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칼럼] 광복 70주년 대합창과 ‘걱정원’

글작성자 신청일 Jul 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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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대합창과 걱정원


수원시가 815일 저녁 제1야외음악당에서 ‘7000시민대합창이라는 행사를 준비 중이라 한다. 시민 7,000명을 모집해 수원 근현대사 연출과 어우러진 공연 판을 벌인다는 것이다. 레퍼토리도 발표됐다. <아침이슬>(김민기), <아름다운 강산>(신중현), <한국환상곡>(안익태/후반 합창 부분).

1야외음악당의 구조 상 7,000 명이 동시에 무대에 오를 수는 없을 터. 연인원을 말하는 걸까? 1야외음악당 좌석 규모는 1,500석이다. 잔디까지 합쳐 15,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절반은 관객, 절반은 출연자? 아니면, 출연진만으로 공연을 진행하겠다는 건가? 어떤 효과가 있을까? 궁금하다. 국가 행사 규모의 공연을 왜 굳이 자치단체가 하느냐는 비판의 소리가 나올 만도 한데, 어쨌든 7,000 시민이면 스케일은 작지 않다.


수원시로서는 아마 지난 봄(328) 화성행궁 광장에서 진행한 수원, 그날의 함성성공에 고무된 게 아닐까 싶다. 기미년 만세운동을 재연한 이 퍼포먼스는 총체극 형식으로 각계각층 다양한 연령대 시민을 대거 출연시켰다. 공연 후 나름 장관을 연출한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광복절에는 더 규모를 키워보자고 마음먹었을 수 있다.

그런데, 신문 기사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자니, 세 곡 다 사연이 많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는 나치 동조 사실 논란으로 말썽이고,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신중현은 대마초 파동 등 독재정권의 문화탄압의 아이콘이다. <아침이슬>은 서정적인 가사에도 불구하고 아픈 현대사의 그늘을 대변하는 곡 아니던가. 이 대목에서 3.1절과 8.15는 같은 듯 다르다는 각성이 새삼 고개를 든다. 3.1은 민족의 용기를 만방에 떨친 쾌거지만, 8.15는 광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온전치 못한 해방의 날이었다. 마냥 기뻐하기엔 뒤통수가 당긴다.


7월 들어 국민을 걱정시키는 걱정원소식만 해도 그렇다. 비밀정보기관이 정권안보의 도구가 된 흑역사를 모르는 국민이라도 있을 새라, 또 한 건 저질렀다. 이탈리아 해킹 회사 프로그램을 사들여 운용한 사실이 만천하에 들통 났다. ‘빅 브라더의 욕망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할만한 정황이 속속 드러난다. 그러나 이 기관 직원들은 국가안보를 앞세워 집단 성명을 발표하는, ‘비밀요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 버젓이 벌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헌헌법 이래 이 나라 헌법 제1조는 바뀐 적이 없다. 헌법 제1조는 국가의 목표를 설정한 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천명한 조항이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이라면 정의(定義) 상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국가기관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나라엔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미치지 못 하는 기관이 여럿 존재하는 바 그 중에서도 국정원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이 형식적으로라도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고 믿는 어리석은 국민이 있을까? 제대로 된 정보기관 하나 아직 못 갖췄는데 광복 70년이라고?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누적된 의심을 털어내지 못 하는 한 이 기관은 결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그동안 대수술이 여러 번 시도됐다. 이름도 이리저리 바꾸고, 대오각성을 국민 앞에 맹세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정권 이래 이 기관은 완전히 독재정권 시절로 퇴행하는 경로를 보여주었다. 댓글로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어도 셀프 개혁을 처방하는 정권이니 오죽할까.


광복 70년의 성취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다. 축하할 부분이 적지 않다. 815일 하루쯤 축제의 판을 벌인다고 별 일 있으랴만 아직은 숙제가 훨씬 더 많이 남았기에 마음이 무겁다. 우리에겐 스펙터클한 이벤트보다 진지한 성찰의 시간이 절실하다. 수원시가 기획하는 ‘7000시민대합창이 굴곡과 공과(功過)의 역사를 지방사의 차원에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축하의 함성이자 분노의 함성인 합창을 그 날 들을 수 있을까? 기획자, 연출자, 시장 이하 시 관계자 모두 머리 싸매고 고민 중이라고 믿고 싶다.


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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