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칼럼] 청년목수 김지원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Mar 24, 201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댓글로 가기 인쇄

청년목수 김지원을 소개합니다


문탁네트워크 1, 마을작업장 <월든>에서 일하는 지원이라는 청년이 있다. 본인은 쑥스러워하지만 우리는 그 청년을 청년 목수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엔 청년 목수앞에 수식어 하나가 더 붙었다. 이름하여 푸코리언 청년 목수 김지원!’ 사연은 이렇다.

 

지원은 공동육아-대안학교 출신이다. 민주화세대를 부모로 둔 아이의 전형적인 성장코스를 밟은 셈이다. 문제는 이 아이가 부모나 대안학교가 키우고 싶은 대로 키워지지를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부모가 키우고 싶은 대로 키워지는 아이는 결코 없다^^) 중학생 때 이미 대안학교 최대의 문제아가 된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자 음악을 하겠다고 기타를 들고 다녔다. 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낙방! 재수 대신 일찍 군대를 다녀오는 편을 택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읽은 책이라고는 아홉 살 인생, 딱 한권이었다는 이 친구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서였다. 군대에 가서 권위주의적 상하관계나 일방적인 반공 프로파간다를 경험하게 되자 비로소 질문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들쳐보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군대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운명의 책을 만난다. 바로 프레이리의 교사론이었다. 무엇인지 모를 감동으로 매 문장마다 줄을 치고, 매 문장마다 베껴 썼다는 그 책, 프레이리의 교사론!


제대를 한 후 지원이는 문탁 1, 월든 목공소에 취직했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데 능한 이 친구에게 그의 부모가 권한 대안이기도 했지만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어 하루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이 친구의 열망이 반영된 선택이기도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연, 연암을 만난다. 계기는 마침 문탁에서 열린 문성환의 연암강좌였다. 강의안에 쓰여 있는 연암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지원의 폐부를 찔렀다’.

 

프레이리와 연암을 읽은 후 지원은 평생 공부를 하고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연암이 말했던 친구! 한편으로 목공소에서 일하면서 또 한편으로 지원이는 또래 친구들을 모았다. 대학에 안 간 놈, 못 간 놈, 사는 게 시큰둥한 놈, 의욕 넘치는 놈... 온갖 친구들을 끌어들여 <해봄>이라는 청년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각자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행해본다는, 말 그대로 일단 해보는네트워크! <해봄>진지파발랄파사이의 세력판도에 따라 밀양 송전탑 반대 농봉’, ‘쪼그만 공연’, ‘런닝 맨’, ‘마을 운동회’, ‘청년문화연구 세미, ‘청년 파티등 다양한 활동을 좌충우돌 진행하였다.

 

한편 지원이가 월든 목공소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한 직후 나는 지원에게 <악어떼 서당>을 맡겼다. 본인 자체가 문제아라는 딱지를 붙인 채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달리 의욕도 없고 세상 물정도 어두운 <악어떼 서당>의 남자 중학생 녀석들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웬걸, 이 친구, 점점 <악어떼 서당>꼰대가 되어갔다.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들, 의욕도 없지만 하지 않겠다는 것도 없는 아이들 틈에서 점차 아이들에게 요구하고 명령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지원이는 운명의 세 번째 책을 만난다. 바로 푸코의 감시와 처벌!

 

프레이리를 통곡으로 만나고, 연암을 감탄으로 만났다면, 푸코는 충격으로 만난 셈이다. 자기 자신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한 권력을 실어 나르는 존재였다니!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메가톤급 질문! 이후 지원은 계속 푸코의 저작을 읽고 있다. 공부의 화두, 삶의 화두가 푸코의 권력 이론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이제 지원은, 입만 벌리면 푸코 이야기, 글만 쓰면 권력 이야기였다. 문탁 식구들은 어느 순간부터 지원을 푸코리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공부에는 정말 순서가 없다. 지식은 정말 위계가 없다. 가장 절실할 때 가장 필요한 공부를 하면 그 뿐이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라는 책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투쟁은 둥근 원과 같아서 어디서도 시작할 수 있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 구절을 이렇게 바꿔도 되지 않을까? “공부는 둥근 원과 같아서 어디서도 시작할 수 있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다.”.


_이희경(문탁네트워크)

수강신청이나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여기를 클릭하셔서 회원가입 후 로그인을 하셔야 합니다.
회원가입 하신 분은 우측 상단에서 로그인을 하시면 수강신청 혹은 댓글을 다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