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배움터>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관련 책을 읽으면서, 강의 등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육학자, 그들의 사상, 철학을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저 막연히 알고 있습니다. 물론 교육학자나 이론, 철학적 배경을 모른다고 큰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앎이 없으면, 스스로의 학습이 없으면 쉽게 한계에 부딪힙니다. |
프레이리의 생애와 사상
1. 한국사회와 프레이리
프레이리는 비교적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교육학자이다. 1970-80년대 그의 저서 『페다고지』가 소개된 이후로 프레이리의 교육학은 우리 사회에서도 비판적 교육학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사실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변혁의 꿈을 갖고 있었던 대학생들과 운동가들에게 프레이리의 이 책이 갖는 영향력은 컸다. 『페다고지』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필독서로 읽히기도 하였다. 당시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이 책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희망이기도 했고, 현실에 대한 위안이기도 했다. 교육을 통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그런 실천가들의 열망은 『페다고지』를 통해 적극 지지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성취와 함께, 프레이리에 대한 열망도 사라지는 듯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프레이리의 저작들이 하나둘 씩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는 경북대학교 교육학과 출신의 교사와 연구자들의 공이 컸다. 『페다고지』 외의 프레이리의 후기 저작들, 예컨대 『프레이리 교사론』, 『자유의 교육학』 등이 번역되었다. 최근에는 프레이리에 대한 연구들이 국내에서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며, 그 성과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격동의 시절에 절박한 변혁의 요구들이 사회운동가로서의 프레이리를 찾았다면, 이제 교육학자로서의 프레이리를 찬찬히 뜯어볼 수 있는 사회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을까. 또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여러 모순들이 프레이리를 배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면에서 1970-80년대 보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프레이리를 텍스트로서 더 가깝고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가 보다 다양한 이유 때문에 여전히 프레이리를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오늘날 프레이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프레이리의 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그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프레이리가 늘 말하듯, “교육은 수출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이론이 출현한 맥락성을 늘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프레이리 이론은 특히나 그의 교육실천의 산물이기도 하였기에, 그의 생애를 톺아보는 일은 의미 있을 것이다.
2. 프레이리의 생애
프레이리는 1921년 브라질의 헤시페에서 태어났다. 교육자로서의 프레이리 부모의 역할은 훌륭했다.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와 『프레이리의 문해교육』에서 프레이리는 교육자로서의 부모님에게 깊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부모님은 그를 ‘자상함’과 ‘엄격함’의 균형을 잃지 않고 가르쳤다. 특히 글을 배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 깊다. 프레이리의 부모님은 어른들의 글을 억지로 프레이리에게 가르치지 않았다. 프레이리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자신이 만지고 느낀 그 경험의 세계를 글로 표현하는 법을 ‘망고 나무 아래에서’ 배웠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프레이리는 가정은 가난했다. 그가 8살 때인 1929년에는 세계 경제 대공항의 여파가 브라질까지 끼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프레이리는 자연스레 가난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비참한 현실에 대해 눈뜨게 된다. 프레이리는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으며, 기독교는 진보적이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프레이리는 20살에 헤시페 대학 법학부에 진학하게 된다. 그러나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프레이리는 홀로 언어철학 등을 공부하게 되고 학생들에게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일도 하게 된다. 헤시페 대학을 졸업한 프레이리는 1946년 헤시페의 산업복지국(SESI, Service of Industry)의 교육 책임자로 8년간 일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프레이리는 학생, 부모, 교사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반이상주의, 반엘리트주의 교육학의 뿌리를 발견한 것은 이때였다. 기존의 교육 이론(예컨대 피아제이론)들은 “아이들을 때리는 아버지”의 문제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부모들과 더불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프레이리는 깨달았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이때 산업복지국 교육책임자이자 포르투갈 교사로서 당시 헤시페 시장이 주도하여 문해교육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민중문화운동(MPC, Movement for Popular Culture)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와 함께 민중 언어 문제에 대한 연구에도 집중한다. 프레이리의 문해교육방법론이 정교화된 것도 이때였다.
