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5

Standby 교육세미나 「학교 너머 배움을 찾아서」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Jun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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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세미나 「학교 너머 배움을 찾아서」
- 문탁 네트워크, 이반 일리히와 함께 한 8주간의 만남


"학교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대안은
사람들에게 같은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과
자신의 현재 관심사를 나눌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주는
 네트워크 또는 서비스일 것입니다."
 - 이반 일리히


올해 초 공부, 학교, 교육에 대한 프레임 자체를 고찰하고, 배움을 사유하는 세미나를 준비해보자 생각했을 때, 세미나를 이끌어주실 분으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문탁 네트워크》의 이희경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어 이희경 선생님을 만나 뵙고 취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내용 및 일정을 조정, 같이 읽을 자료를 제본하는 등 준비는 즐겁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였으니 바로 세미나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선생님께 의견을 여쭈기도 하고, 문탁 네트워크의 세미나 이름을 살펴보기도 하고, 생각이 잘 안 날 때 하는 버릇대로 도서관 서가에서 검지로 먼지 구덩이 책 머리를 쓱~ 훑으며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세미나 내용을 적절히 표현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는데요. 그러다 앎과 삶이 일치하는 배움의 형식, 비전을 모색하는 문탁 선생님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는 세미나이기에 굳이 멋진 단어가 들어가지 않더라도, 그 발걸음이 드러나는 이름이 적절하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렇게 「학교 너머 배움을 찾아서」 라는 세미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교육학세미나 (2).jpg

 

4월 첫 만남은 참여하신 분들이 각자 서 있는 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으로 꾸려졌습니다. 일반 학교 선생님, 혁신학교 선생님, 대안학교 선생님, 생협 활동가, 대학생, 학원 강사, 홈스쿨링을 하고 계신 분, 상담사, 대학 조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배움의 현장에 있는 분들이 함께 하셨는데요. 흥미로운 것은 학교라는 제도, 교육이라는 형식 너머의 배움을 이야기 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의 과반수 정도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벼운 인사 후 모두는 이희경 선생님이 생각하는 학교 너머의 배움은 무엇일까 궁금해 하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이반 일리히,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이야기는 80년대 이후 새로운 교육적 실천에 대한 계보 그리기로 시작되었습니다. 공교육 내에서 다른 교육을 고민하던 공교육론자 그룹과 공동육아, 대안교육의 탈학교론자 그룹의 논쟁, 94년 교육개혁, 사회교육분야에서의 야학, 시민교육, 지역사회개발교육, 평생학습, 인문학 공동체 등등.

 

학교 너머의 배움, 학교 밖 교육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에서 많은 논의와 실천이 있었고 실제 이희경선생님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으로, 대안학교 공동설립자로, 대학원에서 평생교육을 공부하며 직간접으로 그 궤적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학교를 넘는 교육에 대해 선명한 개념화나 실천을 찾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교육학세미나 (3).jpg"학교를 넘는다고 했을 때 학교의 형태 뿐 아니라 학교에서 하고 있는 교육의 내용, 학습을 넘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원래 내용이 형태에 안 담길 때 대안, 혁신 등 다른 형태의 교육을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그렇다면 더 근본적으로 자율성, 창의, 개성 등의 가치를 담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뭘까? 이런 질문을 밑도 끝도 없이 해서 계속하게 되는 과정이었어요. 학교에서 마을에서 공부한다는 건 뭘까?"

 

