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너머>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선정, 책과 함께 읽어 내려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 한켠에 묻어두었던 고민일수도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전혀 관심 없던 주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너머의 생각들을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편집자주) |
[환경과 경제]에 관한 세 번째 책
피터 H. 글렉 『생수, 그 치명적 유혹』(추수밭, 2011)
우리는 왜 가격이 저렴한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비싼 생수를 사서 마시는가?
사람들마다 생수를 사 마시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수돗물에 대한 불신, 편리한 물맛, 생활방식 등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생수가 판매가 된 것은 1976년 주한미군에게 공급되는 다이아몬드정수가 먹는 샘물로 제조업 허가를 받으면서이다. 그리고 88년 서울올림픽 기간 중 선수들에게 공급이 허용되었는데 이때 스파클, 일화 등의 회사들이 생겼고 88년 올림픽 이후 생수 판매는 금지되었다(p265-266).
당시에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마신다는 것은 일반 국민적 정서와도 맞지 않았고, 지하수를 고갈시킨다는 비판 등으로 녹녹치 않았다. 하지만 생수 업자들의 지원을 받은 일부 국민은 헌법 소원을 냈고 생수의 시판 및 판매를 불법으로 규정한 정부 정책에 대해 위헌 판결을 받아냈다. 1994년 법원은 ‘먹는 샘물의 유통금지는 국민의 행복 추구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이에 따라 95년 국회가 ‘먹는 물 관리법’을 제정하여 생수 산업은 합법화되었다.
시대적으로 80년대 한국의 여러 강에서는 물고기 수만 마리가 하루아침에 죽어 강물 위에 떠 다녔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는 일이 벌어져 국민들의 불신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91년과 94년의 낙동강 페놀 방출 사고와 유기용제(디클로로메탄) 유출 사고로 영남권 시민 1천만 명이 수돗물을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1998년에는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인 팔당호에 수질 오염 사고가 나면서 정부의 물 관리 정책에 대한 불신과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먹는 물에 있어서 생수로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거기에 생수 업계에서는 정부의 물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수돗물을 깎아내리며, 공공재인 땅속의 지하수를 사유화하였다. 그리고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생수 업체의 광고는 국민들에게 생수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이러한 시각과 과소비가 연결되면서 싼 물이 아닌 비싼 물을 사먹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성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수 생산은 연간 6천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중에 화산섬인 제주에서 뽑아낸 제주 삼다수(생산 제주개발공사, 초기 유통은 농심이었으나 광동제약으로 변경)가 전체 생수 시장의 43%를 점유하고 있고, 수입된 생수가 16%, 대형마트(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의 자체 상표가 16%,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와 해태음료의 강원 평창수, 그리고 농심이 백두산에서 가져 왔다는 백산수 등이 먹는 물 국내 시장을 다투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생활에서 질 좋은 수돗물은 설거지와 샤워용으로 전락하고, 먹는 물은 생수로 전환되었다.
중세 시대 또한 깨끗한 물을 제공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인성 전염병이 돌면 급수대는 제일 먼저 의심을 받았다. 상하수도가 도입되기 전에 세워진 도시에서 이질이나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 창궐하면 사람들은 물 마시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난 청교도가 새 정착지로 갈 때 많은 양의 맥주를 가지고 가서 물 대신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1830년대 영국의 왕 윌리엄이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드를 초대한 만찬에서 레오폴드가 물을 찾자 ‘누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 더러운 물을 제공하느냐?’며 직접 포도주를 권했다고 한다. 또 런던의 병원은 19세기까지도 환자에게 물 대신 맥주를 공급했다고 한다(p44-45).
