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미세먼지 같은 슬픔이
2월초에 산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금세 눈앞이 흐려져 단숨에 읽을 수도 없거니와, 그리 읽어서도 안 되는 책인 것 같아서다. 집엔 아직 펼쳐보지 못한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한 권 더 있다. 팽목항 ‘현장판매’에서 아내가 사왔다. 아내는 표지도 넘기지 못했다. 눈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눈물이 눈물을 치유하면 오죽 좋으랴만 슬픔으로 낫지 않는 슬픔이 슬프다.
TV 뉴스 단신으로 삭발하는 유가족들을 보았다. 저게 왜 단신인지도 모르겠고, 1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진상 제대로 밝히자고 당자(當者)들이 머리 깎아야 하는 상황은 또 뭔지 정말 모르겠다. 이제 그만 가슴에 자식을 묻게 해 달라는 요구조차 못 들어주는 나라가 국가인가.
국가는 참사 1주기인 4월16일 당일 추도식이 아니라 코엑스에서 국민안전다짐대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국가가 내놓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미세먼지보다 더 해로운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픈 4월이 시작되는 첫날 국가는 희생자 배상과 보상안을 내놓았다. 세월호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대한민국은 아직도 인양되지 않은 게 틀림없다.
대형재난사고가 나면 국민들 요구가 없더라도 진실을 철저히 밝히고 재발대책을 세우는 게 국가의 기본 책무다. 유가족의 슬픔을 다독이는 일도 국가의 몫이다. 더구나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인 실종자 가족도 아직 있다.
그러나 지난 1년 국가는 진실도 유가족도 실종자가족도 외면했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려하는 가족들을 한 땅에 사는 국가지도자는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유가족들이 삼보일배를 하고,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 국가를 어찌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엄밀히 말하면 ‘잊지 않겠다’는 구호는 그냥 은유적 다짐이어야 한다. 삶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하므로 떠난 이는 적당한 시간에 보내주는 게 맞다. 오열이 길면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 이치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잊지 않겠다’가 결기 시퍼런 구호로 점점 더 살아나는 현실이 무섭다.
단식 자리 옆에서 폭식을 하는 유치한 자들 때문이 아니다. 희생자 비하 인증을 올리고 낄낄거리는 덜 떨어진 인간들 때문도 아니다. 소문에, 언론에 쉽게 홀리는 염량세태 때문도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1년이 되도록 자신의 책무가 무엇인지 짐짓 모른 체하는 국가 그 자체다. 그런 지도자와 정부에 책임을 매섭게 따져 묻고 통렬하게 꾸짖을 정치의 부재가 통탄스럽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평범한 국민이 할 일이 잘 안 보인다는 막막함과 무력감이 두렵다. ‘그만 하자’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그렇게 하여 이 땅에 미만하게 되었을 터이다.
그래도 부패하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어쩌면 이 세월은 누가 더 질기게 버티느냐 싸움이다. 권력의 속셈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 한다. 다행히 작은 행동이라도 꾸준히 이어가려는 이들이 많다. 세월호를, 진실을, 국가를 인양하는 방법은 그 길뿐이다.
*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인사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수원시민공동행동’은 오는 10일부터 18일까지를 추모기간으로 선포했다. 이 기간 동안 수원시민 공동행동은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위한 수원시민 약속지킴이’를 1만 명 모집할 계획이다. 수원시민 약속지킴이 온라인 참가는 http://goo.gl/forms/H7I8WjTR8c에서 받는다.
* 또 수원시내 주요 지역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및 온전한 세월호 인양촉구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10일 오후 6시부터는 수원시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북콘서트도 연다.(http://www.rights.or.kr/579)
* 이밖에 세월호 참사 1주기 맞이 무박2일 여인(餘人-남겨진 사람들) 열차여행(4월 11일 밤10시~12일, 무박 2일), 수원역 시민분향소 운영 및 추모제(4월 13일 오전10시~17일 오후 8시), 노란버스 운행(4월 16일(목) 수원역 시민분향소 앞 오전10시 출발), 노란리본 달기(4월 11일)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