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시간②] 시간도둑들 속에서 ‘시간권리’ 찾기

글작성자 신청일 Jul 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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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너머>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선정, 책과 함께 읽어 내려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 한켠에 묻어두었던 고민일수도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전혀 관심 없던 주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너머의 생각들을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편집자주)


[시간]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

미하엘 엔데모모(비룡소,1999)

브리짓 슐트타임푸어(더퀘스트,2015)

와타나베 이타루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2014)


덴마크어 휘게를 아십니까?


어느 시인은 푸어라는 어종이 인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공광규)고 쓴 바 있다. 워크푸어, 하우스푸어 같은 신종의 어종이 인간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점을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다. “자본이 던진 낚시 바늘을 깊숙이 삼킨 어종이라고 시인은 푸어의 의미를 풀이한다. 이 신종의 어종에 또 하나의 어종을 포함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은 바로 타임푸어(Time Poor)’. 시간빈곤층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 나와 당신 삶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적은 바 있다. 그러나 나와 당신이 사는 대한민국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삶이야말로 부와 권력의 호패와도 같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임금노동자 중 시간빈곤층이 42%93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1주일 168시간 중 노동 등을 이유로 먹고, 자고, 씻는 등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여가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대한민국은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1973)에 등장하는 시간도둑들이 지배하는 식민지가 된 것이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니노의 빠른 레스토랑이다. 잠시의 기다림조차 허용되지 않는 니노의 레스토랑을 찾은 모모는 너무 많이 먹지만 배가 부른 것 같지는 않다고 느낀다. 원형 경기장에서 발군의 이야기꾼 기질을 뽐내던 니노 아저씨는 시간저축은행에서 파견된 시간도둑들에게 자신의 시간을 몽땅 판 뒤 떼돈을 번다. 그런 니노 아저씨의 레스토랑을 찾은 모모가 니노 아저씨한테 꽃들이랑 음악 얘기를 할 수도 없었어라고 혼잣말하는 장면은 시간도둑들의 식민지가 된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절로 연상시킨다.

나와 당신의 정신줄을 잡아챈 우리 시대 시간도둑들은 누구인가. 행복은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의 활용에 있다는 점을 나와 당신은 망각한 것이 아닐까. 예의 모모에서 시간도둑인 회색신사들이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자 사람들이 한없이 많아진 시간에 행복해한다는 작품의 결말은 퍽 은유적이다.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온켄이 경제학자를 위한 모모』」(1986)라는 논문에서 시간저축은행에서 파견된 회색신사를 현대의 금융 자본주의를 표상하는 알레고리라고 간파한 대목은 그래서 퍽 의미심장하다. 그에 따르면 모모는 이른바 시간을 잘 활용하자는 식의 소위 착한 자기계발 서적이 절대 아닌 것이다!


이 점에서 소설 모모처럼 너무나 오독(誤讀)된 작품도 없을 법하다.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 경제의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속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전복적인 작품으로 새롭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미하엘 엔데가 1980년대 중반 일본 NHK 취재팀과 수년간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엔데의 유언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성장을 전제로 하고 성장을 강요하는 성격을 가진 현행 금융시스템이 이 경쟁사회를 만들어낸 근본원인이다라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시간저축은행에서 파견된 회색신사는 일종의 매드 머니(Mad money)’를 표상하는 존재라고 확언할 수 있으리라.


미하엘 엔데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끝없는 이야기(1979)를 비롯해 1990년대 독일에서 초연된 오페라 대본 하멜른의 죽음의 춤(1994)병 속의 악마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오페라 대본 하멜른의 죽음의 춤에서는 중세 독일에 유행한 하멜른의 전설을 새롭게 해석하여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본질을 그려내고자 했으며, 마지막 유작인 오페라 대본 병 속의 악마에서도 이자(利子)가 이자를 낳고, 격차가 격차를 낳는 금융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했다. 성장 강박증이라는 나쁜 요술에 빠져 오직 플러스(+) 경제를 향해 눈 먼 질주를 하는 삶의 방식 대신에, ‘시장사회(market society)’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안(開眼)과 회심(回心)을 촉구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모가 거북이 카시오페아의 안내를 따라 마이클 호라 박사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뒷걸음쳐 봐!’라고 말하는 장면은 강렬하다.