1959년 프레이리는 ‘브라질의 현실과 교육’이라는 논문으로 헤시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 철학, 과학, 문화부 정교수로 임용된다. 교수가 된 후에도 프레이리는 브라질 정부가 추진한 국가문해 프로그램 총괄 책임을 맡는 등 문해교육 실천 활동에 적극 관여하게 된다. 그러나 1964년 브라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프레이리는 체포되어 70일여 일간 투옥되었다가 볼리비아를 거쳐 칠레로 망명하게 된다. 프레이리는 이후 1980년까지 16년간 정치적 망명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 시기는 프레이리의 활동 무대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이를 통해 프레이리의 교육학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프레이리는 칠레 교육부를 도와 농업학교 교육사업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이때 프레이리의 대표 저작인 『페다고지』가 출판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 교육개발연구소에 근무를 하여 활동 영역을 제1세계까지 넓히게 된다. 1970년에는 세계교육협의회(WCC) 교육사무소 자문위원으로 거처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긴 후에 1971년 아프리카 교육활동을 돕는 IDAC라는 교육연구센터를 세워 활동을 본격화 하였다, 이후 프레이리는 상투메프린시페, 기니비사우 등 포르투갈 식민지였다가 갓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교육개혁, 특히 문해교육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시기 프레이리는 식민지 언어였던 포르투갈어로 문해캠페인을 하려는 아프리카국들의 지도자들과 대립하기도 한다. 비문해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 즉 토착어와 민중문화를 바탕으로 문해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프레이리는 다부족국가로 이루어진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회통합을 위해 선택된 포르투갈어 중심의 문해교육정책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레이리의 관점은 관철되지 못했고, 이 때문에 프레이리는 자신의 신념을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1980년 브라질로 돌아온 이후, 프레이리는 브라질의 현실을 재학습하는 동시에 교육학자, 정치활동가, 교육실천가로서 삶을 이어간다. 대학에서 자신의 교육사상을 가르치는 한편, 노동자당(PT)의 창당과 정치활동에 참여한다. 1989년에는 노동자당이 상파울로시에서 승리하면서 상파울로시의 교육감으로 임명된다. 이후 3년 동안 프레이리는 교육행정가로서 교사교육 프로그램 운영, 문해캠페인, 간한문적 교육과정 운영 등 공교육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상파울로 교육감을 그만 둔 이후,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한 1997년까지 프레이리는 저술활동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과 자신의 사상에 대한 보편적인 윤리에 대한 모색 등을 하게 된다.
3. 프레이리의 삶과 사상 읽기
프레이리는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것처럼, 교육사상가, 교육자, 정치활동가, 행정가 등의 삶을 넘나드는 삶을 살았다. 그의 교육에 대한 관심은 학교교육과 성인교육 영역을 넘나들었다. 또한, 자신의 조국이었던 브라질뿐만 아니라, 칠레, 미국, 유럽, 아프리카 등 제1세계와 3세계에서의 삶도 넘나들었다. 프레이리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삶의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발전된 것들이다. 따라서 그의 교육 사상은 그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기도 하며 그가 참여하며 이해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레이리의 저작들을 보게 되면 대화의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자신의 사상을 공유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 이런 삶의 이야기가 녹아든 대화의 방법이라는 프레이리의 믿음이 녹아있다. 앞으로, 프레이리 교육사상의 핵심적인 몇 가지 주제를 여기에서 나누어보도록 할 것이다. 이 과정이 프레이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을 조금이나마 ‘인간화’(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나중에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자)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는 ‘대화’의 계기가 되길 희망해 본다.
글_허 준(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참고문헌>
-. 『파울로 프레이리 읽기』/모아시르 가도치 저/백경숙, 박내현 옮김/우리교육/2012
-. 『교육혁명가 파울로 프레이리』/문혜림 저/학이시습/2012
-. 『페다고지』/파울로 프레이리 저/남경태 옮김/그린비/2002
-. 『문해교육: 파울로 프레이리의 글 읽기와 세계 읽기』/파울로 프레이리, 도날도 마세도 저/허준 옮김/학이시습/2014
-.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파울로 프레이리, 마일즈 호튼 저/프락시스 옮김/아침이슬/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