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행복한 도시엔 과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Sep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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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찰스 몽고메리, 윤태경 옮김, 미디어 윌, 2014)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낫살이나 먹고서도 천둥벌거숭이처럼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설치는 건 어리석다. 많은 사람이 그리 믿는다. “고작 당신 따위가 떼를 쓴다고 바뀔 세상이라면, 난세라고 부르지도 않았소.”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드라마 「정도전」에서 권신 이인임이 햇내기 정도전에게 던진 일갈은 불변의 진리인가?
당신이 사는 도시 역시 세상처럼 완강하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뭔가 잘못됐고,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하지만 ‘고작 나 따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정녕 그럴까?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의 저자 찰스 몽고메리의 생각은 이인임과 다르다. “도시는 변화할 수 있으며,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캐나다 출신인 이 저널리스트는 ‘바로 당신’이 그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본다.

 

절박함이 당신이 사는 도시를 바꾼다

 

책의 부제가 더 눈에 들어온다. ‘행복한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의 절박한 탐구의 기록들’. ‘행복한 도시’와 ‘꿈꾸는 사람들’은 낯익다 못해 진부할 지경이지만, ‘절박한 탐구’는 꽤 신선하다. 궁즉통 통즉변(窮卽通 通卽變). ‘고작 나 따위’일지라도 제대로 절박하다면 결과는 다르다!
물론 시장의 아이디어로, 시민의 노력으로 도시를 바꿔낸 사례는 근 10년 전부터 국내에 꽤 소개되었다.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 출간(2006년)을 전후해서다. 이를 계기로 자치시대 뭔가 특색 있는 ‘아이템’을 찾는 시장들은 앞 다투어 세계의 사례들을 찾아다녔다. 도시 문제를 시민의 힘으로 풀어보자는 움직임도 과거에 비해 발걸음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99% 시민은 여전히 ‘고작 나 따위가 떼를 쓴다고 바뀔’ 도시가 아니라는 체념 속에 산다. 찰스 몽고메리는 이 체념 자체를 흔들고 싶어 한다.

 

몽고메리는 엔리케 페날로사 전 보고타 시장 얘기로 허두를 뗀다. 페날로사는 시 전역 차량 운행 없는 날을 성공시키고, 가히 교통혁명이라 할 트랜스밀레니오 버스 시스템을 도입한 인물이다. 몽고메리는 페날로사와 함께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보고타 시내를 자전거로 돌면서, 이처럼 변화를 이끌어낸 세계의 도시들을 돌아보고, 그 동력을 탐구해 보자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책의 마무리는 자기 마을의 공동체성을 되살려 낸 보통시민 마크 레이크먼의 이야기다. 격자형 도로망에 갇힌 전형적 외곽 도시 셸우드(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 시)는 시 당국에 맞선 레이크먼의 용기 덕분에 광장(공유 공간)을 조성하고, 이웃을 돌볼 줄 아는 도시로 거듭나는 중이다. 몽고메리가 하고픈 말은 간단하다. 행복해지고 싶소? 마크처럼 용기 있게 당신의 도시를 바꾸는 일에 도전해 보시구려.

 

여든 살 노인이 안심하고 다닐 길부터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는 유독 도로와 교통에 관한 장이 많다. 당연하다. 북미대륙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퍼진 확산도시(city sprawl) 모델은 자동차의 보급과 관련이 깊다. 도시 디자인 역시 자동차 도로망을 기반으로 한다. 도로와 교통이 도시문제를 푸는 첫 단추이자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므로 도시를 바꾸려면 여기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몽고메리는 다시 묻는다. 도로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인가? “도로는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도로는 모두 역겹다. 그렇다면 왜 도로가 여전히 존재할까?”(르 코르뷔지에)

 

도로를 마음대로 건너가는 일이 ‘죄’가 된 건 1930년대 미국 대도시에서부터였다. 그 이전엔 도로의 주인은 사람이었다. 사고가 나면 자동차가 유죄였고, 책임을 져야했다. 자동차산업의 강력한 입법로비가 성공하면서 사람은 도로에서 쫓겨났다. 게다가 주인이었던 시절을 까맣게 잊었다. 특히 서구 관습을 통째로 받아들인 우리는 ‘사람 위주 도로‘라는 생각 자체를 낯설다. 예컨대, 지난해 봄 여름 수원시가 시도했던 도로시(도로에서 노는 시민들)는 도로의 주인을 찾아가는 일이라기보다 흥미로운 발상 전복 이벤트정도로 받아들여지고 말았다. 아이러니다.
비포장 4차선 길이 있다고 치자. 예산이 부족해서 2차선만 우선 포장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 당연히 자동차 도로를 먼저 닦을 것이다. 하지만 엔리케 페날로사 같은 사람의 판단은 다르다. 그들은 2차선을 잘 포장하여 자전거도로와 보행자 전용로로 써야 한다고 본다. 여든 살 노인이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부터 만드는 도시가 행복도시라는 것이다.
네델란드에는 본네프(woonerf)라는 도로가 있다. 본네프의 규칙은 딱 두 가지다. 첫째,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 자동차는 모두 같은 권리를 갖는다. 둘째, 본네프에서는 아무도 사람의 빠른 걸음 이상의 속도로 이동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사람 중심이다. 이 두 규칙이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렸다고 가정해 보라. 천국에 백 걸음은 성큼 다가선 것 같지 않겠는가. 다시 물어 보자. 우리는 지금 이 도시에서 행복한가?

