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思考>
교육 및 비영리단체, 교육 프로그램, 사회혁신 프로젝트, 지역 및 마을 운동 등 다양한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새로운 관점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다른 교육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팁 하나, 작은 실마리라도 되기를 바랍니다.(편집자주) |
태초의 언어가 하나였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몸의 언어일 것이다. 몸은 그래서 인간이 자신의 근원을 끄집어 낼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이다. 몸을 통한 소통은 때론 타인과의 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도 있고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를 이끌 수도 있다. 소통의 가장 주요한 수단인 언어(활자나 구두를 포함한)는 이성의 통제를 받아 밖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본능과 좀 더 가깝게 맞닿아 있는 몸은 ‘언어’보다는 좀 더 우리 자신의 본질인 본능을 표현해줄 수 있다.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만 잘 이끌어 준다면 우리는 내면의 소리를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해외에서는 오랜 동안 몸으로 소통하는 문화예술 장르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활발하고 실제로 몸을 통한 치료와 소통의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몸은 경박하고 정신은 높다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몸을 통한 소통과 그 방법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몇 가지 사례들은 몸을 활용한 활동으로 나와 타자 간의 원활한 소통을 도와 사회나 개인의 병리적 영역을 치료한 사례이다. 지난 회차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몸을 통한 소통은 우리 사회가 떠안고 있는 일정 부분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좋은 실마리가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 양성소’가 ‘교육의 오아시스’로
독일에서 학교 폭력 예방의 중요성을 절감한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으로 올라간다. 독일 베를린 노이쾰른에 위치한 뤼틀리 학교는 ‘테러리스트 양성소’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악명 높은 학교였다. 학생의 88.2%가 외국학생들이었던 이 학교는 하우프트슐레 중에 하나였다.(독일의 중등 교육은 11세부터 해당되며 학생들은 인문계의 김나지움과 실업계인 레알슐레, 하우프트슐레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우프트슐레는 김나지움과 레알슐레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기본적인 중등학교 의무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흔히 ‘잔반 쓰레기 학교(Restschyle)라 폄하해 부르기도 한다.)
혈통을 중시하는 독일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민자 2세들의 학교, 독일에서 가장 가난한 주 베를린, 그 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노이쾰른 지역에 있는 이 학교는 골치 아픈 학교임에 틀림없었다. 노동이민 2세인 학생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사회적 기반이 약한 터키와 아랍계 자녀들이며 내전 중인 아프리카나 세르비아의 고국을 도망쳐 나와 무작정 홀로 베를린에 체류하는 청소년들도 상당수였다.
이 학교가 독일에서 악명을 떨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이 학교의 교사들이 베를린시 교육 당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 학생들의 교내 폭력 상황이 너무 심해 교사들의 힘만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우니 학교 내에 치안 유지를 위한 경찰을 배치해주거나 아예 학교를 폐쇄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것이다. 편지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칼, 가스총, 몽둥이 등 흉기를 소지하고 등교해 폭력과 기물 파괴를 일삼을 뿐 아니라, 교사를 위협하는 사례도 빈번하여 칠판을 돌아서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전해졌다. 또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구조 요청에 대비해 꼭 휴대폰을 지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간의 폭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심지어 교사에게도 이토록 살벌한 학교가 오늘날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사실, 게다가 교사들이 나서서 학교 문을 닫자고 주장한 이 사건은 독일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 독일 뤼틀리 고등학교 앞에 경찰이 상주하는 모습(좌)과 공연 연습을 하는 학생들(우) (출처)
이 학교의 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특단의 조처로 약 270만 유로(한화 약 400억 원)의 거금을 투자해 건물을 새로 짓고 시설을 정비했다. 그러나 단순히 시설 정비와 학교의 사립화를 위한 노력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학교의 어려움을 돕고자 <더 영 아메리칸스(The Young Americans)>라는 비영리 단체의 공연예술 전문가 그룹이 나섰다. 1960년대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 그룹은 그 해 유럽 순회공연을 하던 중 뤼틀리 학교의 어려운 소식을 접하고 3일 간의 무료 워크숍과 공연을 자청했다. 이 워크숍이 목표했던 바는 무대 위에서 펼쳐질 작은 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학생들의 몸 안에 움츠린 감정적 에너지들의 찌꺼기를 없애고 학생들과 교사, 관객 모두가 한 마음이 되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2박 3일의 연습을 통해 「춤추는 뤼틀리 학교:우리에게는 다른 모습도 있어요!」라는 공연을 올리게 된다.
