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유동하는 공포』공포를 개인화 하는 사회에 던지는 老사회학자의 질문과 경고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Mar 04, 2014

우리들의 서재

『유동하는 공포』 (지그문트 바우만, 함규진 옮김, 산책자, 2009)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년생이니 이미 팔순을 넘어 90에 다가선 노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 현존하는 사회학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지만, 그의 개인사는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바우만은 폴란드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바르샤바 대학 교수직에 올랐다. 1968년 폴란드 공산당이 주도한 반시오니즘이 절정에 달했다. 바우만은 유대인이었다. 바우만은 바르샤바 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결국 영국으로 망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망명객 바우만은 1992년 아말피 상을 1998년에 아도르노 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큰 명성과 찬사를 얻었다. 반면 이 노인 사회학자는 국제적 명성에 비해 느즈막이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뒤늦은 소개를 만회하려는 듯 한국의 바우만 수용은 매우 급격하고 뜨겁기만 하다. 가히 바우만 르네상스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이다. 2013년 한 해에만 바우만 책이 무려 7권이나 한국어로 번역되었을 정도이다. 번역에 관한 한 과열 징후까지 느껴지는 한국에서의 바우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전적으로 그의 사회학자로서의 국제적 명성이라는 후광 때문만일까?

 

바우만은 노인 사회학자이지만,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는 어느새 바우만의 나이를 잊게 된다. 책 속에서 오랜 연륜이 쌓인 노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깊은 성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바우만의 책은 현대의 클래식이라 할 정도로 놀랍고 풍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바우만의 책에서 우리는 사상의 깊이와 함께 동시대의 문제에 설득력 있게 접근하는 매우 공감각적인 재능을 동시에 발견한다. 보통 깊이가 있는 사회학자는 지나치게 난해하여 접근하기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난해함은 사회학자가 사회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 독자와의 만남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우만은 깊이 있되, 동시대적 감각이 살아 있는 주제를 신선한 문체를 곁들여 내놓기에 20대의 독자가 읽어도 전혀 '올드'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의 책에선 언제나 문학적 감수성이 넘치지만, 그의 수사학은 절대 내용을 압도하지 않는다. 흔히 별 것 없는 내용을 감추려는 듯 스타일만 화려한 마치 인공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음식 같은 느낌을 주는 글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바우만은 화려한 요리 솜씨가 느껴지지만 인공 조미료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장인의 손맛에 가까운 문장력을 보여준다. 


바우만은 언제나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즉 독자인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고민한다. '당대'의 문제에 민감하다는 측면에서 그는 언제나 모던하다. 바우만은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특징을 단단한 것, 고정된 것, 확실한 것들이 무화되는 상황에서 찾았고, 그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유동(이 단어는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때로는 액체로(『액체 근대』),  혹은 원어 그대로 리퀴드라고(『리퀴드 러브』) 번역되기도 한다.)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유동하는 공포』는 '당대'를 설명하기 위한 바우만의 지속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핵심 키워드로 '공포'를 선택했다. 이 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는 '공포'에 대한 뛰어난 분석서이다.   


공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누구나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그 공포의 성격을, 그 기원을 분명하게 규정지어야 한다. 영원히 공포에 사로잡혀 있겠다는 은근 공포를 즐기는 심산이 아니라면. 바우만이 다루고 있는 '공포'는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이 아니다. 바우만은 사회학자다. 그는 심리학자가 아니다. 사회학자 바우만의 눈으로 볼 때 '당대'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가 '공포'라면, 그 '공포'의 기원은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그 개인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금노동으로 생존을 해결한다.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이다. 임금노동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들의 생계는 막막하다. 이들이 어느 날 해고되었는데, 국가는 해고된 사람을 책임지지 않고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 사람 혼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막 해고 되었을 때 불치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라도 있다면? 그것도 모자라 전세금조차 떼이게 될 불행이 그 사람을 덮쳤다고 하자. 이 공포스러운 상황은 이불 뒤집어쓰고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나 피 튀기는 잔혹한 공포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공포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생긴 소름은 재미있는 이야기 끝에 터지는 웃음으로 제압할 수도 있다. 잔혹한 영화를 볼 때 느꼈던 어두운 영화관 속 공포는 밝은 대낮의 현실로 되돌아오는 순간 잊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영화의 러닝타임처럼 한정된 시간 동안만 유효한 감정이 아니다. 삶의 공포는 공포를 야기한 요인의 변화가 없는 한 무한히 연장된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대부분의 임금노동자의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공포가 발생하지를 않기를 기대하면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듯 삶을 살아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만연된 공포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는 분명 사회적 기원을 지닌 공포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하라고 명령한다. 바우만이 묘사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이렇다. 

