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가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May 27, 2014

우리들의 서재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도정일 저, 문학동네, 2014)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 탓인지 요사이 자꾸만 고백하려는 성향이 나에게 생겼다. 어쩌면 내가 여린 꽃 같은 학생들을 차갑고 캄캄한 바다 속에 밀어넣은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고백'을 부추긴다. 고백은 자기처벌의 방식이자, 이를 통해 면죄부를 얻기 위한 전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고백하자면, 뭐 그다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권위가 없어 다소 우습지만, 나는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면서도 사실 인문학에 대한 이렇다 할 신념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다. 변명을 하자면, 소망대로 문학을 전공했지만 아름다운 문장과 그 문장의 생산자인 조잡하고 비루한 인간 사이에서 분열을 거듭하며 사랑을 잃었다. 그리고 문장은 무력할 뿐 아니라 실재를 은폐하는 알리바이이기도 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에 휩싸이다 신랄하고 인색한 성격을 얻게 되었다. 대학에 대한 실망,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홀대를 경험해 본 트라우마도 작용했다. 아무튼 그 대가로 인간적 탁월성을 실현하며 살지 못했다. 고결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고결한 삶을 살겠는가?

 

드물게 고요한 시간을 맞이하면 당혹스럽다. 마치 폭풍이 그친 후 평온해진 호수 위에 시체가 둥둥 떠오르는 공포영화처럼 마음의 폐허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명령에 따랐을 뿐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하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처럼 성찰성없이 상투적으로 산 것 같은 당혹스러움, 진심도 아니면서 사랑한 척한 듯 한 부끄러움, 어쩌면 어떤 것도 믿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부재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 등등.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울 수 없는 밑 뚫린 항아리를 마주한 콩쥐인 양 망연자실해진다. 맹자님이라면 아마도 그런 정서를 '수오지심'이라고 이름붙이고 너의 도덕감정이 희미하게 얼굴을 내민 것이라고 위로해주실 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수치의 감정, 즉 ‘좋은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양심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덕성 운운하리만큼 아름다운 감정으로 해석되는 것은 껄끄럽다. 나 자신만 아는 두려운 진실 때문이다.

 

신간을 뒤적이다가 도정일의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을 읽으면서 다시금 이런 감정의 습격을 받았다. 사실 읽지 않고도 이미 다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이 책을 한동안 펼치지 않았다. ‘정답’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도정일은 한국 인문학의 대표 브랜드이지 않은가? 최근 인문학 상품화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독서를 미루게 했다. 미국은 쥐 한 마리(미키마우스)가 자동차산업에 못지않은 돈을 벌어들인다며 인문적 상상력의 가치에 주목하자는 무교양한 지식인들을 종종 본다. ‘시장보다 인간이 먼저’라는 인문학의 반자본주의적 정신 앞에서 이익을 숭배하는 데 익숙한 우리 자신을 ‘인스톨’하기보다 인문학마저 시장논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에게서 혐오를 느낀다. 최근 들어 인문학이 나 자신의 치부와 세계의 절망적 지점을 들추어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과 삶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힐링 상품으로 전락한 듯한 인상도 받는다. 주저없이 사랑과 우정은 소중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약간의 분노마저 느낀다.

 

여러 이유로 미적미적 책을 들추어보게 되었다. 책은 스물다섯의 나를 매료시켰던 문학, 문화비평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만큼이나 밑줄을 그을 것을 명령하는 탁월한 문장들과 흥미로운 사례들로 빼곡하다. 일종의 현장비평서인 탓인지 사회의 위기와 교육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전작에서보다 생생하게 포착된다. 읽다보니 그가 이십 년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이 글들이 뚜렷한 일관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인문 교육자답게, 90년대 이후 시장이 인간을 구원하리 하는 식의 시장만능주의(시장전체주의)가 팽배해짐으로써 삶이 이전투구하는 악몽처럼 변했으면서도 우리 자신과 사회를 구원할 교육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천사보다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인간이 천사에게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하며 그것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윤리적 탁월성”(128p)이라고 답한다. 그는 인간은 가치의 발명자, 수호자라고 전제하고, ‘인간주의’의 깊은 핵심에 자기 자신, 타자, 사회와 문명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는 윤리적 인간의 씨앗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인문 교육은 사회의 실패를 막는 가장 유용한 처방이 된다.

