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다석 류영모 명상록-진리와 참 나』동서양 철학적 사유체계를 하나로 읽어 나가는 다석의 어록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Apr 01, 2014

우리들의 서재

『다석 류영모 명상록-진리와 참 나』(박영호 옮김, 두레, 2000)

  

누가 나에게 당신의 스승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첫 머리에서 다석 류영모 선생을 말할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정관 김복진 선생도 있고, 김정숙, 홍명섭, 박상륭, 최인훈, 김지하, 매월당 김시습, 다산 정약용, 우봉 조희룡, 다석의 제자 함석헌 선생도 있다. 내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스승들의 말씀이 현존하므로.
그 중 내 머리의 둔탁한 뼈를 목탁처럼 맑고 투명하게 비우고 쪼개주신 분이 누구였을까를 생각해 보면 역시나 다석 선생이시다. 나는 그분을 함석헌 선생의 스승이라 하여 알았고, 그래서 선생의 책을 구해 읽은 뒤에는 완전히 그분의 말씀에 매료되었다. 곁에 두고 오래 읽은 책으로 선생의 명상록인 『진리와 참 나』를 권하고자 한다.

 

나는 책을 구하면 속표지 안쪽에 구한 날과 책을 구하게 된 사연 또는 책의 느낌을 짧게 적어놓곤 한다. 이 책에 기록된 날짜와 글은 다음과 같다. "2001.4.4. 책을 살 때 적립되는 10%의 금액과 10,000원을 보태어 이 책을 사다. 그의 글은 오래전 신문을 통해 읽은 바 있다. 스승은 도처에 있고, 그를 따름은 늘 내 정신의 긴장이 그에게로 향함이다." 기록에서 오래전 신문을 통해 읽었다고 한 것은 아마도 선생의 제자이자 이 책의 역자이기도 한 박영호 선생이 문화일보에 연재한 기사였을 수 있다. 나는 한 때 문화일보를 거의 매일 빠트리지 않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다니던 서울시립대학교 정문 앞 수위실에 신문이 한 뭉치 씩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1993년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뒤 나는 연극에 미쳤다. 1994년에는 아예 휴학을 하고 덤벼들었는데, 그런 내 삶은 1995년에 연출한 <숲>을 끝낼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아마도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종종 수위실에 쌓인 문화일보를 주워다 읽으면서 다석 선생과 만났다.
사실 다석 선생은 살아서 책을 낸 일이 없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선생의 글은 「동명」(최남선), 「성서조선」(김교신)에 기교한 몇 편의 글과 일기가 전부다. 흥미로운 것은 선생의 일기에 그 자신이 지은 한시 1천 3백수와 시조 1천 7백수가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석일지』는 바로 그 일기를 묶은 것이다. 그런데 선생의 한시와 시조를 읽을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았다. 『진리와 참 나』는 한시 1천 3백수에서 99수를 골라 박영호 선생이 의역/통역으로 쉽게 풀이한 것이다. 박영호 선생은 1959년부터 다석 선생이 작고하신 1981년까지 20여 년 동안 가르침을 받은 제자여서, 시의 행간을 흐르는 다석 선생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제1편 33수, 제2편 33수, 제3편 33수로 총 99수를 이루는 이 책의 구성은 순전히 박영호 선생이 다석사상의 핵심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철학적 편집을 한 것이라 생각된다. 3편이니 3이요, 33이니 3이 둘이요, 33이 세 번 이어지니 99수라는 편집의 구조는 삼수분화의 세계관을 가진 동양의 사상과 주역의 이치가 아닌가. 다석 선생은 기독신앙(또는 기독사상)을 뿌리에 두고 유불선 사상의 기둥을 키웠고, 그 기둥의 가지가지를 동서양의 철학들로 피워 올려서 천변만화의 다원적 사상체계를 꽃피웠기에 우리는 이 책의 구성만으로도 그 뜻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다석 선생의 시를 옮기고 풀이한 박영호 선생은 다석 선생이 자주 언급하신 말씀 언어의 문자를 통해 다석 선생의 고유하고 깊은 사상을 넌지시 드러내고 있는데, 사실 넌지시 라고는 했으나 그 문자들은 참 맛깔스럽고 향기롭다. 예컨대 제1편의 주제어들 중에는 "얼나를 모신 마음", "얼 사람", "제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 "거짓 님에 굽히지 말자"라는 말들이 눈에 띄고, 제2편에서는 "솟나 있으리", "얼나를 깨달음", "텅 빔과 알참", "빈 맘", "마루님에 머리두면 발이 좋아 이를 데를 알아 이르리라"가 보이고, 제3편에서는 "얼나를 간직함", "얼숨", "이제 여기", "이 글월의 조용한 말씀", "얼 목숨", "제나와 얼나", "하루 일로 참에 이름", "어디서나 임자됨은 본디 얼나이다"가 마음에 닿는다. 참 나와 얼나, 제나, 얼 사람, 거짓 님, 텅 빔과 알참, 빈 맘, 얼 목숨. 이 말들은 다석 선생이 어려운 한자말을 우리말로 바꾸어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뜻 말로 전해지는 것들일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말들의 투명한 우물에 진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말의 참뜻은 무엇일까?