“실존적 전율에 대한 국가적 방어책이 곧 철폐될 전망이고, 집단적인 방어 장치들도 약자의 연대를 침식해 들어오는 경쟁 시장의 압력에 굴복할 것으로 보이므로, 이제 개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위해 사회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수단을 찾고, 실행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개인이, 개인에 의해, 개인을 위해 해야만 한다. 수단이라고는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운용하는 수단뿐인데,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턱없이 함량 미달인 수단이다. 이미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이 고조된 환경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더 많은 유연성을 주문하는 정치권의 메시지는 더 많은 도전과 더 큰 사회문제의 개인화가 초래된다는 점, 궁극적으로 더 심각한 불확실성이 찾아오리라는 점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실존적 전율에 대한 집단적 대응 가능성을 철저히 외면하며, 그 대신 갈수록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해지는 또 잠재적 위협이 커져만 가는 세계에서 개인의 안전에 주력하라고 부추긴다.”(222-223p)

 우리가 느끼는 공포감은 사실 개인에 의해 극복될 수 없는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경제적 안정성 결여로 인한 불확실성에서 만약 한 개인이 공포를 느낀다면, 그 공포에 대한 적절한 처방을 한 개인이 갖고 있을 리 없다. 불확실한 경제 전망은 그 개인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개인화’시키는 '당대'의 경향은 불확실성의 원인이 개인에게 있고, 또한 불확실성에 대한 처방조차 마치 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착각시킨다. '당대'가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이러한 착각의 늪에 빠져 있는 개인은 불안정성을 자신이 해결하려 생각한다. 불안정성을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는 한, 그는 불안정성의 통제를 자신의 신체 범위 내에서만 찾는다. 사실상 문제는 고용 없는 성장의 지속이라는 불안정성이건만, '사회문제의 개인화'라는 덫에 빠진 개인은 이 불안정성에 대한 통제를 자신의 스펙 쌓기라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책으로 달성하려 한다. 


 공포를 느끼고 있지만 '사회문제의 개인화'라는 압력에 굴복한 사람은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강박처럼 자신의 문제에만 집착하게 된다. 잘 살면 좋다. 그래 잘 살고 싶다. 잘 살지 못하는 상황은 공포스럽다.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나를 빈곤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공포에서 구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공포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그 사람은 경제성장률은 통제할 수 없다. 가난이 공포인 사람은 이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개인화된 통제를 선택한다. 비록 경제성장률은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아파트 값은 지킬 수 있다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인다. 아파트 값을 지키기 위해. 빈곤이라는 실존적 공포 앞에서 그 사람은 아파트 가격 지키기라는 '대체 목표'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변화의 속도를 늦출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점 때문에(그 방향을 예측하거나 바꿀 능력은 고사하고) 우리는 우리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는 미칠 수 있다고 믿거나 미칠 수 있음이 확인된 대상에만 집중하고는 한다.”(233p)

하지만 아무리 '대체 목표'를 통제해도, '대체 목표' 달성을 통해 나만의 안전한 철갑을 두른다 하여도 우리를 불확실성으로 몰고 가는 그리하여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도록 하는 애초의 근본요인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가련하게 또 다른 '대체 목표'를 통해 공포를 극복하려 하지만, '대체 목표'를 찾는 것도 더 이상 지겨운 사람은 공포의 시대에 결국 시니컬리즘을 선택한다. 시니컬해질 수 있는 에너지조차 버거운 사람들은 아예 무기력에 빠진다. 우리는 과연 시니컬리즘과 무기력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책에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답이 있을까? 이 책을 읽은 사람만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이제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대답할 차례이다. 이 책을 읽으면 부수적으로 왜 바우만에 대한 뜨거운 수용이 2013년에 일어났는지도 이해하는 부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글_노명우(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유동하는공포.jpg

 

 

 

 

 

 

 

 

 

 

 

 

 







『유동하는 공포』(지그문트 바우만, 함규진 옮긴, 산책자, 2009)


<목차>

 

서론 - 공포는 어디에서 와 어떻게 움직이는가

 

1. 죽음의 공포
2. 악과 공포
3. 통제 불가능한 것과 공포
4. 글로벌 공포
5. 유동적 공포

 

감정적 결론 - 공포에 맞서 무엇을 할 것인가

 

원주와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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