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너머>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선정, 책과 함께 읽어 내려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 한켠에 묻어두었던 고민일수도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전혀 관심 없던 주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너머의 생각들을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편집자주) |
[환경과 경제]에 관한 네 번째 책
앨런 와이즈먼 『생태공동체 가비오타스 이야기』(알에이치코리아, 2015)
가비오타스(Gaviotas)는 적정기술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온 몸으로 실천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고자 하는 공상주의자들의 노력을 이야기한 책이다.
가비오타스인들은 화석연료를 최소화하고 자연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 개발과 그 기술이 필요로 하는 지역에 맞도록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적정기술을 찾아낸다. 가비오타스는 그 적정기술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가 이론과 실험실이 아닌 현실의 생활 속에서 적용하고,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거대한 문명의 논리가 아닌 자연과 함께 공생하며, 공동체 삶에서 지속가능성을 검증해 나가는 대안 사회를 의미한다.
국제무공해진흥재단(ZERI)은 가비오타스에 ‘세계 클린 에너지 상’을 수여(1977년)했다. 97년에는 유엔이 가비오타스에 ‘세계 배기가스 제로 상’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가비오타스는 전 세계에 ‘평화공동체’를 선언하였다. 가비오타스가 있는 콜롬비아에서 정부군과 숲속의 무장혁명군의 끊임없는 마약 전쟁이 이루어지는 어려움 상황임에도 평화공동체를 선언한 것이다. 가비오타스인들은 많은 토론 결과 ‘최상의 방어는 방어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p145)했고, 적십자처럼 양편 모두가 가비오타스를 존중하게 만들었다. 가비오타스는 정부군과 무장혁명군에게 침탈 받지 않고(그러나 작은 침탈들은 계속적으로 이어졌음) 30년 넘게 번창하고 있다. 가비오타스의 생태공동체는 좌우의 대립이나 정부군과 무장혁명군을 넘어 콜롬비아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필자는 2006년 가비오타스를 설립한 파올로 루가리(P. Lugari)를 보고타 사무실에서 만나는 일정에 인천공항에서부터 설렘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불모의 땅에서 자급자족을 시도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베네수엘라의 접경 지역으로 콜롬비아의 동부지대인 야노쓰. 이 주변은 엄청난 마약 재배로 정부군과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전쟁이 자주 이루어지는 곳이다. 또한 미국의 마약 근절 프로그램에 의해 야노쓰의 하늘에서는 비행기들이 코카 재배지 위로 대량의 고엽제를 살포하고, 이로 인하여 코카를 키우는 농부들이 고엽제를 피해 코카를 재배하기 위하여 재배지를 이동하면서 숲을 태우는(p82) 바람에 야노쓰는 척박해서 코카조차 키울 수 없는 불모의 땅이 되었다. 적도의 흙은 심하게 산성화되어 양분이 고갈되었고, 알루미늄 성분의 수치가 독성에 까지 이르러 나무는 커녕 풀 한 포기 없는 열대 평원의 쓸모없는 땅이 되어버린 사바나였다. 사막화 되어버린 야노쓰는 표토의 깊이가 2센티미터밖에 안 되어 식물 재배는 불가능한 땅이었다.
1970년 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해 20여 명의 공상주의자들이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를 떠나 황량한 야노쓰에 나타났다. 기계공학자, 토양학자, 사회과학자 등은 호모사피엔스처럼 자연 그대로의 때 묻지 않은 유량민인 과이보 인디언들과 일부의 농민들이 살고 있는 야노쓰에 정착하여 연대의 삶을 살면서 적정 기술을 통한 생태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자급자족 하였다.
가비오타스는 뜨거웠다. 해발 2000미터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통해서 에너지를 구해야 했다. 태양은 사바나인 야노스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극복해야 할, 그리고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었다. 많은 실험과 실패의 과정을 거쳐서 태양열 주전자, 태양열 압력솥, 태양열 건조기, 병원용 태양열 증류기 등을 발견하여 태양을 소중한 자원으로 만들었고, 주민들은 태양과 공생하게 되었다.
