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 관련 학계 인터뷰 – 허 준 교수(영남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삶과 접속이 되는 문해교육에 대한 성찰과 모색
지난 번(와 34호) 한숭희 교수 미팅 이후 이번에는 젊은 신진학자와의 인터뷰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희 레이더에 포착된 분이 오늘 소개할 영남대학교 허 준 교수입니다. 처음엔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만 그런다고 포기할 저희들이 아니지요. 지역주민운동에도 관심이 많고 특히 문해교육 쪽에 관련 글도 많이 쓰고 발표도 많이 한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기존의 문해교육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와 성찰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더욱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성원(이하 정) : 어렸을 때 성함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허 준(이하 허) : 많았죠. 한참 허준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었는데 제 개인 홈페이지 방문자수가 한 만 명도 넘더라고요. 그때 사람들이 예진아씨랑 헤어지지 마세요라는 글을 많이 남기기도 했고요(웃음). 또 제가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는데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그 학생이 저에게 진지하게 묻는 거에요. “선생님 진짜 성함이 뭐에요?”(웃음) 저는 그래서 제 아이들 이름을 평범하게 지었습니다.
저는 수원시평생학습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누구나학교 한번 조사해봐라. 뭐랄까, 지금까지의 평생학습관 하면 조금 구태의연하고 단조로웠는데 수원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지자체에서 주목하고 있지 않을까요. 어디 가면 수원 한번 가서 꼭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정 : 처음에 인터뷰 요청에 대해 왜 그렇게 고사를 하셨습니까.
허 : 사실 저는 인터뷰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첫 번째 인터뷰하신 분이(한숭희 교수) 제 지도교수님이시거든요. 덕분에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신다는 근황을 알게 되었던 차에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그런 게 부담이 되기도 하고 또 제가 드릴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연구 실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상품의 가치가 높지 않아서...
평생교육학자로서의 삶
정 :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주로 어떤 분야이신지? 평생교육 분야도 나눠져 있지 않나요?
허 : 평생교육도 전문화가 많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은 아마도 대부분 평생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저는 평생교육 전공과목들(자격증 과정)과 교육사회학을 가르치고 있고요. 평생교육 개론, 경영론, 방법론 등이 있는데 영남대학교에서 저를 평생교육과 교육사회 전공으로 채용해서 평생교육과 교육학과 교육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래 학부 전공은 철학입니다.
정 : 제자 분 중에 평생교육사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나요?
허 : 제가 대학에서 근무한지 5년차 인데 영남대에서 3년이 되었고, 그 전에는 목포대학교에 있었습니다. 사범대에서 근무하다 보니 일반적으로 교육학과에서는 평생교육에 관심이 적어요. 대개 교직을 꿈꾸기 때문에 현재 일하고 있는 영남대 졸업한 친구들 중에서는 국가 진흥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한명 있고요. 목포대에서는 평생교육원이나 충남평생교육진흥원,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소수 정예로 대부분 교직이수를 하면서 복수전공을 하는 편입니다.
정 : 제자 분들이 평생교육 분야보다는 일반교직에 관심이 많으면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그쪽 분야에 관심 갖게 되지 않나요?