공연 이후 독일의 유력지 슈피겔 온라인(2006. 5. 24.)은 당시의 연습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학생 중 하나인 수하(Souha)는 흥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틀 동안 함께 연습을 하니까, 마치 가족이 된 느낌이에요. 학교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학생들이 영 아메리칸스와 함께 춤을 출 때 단 이틀을 연습한 초보자임이 쉽게 드러났지만 무대 위를 휘젓고 다니며 기쁨과 희열로 가득 찬 그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가 넘쳤다. 공연 막바지의 공동 공연에서는 참여자와 관객으로 온 학부모와 지역주민 모두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마감했다.”
학교 폭력, 몸으로 풀다.
더 영 아메리칸스(the Young Americans)와 함께 한 이 공연예술은 이 학교를 변화시키는 아주 중요한 초석이 됐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독일은 최근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국가적인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같은 유럽의 이탈리아에 기반을 둔 인터내셔널 밴드 젠 로소(Gen Rosso)팀은 필요가 있는 학교를 방문해서 일주일 동안 학생들에게 춤과 노래를 지도하고 함께 대형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또한 2012년부터 독일에서 뮤지컬 공연을 통한 학교폭력예방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가르치고 함께 공연하는 뮤지컬 ‘가로등’은 폭력은 폭력을 낳고 결국에는 비극을 불러오게 되는 과정과 비극의 순간에 동반되는 청년들의 갈등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춤과 음악을 배우고 전문가로부터 멘탈 트레이닝을 받기도 하면서 30번이 넘는 워크숍을 통해 공연을 준비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교들은 공연 후 학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며 프로젝트 결과에 만족하고 있다.
베를린 그립스(Grips) 극장의 교육연극 ‘위버 융스(Über Jungs)’도 폭력예방 교육으로 유명하다. 법원으로부터 요리수업에 참여하라는 판결을 받은 다섯 명의 폭력적인 청소년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14세 이상 청소년이 대상이다. 극단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연극을 관람한 후 그 내용을 주제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재를 제공한다. 교재에는 전체적인 줄거리를 정리하는 단계부터 토론, 교실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연극 대본, 수업시간별 주제 등이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젠 로소 공연 모습(출처 : 구글 이미지)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많은 프로그램에 뮤지컬, 연극, 공연과 같은 몸 활동 프로그램이 포함된 것은 흥미롭다. 그들은 공연을 준비하고 스스로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고 실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전에는 왕따를 경험한 학생이 24%였으나 이러한 몸 활동을 포함한 많은 폭력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에는 12%로 줄었고 가해자도 24%에서 19%로 감소했다. 무엇보다 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었다. 이전보다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 학생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몸으로 마음을 치료하다, 콜롬비아 몸학교
몸을 통한 활동의 또 다른 순기능은 부정적 감정의 해소에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는 정치, 사회, 문화 등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지만 이면에 극심한 빈부 격차와 가난과 폭력 그리고 각종 부정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다. 최대 납치국가, 대인지뢰 피해 최다국가, 최대 난민 발생국가,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가 등의 수식어가 붙은 콜롬비아. 분노와 공포, 부조리와 가난 등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이곳에 1997년 무용수이자 교육가 알바로(Alvaro Restrepo)씨는 유럽의 여러 지식인과 무용전문가들과 손을 잡고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를 개관하였다. 콜롬비아 최초의 예술대안학교인 ‘몸의 학교’는 차별, 폭력, 가난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 문제들로 아이들이 건강한 삶을 꾸릴 기회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에 주목,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한 신체교육법 진행을 위해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무용가를 양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면서도 현대 무용을 가르치는 비영리학교다. 이 학교의 교장이자 무용가 알바로씨는 아이들이 ‘몸에 대한 존중’을 체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한다. 폭력에 대한 공포가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만들었는데 아이들에게 춤은 사치가 아닌 ‘치료’였던 것이다. 초등학교와 난민촌 중앙 마을회관에서도 아이들을 모아 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이런 예술적 경험이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준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이 학교를 통해 많은 아이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꿈을 갖게 되었다. 무용가가 아니어도 인생의 진로를 찾는데 적극적이 되었다. 상황과 현실은 변한 게 없지만 아이들은 변했다. 변한 아이들이 그 사회를 바꾸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다. 몸 활동은 그렇게 한 인간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왜 문화예술공연인가?
