추어낼 수 있는 반성과 성찰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보았다.
정성원: 이런 모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민선: 광명시에는 시정 평생학습의 기획단계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는 평생학습실무위원들의 활발한 활동이 있고, 또한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시민단체협의회가 있다. 그 동안의 모임은 평생학습 사업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고 사업추진을 위한 실행이 주된 의제였다. 그렇지만 이번 ‘세월호가 주는 평생학습의 반성과 고찰’ 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논의는 왜 우리가 이러한 조직을 구성하였는지, 왜 민(民)과 관(官의) 거버넌스가 필요한지 그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생학습 실무위원회와 시민단체협의회와의 간담회는 지역의 평생학습을 진중하게 돌아보는 데 의미가 있었으며, 일회성의 논의가 아닌 지속적인 논의를 약속하고 헤어지는 뒷모습에서 광명시의 평생학습 희망을 감히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광명시평생학습원 직원들의 주제관련 발제는 매우 가슴에 와 닿았다. 발제하기 전까지 몇 차례에 걸친 팀별회의를 가지면서까지 준비한 발제의 내용은 깊이 면에서도 매우 좋았지만, 일에 쫓겨, 사업에 쫓겨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어쩔 수 없이 인색했던 내 자신을 ‘한순간 멈칫’하며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기에 더욱 더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자리에 함께 한 서울평생교육연합 관계자와의 심도 깊은 논의 또한 이제껏 우리가 왜 시민의 평생학습조력자로서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정성원: 직원 개개인이나 광명학습원 전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민선: 크게 눈에 띄는 변화를 원하기 보다는 이런 논의의 장을 통해 우리의 관점과 철학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기를 희망한다. 지금껏 지역의 평생학습은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깊이가 뒤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학습사회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한 민주시민교육의 시민성이 정작 평생학습도시 토양에서 발현되지 못하는 현실 하에 ‘평생학습과 시민성’간의 관계를 돌아본 시간은 단순한 공유의 의미를 넘어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분명 이런 결과는 지역 평생학습의 의미와 방향성으로 재해석되어, 그러한 실행은 지역에 알게 모르게 녹아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은 아직도 “안녕하십니까?” 라는 안부를 묻는 인사조차 어색하게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조국교수는 “사고가 아닌 제도적 타살”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인간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족을 잃은 사람의 그 마음을 어떻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끊임없는 속도와 경쟁력 속에 허물어져 가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평생학습에서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느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 ‘망각’이라지만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숭고한 진리 앞에 더 이상 늦기 전에 평생학습의 본질을 찾아가는 그러한 여정이 지속되기를 기대해본다.
광명에 소재한 <회복적정의시민사회네트워크>라는 기관에서는 지난 5월부터 6월말까지 일주일 단위로 세월호 참사관련 ‘애도와 성찰을 위한 대화의 자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의 참여가 있는 한 이 모임을 지속시킬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 어떤 분들이 참석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더불어 함께 모이고, 자신의 생활적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명과 실이 상부하는 일상의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을.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서서 일상의 민주주의가 우리 생활계에 작동될 때에야말로 실질적인 주권재민이 구현될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안녕’의 수호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번 세월호에 대한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애도를 넘어서는 성찰, 그 성찰 속에서 길어올린 각기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생활적 언어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잊지 않겠다’라고 쓰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겠다’라고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웹진 「와」 지난 호에 평생교육 학자 두 분의 글에 이어 이번 호에는 평생학습의 현장에서 활동하고 계신 두 분의 글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미란(부천시평생학습센터 소장)
세월호 참사 이후, 평생학습현장에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번 참사가 평생학습의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만약 평생학습의 ‘공공성’이나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고민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가능하다면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 닥칠 수 있다. 일단 사고가 나면 먼저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피고 그 다음으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해난사고는 인명구조가 경각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사건은 초기대응부터 사후대처까지 완벽히 실패하였다. 사고가 난 4월 16일부터 바로 우리 눈앞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데도 구조작업을 통해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기막힌 사건이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기에 가만히 있었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아이들이어서 더 처연했던 참사였다.
사람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도 다르다. 나는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함’이 드러난 만큼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국가안전시스템과 사건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대처방법과 태도, 이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 등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다수 건강한 시민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생명의 소중함’, ‘공공성의 실종’ 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향후 더 고민해야 할 프로그램이나 내용은 무엇일까?
사고 이후 실종자들이 살아 돌아오기를 염원하며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을 전개했고,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침묵시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불복종과 저항을 담은 각종 시민행동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높다.