그러한 와중 다시 만난 한 사상가의 저작들을 통해서 학교 밖 배움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바로 이반 일리히(Ivan Illich, 1926~ 2002)입니다.
1971년에 세상에 나온 이반 일리히의 『Deshooling Society』는 『학교 없는 사회』로 번역되어 알려져 있습니다. 학교가 없다니! 학교를 폐지하라니! 얼핏 많은 사람들이 큰일 날 소리라고 놀랄 수 있는데 실제 일리히가 제기했던 문제는 학교가 아니라 ‘학교화schooled society’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앎에 대해 깨우치고 느끼는 게 없어도 학년이 올라가고 진학하게 됩니다. 배운다는 것을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이 특정한 제도에 의존하게 되는데 스스로 삶을 만들어내는 길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전문가와 자격증에 의존하는 삶에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는지의 능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것을 정치라는 교과목으로 담아내려 하고, 어떻게 함께 먹고 살 것인가를 고안해 내거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담아내 했던 거죠. 우리는 원래 세상 어디에서나 배울 수 있고, 강호에 숨은 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스승을 삼았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를 배우는데 앎과 삶의 일치라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배워야 하는데 그 배움을 학교라는 형식에 얹자 결과적으로 삶과 앎이 분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이반 일리히가 『학교 없는 사회』에서 문제 삼았던 학교의 모순입니다.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 건강, 사랑, 안전, 평화 같은 다른 가치 역시 의료제도, 결혼제도, 안전장치, 평화조약 같은 특정한 제도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일리히는 이것을 ‘가치의 제도화 institutionalization'라고 했고, 가치의 제도화가 팽배한 사회를 ‘학교화된 사회 schooled society’라고 말했습니다. 사회가 ‘학교화’ 될수록 스스로 삶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능력은 점점 쇠퇴합니다. 제도로부터 삶이 철저히 소외되는 상황. ‘학교화 된 사회’에서 모두는 무능력한 신체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지요. 자기 삶을 관료들이 제공하는 정책과 제도의 서비스에 맡겨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을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갑을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사실 나한테 있는 것을 모르고 바꾸기 위한 체계를 꾸리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학교화’는 꼭 학교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떤 대안적 가치를 지닌 조직, 작은 독서 모임에서도 ‘학교화’는 일어날 수 있고 또 반대로 학교 안에서도 ‘학교화’되지 않는 영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기에.


문탁 네트워크, 마을에서 만나는 인문학 공간

 

“우리는 신조차도 할 수 없는 것, 즉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 누군가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우리들의 ‘교육학적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
- 이반 일리히


교육학세미나 (4).jpg

▲ 세미나 7주차 문탁 탐방(사진:임은석선생님)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지, 어떻게 새로운 삶의 양식을 생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문탁 네트워크》가 만들어졌습니다.
  
문탁 네트워크의 사례는 매체를 통해 소개된 적도 있어서 기사를 읽고 처음 방문한 분이 “여기 거실에서 모여서 공부 시작했다는 사람은 누군가요?”라는 묻는 일도 있었는데요. 알려진 대로 시작은 2009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이희경 선생님의 거실에서 동네 친구 9명과 함께 시작한 이반 일리히 세미나 였습니다. 첫 책은 『성장을 멈춰라!-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Tools for Conviviality』였구요.

 

문탁 네트워크는 <인문학 공간 문탁>, <마을작업장 월든>,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로 이어지는 인연과 사건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권없는 학교>의 실험을 거쳐 올 하반기 탈학교 미니학교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학세미나 (1).jpg

 

길지 않은 8주간의 세미나 동안 이희경선생님의 궤적, 이반 일리히의 사상 뿐 아니라 대안학교, 혁신학교에 관한 아티클 읽기, 자기주도 학습 등에 대한 이슈에 대한 논의, 학교에 가지 않고 마을에서 활동하는 청년 목수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문탁 방문 등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차시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들을 짧게나마 옮겨 봅니다.

 

-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기쁘다. 전에는 항상 배움은 항상 좋은 것, 배우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는 도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 세미나를 통해 과연 삶과 교육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다. 학교가 싫다는 생각을 했어도 그 제도 자체의 영향이 나한테 많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좋은 강의 듣는 것도 좋지만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더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 외국 같은 경우엔 다양한 방식으로 홈스쿨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학교는 안 다녔지만 대학은 가야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걸 보면서 뭔가 아닌 거 같긴 해도 사회적 시선이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못한다. 또 학교에 아예 안 다닌 아이들과, 학교에서 상처 받고 나온 아이들 사이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마을 학교가 현실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잘 꾸려져서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 처음 세미나에 참여할 때는 마침표를 찍으려고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 고민했던 것을 선생님이 전문적으로 해석해주시는 것이었다. 속 시원했다. 그렇지만 마침표를 찍었다기 보다 쉼표를 찍은 것 같다. 전에는 시스템이 많은 것을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선생님을 안일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없어지면 교사들이 고수가 되어야 할 것이고, 고수라는 게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데 교사들의 불안이나 어려움은 어떻게 감당해야하는 것 일까하는 물음이 생겼다.