허 :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 학과가 교과교직을 하는 학과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철학, 교육사회학 등의 전공 학생들도 있고, 복수 전공을 해야 교직을 나가기 때문에 역사, 수학 등 전공 교직이 다양합니다. 과 지도교수 입장에서 교직 성공률이 5~10% 정도로 높지 않기 때문에 교직보다는 다른 길을 권하고 있는데 그게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맡은 교육사회학이 학교문제를 많이 다루긴 하지만 관심사를 다양하게 하는 게 일반 학과와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평생교육분야 학생의 현장 실습 문제
정 : 평생교육 관련해서 과목을 이수하려면 해당 평생교육 시설에서 현장실습을 하는데 저희 기관에도 거의 매달 학생이 오거든요. 그런데 이 제도가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현장실습기간이 딱 한 달인데 그 정도 기간이면 해당 기관의 입장에서도 책임 있는 일을 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조금 익숙해지면 가버리게 되니 한명의 파트너로 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자기일도 바쁜데 실습생을 챙겨야하니까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보다는 부가된 업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 달이 끝난 시점에는 함께 평가회 시간을 갖게 되는데 실습생들이 대체적으로 학교에서의 배움과 실제 현장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졸업을 하고 현장에 들어가면 또다시 겪는 혼란이 있겠지만 배움의 과정에서 한 달이 아닌 한 학기 정도의 긴 호흡으로 파견해서 구체적인 업무도 맡아 보고 관련된 리포트를 쓰게 하면 그 기관도 필요한 인력으로 인정 하고 실습생들도 구체적으로 뭔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서로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허 :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수원시평생학습관에 간 친구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을 것 같네요. 우리 학교에서는 그동안 YMCA나 흥사단 등과 연결해서 실습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일반 행정기관들은 관료적인 문화가 있어서 자기 권한을 가지고 일하기 쉽지 않은데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직접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 평생교육 분야에서 일할 친구들에게는 그런 기간의 실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애초 취지는 한 학기동안 학점을 이수하고 그중에 4주 정도를 실습하게 되어 있습니다만 그런데 학생들이 한 학기의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모든 학교가 비슷하겠지만 학생들이 정말 바쁘거든요. 저희 때는 전공하기도 바빴는데 지금은 전공에 복수전공, 부전공, 자격증 전공에 연계전공까지 4년에 졸업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 학기를 투자해서 실습한다는 것이(물론 평생교육학과라면 푸쉬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과도할 수 있는 것이죠. 저 같은 경우 자격증만 취득하려는 친구들에게는 가서 느끼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평생교육 쪽으로 관심 있는 친구들은 3학년 때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 자원봉사 형태로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지도교수 입장에서 권하기 힘듭니다. 반면 평생교육 분야에서 일할 친구라면 지금 형태의 시스템이 그런 쪽으로 개선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성원 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좌) 허 준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우)
문해교육에 대한 고민과 모색
정 : 교수님은 문해교육과 관련해서 글도 쓰시고 발표도 많이 하시는데, 문해교육이 새롭게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허 : 그것은 공식적인 고민이 아니고 제 개인적 고민입니다. 제가 문해교육을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어떻게 보면 우연히 문해교육 쪽으로 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고민이 문해교육 정책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고 현장이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이기도 한데, 제가 어떻게 평생교육 분야에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까 얘기를 하면 제 라이프스토리가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전공은 철학이고 교육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계기는 지역문제였습니다. 난곡 공부방에서 교사활동을 하면서 교육학을 공부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고, 거기서 지역 활동가를 만나고 지역 활동가들을 보니까 야학 출신들이었고, 그래서 야학 연구를 하게 되고 박사과정까지 사회운동으로 연결되면서 우연히 첫 직장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전신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문해교육 사업담당을 하면서 문해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문해교육)제도화 과정 속에 한편으로는 비판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서는 기여를 해온 저는 2007년도부터 6년 정도 깊숙이 관여를 해오면서 이 길이 맞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해교육 제도화가 주로 학력인정과 연계 되면서 이것이 학력에 대한 보완의 의미로, ‘내가 학교를 다니지 못한 한을 풀겠다’는 그런 의미로 문해교육이 일반화되고 있는 거죠. 문해교육은 평생교육 발전과정에서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실 1950~1960년대에 학교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대부분의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이뤄줬어야 하는 것인데 그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인 이제야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부가 1964년 이후로 문해교육에 지원한 적이 없습니다. 비문해율이 20~30% 되면서 2001년부터 처음으로 조금씩 지원하기 시작했고, 2007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학력인정도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문해교육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비판적인 문해교육 관점에서 보면 문해교육이 단지 글을 아는 게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민주시민교육까지도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현재 문해교육의 방향성이 학력보완 의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듭니다. 