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사랑과 연애②] 『리퀴드 러브』 쇼핑하듯 연애하는 시대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an 2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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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너머>

우리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이야기 중 한 가지 주제를 선정, 책과 함께 읽어 내려갑니다.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 한켠에 묻어두었던 고민일수도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전혀 관심 없던 주제일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접근해보는 것은 어떠세요?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너머의 생각들을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편집자주)

 

[사랑과 연애]에 관한 두 번째 책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새물결, 2013)

 

노래 가사처럼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에 대한 고민이 창궐하는 이른바 ‘썸’의 시대이다. 청춘남녀들의 연애는 자유연애의 시대가 개막된 이래 영원한 이슈이겠으나, 이른바 ‘썸타기’는 연애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썸’은 연애가 보편화된 시대의 징후이다. 자유연애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연애 자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연애라는 관계의 망으로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린 시대가 자유연애의 시대 아닌가? 하지만 한 개인의 삶에서 연애라는 관계에 노출되는 시간과 개인이 일생에서 맞이하는 연애의 횟수에 주목하면 지금 우리는 어떤 전환점에 서있다. 이른바 ‘썸’이라는 징후는 이 전환점의 징표이다.

 

썸남과 썸녀의 시대에서 연애는 보편화되어 있다. 연애의 보편화는 한편으로 연애라는 관계에 노출되는 생애주기 시간의 절대적 연장으로 나타난다. 자유연애의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그 연애는 결혼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었다. 또한 한 개인의 생애주기에서 연애가 허락되는 단계는 고작해야 20대의 미혼 상태에 불과했다. 20대의 미혼 상태 앞으로는 연애 자체가 아예 금지되는 10대의 청소년기라는 생애주기가 있고, 그 뒤로는 연애가 곧 간통으로 형사처벌 될 수 있는 중장년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이 일생에서 경험하는 연애의 횟수 자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일생의 단 한번의 연애로 결혼하기도 하고 아예 어떤 사람은 연애를 생략한 채로 혹은 연애의 경험을 철저하게 비밀로 간직한 채로 결혼으로 돌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애주기를 겪었던 세대의 자녀들은 하지만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연애가 보편화된 시기를 살아간다. 그들에게 연애 금지의 청소년기가 없다. 연애는 그 어떤 세대보다 일찍 시작된다. 또한 그들에게 연애와 결혼이 반드시 연결되어야 하는 필연적인 인과관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이 필연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면 섹스 또한 금지의 대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워진다. 연애가 보편화된 시기에 사람들의 연애경험은 급속도로 증폭한다. 연애 경험이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이벤트에 속했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이후 세대에게 연애는 예외적이고 일상과 단절된 ‘사건’이라기보다 일상을 구성하는 되풀이되는 요소가 된다. 마치 이들에게 연애는 매일매일 시장관계 속에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쇼핑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나 마찬가지이다.

 

『리퀴드 러브』는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연애에 대한 고민을 분석한다. <가디언(Guardian)>의 주말판인 <가디언 위크엔드(Guardian Weekend)>의 라이프스타일(Lifestyle) 코너의 관계(Relationship) 섹션은 관계를 고민 중인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게시하고 또 다른 독자들이 그 고민에 대해 코멘트를 하는 게시판 상호작용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연애가 대중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고민에 대한 만화경이 펼쳐진다. 각각의 사연은 절실하다. 절실한 누군가의 사연에 대해 또 누군가는 마치 그것이 자신이 고민인 냥 정성을 다해 매우 친절하게 나름의 충고를 건네준다. 
바우만은 이 게시판을 통해 우리 시대 연애의 풍속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을 유동하는 혹은 부유하는 다른 말로 하자면 매우 불안정한 사랑, 즉 ‘리퀴드 러브’라 불렀다. 리퀴드 러브의 속성은 소비자의 속성과 다르지 않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인 사람이 느끼는 무기력과 리퀴드 러브는 매우 닮았다. 마트에 간다. 샴푸를 사려 한다. 너무나 많은 샴푸가 있다. 그 중 하나의 샴푸를 고르기 위해 샴푸를 비교한다. 샴푸를 비교할수록 결정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샴푸는 너무나 많고, 각각의 샴푸는 각각의 장점과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게 하나의 샴푸를 골랐다. 그랬지만 그 힘들게 고른 샴푸에 대한 충성도는 영원할 수 없다. 언제든 또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새로운 샴푸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가 보편화된 리퀴드 러브의 상태에서 사람들 쇼핑의 패턴을 따르는 연애를 한다. 이 연애의 풍속도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결국 완벽하게 굴러가고, 아주 깔끔한 자동차나 컴퓨터나 또는 통화 품질이 끝내주는 휴대폰이더라도 개선된 신형 버전이 나오고 또 새것이 시중의 화젯거리가 되는 순간 거의 아무런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내던져진다. 파트너 관계가 이러한 규칙의 예외가 되어야 할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리퀴드 러브』 p54).

 

리퀴드 러브가 보편적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연애를 쇼핑처럼 반복적으로 누구나 하지만 연애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연애가 반복되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고민 해결이 아닌 또 다른 고민을 만들어주기에 사람들은 연애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카운셀링을 찾는다. 리퀴드 러브의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썸’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고 조언해주며 심지어 결정불능에 놓인 사람에게 선택지를 가끔 알려주기도 하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은 인기 높을 수밖에 없다. <마녀사냥>을 반복해서 볼 것인지, 『리퀴드 러브』를 펼쳐서 왜 내가 <마녀사냥>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파헤쳐볼 것인지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글_노명우(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리퀴드러브.jpeg

『리퀴드 러브』(지그문트 바우만 저, 조형준/권태우 옮김, 새물결, 2013)

 

<목차>

 

바우만 독해를 위한 한 가지 방법 〡 새로운 희망찾기
서문

 

01 사랑에 빠지기와 사랑에서 빠져나오기
02 고아가 된 성적 동물: 사람 사귀기는 목적인가 수단인가?
고아가 되고 사별당한 현대의성 / 세일 중인 코뮤니타스
03 ‘네 이웃을 사랑하기’는 왜 그렇게 어려울까?
04 함께함/연대의 해체: 인류의 운명인가?

 

후주
옮긴이 후기

 

☞ [사랑과 연애①]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suwon/issue/76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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