 

- 현직 중학교 과학교사이다. 학창시절에는 인문학을 단순 언어유희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말하면 이 말, 저 사람이 말하면 저 말. 하지만 나이를 들면서 세상을 알면서 인문학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참여하게 되었다. 느낀 점은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는데, 입에 대보지 않은 음식을 통해 새로운 미각을 찾은 느낌이다. 커피라는 게 단순 먹기 위해서 마시는 게 아닌 것처럼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인문학의 향기를 마심과 동시에 새로운 각성효과를 얻었다. 사실 다 아시죠? 하는 사람을 들어본 적 없고, 다 읽었죠? 하는 책을 읽어 본적 없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긴 했는데 내가 수업할 때 아이들이 마음이 이런 것일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쉽고 평범하지만 강하게 울릴 수 있는 말을 어떻게 정제해서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가 하나의 과제를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실질적으로 세미나를 통해 얻게 된 것이 있다면, 만약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있을 때 예전의 나라면 어떻게든 학교 안에 남도록 설득하고 회유하려 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은 같았겠지만 경험치가 적어서 어떻게든 제도 안에서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 밖에도 다른 배움이 있다는 정보를 줄 수 있고 불안에서 좀 벗어날 것 같다. 그리고 학교에서건 그것을 벗어나서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공부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다라는 말을 진심을 담아서 전달할 수 있을 거 같다. 또 교사로서 속 좁은 생각일 수 있는데 이런 학교 밖 교육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이번 세월호 참사 때 분향소에 가서 겪은 일인데 많은 분들이 먼저 구조되어 나온 선생님을 비난하시더라. 선생님도 똑같은 사람인데 아무도 교사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교사로서의 책무와 사회적 역할에만 초점을 맞춘다. 오히려 학교 밖 교육이 많아지고 다양화된다면 지금 쏠려있는 교사의 부담감을 좀 나누어질 수 있지 않을까. 더 유연한 사고로 다른 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청소년 지원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이 문제일까를 생각했다.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생각이 멈췄다. 이야기는 흐르는데 나는 멈춰 있다 보니 긴 시간이 흘러도 짧게 느껴졌다. 왜 공감하지 못했을까. 내가 만나는 학생들은 사실 어려운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제도권 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어떤 한 부분만 지원이 주어지면 잘 할 수 있는 상태이고 그럴 의지가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제도나 사회를 탓하지도 않는다. “난 어떤 게 하고 싶은데 무엇이 부족하다.” 고 말하면 그럼 우리랑 같이 가자하면 되었다. 제도가 잘못했다고 제도 전체를 고치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보니. 탈학교 학생들은 아주 소수이다. 성향이 다르고 의지가 있어서 다른 길로 걸어간들 결국 사회라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반 사회생활의 경험을 보면 그나마 학교가 합리적인 경우가 많다. 탈학교 아이들이 잠시 다른 길로 갔다가 사회로 돌아왔을 때 과연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면 중간 과정에만 도움을 줘도 나중에 다시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멈췄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미나를 통해 배운 것은 내가 보고 느끼지 못했다고 공감 못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벽을 쌓아왔던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가 경험했던 사회를 똑같이 걸어 간다면 좌절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동안 편협한 생각을 해왔던 건 아닌가 싶었다. 이들이 뭔가를 찾고 있고 거기에 도움을 준다면 일반 학교에 목메고 있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여지가 있을 거다 라는 걸 느꼈다. 특히 문탁을 다녀오고 하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안 되는 건 아니다 라는 걸 알았다.

 

“교육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학교 밖에 있으면 파라다이스고 학교 안에 있으면 안 좋은 것인가? 각자의 문제가 있을 텐데, 우리는 공통의 문제를 만들 수 있을까?” 등 나누고 싶고 많은 물음을 남긴 채 세미나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계속될 것입니다.

 

글_이재은(수원시평생학습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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