미국에서는 1908년 뉴저지 주의 장티푸스와 콜레라 감염을 줄이기 위해 염소 소독을 실시한 이후, 모든 도시들이 상수도에 염소 소독을 하고 있다. 그러자 흔하던 수인성 전염병이 95%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대기오염방지법, 수질오염방지법, 안전식수법 등을 통해 수돗물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였다(p51-52).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을 ‘공중 보건의 걸림돌’이라고 비판하면서,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과 약이 해가 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p70).”라며 보건당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생수 관리 체계의 허술함
미국식품의약국의 검사관은 생수 업자가 사전에 보고한 일정에 따라 수질분석을 하는지 점검할 뿐, 실제로 수질의 적합성을 확인하는 데에는 등한시하며, 주 안에서 판매되는 생수는 이같이 느슨하고 형식적인 점검조차 면제된다고 지적했다. 생수의 검사 과정에서 허용치를 초과했을 경우 초과한 항목을 ‘방사능 물질 초과, 박테리아 초과’와 같은 새로운 레이블(각종 기준치의 성분이 표시된 딱지)로 바꿔 붙이도록 되어 있으나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다(p69). 오염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거나 오염된 제품을 회수하라는 규정이 없고 그런 사실이 공개되더라도 사태가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p71)
1993년 7월 버지니아에서 생수 2만 4천 병이 곰팡이에 오염되어 발견되었지만 회수 조치는 9월이 다 되도록 취해지지 않았고, 1994년 2월 워싱턴 주에서도 생수 2만 병이 곰팡이에 오염되었지만 6월까지도 회수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94년 8월 남부 6개 주에 테네시 생수 회사 제품과 95년 미국 북동부 지방에 뉴욕 산 광천수 100만 병에 문제가 있음에도 몇 달이 지나도록 회수 조치가 없었다(p76-77). 과학적 기술과 심사로 엄격하다고 소문난 미국의 생수도 안전성에 대해 문제가 있고 이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생수업자들은 노골적으로 수돗물의 불신을 조장했다. 미국의 한 생수 회사는 “변기 물도 수돗물과 같은 곳에서 나온다. 이런 물을 마실 건가?”라는 영상 광고를 만들었다. 한 잡지에는 “걸레 빠는 물보다는 나은 물을 드셔야 하지 않는가?”라는 광고를 통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유도했다.(p30) 이러한 광고는 국민들로 하여금 화장실에 있는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일으켜서 비싼 생수로 이동하게끔 만들었다.
미국의 수돗물을 관할하는 미국수도협회(AWWA)는 생수 업자들의 부도덕한 광고에 대응하면서 수돗물을 안전성을 확인해 나갔다. 생수와 수돗물의 성분 검사와 함께 맛을 비교하기 위해 국민들을 상대로 각종 장소에서 검증을 하여 물맛이 좋은 것은 생수가 아니라 수돗물임을 알려 나갔다. 우리나라도 80-90년대 강이 죽어가자 300여 회의 설명회와 공청회를 통해 99년에 한강 특별법을, 2002년에는 낙동강과 영산강, 금강 특별법을 만들어 수질 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수 및 각종 폐수 처리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고,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물 이용 부담금을 부과(조세법률주의 위반 가능성 존재)하여 환경 기초시설을 강화하면서 강 살리기와 함께 수돗물의 안정성을 확보해왔다.
물의 공공성
과거 고대도시를 비롯해 수도는 공공성의 가치를 추구하며 인류의 문명과 함께 했다. 유럽의 도시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분수를 만든 것은 시민들에게 건강한 물을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1870년대 리처드 월리스 경이 만든 녹색 분수는 현재까지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다. 1917년에는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설치된 벤슨 거품기(오늘날 분수식 음용수대)는 모든 상업지역에 설치되어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였다(p41).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대부분의 상수도 체계가 파괴되면서 공장과 개별 가정으로의 공급이 집중되어 공공장소에서 식수용 수돗물 공급은 흔치 않았다. 기차역, 버스 터미널, 각종 경기장, 지하철역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청결을 유지하며 편안하게 수도꼭지를 통해 수돗물을 마실 곳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곳이 공항과 규모 있는 공원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도꼭지는 화장실에 있거나 구석진 곳에 설치되어 있다. 정부의 공공수도 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수돗물을 멀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공공재로서의 물을 너무 천대하고 있는 것이다.
생수 회사들은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공장을 세웠다. 네슬레의 생수 공장은 인디언들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곳에 세워졌다. 또한 생수 공장은 사막에도 세워져서 수천 년 된 오아시스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고갈시켰다. 물의 순환 구조는 간단하다. 지상에서의 여러 흐름을 통해 땅 위나 땅 속에 다양한 저장소에 담기게 되는데, 땅속으로 담기는 양보다 지상으로 나가는 물이 많으면 수량은 감소하고 균형은 깨지는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곳은 제주도다. 그러나 제주도는 화산섬으로 암반이 다공질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어 비가 오면 바다로 흘러가거나 지하로 들어가 땅 속을 이동, 해안가에서 용출(제주도의 마을들이 해안가에 형성된 이유중 하나)되어 제주도민의 식수로 돌아 왔으나 90년대 들어서면서 마을마다 있었던 해안 용출수들이 말라가고 있다. 중산간 지역의 개발과 도시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우리나라 생수 시장의 43%를 차지하는 제주 삼다수의 역할도 한 몫 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지방공기업으로 ‘제주개발공사’가 만들어져 98년부터 제주의 생명인 생수를 뽑기 시작하여 2015년 현재 1일 3,700여 톤을 뽑아내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는데 환경단체들은 현재처럼 생수를 뽑아 낼 경우 해안 용출수는 완전히 고갈되고, 지하로 바닷물이 유입되어 장기적으로는 지하수의 순환생태계가 파괴 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생수, 어디에 담을 것인가? 위험한 생수병
미국은 국민들로 하여금 수돗물에 대한 안정성을 확신시키기 위해 연방정부 차원에서 생수에 대한 검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많은 생수들이 수질기준은 충족하고 있었으나 특정 생수회사의 생수병에서 휘발성 플라스틱 성분이 나오면서 플라스틱병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폴리염화비닐(PVC)에서는 프탈레이트가 나와 인체의 호르몬을 교란하고, 폴리에틸렌에서는 잠재적 발암물질인 스타이렌이 나온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마법의 신물질로 소개되었던 환상의 살충제 DDT는 해충의 피해자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 그리고 냉방기와 소화기의 주성분으로 안정성이 높았던 CFCs는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알려졌다. 또 세탁소에서 사용되는 드라이클리닝 물질인 퍼클로로에틸렌은 어지럼증과 피로, 두통과 함께 피부와 눈, 코, 목 등에 발진을 일으키고 기억력을 떨어뜨리며 암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 플라스틱도 바보가 되어 퇴장할 것이라며 역설하고 있다.(p114)
1977년 미국의 청량음료 시장에 나타난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또는 PETE)라는 합성섬유 물질은 혁명적인 발견(1941년)이었다. 이후 90년부터 네슬레의 생수가 플라스틱 병에 담겨 시장으로 나갔다.
