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마세요
- 「휴먼라이브러리 컨퍼런스」 후기
지난 2월 15일(토), 18일(화) 이틀간 국회도서관과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2014 휴먼라이브러리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약 300여 분의 참가자들이 창립자 로니 애버겔(Ronni Abergel)에게 직접 휴먼라이브러리의 가치와 철학을 듣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현장을 공유합니다.
로니 애버겔(Ronni Abergel) 초청강연
‘편견’에서 시작한 휴먼라이브러리의 가치
“자신이 갖고 있는 편견에 도전할 용기가 있습니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전형적으로 편견,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걷는 방식, 말하는 방식, 그리고 언론을 통해 마주치는 사소한 인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편견을 조금이나마 없애기 위해, 이것이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없앨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휴먼라이브러리는 만들어졌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목도한 로니 애버겔의 아픈 과거에서부터 시작한 휴먼라이브러리 아이디어는 의미 있는 가치와 간단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과 마주하여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방법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실제 도서관과 똑같죠. 책 내용, 목록 정리하여 독자에게 대출합니다. 직장, 학교, 공원...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 기획자들을 위한 운영tip
로니 애버겔은 휴먼라이브러리를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에 관심이 있는 참석자들을 위해 몇 가지 운영 절차를 소개하였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방법론과 큰 틀에서는 유사하지만 사람책을 선정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편견’이라는 가치를 명확한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 편견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책인지 판단한다.
① 좋은 사람책이 될 수 없는 몇 가지 예시
-.스토리텔링: 편견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적합하지 않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지 않는 사람: 사람책이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편견을 굳혀줄 수 있는 사람: 해당되는 편견에 속해 있으면서 그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는 사람은 적절하지 않다.
② 좋은 사람책은?: 해당되는 편견에 속해 있으면서도 독자의 그 편견을 깨줄 수 있는 사람.
◦ 사람책 발굴: NGO, 공공기관, 인맥 등을 통해 발굴하는데, 에이즈 보균자, 홈리스, 젊은 미혼모, 동성애자 등의 이권을 대표하는 단체들과 연결하면 사람책을 발굴하기 용이하다.
◦ 진정성 있는 대화: 독자수가 아니라 사람책과 독자간의 양질의 대화가 중요하다.
◦ 장소: 지역주민센터, 쇼핑몰, 대학, 축제, 학교 등등 사람이 많이 있는 곳이 좋다.
◦ 사서의 역할
① 콘셉트에 대해 명확히 인지해줄 수 있도록 독자와 소통(휴먼라이브러리 규칙에 대해 반드시 이야기한다.)
② 독자와의 피드백 및 평가(퀄리티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통찰력을 얻었는가. 다른 독자들에게 휴먼라이브러리를 추천하겠는가 등등)
“휴먼라이브러리는 열린사회를 위한 운동입니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을 층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화합을 위한 운동으로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강연이 끝난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현장에서 오고 간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참가자 Q&A는 수원세션과 서울세션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참가자 Q&A ◦ 평소에 휴먼라이브러리를 사람과 사람의 대화, 재능나눔이라고 생각했는데, 강연을 들어보니 편견을 타파하는 것이 중점인 것 같습니다.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사람책을 섭외하는 과정에 있어서 노숙인이나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편견이 있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싶지만 쉽지 않습니다.
◦ 사람책을 섭외할 때, 편견을 깨는 것, 그 사람의 고충을 공감하는 것, 그저 만나봤다는 것 등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사람책을 섭외할 때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나요?