 

이러한 주장이 뻔한 인문학적 정답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탁월한 예언임은 「내 마음의 님비-지진의 심리학」, 「허리케인이 올지 누가 알았나」 같은 재난을 화제로 한 글에서 드러난다. 각각 2001년 인도 구라자트의 대지진, 2004년 미국의 허리케인(카트리나) 대참사 등에 대한 이 글들은 오래 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건을 오버랩 시킨다. 비록 자연재해라고 할지라도 ‘재난’은 사회의 건강성 유무 혹은 실패와 성공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그에 의하면 카트리나 참사가 ‘재난’인 것은 자연재해의 심각성 때문이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정부의 무감각”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이 시장의 탐욕과 인간이 겪는 고통 앞에 무감각할 뿐 아니라 무능력한 정부로 인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라면 아마도 우리가 진짜 두려워할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실패가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할 듯하다.

 

「내 마음의 님비」에서 그는 “지진은 평등의 위대한 강요자”(137p)로, “자기 예외주의”에 익숙한 현대의 개인주의자들에게 우리가 사실은 침몰하는 사회의 공범자라는 무서운 진실을 확인시켜준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마치 중독된 듯 읽던 세월호 기사 중 인상에 깊이 남았던 희생자 유가족 인터뷰가 떠올랐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자신을 영문과 출신, 육십 평 아파트의 거주자, 입시학원 운영자, 판사지망생(희생자)과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 중인 딸을 둔 중년여성이라고 밝힌 후 자신이 단 한 번도 재난과 같은 불행한 사건의 피해자가 되리라고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간 남들이 겪는 불행을 방관했던 대가를 겪는 것만 같다는 서늘한 고백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인터뷰는 도정일의 표현을 빌자면 “재난예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모두의 마비된 윤리감각을 비춘다.

 

세월호 참사가 난 이후 사람들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자기반성을 한다. 나의 동료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비록 적은 액수지만 국가에서 받은 연구비를 환수조치하지 않고 희희낙낙 벗과 저녁식사를 했던 일이 떠올랐다고 고백한다. 세월호 참사도 규정을 어겼음에도 이 정도 화물을 더 싣는 것은 죄도 아니야 라는 누군가의 무감각이 빚어낸 것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남과 사회의 부도덕은 가차없이 질타하지만 자신의 허물에는 얼마나 관대한가? 생각해보니, 나 역시 유죄임이 분명하다. 인문학을 가르치면서도 뜨거운 신념없이 말하고 혹은 손쉽게 상투적인 정답을 던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나의 직업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뒷덜미를 잡는다. 도정일은 대학교육의 가치를 “정신의 가두리 양식장”이 아니라 젊은이에게 “여행자의 행로처럼 열린 바다, 넓은 하늘, 트인 지평”을 보여주며 탐욕의 시장에서 굳어진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여행과 유사한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기, 타자, 사회에 대한 책임을 잊지 않은 윤리적 인간, 혹은 이기주의, 냉소주의를 부추기는 강자의 철학과 맞설 기초 체력을 지닌 젊은이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삶 자체가 재난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강단은 ‘전선’이다.

 

어떻게 하면 지독한 사실주의와 냉소주의를 넘어 사랑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을까? 카트리나 대지진을 소재로 한 사회비평서인 『이 폐허를 보라』에서 레베카 솔닛은 자발적으로 재난 복구작업에 참여한 미국인들을 이야기하면서 재난이 학계나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듯 ‘트라우마’로만 설명될 수 없으며, 심지어 “천국으로 들어가는 뒷문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우리가 그간 개인주의, 자본주의, 사회적 다위니즘 등 “가진 자의 철학”을 후원해주는 이데올로기들에 중독되어 인간의 공감능력과 협력의 본성을 망각해왔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인간은 탐욕적이고, 개인은 고독한 것이 운명이고 본질이라는 믿음에 숨어 자기의 이기주의를 방어해왔던 우리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듯이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라는 사실의 증명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더 중요하다고 일갈한다. 믿지 않는다면 공감도 협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 사이 탐욕의 시장, 무감각의 제국은 무수한 희생자를 요구하면서 번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도정일이 타르고프스키의 <희생>에서 “하루에 두 번씩 경건하게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물컵을 붓기만 해도 세계는 구원될지 모른다”(「죽은 나무에 물 주는 소년」, 111p)는 바보의 믿음으로 죽은 나무에 물을 붓는 주인공을 기괴한 정신병자가 아니라 현자로 보는 이유일 것이다.

 

글_김은하(문학평론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쓰잘데없이.jpg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도정일 저, 문학동네, 2014)

 

<목차>

 

서문

 

1부 선물의 도착
2부 쓸쓸함이여, 스승이여
3부 관계의 건축학
4부 사회는 언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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