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와 배움터>파울로 프레이리②: 해방의 교육학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an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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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배움터>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관련 책을 읽으면서, 강의 등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육학자, 그들의 사상, 철학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저 막연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육학자나 이론, 철학적 배경을 모른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앎이 없으면, 스스로의 학습이 없으면 쉽게 한계에 부딪힙니다.
<와 배움터>에서는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던 교육 이론들을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모든 것을 담아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짧지만 본 지면을 통해 함께 학습하기를, 학습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만날 학자는 평생교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파울로 프레이리입니다. 프레이리의 생애부터 사상의 핵심적인 주제(해방, 프락시스와 의식화, 대화)를 4회에 걸쳐 살펴보겠습니다.(편집자주)

 

해방의 교육학

 

프레이리는 많은 저작들을 통해 활발한 지식 생산 활동을 펼쳤다. 그러기에 짧은 지면을 통해 프레이리의 교육학 전반을 충실히 소개하기란 쉽지 않다. 여기에서는 프레이리의 이론을 이해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초 정도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앞으로 ‘해방’, ‘프락시스와 의식화’, ‘대화’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해방’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자유로운 삶과 해방

 

프레이리에게 해방이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분명한 억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글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프레이리는 늘 억압적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실천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이때 교육실천은 억압적 상황을 벗어나는 일, 즉 해방이라는 분명한 지향을 갖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프레이리에게 있어 교육은 중립적인 활동이 아니다. “교육은 정치적이어야 하고 정치는 교육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금도 그러한 해방이 필요한 시대인가? 이제 누군가가 우리를 억압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프레이리의 해방에는 문화적 해방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식민지 지배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식민지 시대에는 물리적 통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문화적 지배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 문화적 지배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문화적 지배 방법 중의 하나가 언어 정책을 통한 지배이다. 일제 강점기에 국어는 일본어였고, 지배 언어이자 교육 언어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 언론, 문화 등을 통해 지배 언어로서의 일본어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졌다. 물리적 지배가 끝났다고 하더라도 문화적 지배는 계속될 수 있다. 문화적 지배는 식민지 이후에도 계속 된다. 또한 식민지 상황이 아니더라도 특정 계층의 문화가 지배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프레이리가 포르투갈에게 해방된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해교육 캠페인에서 탈포르투갈어를 외쳤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은 사회통합의 이유로 식민지 언어, 즉 포르투갈어로 문해 캠페인을 실시하였다). 프레이리는 정치적 해방을 넘어선 문화적 해방을 진정한 해방이라고 보았다. 문화적 해방이란 기존의 지배 문화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성찰적으로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문화 생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해방의 의미: 인간화

 

프레이리는 학습자들이 처한 억압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육은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고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식민지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일제 강점기 때 학교교육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 존속 시키는데 기여했다. 이런 억압적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당시 조선 민중들의 예속적인 삶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프레이리가 생각하는 교육은 억압적 상황의 해소, 즉 해방이라는 분명한 지향을 갖고 있어야 된다. 그러나 이런 지향이 특정한 정치 체제로 향하는 것은 아니다(프레이리 개인이 취하는 정치적 태도가 있었으나, 그것을 절대시 하지는 않는다). 프레이리가 생각하는 해방이란 끊임없는 실천(praxis)를 통해 성취될 수 있는 미완의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더라도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면, 이 또한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이점을 고려할 때 프레이리가 말하는 해방은 멈추지 않는 ‘인간화’를 향한다. 여기에서 ‘인간화’란 인간의 본래적 자유를 획득하는 일과 같다. 여기에서 본래적 자유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에서 말하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시장의 자유가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에만 국한된 개인주의적인 자유도 아니다. 프레이리가 말하는 본래적 자유는 주체적 삶의 문제이다. 강자(또는 외부 세계-국가, 체제, 제도, 문화 등)에 의해 몸과 마음을 지배 받는 노예적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다.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주체적 ‘권한’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처음 던졌던 질문(우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을 프레이리식으로 바꾼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프레이리의 해방의 교육학이 추구하는 인간화는 따라서 우리의 삶을 구속하는 물리적, 문화적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 이를 통해 삶을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 즉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해방’의 현대적 의미

 

십여 년 전 한 문해교육기관 교사와의 인터뷰에서 들은 한 일화를 예로 들어 보자. 60대 여성이었던 이 학습자는 한글을 배우기 전과 달라진 일상의 모습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였다. “영감(남편)에게 큰 소리 치기 시작했다.” 글을 모를 때, 그녀는 남편의 말에 늘 침묵했다. 당신보다 글을 많이 배운 남편의 말은 늘 옳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을 배우고 나서 남편 또한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 자신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 사실을 깨달은 이후 그녀는 자연스레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식민지 상태거나, 정치적인 억압적 상황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은 적지 않다. 여성을 침묵하게 하는 가부장적인 문화, 졸업장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학벌주의, 우리를 끊임없는 스펙 쌓기의 학습으로 내모는 경쟁사회, 소수의 문화를 억압하는 다수의 문화, 인간의 가치를 경제적 수입과 같은 재화의 가치로 판단해 버리는 물질만능주의, 그래서 이윤 동기들 때문에 인간 존엄의 문제를 경시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등. 이 뿐일까.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우리 내면의 편견이나 고정관념들도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이다.

 

교육의 문제를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여러 억압의 문제로 확대시킨다면, 여전히 프레이리의 ‘해방’의 교육학은 유효하다. 우리의 진짜 모습을 가리고 삶의 가치를 왜곡하는 억압이 존재하는 한,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인간화의 노력들은 교육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화로서 해방을 위한 교육의 문제가 간단하지는 않다. 해방 또는 인간화의 지향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교육적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마음을 닦음으로써 일체의 일상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관조적 삶의 방식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억압적인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적인 삶의 방식도 있다. 프레이리는 후자의 방식, 즉 실천의 방식을 취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프락시스(praxis)와 의식화(consciousness)의 문제를 다룰 다음 호에서 나눠보도록 하자.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파울로 프레이리①: 프레이리의 삶과 사상 /suwon/issue/76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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