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칼럼] 공공산후조리원이 포퓰리즘?

글작성자 신청일 Jun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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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산후조리원이 포퓰리즘?


지난해 가을 큰 아들이 평소답지 않게 풀 죽은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꽤 뜸을 들이다가 털어놓는 말이, 산후조리원 비용을 좀 지원해 달란다. 아이 낳을 병원과 연계된 조리원인데, 20일 정도 머무는 비용이 300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병원비에, 출산준비물에, 자기 봉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우울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출산은 아직 몇 달 남았지만 당장 입금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 부부에게도 상당히 버거운 액수였지만 첫 손주 일이라는데 도리 있나.


보건복지부가 최근 성남시의 공공산후조리원 설치 운영 계획에 제동을 걸인사를 빼놓진 않았으나, 괜히 중뿔나게 굴지 말라는 중앙정부의 오만이 역력히 읽힌다. 복지부가 주장하는 이용자 형평성 운운은 그야말로 트집에 불과해 보인다.


산후조리원이라는 게 언제부터 한국사회의 출산통과의례로 자리 잡았는지 모르겠다. 핵가족 맞벌이에 갓난아기 돌봐줄 손은 없고, 산모-신생아 무탈 건강하게 바라지하는 방법도 잊었으니, 그런 곳이 생길만은 하다. 하지만 산후조리원 비용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혹시 바가지에 가까운 요금을 들이밀어도 아이 일이라면 찍 소리 못하는 부모(조부모) 심리를 이용해 조리원 비용을 과다하게 부풀려놓은 것은 아닐까? 이재명 성남시장이 공공산후조리원 구상을 내놓은 건 바로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서일 것이다.


성남시의 설명을 들어보면 공공산후조리원 정책은 시 재정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초기에 94억 원 정도 시설비 등을 투자하면 이후엔 연간 60억 원 정도로 운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민간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저소득 가정이나 다자녀 가정에 일단 50만 원을 지원하고 연차적으로 200만 원까지 인상할 방침이다. 이 시장은 연간 예산이 24천억 원에 달하는 시에서 이 정도는 문제도 되지 않는 액수라고 밝혔다. 재정과 예산만으로 보자면 어떤 잣대를 들이대도 포퓰리즘이라고 하기 어렵다.


주민의, 국민의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이견이 있을 리 없다. 복지 분야야말로 양자가 경쟁을 벌여도 괜찮은, 아니 벌여야 하는 부문이다. 그것이 자치의 본뜻이고, 자치하는 보람이기도 하다. 물론 복지전달체계의 일관성이나 전국적 형평성을 고려해서 지나치게 방만한 지역의 복지재정 운용은 제어되어야 하겠지만,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자치단체는 적극 격려하고 지원하는 게 맞다. 그 성과가 좋으면 이를 전국적으로 제도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정부가 적극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서 손을 봐야 하는 곳은 성남시가 아니라, 도민의 합의로 이뤄낸 의무급식을 홍준표 도지사가 독단적으로 폐지해 복지 수준을 후퇴시킨 경상남도다.


얼마 전 며느리가 7~8명 아기가 나란히 엎드려 찍은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산후조리원 동기들이 모여 찍은 것이라고 했다. 벌써 5개월이나 자라 재롱이 한창인 이 아기들은 그래도 복 받은 아이들이다. 누구보다도 위생적이고 세심한 산후조리가 필요하지만 가난 때문에 산후조리원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기들은 이런 동기사진을 찍으려야 찍을 수 없다. 그런 게 세상이라고,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자치단체마다 더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지 못해 안달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게 그렇게 큰 꿈인가?


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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