헌데 이런 학력보완 의미로만 작동한다면 저는 오래 못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저학력자들의 그래프를 보면 60~70대 대부분 여성들이고, 남성들은 군대에 가서 배워서 연령층이 높다고 해도 글을 아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학력인정으로 간다면 그 욕구가 충족이 된 이후에는 문해교육의 생명력은 끝나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습득이 아니라 생활의 기술을 익히거나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측면에서 지금의 문해교육의 준비된 제도나 정책들이 걱정이 되는 거죠. 지금은 학력위주로 가다보니까 NGO들이 많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학력인정제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학력인정은 진흥원장이 주는 것이 아닌 교육감이 주게 되어 있다 보니까 시도교육청에서 학교에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민간기관에 지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야학이나 NGO단체가 기대했던 것은 본인들이 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학력인정프로그램으로 지정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게 학교교육 행정에 오래 길들여있는 시도 교육감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여기에서 불협화음이 생기게 되고, 대구의 경우 아름다운 학교처럼 전통이 있는 문해교육 기관이 많이 있는데 정말 정부가 도와주지 않을 때도 자체적으로 교재 만들고 프로그램 짜고 운영 해온 기관들이 있는데 지금은 100% 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학습자 수는 한계가 있고 학력인정 해주는 곳으로 가기 마련이겠죠. 애초에는 문해교육 법제화가 지금까지 국가에서 감당하지 못했던 야학이나 민간기관을 지원해주려는 취지로 법제화 과정에서도 야학이나 민간기관 관계자가 많이 참여했는데 이것이 학력인정 중심으로, 물론 빠른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화 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간기관이 고사되고 있지 않나 라는 위기의식들이 있다는 겁니다.
문해교육의 방향성이 뭐가 되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은 제 관심인 지역공동체와 연결이 되는데 졸업장이라는 또 하나의 교육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기를 변화시키고 지역사회 삶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정 : 문해교육이 시민교육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학력인정으로만 제도화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나 의견이 있으신지요?
허 : 그것도 평가를 해봐야 하는데 제가 조심스럽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학력인정이 전면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왜냐면 시도교육청에서는 굉장히 귀찮아해요. 괜히 학교일도 아닌데 민원만 생기고해서 안 하는 곳이 많거든요. 경기도는 하고 있나요? 서울은 하고 있고요. 좀 봐야겠지만 아직 확산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또 그 제도가 만들어진지 5년차 정도 되었고 지금 수준에서는 느리게 가고 있기 때문에 학력인정으로 가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쉽지 않으나 방향성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하고 있다는 거죠.
문해교육은 주체의 문제인가?
정 : 한편으로 문해교육이 시민교육과 접점을 찾지 못하는 건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 주체의 문제가 더 큰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NGO가 담당하기도 하고 개인 또는 종교단체 등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학습자를 대상으로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 이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신지요.
허 : 그런 고민을 하시는 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안양시민대학이나 동대문에 있는 푸른시민연대라든가. 이런 기관들은 선거철이면 민주시민교육과 연결시키기도 하고 푸른시민연대는 다문화관련 프로그램을 연결시켜서 하고 있고, 칠곡 같은 경우에서는 생산 활동, 마을 공동체사업과 연결시켜 가면서 접점들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문해교육만으로는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가장 잘 알고 계실 것이고 어떻게 이것들을 삶의 문제와 연결시킬까 고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관의 문제로만 얘기하기에는 워낙 기관이 다양하고 종교기관이나 평생교육기관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칠곡의 경우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기존의 관행이 아닌 희망제작소의 에너지가 결합되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방향성을 가지고 가고 있는데 그런 고민들은 각 지역에서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책임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역동성의 반영이지 않을까요?
제 연구과제이기도 한데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불과 몇 년이 안 됩니다. 이 안에서 수많은 요구가 녹아 있는 거죠. 학력법 보완에 대한 요구도 있고 그전에 관에서 하지 못했던 서비스에 대한 행정요구도 있고 한국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NGO들의 노력도 있고 지자체장들은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는 등의 많은 욕구 등의 역동적인 노력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과도기일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학습문화가 배워야 먹고 산다는 특징이 있고, 각 지역의 정서도 있어 기관의 문제라고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해교육이 학력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기관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최근에는 문화의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또는 DNA처럼 근대화 과정 속에서 축적된 어떤 배움에 대한 문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대화 과정을 생각해보면 생존이 너무 중요한 문제였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드는 거죠. 일제가 통치하는 상황에서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신분제도가 막 무너지는 불안한 상황에서 배운다는 의미가 과거 조선시대의 그런 배움의 환경과 달라졌을 것이라는 거죠. 한국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거치고 고도성장 과정 속에서 교육이 신분상승을 하는 중요한 기제가 되는 것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영이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자 하는 욕구로 분출되었고 그것이 우리 몸속에 내재되어 버린 측면이 있다는 것이죠.