뒷걸음쳐 봐!”

모모는 그렇게 했다. 몸을 돌려 뒷걸음질을 치니 갑자기 전혀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모모가 뒷걸음질을 치는 동안 생각도 뒷걸음쳤고, 숨도 뒷걸음쳤고, 느낌도 뒷걸음쳤다. 한 마디로 모모의 삶이 뒷걸음쳤던 것이다!

-미하엘 엔데 모모중에서(강조_인용자)


나와 당신은 지금의 삶의 방식과 궤도에서 이탈해 과연 뒷걸음을 칠 수 있는가. 이것은 오로지 개인이 감당하고 책임을 져야 할 노릇은 분명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탈성장사회를 향한 조용한 전환이 요구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로서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가 쓴 타임푸어는 시간도둑이 지배하는 땅 대한민국에서 적극적으로 읽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간권리를 위한 차원에서 그러하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마음껏 일하고, 사랑하고, 놀아라!”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명한 선언인가.


나는 특히 이 책에서 덴마크 사람들의 시간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덴마크 사람들의 경우 오후 5시부터 8시까지의 시간은 신성불가침에 가까운 가족의 시간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이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라. 갖은 먹방프로그램 일색인 것에 비하면 전혀 딴 세상의 문법이 작동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덴마크 사람들은 물건을 그렇게 많이 사지도, 만들지도, 모아두지도 않는다. 학교에서는 남녀 학생 누구나 실과(實科)’ 수업을 받아야 한다. “덴마크에서는 여가에 무엇을 하느냐가 곧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줍니다.” 기자 신분인 저자가 덴마크 학자들에게 어린 아이를 둔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라고 묻자 누군가가 이렇게 답변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덴마크였다면 그런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덴마크는 지상천국인가. 책에 묘사된 내용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가가 비싸고, 청소년 음주율과 자살률이 높으며,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이 점점 득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여건 또한 형성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일-사랑-놀이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여건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특히 덴마크어로 휘게(Hygge)’라는 말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이 말은 단순하고 소박한 지금 이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발견하려는 덴마크 특유의 미학이라고 한다.


휘게.’ 지금 이 순간. 아이슬란드 조랑말을 탈 때는 아이슬란드 조랑말에 집중하라. 차 한 잔을 마실 때는 진짜로 차를 즐겨라. 멋진 저택을 지나치면서 욕심과 질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 지금의 내 집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다시 떠올려라. 기대를 낮추자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기대를 가지자는 것이다. “그게 바로 휘게입니다.”


나와 당신은 여기에 묘사된 휘게를 지금 이 순간 구현하며 살고 있는가. 우리의 경우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1997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유례없는 돈의 폭력을 생생히 겪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문법에는 지금도 여전히 무의식적인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는 트라우마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11백조 시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세 가지 차원의 건강한 생태학의 형성과 강화는 아직은 남의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세 가지 생태학이란 자연생태학, 사회생태학 그리고 마음생태학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마음생태학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지금의 나와 당신의 삶을 위한 상상력과 더불어 사회적 연대가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이 점에서 시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공부와 토론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지난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으로 우리나라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킨 일본의 와타나베 이타루가 가장 영향을 받은 책이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미하엘 엔데의 모모였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와타나베 이타루가 운영하는 빵집은 요일별로 빵을 굽는 종류가 다르며, 일주일에 사흘은 가게를 닫고,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를 간다. 휴가가 많은 이유가 흥미롭다. “지금보다 더 빵을 더 잘 만들기 위해 빵을 안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제빵 기술자가 아니라 일과 생활의 조화가 이루어진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의 한 모습을 여기에서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 빵집 잔혹사내지는 이른바 치킨집 수렴의 법칙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시간빈곤층이 급증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 사회에서의 삶은 진짜로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다. 나와 당신의 삶에는 시적인 향기가 필요하다. 원로시인 이상국 시인의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라는 시를 결론을 대신해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나는 이 시를 수년 전 벌금을 내지 못해 스스로 징역형을 선택한 교도소 수형자들과 함께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시간빈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장발장들이었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_고영직(문학평론가)


모모.jpg 타임푸어.jpg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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