◦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 사는 성소수자라고 했을 때 이 사람들 섭외하는 것 자체가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지역사회라고 했을 때 정치적인 공격이나 기획자 자체가 편견으로 인해 고통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 사람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를 대출하는 독자들에게 유익함과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책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 기획자가 가져야 할 동기, 스스로 즐겁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 한국은 이념과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합니다. 휴먼라이브러리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 당신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
수원세션(2/18 화): 휴먼라이브러리 관계자 심포지엄
공공기관의 상설 운영 시스템 <노원휴먼라이브러리>
<노원휴먼라이브러리>는 ‘나눔・소통・공감’의 가치를 중심으로 2012년 국내 최초 상설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상설 운영이라는 특징을 살려 상시적인 사람책 대출만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에 휴먼라이브러리 방식을 접목시켜 진행하고 있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 상설운영을 위해서는 소속감, 창의적 운영위원회와 운영주체, 꾸준한 예산 등도 필요하지만 사람이 있기에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휴먼라이브러리가 사람을 통해 소통을 매개하는 지역사회의 중심축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단체와의 연대 그리고 마을 커뮤니티 만들기 <숨쉬는도서관>
<숨쉬는도서관>을 운영하는 마포 <민중의 집>은 20여개의 단체와 400여명의 개인 회원들이 참여하는 시민 단체입니다. 이 외에도 지역 내 노동조합, 협동조합, 시장상인회 등과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안에서의 휴먼라이브러리를 만들어나갔습니다. 사람책의 공간을 찾아가거나, 사람책의 공간에 직접 독자가 와서 낮술을 하는 등 특별한 대출이벤트를 통해 지역성을 강화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휴먼라이브러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의 장점은 사람책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하고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이죠. 물론 측정 불가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책과 독자를 신뢰하고, 그들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포함했을 때 휴먼라이브러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이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서울숲사랑모임 청소년 리빙라이브러리>
리빙라이브러리에 독자로 참여했던 것을 시작으로, 2회부터는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되었습니다. 섭외팀, 홍보팀, 후원팀으로 만든 체계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역할을 다합니다. 기획자가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섭외에 난항을 겪기도 하고 청소년 자체에 대한 편견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리빙라이브러리를 직접 만들면서 사람책을 통해 직업군이나 단체에 대한 편견과 오해, 고정관념을 줄이고 이해하는 행사로서 의미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앞으로 대학교와의 연계를 통해 소통 및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싶습니다. 또한 타 학교 청소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학교나 가족안의 소통을 위한 리빙라이브러리도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전세계의 청소년들이 참여하여 휴먼라이브러리를 통해 사회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길 바랍니다.”
종합정리 “일상 시민교육 방법론으로서 휴먼라이브러리 재조명”
- 휴먼라이브러리, 일상 시민교육 방법론으로서 네 가지 과제
희망제작소 교육센터 남경아 센터장은 종합정리를 통해 아래와 같은 과제와 전략을 이야기하였습니다.
◦ 프로그램 개발 및 보급
◦ 다양한 모델링
◦ 연구 및 출판, 네트워크 |
강연과 사례발표 때 못 다한 이야기와 질문들을 나누는 네트워크 파티를 끝으로 심포지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서울세션(2/15 토): 23명의 사람책과 함께 한 휴먼라이브러리
2월 15일 국회도서관 2층 나비정원에서는 23명의 사람책을 대출한 독자 180여 명과 함께 휴먼라이브러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기획기사를 통해 파일럿으로 조사한 한국 사회의 편견에 대해 소개해드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30여 개 군의 사람책을 선정했으며, 최종적으로 비제도권학생, 20대, 비혼주의자, 기자, 신체장애인, 여성주의자, 채식주의자, 자치단체장, 노숙인, 사회복지사, 예술가, 중국인, 국회의원, 농부, 한부모가정, 동성애자, 경찰, 지역색, 공무원, 아줌마, 여자유학생 등 23명의 사람책을 선정했습니다.
누가 나를 대출할까 생각했는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즐거웠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농부’에 대한 인식의 한계도 경험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걸 이겨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죠. 이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사람책 농부 장명진
사람책을 섭외하면서 휴먼라이브러리가 무엇인지 희망제작소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던 어떤 분은 사람책 섭외 메일 한 통에 바로 “이러한 가치를 가진 프로그램이라면 참가하겠다.”고 사람책이 되어 주셨습니다. 참여하고 싶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조용히 사는 것이 최선이더라.”라는 말을 남기고 섭외를 거절한 분도 계셨습니다.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을 소개하는 대출 제목과 서문을 적어주신 사람책에게 감사했고, 또 적극적으로 자신의 궁금증을 공유해주시는 독자분들이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휴먼라이브러리라는 개념이 한국에 들어오는 계기가 되었던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가 출간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그 후 약 40여 곳의 기관 및 단체에서 ‘휴먼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였고,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는 이러한 것들을 한 번 복기해보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애버겔 초청 강연 및 컨퍼런스가 끝났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컨퍼런스가 끝났을 뿐입니다. 다시 일상에서의 휴먼라이브러리를 시작해야겠지요.
지금 우리에게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도 휴먼라이브러리가 점점 확산되기를…
그리고 이해와 관용, 존중이 점점 자라나기를…
by 로니 애버겔
글_최영인(희망제작소 교육센터 선임연구원)/서울세션
이보라(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수원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