정 : 그러면 교수님이 보시기에 새로운 대안이라고 하는 것을 확 내놓을 수는 없지만 이런 방향이 어떨까 하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게 있는지요?
허 : 문해교육으로서는 모르겠고요. 누구나학교에서 많은 가능성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배움의 시작일수도 있고 아니면 배움의 과정일수도 있고 한글을 배움으로서 다른 배움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글을 배우다 보니 책도 읽고 싶어지고, 시를 읽게 되고, 시도 쓰고 싶어지고,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배움이라는 것은 이렇게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숭희 교수님도 시민교육이 클래스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셨잖아요. 문해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전에 교육복지를 담당하는 분을 만나고 왔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거예요. 교육복지사업이라는 것이 ‘사업’으로 내려오고 사업을 양적 평가로만 하다 보니 얼마나 프로그램을 많이 개설 했는가에 평가가 맞춰지고 그러니 참여하는 아이들 입장에서 교육과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니까 여기서도 굉장히 힘들어 한다는 거에요. 그런 측면에서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실험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한숭희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클래스 중심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제공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학습경험들이 의미 있게 연결되어 질 수 있도록 하겠는가? 그런 고민들이 현장에서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죠.
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제가 너무나 돌아가고 싶은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경험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7년간 행신동에서 살았는데 그때 참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전혀 연고도 없는 상태에서 고양시 행신동 다세대주택에 살게 되었는데 그곳에 공동육아가 있는 거예요. 그곳에 아이들을 보냈죠. 그러다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동네주민과 친해지게 되면서, 어떤 분이 그런 역할을 하는 분이 있었는데, 낮에는 엔지니어로 일하고 저녁에 조직가로 활동하는 분이 계셨어요. 하루는 저에게 다가와서 ‘책 읽고 싶지 않냐’ 해서 40대 아저씨 5명이 만나 공부모임을 하고, 공부하다 보니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 해서 도서관을 만들고 그리고 거기서 캠핑모임도 만들어지고, 노래모임도 만들어지고, 사람들과 모여서 떠들다 보니 대안학교도 만들어지고... 10년 동안 자연스럽게 동네에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그 과정을 우리가 평생교육이라고 이름 붙일 수는 없지만 서로 만나고 사귀고 배우고 알려주고 그리고 지역에서 진정성 갖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혼자 갇혀 있으면 그런 상상을 하기 힘든데 새로운 용기도 내게 되고, 그런 과정을 7년 동안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부딪힐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고 제가 글에서도 썼습니다만, 어떤 세포 분열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서로 연결되면서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자기 변화와 생활의 변화와 지역 변화가 무수히 일어날 수 있는 것이죠.
