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칼럼] ‘동네서점’이 있는 풍경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Feb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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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 있는 풍경

 

지난달 성남시가 신선한 뉴스를 하나 내놓았다. 공공도서관 도서를 ‘동네서점’에서 구입하도록 하겠다는 발표였다. 고양시와 의정부시가 즉각 뒤를 이었다. 성남시의 재치 있는 대응은 서울로도 파급되었다. 관악구에 이어 2월 들어서는 서울시교육청도 교육청 산하 학교도서관과 공공도서관의 1천만 원 이하 도서구매를 동네서점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시도, 경기도교육청도 곧 뒤를 따르겠지?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동네서점 살리기’는 골목상권 살리기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같은 결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동네서점’이라는 낱말은 듣자마자 ‘골목 슈퍼’, ‘동네 빵집’, ‘집 앞 반찬가게’와 비슷한 정서를 불러일으키지만 조금 깊이 들어가면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자주는 못가지만 퇴근길에 가끔 들른다. 딱히 살 책이 없더라도 진열대와 서가를 둘러보고 책 향기 맡으며 신간을 들척여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차분한 인상의 주인과 처음엔 눈인사를 나누다가 차 한 잔 하고 이런저런 책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책방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날 나이는 지났지만 좋은 이웃 인연 맺을 설렘과 기대는 접지 못한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이런 ‘동네서점’이 실제로 존재했나 싶다. 물론 젊음의 추억이 깃든 서점은 몇 곳 있다. 예컨대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이 그렇고, 수원 남문 근처에 있던 서점들이 그렇다. 인천에 살 때는 배다리의 헌책방들과 얽힌 이러저러한 추억이 꽤 있다. 하지만 앞서 그린 동네서점이 실재했는지는 아리송하다. 나만 그런가?
오해마시라. 동네서점을 살려보려는 성남시, 고양시의 노력을 깎아내리거나 찬물을 끼얹을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다. 이를 악물고 버텨온 지역서점들을 일단 살려 놓아야, 동네서점의 꿈도 이어갈 수 있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지자체가 동참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동네서점’에서 책을 사겠다는 지자체의 결단은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었기에 가능했다. 도서정가제 이전 공공도서관 장서 구입방식은 ‘최저가낙찰제’였다. 응찰자 가운데 가장 낮은 가격을 써 내는 서적 유통업자가 공급권을 차지했다. 이 때 낙찰가는 대체로 정가의 65%선이었다고 한다. 정가 100만 원어치 책을 65만 원에 공급하겠다는 업자에게 공급권이 돌아갔다. 도서정가제가 되면서 이제는 누구라도 90% 이하(경품과 마일리지 포함 최대 85%)로는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계산법대로라면 같은 예산으로 책을 구입할 경우 이젠 공급량이 25% 줄어든다는 얘기가 된다. 다시 말해 예전엔 책 구입 예산 10억 원으로 5만 권을 살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4만 권밖에 사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올해 도서구입 예산은 지난해보다 25% 늘려 잡아야 겨우 제자리걸음이다. 하지만 딱하게도 거의 모든 지자체가 예산부족을 호소하는 마당이라, 올해 도서구입비가 작년보다 늘어날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학교도서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산수립자들이 이런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네서점’이 있는 풍경을 현실로 실감할 날이 올까? 모르겠다. 수지타산 셈법 하나만으로 동네서점이 생겨나리라고 보는 건 순진한 기대일 터. ‘책 안 읽는 지식숭배 사회’인 한국사회의 기묘한 패러독스를 깊이 성찰하고 해소하기 전엔 답이 보이지 않으리라.

 

듣자 하니, 국민들이 책 좀 읽는 나라들에서는 도서관 내에 서점이 있단다. 책이 팔릴까? 놀랍게도 이들 서점 매상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사람들이 도서관에 와서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인지 검토해보고 나서 책을 구입한다는 얘기다.
책방과 빵집, 책방과 수다방, 책방과 영화관…. 내 머리로는 따라가지 못할 기발한 결합이 우리 사회에도 만발했으면 좋겠다. 10년 후 손녀 손잡고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우리 ‘동네서점’이 부디 생겨나기를….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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