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건강한 민주주의엔 마음이 필요하다

글작성자 수원시평생학습관 신청일 Apr 15, 2014

우리들의 서재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2)

 

연전에 흥미 있게 읽은 『마음의 사회학』(김홍중 저, 2009)은 혜능 선사의 풍번문답(風幡問答)으로 시작한다. 법당 앞 흔들리는 깃발을 두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냐, 바람이 흔들리는 것이냐 논쟁이 벌어졌을 때, 혜능이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요, 그대들 마음”이라 일갈했다는 이야기가 풍번문답이다.
최근 읽은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는 이런 유대인의 가르침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다. “토라는 왜 ‘이 말씀을 네 마음 위에 두라’고 우리에게 말하나요? 이 거룩한 말씀을 마음속에 두라고 말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랍비가 대답한다. “우리의 마음이 닫혀 있어서 그 거룩한 말씀을 마음속에 둘 수가 없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우리 마음 위에 올려놓는 것이라네. 언젠가 그들은 말할 걸세. 마음이 부서져 그 말씀이 그 속으로 떨어졌다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의 원제는 Healing the Heart of Democracy다. 우리말로 옮겨질 때(김찬호 옮김) 파커 J. 파머의 원제는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라는 부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마음의 사회학』과 짝 지어보면 ‘마음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하다.
두 책은 공히 마음을 핵심 키워드로 다룬다. 『마음의 사회학』은 속물주의에 투항한 한국인/한국사회의 마음을 파헤치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민주주의의 급격한 후퇴로 부서져 흩어지는 미국인/미국 민주주의의 마음을 추적한다. 사회든 정치든 마음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두 책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마음의 사회학』이 ‘마음’을 상대적으로 느슨한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반해 파커 파머는 나름으로 개념화하고자 한다. 파머가 볼 때 ‘마음’은 ‘자아의 핵심’이자 ‘우리의 모든 앎의 방식들이 수립되는 중심부’를 가리킨다. 우리가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알고, 느낌으로 알고, 몸으로 알고, 경험으로 알고, 상상으로 알고, 직관으로 알고, 관계를 통해 아는 모든 것들이 통합되는 지점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물론, 파머는 서양의 전통을 따라, ‘모든 것이 마음에서 생겨나고, 마음에서 스러진다’는 불가(佛家)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전면 수용하지는 않으며, 마음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파머가 볼 때 마음은 항상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현실과 열망, 존재와 당위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부서질 때마다 ‘비통한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마음이 부서진 뒤 흩어지게(broken apart) 할 것이냐 아니면 부서져서 열리게(broken open) 할 것이냐다. 파머는 우리의 마음이 부서져 열릴 때, 저 랍비가 갈파한대로 소중한 것들이 우리들 마음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고 믿는다. 그가 간절히 원하는 바는 마음이 부서져 열리게 하는 것이다.

 

"자아와 세계에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 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안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정치란 권력을 사용하여 삶에 질서를 함께 부여하는 행위로서, 심층적으론 하나의 인간적인 기획이다. 마음이 부서져 흩어진 게 아니라 깨져서 열린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룬다면,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를 창조적으로 끌어안고 힘을 용기 있게 사용할 수 있다."

 

파머는 9.11 이후 또 한 번 미국 민주주의가 비통하게 부서져버렸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슈퍼파워, 끝없이 성장하는 경제,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기회의 나라, 모든 사람이 미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용광로 따위의 낡아버린 신화에 미국인들이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빗나간 애국심으로 인해 지난 200년 간 진전시켜온 ‘위대한 민주주의’의 원칙들은 크게 후퇴했다. 민주주의 훈련의 장들은 교란되었고, 공동선을 향해 열려 있던 마음들은 소비주의와 사적인 영역으로 퇴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파머는 다 낡아빠져 미국인을 병들게 할 뿐인 저 신화의 바탕 저 깊은 곳에 여전히 미국인들 마음속 열망과 비전이 살아 있다고 본다. 그 열망과 비전은 얼마 전까지 미국 민주주의를 끌어온 힘이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그 신화가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직시하고, 신화에 담긴 비전을 복원하여, 현실을 그 비전에 근접시키는 작업이다. 파머가 판단할 때 그 작업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이다.(미국의 신화만 그러한가? 우리 대한민국의 신화와 현실, 한반도의 비전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지 않은가?)

파머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알렉시스 토크빌이 일찍이 통찰한 마음의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마음의 습관을 정리하기 전에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누군가 내게 21세기에 부응하기 위해 미국인에게 필요한 마음의 습관을 두 단어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뻔뻔스러움겸손함이라는 말을 고르겠다. 뻔뻔스러움이란 나에게 표출할 의견이 있고 그것을 발언할 권리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겸손함이란 내가 아는 진리가 언제나 부분적이고 전혀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파머가 제시하는 첫 번째 습관은 우리 모두가 이 (정치공동체) 안에서 모두 상호의존적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낯선 자와 이방인까지도 포함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의지하고 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상호의존을 지나치게 이상화시켜서 종교적 수준으로 바꿔치기 하면 자기기만이 된다.
두 번째 마음의 습관은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것이다. 낯선 자일 수록 환대해야 한다. 낯선 자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셋째,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우리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긴장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재능을 극대화해야 한다.
넷째,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정치를 스포츠처럼 관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견해를 찾아내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이를 통해 긍정적 변화를 끌어내는데서 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만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도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실현하는 공동체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파머가 보기에 사회의 변화는 마음의 운동이다. 사회의 변화는 소외되고, 주변화 되고, 억압당하지만 절망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점화된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실의 소리를 발화하도록 마음의 습관을 키워 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비전을 가지고 공적인 장으로 나가게 되며, 처벌과 사회의 시스템을 바꿔낼 수 있다. 물론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으므로, 이러한 운동이 꼭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만은 아니다. 매 단계에서 긴장과 갈등이 발행한다. 이 역시 창조적으로 끌어안지 않으면 변화의 운동은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굴러갈 수도 있다. 또한, 한 사이클의 변화가 이뤄지면 다시 새로운 마음의 운동이 시작된다. 현실과 열망은 언제나 간극을 갖게 마련이므로, 마음의 역사는 영원히 다시 쓰인다.

 

2014년 3월말 현재 한국 정치판은 지방선거로 부산스럽다. 2012년 대선의 후유증을 말끔히 털지 못한 탓에 한국 민주주의 역시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사실 『마음의 사회학』의 진단에 따르면 건강은커녕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러나 도처에서 비판은 넘쳐나지만 믿을만한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몹시 돌아가는 길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무릅쓰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jpg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J. 파머 저, 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2012)

 

<목차>

 

책에 대한 찬사
한국어판 서문
역자 서문
서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제1장 민주주의의 생태계
제2장 저절로 시민이 된 사람의 고백
제3장 정치의 마음
제4장 민주주의의 베틀
제5장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삶
제6장 교실과 종교 공동체
제7장 근원적 민주주의를 위한 안전한 공간
제8장 쓰이지 않은 마음의 역사

 

감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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