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절망의 시대, 내가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Oct 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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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재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대담, 김경원 옮김, 메멘토, 2014)

 

어느 누구의 말처럼 삶은 우연으로 점철된 사건의 연속이다. 당신의 국적은 사실 우연이다.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갖도록 만든 어떤 확고한 예정이나 필연은 없었다. 당신이 태어난 해, 당신을 만들어준 부모, 그 모든 것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연은 냉혹한 표정을 짓지는 않지만 그 우연이 우연하게 태어난 당신의 몸 위에 한번 걸쳐지면, 당신은 그 우연의 결정 영향력 범위를 쉽게 떠날 수 없다. 우연이라는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나,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오는 그것을 우리는 운명이라 부른다.

 

사실 당혹스럽다.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히 결정되었음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만약 운명이 있다면 그리고 그 운명이 가혹하다고 느껴진다면 그 운명의 근원은 신의 뜻이라든가 혹은 벗어날 수 없는 저주처럼 냉혹하고 가혹하고 무게 있는 결정의 과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그 운명의 기원이 고작 우연이라니. 58년 개띠로 태어났다면 그건 우연이지만 58년 개띠로 한국인으로 태어났기에 당신이 짊어져야 할 운명은 당신의 어깨 위에 내려  앉은 깃털처럼 절대 가볍지 않다.

 

산다는 것은 절대 간단하지 않다. 산다는 것은 만만하지 않은 과제이다. 그래서 ‘산다는 것’보다는 ‘살아낸다’라는 표현이 삶의 그 실체에 더 적합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 우리가 ‘요순시절’에 살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렇다. 태평성대가 아닌 시대, 이 책의 제목처럼 ‘절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우리에겐 그 시대를 견딜 수 있는 어떤 특단의 비법이 필요하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이라는 책은 제목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한국에 이미 『하류사회』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1950년생 우치다 타츠루와 1958년생 오카다 도시오가 2013년 일본 사회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다. 이 책은 그 대담을 텍스트로 기록했다. 대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두 남자의 대담은 매우 경쾌한 톤으로 이루어진다. 대담의 경쾌한 톤은 대담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너무나 진지하고 심각하기에 독자가 책을 읽고 염세주의로 빠질 수도 있는 위험성을 견제해주는 장치이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대화의 톤이 발휘하는 매력에 있다.

‘절망의 시대’가 아주 단기간의 예외적인 상황이라면 ‘절망의 시대’에 대해 비장한 어조로 웅변할 수 있다. 하지만 ‘절망의 시대’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절망의 시대’가 매우 지속적인 시스템이 되어 버렸다면, 그 시대를 상대로 사자후 토하기는 체력적으로 오래 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절망의 시대’가 장기화 되면,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또한 전속력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100미터 주법이 아니라 마라톤 주자의 뜀박질을 닮아야 한다. 그것도 혼자 뛰는 고독한 마라톤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뛰는 마라톤이어야 한다. 우치다 타츠루와 오카다 도시오는 유머러스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절망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함께 뜀박질을 하는 친구와도 같다. 당연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이들의 마라톤 뜀박질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독자들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들과 함께 마라톤을 시작하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들이 뜀박질을 하며 나누는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은 어찌 보면 소박하게 보일 수도 있다. ‘절망의 시대’를 살아내는 방법으로 이들은 작은 증여의 공동체 건설을 제시한다. “맞아요. 그런 작은 커뮤니티를 조물조물 만들어나가고 싶답니다. 오백 명쯤 되는 규모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인맥이 풍부한 사람은 연줄을 소개해주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내고 이것만 배우면 밥은 먹을 수 있어하며 기술을 가르쳐주는 등 상호부조의 호혜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싶어요.”(104쪽)
이 책에서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존법이라고 강조하는 ‘증여’의 방법은 ‘절망의 시대’를 완전히 뒤집어 근본적인 포매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맥빠지는 허무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궁극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에게 이들의 대담은 고작해야 ‘한담(閑談)’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시장체제 자체의 대체 없이는 악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들의 인식은 무수히 되풀이 되었던 공상적 유토피아론의 일본판 현대 버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의 주장에선 공상적 유토피아론의 흔적뿐만 아니라 과거의 공동체에 대한 낭만적 기대까지도 엿보인다.

 

“지금까지 전후 일본사회는 예외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했습니다. 배우자가 없어도, 동료가 없어도, 돈만 있으면 혼자서도 유쾌하게 살 수 있었지요. 아니 도리어 혼자가 훨씬 자유롭고 쾌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공동체를 유지할까라는 경험지의 소중함을 잊어버렸습니다. 공동체가 없어도 돈만 있으면 필요한 것은 전부 시장에서 상품의 형태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식사, 쾌적한 주거공간, 안전장치 등등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었어요. 가사의 아웃소싱이 진행될수록 청소, 빨래, 다림질, 눈 치우기를 모두 전화 한 통으로 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돈, 돈,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속에 깊이 침투해버렸습니다.”(252p)

 

하지만 이들 주장의 낭만성과 과학적 부족함을 따지는 것보다 더 급한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당장 궁극적 유토피아가 실현되어 ‘절망의 시대’와의 완전한 절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바닥을 알 수 없는 절망에 빠질 것인가? 아니면 ‘절망의 시대’에 대한 완전 대개조는 비록 아닐지라도 ‘절망의 시대’를 살아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 혹은 중간 범위의 유토피아라는 피신처라도 모색할 것인가?

‘절망의 시대’에 대한 종말론적 완전 대개조를 기대하는 사람은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세상은 타락하였으나, 타락한 세상과의 완전한 절연의 가능성이 지금 당장에 나타나지 않은 ‘절망의 시대’를 살아내며 일단은 생존하려는 목표를 지닌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책을 맺는 이들의 제안은 이 책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해준다. “물론 독자 여러분은 이 대담을 웃으면서 읽으셔도 상관없지만, 잠시 동안만이라도 손에서 책을 떼고 스스로 내가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252) 대체 ‘내가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는 어떤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은 독자의 몫이다.

 

글_노명우(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jpg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우치다 타츠루, 오카다 도시오 대담, 김경원 옮김, 메멘토, 2014)

 

<목차>

 

한국어판 서문
머리말

 

1장 정어리처럼 되어가는 사회
2장 노력과 보수에 대해
3장 확장형 가족
4장 신체가 기본인 인간관계
5장 증여경제, 평가경제
6장 몰락을 준비하다
7장 연애와 결혼

 

맺음말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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