지금은 그 지역의 화두가 많은 지역에서 하는 것처럼 협동조합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끼리 잘 사는 거 재미없다는 거죠. 그래도 우리가 대안적 문화를 만들어 살자고 했는데 우리 아이만 대안 교육받으면 제도 교육과 무슨 차이가 있나? 그래서 지금 그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냐면 청소년창의센터 같은 것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역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게 10여년이 지나면 고양시만의 독특한, 주민들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고양시와 연계해서 지원도 받고 그쪽에서 인프라를 따 내려고 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민관협력이 이루어지고 그것들이 지역사회를 변하게 하고 사람들도 변하게 하지 않나, 이게 자연스럽게 평생교육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누구나학교 한번 가보려고요. 지금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잖아요. 부모 된 마음에 자녀에게 뭔가를 시켜줄려고 하지만 실상은 기다리지 못하고 닦달하다 아이들을 망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하려는 것은 기다려주고 인큐베이팅을 해주는 그런 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동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민의식의 성장과 한계
정 : 좀 전에 고양 쪽 말씀을 하셨는데 저희 평생학습관이 주민들에게 다양한 강좌를 제공하는 것도 평생학습관이 해야 하는 업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로는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단지 한 사람의 교양을 높여나가는 문제를 넘어 지역과 어떻게 맞물려 갈 수 있을 것인가, 지역과 맞물려서 지역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주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래서 저희는 누구나학교 모델을 단순히 평생학습관 내에서만 하는 게 아니고 직접 지역으로 들어가자. 그래서 4개의 마을을 선정해서 각각 한명씩의 코디를 파견하고 마을별로 주민 스스로 학습공동체를 만들게 해보면 좋겠다고 판단을 해서 지금 그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허 : 제일 좋은 건 지역주민 공동의 경험을 하는 사건이 한번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안처럼 사건이 일어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겠죠. 성미산마을의 유창복 선생님 경우도 비닐하우스에서 밤새 지키면서 할 게 뭐 있었겠습니까. 술 먹고 수다 떠시면서 그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꿈을 꾸게 되었고 그게 실현이 되고 있는 거죠. 부안의 핵 폐기장 운동이 경주와 군산과 다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에 강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했다는 거죠. 군수가 뒤통수를 쳐서 빌미를 제공했고 군수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전경들이 와서 때리고 피를 흘리게 되니 여론이 형성되게 되고 이런 공감의 형성이 연대의식과 시민의식을 만드는데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이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시민의식의 확장성이랄까 다른 지역, 다른 부문과의 연대의식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부안 핵 폐기장 반대 운동이 경우 굉장히 생태적 운동이고, 반개발주의적인 운동이고 환경운동이고, 1년 동안 주민들이 거기에서 강한 집단 학습을 했다면 환경의식이나 자치의식이나 뭐 이런 것들이 아주 높은 시민의식으로 발전 했을 거라 생각하잖아요? 그렇다면 당연히 새만금 개발에 대해서도 반대를 하는 것이 맞죠. 그런데 새만금에 대해서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 보이더라고요. 핵 폐기장 반대운동에 참여하셨던 분들이 대개 새만금 반대운동을 하셨는데 집회 같은 거 할 때 불문율이 있었습니다. 절대 새만금 얘기는 하지 않는다. 왜냐면 분열이 일어나니까요. 그리고 다른 목소리 내는 것에는 굉장히 경계했어요. 그러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주민들이 성장을 하잖아요. 근데 지도부들은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고 다른 목소리를 참지 못하는, 말하자면 사춘기 자녀와 부모사이의 갈등처럼 주민과 지도부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빚어지거든요. 이게 강한 운동의 목적성을 가지고 있을 때 또 하나의 한계가 있는 거죠.
부안의 사례를 보면서 저는 강한 공감이 있을 때 가지고 형성된 시민의식의 한계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성공한 운동이고 주민자치의 성지였습니다만 그 이후에 경험이 소화되는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길게 보시고 하면 제가 보기에는 부안이나 성미산의 사례보다는 행신동의 사례나 칠곡의 사례가 좋지 않나, 아니면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대한 관심과 접점
정 : 허 교수님은 학자이시니까 담론을 만드시거나 현장에 있어난 일들을 정리를 하면서 연구하시는 이런 역할을 하고 계시잖아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현장에 있지만 현장에 있는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교수님은 담론 생성을 위해 현장에서 어떻게 접점을 찾으시는지, 어떻게 관심가지고 챙기시는지 궁금합니다.
허 : 저는 살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질적 연구를 하기 때문에 현장에 계신 분들을 최대한 많이 만나 뵈려고 하고 연구를 통해서도 살아보고 그렇긴 하지만 제 연구에 있어서는 부딪혀봐야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석사에서 공부했었던 것은 4년 간 공부방 지원활동하면서 생긴 에너지로 살았던 것 같고, 박사논문을 쓸 때는 프락시스 연구공동체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서 돈을 모아 반지하도 얻고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의기투합해서 대학원 시절을 보냈었는데, 그런 에너지가 컸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행신동에서의 에너지가 있었는데 현재는 동력이 많이 떨어져서 고민입니다. 실질적으로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공부해야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장과 어떻게 접점을 찾아야 할까 질문하셨는데 ‘나는 현장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하는 것이 지금 저의 화두입니다.
