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김영민의 공부론』공부란 무엇인가?

글작성자 수원시평생학습관 신청일 Apr 29, 2014

우리들의 서재

『김영민의 공부론』(김영민 저, 샘터, 2010)

 

이 책은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한 철학자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공부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습성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래서 어렵고, 불편하고, 그래서 우리를 뒤흔든다.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래서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는 늘 공부를 한다. 또는 우리는 늘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교육에서는 공부(이 말보다는 학습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긴 하지만)라는 말을 학교에 가둬두지 않기에 공부는 ‘학생’의 고유한 직분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공부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일상의 자연스러운 활동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우리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다. 공부를 업으로 삼고 있고, 공부(학습)에 대해 연구하는 교육학자인 나 스스로도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 나는 정말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이 생각은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시험공부에 매달려 있을 때나, 대학원 시절 공부보다는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을 때나, 연구원 시절 동시에 서 너 개의 ‘영혼 없는 보고서’를 위태롭게 써대고 있었을 때나, 그리고 지금 바로 이 순간(아이들을 위해 좋은 세상 만들지 못한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무력함과 미안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지금)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현명한 사람’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사람’으로서 공부하는 척 하며 살았던 것은 아닌가.

 

저자는 책 전체에서 ‘현명한 사람’이 하는 공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의 공부는 한마디로 정리되기 쉽지 않지만, 정직하고 순수성을 잃지 않는 공부를 말한다. 무사가 정직하게 무도를 연마하고 고수와의 겨루기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검증 받듯, 공부는 정직하게 “사태의 진실을 향해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정직한 공부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자기 생각과 경력의 오연 속에 자의식의 깃발을 꽂은 이들”은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를 “오직 자기생각을 번식시키기 위한 뻐꾸기 둥지로만 여기는 이들”은 공부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또는 다른 것)과의 만남을 통해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만난 사건, 조영래가 전태일을 만난 사건, 뉴턴이 사과를 만난 그 사건 속의 ‘돌이킬 수 없음’처럼, 그 만남 속에 개시된 공부의 물줄기는 돌이킬 수 없이 그 학생을 휘어잡는다.”
‘돌이킬 수 없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이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휘발성이 강한 공부들, 예를 들어 시험, 자격증 취득, 입학을 위한 공부가 진정한 공부이기는 어렵다. 이런 공부에서 습득하는 지식들은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과도 괴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가자가 만든 진리의 집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끊임없는 무너짐을 통해 이루어져야할 자기 변화(또는 성장)는 규격화된 지식의 축적과 보여주기 공부로 변질된다. 오늘날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소위 ‘스펙 쌓기’는 이런 보여주기 공부(저자는 이를 공부의 범주에 넣지도 않는다)의 전형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공부에 대한 우리의 몇 가지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첫 번째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생각이 공부라는 고정관념이다. 저자는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말하듯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생각만 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에 갇혀 자기 생각을 절대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자기 독단에 머무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그 생각은 일종의 폭력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배움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은 차단된다. 생각은 끊임없는 공부를 통해 보완되고 수정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두 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공부는 의식적 활동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이다. 저자는 프리드리히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일반적으로 갑작스럽게 오는데, 대개 크나큰 정신적 활동 다음에, 정신의 피로 상태가 신체의 휴식과 결부되는 상태에서 온다.” 공부는 “엉덩이의 힘”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체적 휴식은 창조적 생각을 북돋는다. 세 번째 재기 넘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다. 영리한 사람들은 성급하게 결실을 바라고 옆길로 빠지기 쉽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둔하여 책을 수 만 번 읽어야 했던 조선시대의 시인 김득신(金得臣)이 말년에 큰 문장을 이루었다는 일화는 공부가 가지고 있는 느림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네 번째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독창적인 공부에 대한 신화이다. 저자는 모방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모방의 방식과 모방에 대한 태도이다. 그러기에 “억지로 기이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나만은 체계 밖에서 남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는 생각은 허위의식”이자 “허영”이다. 저자는 독창적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스승을 흉내 내는 일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가르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일방적 말하기에 대한 고정 관념이다. 가르치는 사람은 되도록 배우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화가 부재한 가르침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본다. “자신이 아는 것을 주저리주저리 다 늘어놓는 짓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조차 하다. 내가 말수를 독점하는 순간, 이미 상대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공부의 기본은 대화이자 소통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이 책을 몇 자로 축약하여 소개하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 공부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비서(秘書)도 아닐뿐더러 자기계발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삶의 향기가 올곧이 배여 있다. 특히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있는(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열 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부라는 화두를 가지고 여러 번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와 삶에 대한 다채로운 의미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공부의 ‘기본’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어쩌면 기본을 무시한 채 공부 아닌 공부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직한 태도보다는 성공 동기와 이윤 동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저자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삶의 ‘기본’을 다지며 살고 있는지에 대한 무거운(또는 무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우리는 정말 진지하게 삶과 마주하며 살고 있는가? 또는 기본에 충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했는가? 세상에 대한 고민에만 갇혀 정작 진지한 공부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 삶과 통하지 않는 공부로 개인의 입신으로만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삶의 절망과 외롭게 마주했을 우리 아이들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평생 이 질문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수)

김영민의 공부론.jpg

『김영민의 공부론』(김영민 저, 샘터, 2010)


<목차>

서문 _ 인이불발, 당기되 쏘지 않는다

 