▲더 영 아메리칸스의 한국 공연 모습(위)과 참여자들의 후기(아래)
미국의 더 영 아메리칸스(The Young Americans), 독일의 그립스(Grips), 이탈리아의 젠 로소(Gen Rosso), 그리고 콜롬비아의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든 소통과 치료의 매개로 ‘몸’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 영 아메리칸스는 20대 중반을 넘지 않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미국 내에서도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말 그대로 공연예술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2012년 한국을 방문해 짧은 투어를 마친 적이 있다. 이렇게 전 세계를 다니며 얻는 공연 수익으로 이들의 역할이 필요한 곳에 무급으로 워크샵을 해준다.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에게 단 이틀 동안 공연을 배워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황당하기 그지 없다. 몸치거나 박치라는 이유로, 몸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던 십대들은 처음 자신에게 허물없이 다가와 허깅하는 젊은 외국 청년들에게 금세 경계의 눈빛을 해제한다.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관계를 막는 장벽이 될 수 없음을 몇 번의 레슨을 통해 배운다. 국내서 입시와 사교육에 찌든 아이들에게 2박 3일의 시간은 그야말로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과 같은 시간이었다고 참가자들은 전한다. 참여 학생의 학부모는 워크샵 참여 이후 성적도 오르고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겨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의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과 열정이었다고 전하는 학생들은 그 2박 3일의 경험을 자신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라고 감히 말한다. 더 영 아메리칸스의 워크샵에서 ‘몸’은 이들과 학생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영어가 미숙한 아이들도 한국을 찾은 푸른 눈의 미국 형과 누나들이 열정적으로 공유해주는 춤, 노래, 랩, 마임 등의 노하우를 전달받았다. 마지막 날 부모들과 지역 주민을 초청한 자리에서 공연 전문가들과 함께 올리는 공연은 보는 이들에게 달라진 아이들의 눈빛을 확인시켜준다.
일본에서는 아예 지역 자치구가 년 단위로 이들을 초청한다. 교도소, 학교, 장애인 등 특별한 치료와 변화가 필요한 그룹을 돌며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고베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유령도시와 같던 그 곳을 찾아 큰 감동으로 지역 주민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문화예술 공연을 통한 몸 활동의 참여는 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억압된 감정을 긍정적인 통로로 표출하게 해 주고 에너지들을 되받게 해준다. 이런 순기능들이 학교폭력, 재해, 빈곤, 억압 등 우리 앞에 놓인 사회적 현실로 병든 자아를 치료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래도 몸을 방치하겠습니까?
문화예술교육이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올해 영국 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가 발표한 보고서 『The Value of Arts and Culture to People and Society(문화예술의 개인적‧사회적 가치)』에는 런던의 예술자선단체 <Only Connect>의 교육 프로그램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Only Connect가 2006년부터 약 6년 간 재소자 및 전(前)재소자를 대상으로 연극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결과 런던의 재수감 비율이 평균 57.5%인데 반해 연극교육에 참여한 재소자들의 재수감 비율은 절반도 안 되는 25.9%로 측정되었다. 문화예술교육이 재수감 비율을 낮추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연극교육에 참여한 재소자들이 워크샵에 참여하거나 연극을 직접 제작‧출연하면서 다시금 사회관계 형성의 기회를 얻었다고 한다.(NPC, 2011)
셰익스피어는 “연극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했다. ‘자연’이 인간의 본성과 같은 의미라고 할 때 연극은 자신의 본성과 마주하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서 몸은 본인과의 소통을 돕는 좋은 도구라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몸 활동’을 통한 자신과 타인과의 소통은 지금 곳곳에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묵혀두고 꽁꽁 묶어두고 있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자세가 지금 필요하다.
글_김수향(더시안교육연구소 이사)
<참고자료>
◦ <아르떼 365_해외소식(2006. 09. 28.) http://www.arte365.kr/?p=4076http://www.artezine.kr/foreign/view.jsp?articleIdx=271
◦ http://www.arte365.kr/?p=4076
◦ 한국교육신문, “<독일> 주 교육부, 학교폭력 예방 전담기구 창설”, 2015년 3월 16일, 박성숙
◦ http://mephisto9.tistory.com/186
◦ 연구리포트 「해외 연구보고서를 통해 본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아르떼 정책연구팀 김안나 http://www.arte365.kr/?p=37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