 

가보고 싶은 도시가 많아진 까닭

 

요즘 부쩍 가보고 싶은 도시가 많아졌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투게더』를 읽고는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몹시 가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도 <노이에스 무제움(Neues Museum)>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커졌기 때문이다. 세넷은 파괴된 협력의 수리를 논하는 대목에서 노이에스 무제움을 구조 변경 수리의 대표적 사례로 든다.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3분의 2이상 부서지고 손상된 이 박물관의 외관을 그대로 살리면서 박물관 건물 자체를 하나의 전시품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고 한다. 파괴의 흔적을 지워버리기는커녕 ‘역사미학’의 일부로 되살린 발상. 더 늦기 전에 내 눈으로 꼭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 나의 도시도 그러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를 읽으면서도 가보고 싶어진 도시가 많다. 코펜하겐이 만들어낸 보행자 천국 도심을 거닐어보고 싶고, 자넷 사딕-칸이 진두지휘해 조성했다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메디슨 스퀘어 공공 공간도 거닐어보고 싶다. 파리에서 벨리브 자전거도 타 봤으면 좋겠고, 트랜스밀레니오 버스를 타고 보고타 시내를 달리면서 찰스 몽고메리의 설명과 묘사가 참말인지 확인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딱 한 도시만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밴쿠버를 꼽겠다.
밴쿠버는 고층 건물이 즐비한 대도시다. 하지만 앞으로 트인 바다와 뒤로 펼쳐지는 산맥의 풍광을 도심 어느 곳에서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빌딩과 주택설계 규정 자체가 그리 돼 있단다. 경치 좋은 곳은 먼저 차지하는 자가 임자라는 천박한 인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더구나 그러한 도시 디자인이 시의회의 자율 규제로 가능하다니 사뭇 부럽다. 게다가 도심에 더 많은 인구가 살 수 있도록 도로를 줄여서 주택을 짓기로 했다니…. 그 동력을 배워오고 싶다.

 

“행복한 도시엔 과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찰스 몽고메리의 미덕은 복잡한 도시문제를 간명하게 짚어가면서도 이를 단순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욕구가 상충하고 충돌한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 도시에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자동차를 타고자 하는 욕망도 크다는 걸 인정한다. 도시인들은 친절하고 사교성 있는 이웃을 원하지만 반대로 자기(가족)만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도 갈망한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아리송한 이상한 도시 관련 법규들의 힘이 얼마나 큰 지, 부동산업자의 탐욕이 얼마나 대단한 지 무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는 도시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법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과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314p)

 

공정한 도시는 모든 시민이 괜찮은 학교와 편의시설에 똑같이 접근할 수 있는 도시다. 이런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빈민층 거주 구역에만 집중 건설하는 정책을 중단하고, 중산층 마을과 부자 마을에도 골고루 건설해야 한다. 부자 동네 주민들이 이러한 주거지 혼합에 격렬히 반발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갈등을 얼마나 잘 조정하고 공정한 도시를 건설하는지가 그 사회가 얼마나 문명화되고 윤리적인 민주 사회인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396p)

 

시권(도시 거주민의 권리)을 확보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도시건설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 특히 토건자본의 힘은 종적으로 횡적으로 굳건하고 막강하다. 그들의 프레임은 도시 주민 대다수의 머릿속에 마치 진리처럼 박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도시 거주자 모두의 것이라는 자각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도시에서 행복한가라는 절박한 물음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 도시를 어떤 방식으로 행복하게 만들어갈 것인가? 이것이 다음 질문이여야 한다.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jpg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찰스 몽고메리, 윤태경 옮김, 미디어 윌, 2014) 

 

<목차>

 

서론_ 행복도시의 시장, 엔리케 페날로사

 

CHAPTER 01. 도시는 언제나 행복을 꿈꿔왔다
CHAPTER 02. 교외로 밀려나는 사람들
CHAPTER 03. 자동차 통근의 시대
CHAPTER 04. 도시를 둘러싼 잘못된 생각들
CHAPTER 05. 도시, 자연과 이웃에 길을 묻다
CHAPTER 06. 도시의 사회성
CHAPTER 07.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CHAPTER 08. 자동차 없는 도시
CHAPTER 09. 도시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CHAPTER 10. 행복도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
CHAPTER 11. 교외를 되살리려는 노력들
CHAPTER 12. 도시를 구한 영웅들

 

에필로그_ 행복도시, 결국 시민에게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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