이소룡의 추억: 스타일은 양식이 아니다 / 이종범, 혹은 내야수의 긴장 / ‘변덕’이냐 ‘변화’냐 / 차붐, 적지에서 배운다 /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 / 물듦 / 알면서 모른 체하기 1 /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 지(비)우면서 배우기 / 대화로서의 공부 / 공부, 혹은 고독의 박자 / 실명제 공부 / 공부의 시간, 시간의 공부 / 심자통心自通 1 / 심자통心自通 2 / 심자통心自通 3 / 스승과 제자, 혹은 ‘인연법’으로서의 공부 / 복자연復自然, 혹은 ‘예열豫熱이 없는 공부’ / 무너지기의 희망: 선가귀감仙家龜鑑의 해석학 / 후유증 없이 / 글의 공부, 칼의 공부 / 책을 읽다가 싫증이 생기면? / 몸이 좋은 사람들 / 타자의 기억: ‘모른다’, ‘모른다’ / 공부길, 술어述語의 길 / 알면서 모른 체하기 2: ‘계몽된 무지’docta ignorantia / ‘손’이라는 공부길

 

후기 / 개념어집 / 인명 색인 / 인용 문헌

수강신청이나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여기를 클릭하셔서 회원가입 후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회원가입 하신 분은 우측 상단에서 로그인을 하시면 수강신청 혹은 댓글을 다실 수 있습니다.

누구나학교는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배우는 시민주도 평생학습 플랫폼입니다.
 지식, 재능, 경험,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은 누구나 학교를 열고
 배움의 기회를 갖고 싶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1. 1410
    대나무 쪼개기
    기간 2023-11-29~2023-11-29
    시간 17:00~18:00
    강사 이정민
    장소 2관 공방
    Read More
  2. 1409
    라탄 미니전등갓 만들기
    기간 2023-09-21~2023-09-21
    시간 13:00~16:00 (약 3시간 소요)
    강사 김은숙
    장소 2관 208호
    Read More
  3. 1408
    칼라링수채화&드로잉스케치
    기간 2023-09-06~2023-11-29
    시간 매주 수요일 10시~12시
    강사 이정희
    장소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작업실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4. 1407
    커피향기 나는 기타교실
    기간 2023-07-01~2023-11-25
    시간 매주 토, 11:00~14:00
    강사 안수희
    장소 2관 304호 퉁소바위 음악실
    Read More
  5. 1406
    퀼트로 소품 만들기
    기간 2023-07-03~2023-11-29
    시간 10:00~15:00 매주 월수
    강사 박순옥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6. 1405
    커피&칼라링 수채화(수요반)
    기간 2023-07-05~2023-08-23
    시간 매주 수, 10:00~12:00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7. 1404
    자이언트 해바라기 만들기
    기간 2023-06-29~2023-06-29
    시간 10:00~12:00
    강사 민현숙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8. 1403
    실생활에 꼭 필요한 금융지식 STEP!
    기간 2023-04-28~2023-04-28
    시간 15시 ~ 16시
    강사 윤가현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9. 1402
    영어야 놀자
    기간 2023-04-29~2023-06-24
    시간 11:00~11:50 (토요일)
    강사 이다인
    장소 2관 208호
    Read More
  10. 1401
    우화, 이젠 톡(talk)으로 만나요!
    기간 2023-03-29~2023-03-29
    시간 10~11시
    강사 김은주
    장소 2관 203호
    Read More
  11. 1400
    신중년 포크댄스 모여라
    기간 2023-03-10~2023-03-31
    시간 매주 금요일, 10:30-12:00
    강사 이영관
    장소 서호초등학교 내 수원청개구리마을 2층 댄스실
    Read More
  12. 1399
    MBTI를 활용한 자기 이해
    기간 2023-02-22~2023-02-22
    시간 14:00~16:00
    강사 박지현
    장소 2관 고고장
    Read More
  13. 1398
    학습동아리와 함께 하는 현대낙화(인두화) - (2/20)
    기간 2023-02-20~2023-02-20
    시간 15시~17시
    강사 조혜성
    장소 2관 209호
    Read More
  14. 1397
    이작가! 칼라링수채화(금요반/외부진행)
    기간 2023-03-17~2023-05-26
    시간 원데이) 매주 금요일:10시~12시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15. 1396
    이작가! 칼라링수채화(토요반/외부진행)
    기간 2023-03-18~2023-05-27
    시간 매주 토요일 10:00~12:00
    강사 이정희
    장소 수원시 권선구 세류로 분당선 매교역 근처 (세부주소:신청자 개별연락/주차가능)
    Read More
  16. 1395
    라탄 차롱 도시락 만들기
    기간 2023-02-23~2023-02-23
    시간 12:00~16:00
    강사 김은숙
    장소 2관 거북이공방
    Read More
  17. 1392
    와펜으로 나만의 에코백 만들기
    기간 2023-01-13~2023-01-13
    시간 14:00-15:00
    강사 -
    장소 2관 203호
    Read More
  18. 1394
    기(氣)체조. 통찰명상
    기간 2023-02-13~2023-02-27
    시간 매주 월,수,금 오후 7시~ 8시 40분
    강사 신 순 옥
    장소 2관 예체능실
    Read More
  19. 1393
    학습동아리와 함께 하는 현대낙화(인두화)
    기간 2023-01-31~2023-01-31
    시간 10시30분~12시
    강사 조혜성
    장소 209호
    Read More
  20. 1391
    민체 캘리그라피 기초 (저녁반)
    기간 2023-02-13~2023-02-13
    시간 월 19:00-21:00
    강사 허성희
    장소 2관 210호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77 Next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