인간만이 태양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가축들도 힘들었다. 그들도 공생해야 했다. 그래서 소들이 이동하는 곳에 소 전용 샤워기를 설치했다. 소들이 이동하는 바닥에 넓은 철판을 설치하였는데, 소들이 일렬종대로 모여 들어 이 철판을 밟으면 소의 머리 위에서 물이 나온다. 이는 태양광 소 전용 샤워기로, 태양과 가축과 인간의 공생을 추구하여 만든 발명품이다.
바람도 친구가 되었다.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어다 만든 풍차는 가비오타스인들에게 소중한 전기 에너지를 제공하였다. 어린이들이 노는 시소는 지하의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가 되었다.
외부로부터의 문명은 최소화해야 했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외부에서 해결책이 들어온다면 그들의 문제점까지 들어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체의 문명을 일구어야 했다(p91). 가비오타스인들의 철학은 자급자족이었다.
파올로 루가리는 ‘사람들은 가장 편리하고 풍족한 곳에서 사회적 실험을 하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힘든 곳을 원했다. 이곳에서 무언가 이룰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무장하였고, ‘사막이란 상상력의 결핍이자 고갈된 상태일 뿐이다. 가비오타스는 상상력이 만발한 오아시스다’라고 외치며 끊임없는 도전을 하였다.
그들의 도전은 전기 없이 우유와 채소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와 열교환기를 만들었다. 또 실린더 두 개짜리 스팀 엔진이 송진 보일러의 증기를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어 에너지를 완전히 자급자족하게 하였다.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로부터 벗어나고자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는 플라스틱을 개발하고, 소똥은 천연발효 과정을 거쳐 생물가스 스토브가 되어 순환사회를 만들어 나갔다.
농사도 달랐다. 인류가 만들어 낸 대량생산의 관개수로를 통한 수경재배를 포기하고 부엌에서 나온 재와 가축분뇨 등으로 사반 토양을 부숙(腐熟)시켜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키웠다. 과거 우리 농촌에서 가축의 똥이 난방 원료와 퇴비 등 소중한 자원으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가비오타스도 분뇨를 자원화 하였고, 대기의 평형은 지구의 생물 연료를 통해 대기와 화학적 균형을 유지하고 지구온난화까지 방지하는 지혜를 모았다. 똥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름을 보여 주었다.
야노스의 황무지에는 온두라스 열대 소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었고, 뻗어나는 소나무 가지 아래는 습하고 서늘한 그늘이 형성되고 이 그늘 밑에서 온갖 형태의 균근들과 덩굴나무와 관목, 수목들이 자라나면서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생태계의 복원은 단일경작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며, 자연은 자연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또 깨닫게 되었다( p276).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다
죽어 있던 사바나에는 사슴과 매, 개미핥기 등 떠났던 동물들도 돌아왔다. 콜롬비아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새가 가장 많은 나라로, 식물류와 양서류가 두 번째로 많은 나라로, 파충류가 세 번째로 많은 나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가비오타스인들은 1만 헥타르에서 2만5천 에이커(제주도의 54배)나 되는 지역을 생명이 넘치며 인간과 공생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야노스지방에서 자란 소나무의 모든 송진은 콜롬비아에서 소비되는 페인트, 니스, 테레핀유, 화장품, 향수, 바이올린 활 등에 사용하는 송진가루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기존의 사고와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야노쓰에는 콜롬비아 국립대학, 안데스 대학의 학생들이 계속 오고갔다. 그들은 ‘모든 장애는 가장을 하고 나타난 기회다. 풀과 태양과 물로 문명의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라’(p103)라는 과제를 받아 자연과 함께 공생하는 기술을 배웠다. 