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공공예술프로젝트③] 나의 이야기가 타인에게도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글작성자 신청일 Sep 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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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된 주제가 삶의 현장에서 질문으로 변화된 순간들:

어린이들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만난 질문


“1950, 저는 9살이었고 고양시에 살았습니다. . 동생은 저보다 2살이 어렸는데 장난꾸러기라서 제 양말을 장롱 안에 숨겨두고 모른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지만 길가에서 예쁜 들꽃을 찾으면 제일 먼저 저에게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저는 특히 민들레를 좋아했는데 제가 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림을 좋아하는 동생이 민들레를 그려 저에게 선물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끔씩 깜빡 잊고 도시락을 학교에 안 가져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동생이 먼 길을 걸어 도시락을 가져다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사라졌습니다. 그 날도 동생이 도시락을 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동네 남자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동생이 사라진 건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예전에 북한군을 도와주었다는 소문이 돌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나는 사람들에게 울며 물어보았지만 사람들은 대답도 잘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와 엄마는 너무 슬퍼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제 양말을 자주 숨겨두던 장롱에서 작은 보자기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동생이 그 동안 쓴 시와 그림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마치 동생이 살아있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양시의 책놀이터라는 지역 모임 공간에서, 나와 초등학생 7명은 제목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동화를 함께 읽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동생의 행방에 아이들이 궁금함과 걱정스러움을 품을 때 쯤, 나는 목소리 톤을 조금 바꿔 준비된 대사를 쳤다.

우리가 있는 이 방에 그 동생의 시와 그림이 담긴 보자기가 숨겨져 있어. 누나의 입장이 되어 보자기를 찾아보자.”

동화를 읽던 아이들은 어느새 누나라는 배역이 되어 서너 평 되는 공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관객은 없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아이들은 연극을 배우는 대신, 연극적 가능성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아이들에게 진지함을 연기하자고 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공간 이곳저곳을 살폈다. 책장 한 구석에서 보자기가 발견되고 아이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보자기 안에는 동생의 시가 적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각자 시를 조용히 읽었다. 동생의 그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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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음 대사를 뱉었다.

이제 우리 같이 동생이 되어 시를 읽어보고 그 옆에 그림을 그려볼까?”

동생이 왜 사라진 것인지를 설명하지도 않은 채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복장을 바꿔 입는 대신, 차분히 색연필을 드는 것으로 누나라는 배역에서 동생이라는 배역으로 자신을 옮겨갔다.


나의이야기2.jpg


아이들과의 2회 작업 중 첫째 날 작업은 여기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는 중이다. 조금 딱딱하게 설명하자면, 60년 전 고양시 금정굴 사건과 관련해 열릴 "높빛평화예술제" 전시를 위해 초등학생들과의 공동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정굴 사건개요>

1950년 9.28 서울수복 직후 경기도 고양·파주지역에서는 최소 153명 이상의 주민들이 경찰치안대태극단 등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총살당한 후 금정굴 수직 갱도 속에 암매장되었으며 연이어 240여 명의 주민들이 치안대에 의해 한강변 등에서 집단 학살되었다금정굴 학살 희생자 유족들은 1995년 자체적으로 유해를 발굴수습하였고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그 유해들이 임시 보관되어 있다.


평화란 무엇일까? 아름다운 관념 안에 놓인 평화라는 개념은 현실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거나 그려질 수 있을까? 동시대 아이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 같은 금정굴 사건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만남의 장치는 동화였다. 아직 제목도 결론도 없지만 시작점의 이야기를 짓고 아이들과 함께 그것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었다. 1년 전부터 몇 차례 만났던 금정굴 사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생을 잃은 누나의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연극적인 요소와 아이들의 드로잉을 섞어 2회에 걸친 공동작업을 진행했다.


두 번째 만남. 어느새 타인이 아닌 우리들의 생각들로 채워지고 있는 그 동화를 아이들과 중반부부터 다시 같이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저는 쉰 살을 훌쩍 넘겼고 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저기를 오가다가 지금은 다시 고양시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저는 아직도 동생이 보고 싶고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따금 동생 이야기를 하며 한숨을 쉬는 저를 위해 남편이 제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동생이 좋아하던 주먹밥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집 앞에 작은 주먹밥 가게를 열고 동생을 생각할 수 있는 이름을 붙이자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주먹밥을 정성껏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면 동생도 보이진 않지만 그 어딘가에서 제 마음을 알고 찾아와 함께 먹지 않을까 하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간판부터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누나가 되어 주먹밥집 이름을 무엇으로 정할지 의논을 하고 간판을 만들었다. 나는 간판을 만들 기본적인 미술재료를 준비하는 정도의 역할을 하였다. 간판을 만든 우리는 다시 동화의 후반부를 읽었다.


가게 문을 처음 여는 날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 겁니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주먹밥을 만들다가 제가 동생의 이야기를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마을 사람들은 물론 동생에게도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까지 동화를 읽을 때쯤엔 아이들도 누나이자 마을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나는 이 타이밍에 좀 더 적극적으로 다음 장면을 제안했다.

, 저번 시간에 이야기했던 준비물을 꺼내보자.”

아이들은 가방에서 쌀을 한 봉지씩 꺼냈다. 밥솥에 쌀을 씻어 담고 그 쌀이 모두의 이야기로 영글어갈 때까지 주먹밥의 양념을 준비했다.

소소한 활동이 밥 냄새를 풍기고 참기름에 버무려지는 그 풍경이, 나와 아이들이 단 두 번의 만남 안에서 그려볼 수 있는 평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된 역사 속 사건을 아이들에게 무겁게 전달하거나 어른들의 가치판단만으로 주입시키지 않으려는 의도가 그 과정에 담겨있었다. 그것은 유가족이나 예술가가 경험하거나 바라보는 평화가 아닌, 아이들이 그 시기에 상상할 수 있는 평화를 향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역할은, 활동의 전체적인 구조를 디자인하고 아이들이 풀어낸 이야기와 그림을 엮어 한 권의 동화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주먹밥을 함께 만들어 먹는 아이들, 바로 마을 사람들, 혹은 누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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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사건이 넘쳐나는 시대다. 몇 십 년 전 민간인 학살 사건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현재 사회적 지위가 사라질까봐,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까봐, 집값이 떨어질까봐 그 당시 사건을 지금까지 은폐하거나 사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태도도, 소설만큼이나 믿기지 않도록 거세다. 전혀 평화롭지 않고 비인권적인 사건은 그렇게 계속 발생되고 지나간다. 그것을 잘 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음 세대, 혹은 다른 이에게 알리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소통방식과 가치판단이 이미 완결된 채 어떤 생각들이 전달만 될 경우에는, 그와 관련한 사건이 놓치지 말아야할 진실이 되기보다 부담스러운 남 일이 된다. 나의 이야기가 타인에게도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렵다. 그 이야기가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하더라도.


위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나는 아이들의 그림과 내가 쓴 이야기를 섞어 드디어 제목이 달린 동화책을 완성했다. 아이들이 의논해서 만든 동화의 제목은 동생이 꺾어다준 마지막 민들레이다.

그리고. 이 작업의 제목은. ‘당신의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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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최선영(예술가)


☞ [공공예술프로젝트①] '예술의 역할'이 산골마을에서 만난 질문

☞ [공공예술프로젝트②]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그 사이 함께 해볼 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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