미국에서의 생수 페트병은 어느 정도 만들어지는지 모르지만 단 한번 사용 한 후 초당 1,000개가 넘는 양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재사용과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재사용은 둘째 치고 재활용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2007년 미국의 PET용기협회에서는 25%가 재활용되고 있다고 보고했다(p122). 더욱 심각한 것은 페트(플라스틱)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인 석유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석유는 고갈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다 이산화탄소의 주범이다. 그리고 1리터 플라스틱 병 30개 정도를 만들 수 있는 PET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는 원유 3리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만간 페트병의 시대도 마감될 것이다.
무엇을 마실 것인가?
전 세계에서는 국민들로부터 멀어지는 수돗물을 다시 살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파리는 2005년에 수돗물소비촉진기획단을 발족하고, 유명 디자이너인 피에르 카르뎅에게 의뢰하여 개인용 유리병 3만 개를 무료로 배포하였고, 2007년 뉴욕 시는 “잔을 수돗물로 채우세요.”라는 광고에 70만 달러를 할당했다. 2009년 캘리포니아 샌 마테오 카운티 주민들은 카운티 예산으로 생수를 구매 할 수 없도록 조례를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 밴쿠버, 피렌체 등 많은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들이 수돗물 마시기 운동(197)을 하고,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음료와 맥주병에 적용하던 공병 보증금 제도를 생수 병에도 적용하려고 하고 있으며, 지역 예술가들을 모아서 현대적 감각으로 다양한 급수대를 설계하고 있다. 2008년 영국의 리즈대학은 학교 매점에서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워싱턴대학, 캐나다의 위니펙대학, 뉴펀들랜드메모리얼대학 등도 교내에서의 생수 판매를 금지했다(p199).
값비싼 상업용 생수 의존도가 전 세계적으로 급격하게 높아진 요인은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안전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용수 체계가 실패했다는 데 있다. 그 바탕에는 공공 수도를 체계적으로 관리, 감독, 보호해야 할 정부에 대한 불신도 한 몫하고 있다(p222).
맑은 공기처럼 맑은 물은 우리의 공공재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돗물은 생수와 근본적으로 내용물이 같고 비교적 값도 저렴하며 구하기도 쉬운데, 굳이 비싼 대체품을 소비하는 사회. 이 사회에서 땅 속의 제한된 자원인 지하수의 사유화와 환경과의 관계는 어떤 경제학으로 다가갈까?
글_박진우(경기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생수, 그 치명적 유혹』(피터 H. 글렉 저, 환경운동연합 옮김, 추수밭, 2011)
<목차>
들어가며 1초마다 1,000개가 넘는 생수병이 버려진다
1라운드 생수 vs. 수돗물 : 수돗물은 왜 생수와 벌인 전쟁에서 졌을까
2라운드 샘물 vs. 플라스틱 : 생수, 무엇이 문제인가
3라운드 생수 vs. 성수(聖水) : ‘고급 생수’의 실체 요리조리 뜯어보기
4라운드 윤리적 생수 vs. 미래 수돗물 : 물의 미래를 찾아서
감사의 말
후주
부록_한국의 생수는 안녕한가?
1 위험하고 은밀한 한국형 생수 산업 _염형철
2 생수와 샘물의 수질 기준 비교 및 업체 현황
3 환경운동연합이 제안하는 수돗물 건강하고 맛있게 먹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