이 기술들은 가비오타스인들의 실험정신으로 만들어졌고 그들의 생활에 적용된 풍부한 기술과 발명품들은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특허로 부자가 되는 것을 거부했고 보다 나은 기술들을 나누어 주기를 더 좋아했다. 가비오타스는 환경친화적인 동시에 창조적이고, 평등하면서도 품위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1986년부터는 그들이 개발한 슬리브 펌프와 풍차, 시소 펌프 등을 콜롬비아 국립재건계획의 일환으로 보급을 시작하여 ‘모든 이를 위한 물’의 공급 목적으로 3년 동안 콜롬비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설치하기도 했다. 인디언들의 마을과 농촌, 숲속 등 물이 필요한 곳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 표현이 적정 기술이든, 중간 기술이든 상대방의 문화와 삶에 대한 이해 없이 공급되거나 다른 문화의 삶과 기술을 주고 싶다고 주는 것이 아니었다. 지원의 목적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15세기 유럽 문화가 식민지에 들어가면서 해당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죽이듯이, 지원자의 목적이 선하더라도 결과를 독으로 나타나는 기술은 적정 기술이 아니다. 기술과 사회는 상호작용하는 것이며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비오타스인들은 자기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하거나 나름대로 일거리를 만들어 일했다. 누군가 떠나면 그 일을 맡을 사람이 나타날 때가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책임을 졌다. 연대의 삶을 선택했다. 여러 해 동안 급료가 같았기 때문에 계층도 없었다. 월급은 콜롬비아의 최저 임금보다 좀 더 많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숙소와 음식, 교육, 보건 혜택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바느질을 하거나 쓰레기를 태우는 사람들이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각자의 역량에 맞게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해 존중하는 것이다(p270). 그들의 삶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었다.
자연, 어떻게 볼 것인가
일군의 이상주의적 지식인과 과학자들이 황량한 오지에서 벌인 자연과의 싸움은 미국인들의 서부 개척과 대조된다. 미국인들은 서부 개척을 하며 자연을(이들에겐 원주민도 자연의 일부로 간주)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그 위에 배타적인 자본주의 문명을 건설했다. 반면, 가비오타스는 자연과 원주민과 이주민들이 생태적으로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을 건설(p358-359)했다. 이러한 점은 21세기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갈매기의 일종인 노랑부리제비갈매기를 유랑민인 과이보 인디언은 ‘아까레또’라, 대평원의 원주민인 야네로인들은 ‘가비오타’라 불렀다. 그 가비오타스는 환상에서 현실로, 유토피아에서 토피아(topia)를 만들었다.
2006년 콜롬비아의 보고타 사무실에서 어렵게 만난 파울로 루가리에게 ‘당신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오?’라고 묻자 파울로는 내게 ‘당신의 이념으로, 가비오타스를 보면 볼 수가 없다. 가비오타스는 그 자체다.’라고 답했다.
가비오타스는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생하는 지 보여주는 위대한 작업이다. 가비오타스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자연과 공생을 통한 적정기술과 대안 사회, 그리고 자연의 지배자와는 어떤 경제학일까?
글_박진우(경기대학교 산합협력단 교수)
※본 글은 2008년에 발간된 『가비오따쓰』(앨런 와이즈먼 저, 랜덤하우스코리아-절판)를 기준으로 작성된 것으로 페이지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생태공동체 가비오타스 이야기』는 앨런 와이즈먼이 쓴 개정판입니다.
『생태공동체 가비오타스 이야기』(앨런 와이즈먼 저, 황대권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2015)
(원제: GAVIOTAS : A Village to Reinvent the World)
<목차>
이 책에 쏟아진 뜨거운 찬사
콜롬비아에 대하여
개정판 역자 서문
프롤로그
사바나
도구
나무
저자 후기
출간 10주년 기념 후기
역자 후기
참고문헌
☞ [환경과 경제②]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 다른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