‘교육이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이 지역을 바꾼다’고 한다. 사람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철저히 원자화되고 있는 시민과 개인이 사회문제나 지역의 현안에 관심을 갖고, 그 문제해결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야 움직인다. 깨어있는 시민, 조직화된 시민, 참여하는 시민, 연대하는 시민, 저항하는 시민이 되려면 끊임없는 자각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른바 ‘시민성’ 향상이 필요하다.
에릭 홉스봄이 말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포기해선 안 된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평생학습은 시민교육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다시 시민교육이다, 시민교육을 향하여 앞으로.
김미윤(은평구평생학습관 관장)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작은 제안
세상이 길을 잃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정황을 캐면 캘수록 참담해진다. 초기에 대처만 잘하였어도 많은 아이들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이 거의 사실로 드러나면서 분노와 자괴감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대중화된 첨단 기술 사회에 아직 피지도 못한 우리 아이들 몇 백 명의 목숨이 속수무책으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국민 모두가 생중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기괴한 시간들은 가히 악몽이었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가 믿었던 세상도 침몰하였다.
참담한 심정은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렇게 사라지고 멀쩡한 얼굴로 세상을 비판하고 SNS에 글을 쓰는 것조차도 한없이 미안하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이 원고를 쓰기까지도 참으로 어려웠다. 어떤 정신으로 무너진 감정을 수습하고 냉정함을 찾아야 할지 자신이 없고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의문이고 후회스러운 상황. 그러나 힘겹지만 우리는 반드시 생각을 해내야 한다. 우리의 세상이 왜 이렇게 침몰하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질문을 해 본다. 왜 구하지 못했는가? 왜 가만있으라고 했는가? 왜 선원들이 먼저 빠져 나왔는가? 비정규 계약직이 대부분인 선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 해경과 구조업체, 해운업체 간의 이상한 관계와 비리, 선박 관리와 감독의 의무를 소홀히 한 당국의 무책임성. 하나의 고리를 물면 줄줄이 이어져 나오는 이 비리와 무책임의 연쇄사슬을 바라보며 우리 사회의 저열한 수준을 적나라하게 확인한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려고 치열하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빠져나갈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열중하는 몰염치한 모습들을 보며 상식도 윤리도 신뢰도 책임도 도저히 말하기 불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그동안 이런 사회에 희망을 걸고 살아왔고 우리 아이들을 키워왔던 것이다.
다시 질문을 해 본다. 우리가 원했던 세상이 이런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배워왔는가? 자기 성찰이 없는 분노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 참사의 책임을 누군가 법적으로 지고 종결된다고 하여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몇몇 사람의 책임을 묻는 것으로 결코 이 사건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절대 잊히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을.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런 일은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교육기획자이자 현장의 실천가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도 이번 참사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나는 배움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 가능한 희망이라고 믿어왔고, 평생 배움의 시대에 사람과 공동체는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장에서 일하는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이런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본다. 이익을 따지는 배움은 많아지고 이치를 따져 묻는 배움은 기피된다. 잘 팔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규모를 키우는 노력을 하기에도 바빠서 ‘왜?’라는 질문은 종종 나중으로 미뤄진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학습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가치를 평가받고 있고, 지역과 기관에서 평생학습은 이러한 사람들의 ‘실용적인 요구에 부응’하고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정말 우리는 나아져온 것일까?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라 늘 상처받고 나서야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이번 참사가 깨달음의 계기라기엔 너무나 아프지만, 무뎌질 대로 무뎌진 우리들에게 찾아온 각성의 기회, 참회의 기회를 더 늦기 전에 잡아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에게 제안한다. 우리가 실패했음을 인정하자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음을 인정하자고. 그리고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치열한 반성과 대화를 시작하자고. 바쁘다고 미뤄왔던 공동체의 가치와 사람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고.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서로 위로하고 치유하자고.
여전히 사람과 세상의 변화를 위해 배움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먼저 평생학습 현장에서 우리 사회에 다시 ‘사람’의 가치를 주장하였으면 한다. 지금의 절망은 한두 가지의 프로그램으로 해결되거나 회복될 차원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던 사회의 상식을 따져 묻고, 각자의 삶과 이 시대를 반성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고, 규모가 아니라 가치에 집중하고, 허울에 현혹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각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각성을 위한 배움’, 나아가 ‘삶을 총체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배움’을 위한 다양한 만남과 대화의 자리들을 현장에서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야 한다. 불신(不信)의 시대, 공동체의 신뢰와 희망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