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삼국유사』 신화철학과 역사의 우물 사이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Oct 2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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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재

『삼국유사』(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4)

  

일연은 민간과 절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폭 넓게 다루면서, 그 속에 담긴 사상, 인생, 종교, 지리, 언어, 음양오행 등에 주목했다. 「기이」편의 ‘첫머리에 말한다[敍曰]’ 에서는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비스럽고 기이한데서 나온 것이 어찌 괴이하다 하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역사의 영역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_ 역자후기에서

 

『삼국유사』를 펼치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연의 『삼국유사』를 옆에 두었다. 정독한 적도 없고, 통독한 적도 없으며 그렇다고 다독의 경험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를 옆에 둔 것은 그것이 역사서여서가 아니라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뇌들보를 뒤흔들어서 상상과 창의를 일깨우고 그것을 크게 종울음 치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때고 나는 목차의 순서 없이 『삼국유사』를 펴놓고 그냥 읽는 것을 좋아한다. 대강의 흐름을 알고 있으므로 어느 쪽을 열든 바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순서를 잡아서 읽는 것이 공부를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이 책은 공부를 위해서 읽기 보다는 불현 듯 어느 세계로 초월하기 위해 읽는 것이 더 낫다. 신화적 판타지로 초월하든 현실의 저 너머 먼 역사의 세계로 초월하든, 또 깨달음의 사건들이 펼쳐졌던 종교적 체험으로 초월하든 상관없다.

 

내가 오래 전부터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를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오래 전의 책은 옮긴이의 공부가 무거워서 그랬는지 책을 펼치면 통 무슨 말인지 헷갈렸다. 한자를 한글로 풀어쓴다는 것이 참으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이었을 테다. 한자와 한글이 뒤섞여서 앞을 읽으면 뒤가 어지럽고 앞을 놓으면 뒤가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늘 새로운 번역본을 찾아 읽어야 했다.
그동안 이사를 10여 차례 이상했고 눈에 들지 않았던 책들은 방기해서 현재 남아있는 『삼국유사』는 세 권 정도다. 그 중 내가 가장 읽기 편해하는 것은 역시나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이다. 아무래도 역자는 앞의 선배세대들이 번역했던 것들을 참조해서 번역하므로 글의 흐름을 빠르게 다잡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김원중 선생이 번역한 『삼국유사』는 지금의 문어체에 맞게 번역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세세하게 각주를 달아서 오래된 말들의 뜻을 살폈다. 게다가 그의 번역어는 다분히 문학적이어서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나는 그 느낌이 참 좋다.
더불어 읽는 또 한 권이 있는데 이재호 선생이 옮긴 『삼국유사』(솔, 2007)이다. 두 분 선생의 역어는 학자적 성품을 잘 드러낸다. 우리말의 고풍스러움과 품격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고 다른가를 살피는 매력이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서술해 말한다. 대체로 옛날 성인이 예악으로써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써 가르침을 베푸는 데 있어 괴이함과 용력과 패란과 귀신은 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왕이 장차 일어날 때는 부명과 도록을 받게 되므로, 반드시 남보다 다른 점이 있었다. 그래야만 능히 큰 변화를 타서 제왕의 지위를 얻고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이재호

 

“첫머리에 말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풀려 하면 괴이, 완력, 패란, 귀신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날 때에는 부명을 받고 도록을 받는 것이 반드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고 그런 뒤에 큰 변화가 있어 천자의 지위를 장악하고 [제왕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 김원중

 

어떤가, 그 차이를 알겠는가? 말의 표현방식이 거의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 이 두 분이 표현하는 방식은 아주 다르다. 이 문자언어의 차이를 느끼면서 읽는 맛을 안다면 『삼국유사』를 읽는 맛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알게 될 것이다.
자, 그런데, 이 책의 첫머리에서 말하는 첫 문장이 요즘 화제다. “대체로 옛 성인들이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로 가르침을 베풀려 하면 괴이, 완력, 패란, 귀신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부분인데, 이것은 『논어』「술이」편에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 怪力亂神)’이라 말하는 것에서 연유한다. 주자(朱子)는 이에 대해 괴(怪)는 본 모양과 달라서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력(力)은 올바르지 못하게 힘을 쓰는 일이며, 난(亂)은 도리를 어그러뜨리는 일이고, 신(神)은 바르지 않은 것이라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궁구해서 이치를 알아낼 수 있는 대상도 아니라고 풀이했다. 그런데 일연은 이를 반박하며 글을 쓴다. 그러니까 제왕이 일어난 때는 큰 변화를 타야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큰 변화가 무엇일까? 괴력난신이다.
올해 <SeMA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의 박찬경 예술감독은 국제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괴력난신을 말하라”를 주제어로 내세웠다. 비엔날레 주제어는 “귀신, 간첩, 할머니”다. 공자가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을 21세기에 들어서 ‘말하라’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괴력난신’은 예술의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다. 더군다나 아시아적 세계관에서 ‘괴력난신’이 차지하는 삶의 서사는 우물신화의 거대한 미리내 숲만큼이나 크고 깊지 아니한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 일연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유학적 관점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불교적, 설화적 요소를 보완하려 했고, 특히 민족 주체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 역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삼국유사』는 역사 문헌에만 의존하려는 일부 유학적 역사관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와 함께 읽어 볼 책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와 임방이 지은 『천예록(天倪錄)』을 권한다. 이 책들은 21세기 디지털 판타지가 판치는 세계에서 스스로 피워 올릴 수 있는 동아시아의 독특한 판타지이며 신화철학이기 때문이다.

 

글_김종길(미술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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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14)

 

<목차>

 

일러두기

 

권 제1
권 제2
권 제3 
탑상 제4
권 제4
권 제5
감통 제7
피은 제8
효선 제9

 

발문 633
작품 해설 636
역자 후기 645
작가 연보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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