 

제1편의 일곱 번째 수 <얼나를 모신 마음>을 보자. 한시의 직역; 가고 서는 제나의 삶은 꿈․거짓․횟뵘이라 / 웃님 뜻에 살며 죽도록 밝히고․살피고․깨닫자 / 탐욕을 채우고 음란에 빠져 나를 끝장내랴 / 밥을 잊고 고디를 맵게 가져 제나를 불살라. 이 시에는 얼나, 제나, 웃님이 등장한다. 다석 선생은 "사람은 몸으로는 다른 짐승들과 같은데 그래도 귀한 것이 있으니 하느님의 씨(얼)가 사람에게 깃들여 있다는 것"이라고 했고 또, "예수는 내 속에 있는 얼인 하느님의 씨가 참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므로 먼저 내 속에 있는 얼나에 따라야 한다. 그 얼이 예수의 영원한 생명이요 나의 영원한 생명이다."(『다석어록』) 다석 선생의 말에 유추해 '얼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얼나'는 내 속의 영원한 생명의 나이니 영적 자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제나'는? 그냥 자아다. 에고다. 제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고 한 까닭이 거기 있다. 제1편 열 두수에 이르면 <제나가 죽어야 얼나가 산다>가 나오는데 이 말은 '끝과 시작'을 상징한다. 다석 선생은 "시작했다 끝이 나는 것은 몸의 세계다. 그러나 끝을 맺고 시작하는 것은 얼의 세계다. 낳아서 죽는 것이 몸이요, 죽어서 사는 것이 얼이다. 얼은 제나가 죽어서 사는 생명"이라고 했다. 얼의 생명을 다석 선생은 '얼숨'이라고 했는데 기도나 명상이야말로 얼숨을 쉬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숨은 목숨인데 이렇게 할딱할딱 숨을 쉬어야 사는 생명은 참 생명이 아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면 코로 숨쉬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얼숨이 있을 것이다.“

 

박영호 선생은 다석 선생의 시를 풀면서 해박한 풀이의 능란을 펼친다. 제3편 열여섯 수 <얼나를 간직함>을 풀이하면서 선생은 처음부터 노자를 불러들인다. "노자가 이르기를 '하느님에게 이르러 얼나를 간직한다.'(『노자』16장)고 하였다."고 시작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예수, 석가가 죽음을 앞두고도 태연하였던 것은 그들의 맘속에 얼나를 간직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노자의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에 빗대어 풀이하는 대목이다. 그런 뒤 선생은 사람이 얼나로 거듭나기 전의 제나는 짐승이라고 못 박는다. 이 대목에서는 불교의 탐진치(貪瞋癡)를 들이댄다. 짐승들과 다름없이 먹기를 좋아하고(탐), 싸우기를 잘하고(진), 짝짓기를 즐기기(치) 때문이라는 그 욕망의 탐진치.

 

이 책은 다석 선생의 시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갚진 시간을 즐길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다석 선생의 어록과 그 어록에 깃들어 있는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체계를 종횡무진하며 갈무리하는 뜻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한 편 한 편 묵상하듯 하루 한 시간 아니 삼십분씩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그리 어렵게 생각지 않아도 된다. 또한 이 책은 기독교인에게는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던 예수의 삶을 엿보게 하고, 불교도인에게는 진리의 말씀이 경전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더불어 예수와 석가, 공자, 노자, 로맹 롤랑, 토인비, 간디 등 수많은 현자들의 말씀이 한통속의 뜻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다석 선생의 통 큰 사유체계를 우리는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그물처럼 드넓게 펼쳐졌으되 웅숭깊은 얼나의 얼숨과 얼생명 철학을!

 

글_김종길(미술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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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 명상록-진리와 참 나』(박영호 옮김, 두레, 2000)

 

<목차>

 

추천의 글
머리말

 

제1편
제2편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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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현 2014.04.03 16:42
    좋은글 감사합니다.
    읽고 싶은 책입니다.
    서구의 철학, 신학 체계가 우리의 삶 속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이익, 정치 등과 어지러운 관계를 한참 맺고 있는 지금 더욱 읽고 싶은 책입니다.
  • ?
    수원시평생학습관 2014.04.04 09:23
    곁에 두고 오랜 시간 읽고, 또 읽어도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김동현 님의 기억과 삶에도 좋은 책으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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