지금도 동네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하는데 포항이 워낙 보수적인 동네라 그런 분들 찾기 힘든데 대안학교 모임도 기웃거리고 저 같은 경우는 일상과 결합이 되면서 공부랑 연결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해교육 경우는 6년간 연구해 왔지만 문해교육 학습자들과 만난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굉장히 모순된 일이죠. 사실 데이터로는 만난 적은 있지만, 활동가들을 많이 알아서 카톡도 하고 만나서 많이 놀기도 하고 공부방 때 만난 선배가 활동가로 있어서 현장에도 가지만 문해교육 학습자를 특별히 만나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문해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잘 못 살아 온 거죠. 지금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학습자를 만날까 고민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제도영역, 정책영역 이런 고민들 때문에 평생교육에 대한 실제 일상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고민은 덜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계속 해오는 고민은 소외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 스스로가 소외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험 때만 되면 읽고 싶은 책이 생각나고, 제가 계속 학습 문화나 학습 감성, 학습자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이쪽’에 와 있기 때문에 그 곳에 대한 그리움 때문 일 수도 있고... 제가 애초 왜 공부를 하려고 했는지 고민을 계속 하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일들은 당장 저에게 떨어진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제자들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스펙 쌓기 공부를 해요.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할 순 없어요. 1, 2학년 학생한테는 연애도 하고 소설책도 읽어라, 봉사활동도 해라 하지만 3, 4학년 학생한테는 ‘너 토익공부 했니’ 라고 묻게 됩니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공부, 나에게 의미 있게 나의 삶을 돌볼 수 있게 하는 공부와는 우리 삶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렇고 대학생, 직장인들도 그렇고 사회적 소외와 학습의 소외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대개 저소득층은 일치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소외상태에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사회가 성과중심의 사회로 가다보니 평생교육의 길이 아름다운 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학부생들한테 평생교육개론 수업시간에 ‘평생학습 하면 무슨 느낌이 드니?’ 이런 얘길 하면 학생들이 한숨만 쉬며 ‘지금까지 지겹게 공부했는데 또 평생 공부하라는 얘기냐’ 라는 말을 합니다. 저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어떤 측면에서는 학습을 비판하는 사회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점점 나에게 의미 있는 학습이 아니라 계속해서 뭔가를 얻기 위한 또는 성장하기 위한-성장이 중요하지 않다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학습의 회복이라는 게 있을 것 같고 학습으로부터의 소외된 삶의 극복 문제에 결국 제 연구가 포커스 맞춰져야 되지 않을까? 또 그게 실천연구로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맥락에서 분명히 문해교육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분들이 졸업장에 대한 욕구가 외재적 욕구일 수도 있잖아요. 글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또 하나의 졸업장을 딸 수 있는 환상을 심어주는 또는 학습으로부터의 소외를 또 재생산하는 혼재의 접근들의 과정이 아닐까? 이게 제가 철학과를 나와서 이런 고민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힘든 부분이 있고 생산도 잘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습니다.
정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평생교육이 무엇인지요.
허 : 제가 평생교육은 잘 모르겠고요. 제 논문 보시면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별로 안 들어가거든요. 평생교육학이라면 한숭희 교수님이 열심히 하고 계시고, 뭐랄까 저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되든 회사에 취직하든 교육학을 공부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다른 것과 구별되는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거지요. 제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 수도 있잖아요. 정치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도 있고, 국제적 가치나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도 있고, 그것과 구별되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뭔가? 내가 부자로 살건 가난하게 살건 성공하건 실패하건 지금처럼 이렇게 소통하면서 서로 성장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돌봐주면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사회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려면 사회적 시스템도 그렇게 되어야 하고 지역문화도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실천이 필요하면 또 그것을 해야 하는 것이고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면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핵심적 가치가 교육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교육적 가치를 염두에 둬야 하지 않나 생각하며 저를 되새기면서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점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가치 일수 있거든요. 왜냐면 끊임없이 성찰해야 되고 되돌아 봐야하기 때문에 굶주릴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의 사회 속성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하여튼 제 제자들도 그리고 저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
정리_유선애(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