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하지 않는 것’과 기본 권리로서의 리터러시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에 대한 경고-
2013년 겨울, 도쿄
작년 겨울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한 가지는 한국에서도 보도되어 아시는 분들도 있을텐데 아베 정권이 추진한 「특정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통칭: 특정비밀보호법¹)의 제정 (2013년 12월)을 둘러싼 움직임이며, 다른 한 가지는 독일출신의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아이히만 재판에 관한 영화 「한나 아렌트」가 10월에 개봉된 후 화제를 모은 점이다. 이 두 가지 일이 같은 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선 특정비밀보호법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특정비밀보호법’이란 무엇인가
2012년 12월에 성립된 제2차 아베 내각은 아베 신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권으로 공명당과 자유민주당에 의한 연립정권이다. 아베총리는 2006년 9월에도 고이즈미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직에 취임한 적이 있으니 두 번째 정권을 잡게 된 셈이다. 역사교과서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으로 우리나라와는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지만 2006년 재임 당시에는 교육재생회의를 설치하고 1947년 제정 이후 한번도 개정된 적 없었던 교육기본법을 개정했었는가 하면, 이번 제2차 내각 발족에서도 교육재생실행회의를 설치하는 등의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특정비밀보호법’은 과연 어떠한 내용의 법률인가? 간단히 소개하면 국가의 안전보장에 관한 정보 중에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의 보호에 관해 ‘특정비밀의 지정 및 취급자의 제한, 그 외 필요한 사항을 정한’(제1조)법률이다. 안전보장에 관한 정보는 ①방위에 관한 사항, ②외교에 관한 사항, ③특정유해활동의 방지에 관한 사항, ④테러리즘 방치에 관한 사항으로, 그 중에서 특단의 은닉의 필요성이 있는 것을 ‘특정비밀’로 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정비밀로서 정보를 지정하는 것은 행정기관의 장으로, 당해 행정기관의 소장사무와 관련된 정보 중 공개되지 않은 것 중에서 누설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에 상당한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은닉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특정비밀로서 지정한다(제3조)는 것이다. ‘5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효기간이 정해지는데 행정기관의 장이 특정비밀로서의 지정을 판단하기 때문에 정보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고 일부의 사람들에 의해 독점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또 이러한 특정비밀의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정보가 특정비밀로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제3자기관을 둠으로써 정보 독점 등 제문제의 방지에 유의하겠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정보 조작이나 정보 독점의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무엇에 관해 특정비밀로 하는가,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재료가 적어지게 되는 것-생각할 수 있는 재료 자체를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은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생각난 것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였다.
독일계 유대인인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박해를 받아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사상가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등 아렌트의 저작을 보신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영화 「한나 아렌트」도 그녀의 유명한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관련된 것이다.
‘사고정지’-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하는 것을 그만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영화 「한나 아렌트」는 한국에서도 2012년에 여성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일본에서는 이와나미홀에서 10월에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로 매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12월에 일단 상영이 끝났었는데, 현재도 계속해서 일본 각지에서 상영되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아이히만(Karl Adolf Eichmann)이 도망처였던 아르헨티나에서 1960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에 잡혀 1961년에 이스라엘에서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이 재판에 관해 아렌트가 뉴요커에 재판기사를 개제, 큰 반향(비판과 반발을 포함해)을 일으켰던 것이 주된 내용이다. 그녀가 이 기사를 쓰던 시대를 경험하지 않는 나는 그 정도의 반발과 소동, 비판이 있었는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었다.
아렌트가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판을 받게 된 주된 이유는 그녀가 아이히만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이 악인이나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생각할 수 없었던 극히 보통의 인물이었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주도했던 사람들이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아렌트의 설명에 당시 홀로코스트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일본의 독일 문학자인 이케우치 오사무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부제가 ‘악의 진부함에 관한 보고’로 되어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악은 진부함, 평범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가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².
생각할 수 있는 판단재료들과 생각의 자유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특정비밀보호법이 생각할 수 없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에 의한 악의 진부함, 악의 평범함을 사회에 가져오지는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이 두 가지 일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일 것이다³. 법제정 당시 특정비밀보호법과 아렌트를 연관시켜 논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았다. 일본과 같은 법이 없는 한국사회에서도 우리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히만’과 같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생학습에서의 리터러시의 중요성
일본에서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이 두 가지 일은 결국 ‘리터러시’( literacy) 문제로 귀착된다.
리터러시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읽기 쓰기 능력이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등 리터러시의 범위는 실로 넓고 다양하다. 단순히 글자를 읽는 것만이 리터러시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들도 공감할 것이다. 2007년 12월에 개정된 한국 평생교육법에서도 평생교육의 영역으로서 문자해득교육이 법조문에 명기된 것을 생각하면 리터러시(문해)가 얼마나 중요한 권리의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985년에 파리에서 열린 제3차 국제성인교육회의에서 채택된 학습권 선언에서도 학습권은 ‘읽고 쓰는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어 리터러시가 기본적 권리로서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이것은 인간의 중요한 권리인 리터러시가 외부요인(특정비밀보호법에 의한 정보제한)이나 내부요인(‘사고정지’라는 생각하지 않는 것)에 의해 그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는 우리사회의 근간인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 투표하는 행위 하나만을 생각해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러한 리터러시를 어떻게 보장해 나갈 것인가. 문자를 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의 의미를 읽어내고 판단하는 능력을 리터러시라고 봤을 때,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정보의 왜곡이나 누락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 권리인 리터러시(문해)와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어 있는지 재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어떻게 우리들이 그러한 정보들을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가.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전달과 정보확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그에 대한 접근성에 문제를 가지고 있는 계층들에 대해 어떻게 정보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기본적 권리에 대해 평생교육은 과연 무엇이 가능한지, 문해율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1950년대 이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일본사회⁴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 느끼게 되는 것일까.
기본적인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권리들을 방해하는 요인을 스스로가 만들고 있고 우리 자신도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있지는 않은지, 일본사회를 통해 한국사회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글_김윤정(수도대학도쿄 교수)
1) 법 전문은 일본 아사히 신문 참조 (http://www.asahi.com/articles/TKY201312070353.html, 2014년 1월 27일 열람)
2) 이케우치 오사무 ‘미묘한 한 가지’ 영화 「한나 아렌트」 리플렛 2013년, p.10.
3) 법제정 당시 특정비밀보호법과 아렌트를 연관시켜 논하는 논자들이 적지 않았다.
4) 일본에서는 투표를 할 때 후보자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쓰도록 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가 비문해자들을 선거제도 자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