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생각하라 ? 네이밍에도 매뉴얼이 있다
네이밍과 기획서 작성의 유사성
「이슈&인물」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 및 인터뷰를 준비할 때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광의로 해석해서 평생학습과 연관성이 있는지, 구독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등을 검토하여 취재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대개는 기사 작성을 마친 후 핵심 알맹이를 파악하여 헤드 카피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번 호의 경우에는 이전과는 완전 반대로 헤드 카피를 미리 정한 후에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호 인터뷰이인 정신(본명 정경아)씨는 지난 연말 저희 수원평생학습관에서 초빙하여 직원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였습니다. 일전에 웹 서핑을 통해 정신씨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는데 내용을 보니 네이밍의 기본 툴이 오직 정신적 창작의 과정이 아니라 무수한 단어의 연관성과 조합을 통해 이뤄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결국 손을 통해 사고를 진전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재미있겠다 싶어 저희 학습관에 워크숍 진행 요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손으로 생각하라”는 카피가 떠올라 취재 리스트에 저장을 해 두었다 오늘에서야 취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손으로 생각하라”는 카피가 저는 마음에 드는데 너무 자뻑이 심한가요?
오래 전 주제넘게도 기획서 작성법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얘기 한 것 중의 하나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거든 일단 빈 종이에 한번 끄적여 보라’ 였습니다. 머릿속에서의 연상 작용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단어든 문장이든 실제로 기록해보면 예상치 못한 단어나 문장이나 생각의 편린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그런 것을 일정한 툴에 근거해 로직화하면 그나마 머리로만 고민하던 문제가 조금 풀리기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의 관점에서는 네이밍이나 기획서 작성이나 유사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남과 연예인의 가명
이름은 사람뿐 아니라 사물, 상품, 프로그램 등 세상 만물에 두루 쓰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그것의 특성과 정체성 혹은 지향과 고집을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사람 이름과 관련해서는 저의 아픈 가족사가 떠오릅니다. 남아 선호사상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 줄줄이 딸만 세 명을 낳은 제 어머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셋째 누님을 낳고는 안되겠던지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누님의 이름을 청하게 되었고 그 덕인지 제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셋째 누님의 이름은 유남입니다. 있을 유에 사내 남. 막내 누님 이름의 정체성은 오직 아들 낳는 것에 있으니 당사자로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특히 연예인들은 자기 이름이 좀 순박(?)하거나 어감이 좋지 않은 경우 대부분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네이밍은 평생학습 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결코 피해갈 수 없는 고난의 장애물과 같습니다. 유사한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더 시민들의 간택을 받기 위해 참신하고 톡톡 튀면서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프로그램명 작성을 위해 아마 오늘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네이밍 작성 노하우를 살짝 공개하려고 합니다. 온전히 다 소개를 하면 정신씨의 생계가 막막해질 수 있기 때문에 샘플 정도만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도 더 궁금하시다면 500원.
그리고 이번 지면 강좌를 하는 강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정신씨의 프로필을 잠시 소개합니다.
대학에서 광고창작을 공부한 후 TBWA KOREA의 카피라이터로, NHN의 책임 마케터로 일했으며 KTF <DRAMA>, SK TELECOM <JUNE>, 주식회사 홍진경 <더 김치>,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등의 브랜드 네이밍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과 2012년 가을 학기 <고급 아이덴티티, 담당교수 조현> 과정에서 「콜마이네임」 을 강의했습니다.
정성원: 카피라이터나 마케터는 기업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업무, 자본주의 일선에서 창작물의 배타적 권리에 기반해서 일을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네이밍 방법을 강의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재산을 공유하는 일인데 이렇게 갑자기 삶의 궤적이 달라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신: 저도 제가 왜 이럴까 생각을 해 보기도 했는데요, 저는 지금 이태원 주민들과 주민일기라는 책을 낸다든가 주민학교를 한다든지,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 어린 시절이 있는 거예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슈퍼마켓을 하셨는데 당연히 사람들이 모이면서 시끌벅적하고 일종의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했었죠.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 같아요. 다만 직업 선택을 할 때는 제가 잘 몰랐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이런 일이 직업이나 삶의 방식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죠. 제 본명인 <경아 슈퍼>가 일종의 조기 교육의 산실이지 않았나 생각해요(웃음). 늘 새로운 상품들이 들어오고 소비자에 의해 선택되고, 그런 반응을 보게 되면서 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체화되는 것이 있었고 그런 제 원형질이랄까, 함께 하는 것, 함께 나누는 것이 지금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성원: 홈페이지를 보니 이름 짓는 것을 음식 만드는 법에 비유하면서 일종의 네이밍 매뉴얼을 만든 것을 보았는데, 그것이 좀 인상 깊었습니다.
정신: 이름 짓는 것을 막연하게 생각하면 참 어려운 일인데요, 음식을 만들 때 재료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음식을 하기 전에 쇼핑(Shoping)을 하게 되는데 그 날것만 가지고는 음식이 되지 않죠. 당연히 적정하게 섞는(Mixing) 과정을 거쳐야하죠. 이름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치면 좀 더 쉽고 편하게 네이밍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음식과는 달리 이름의 경우에는 누군가 사용하고 있거나 법적으로 등록이 되어 있으면 사용이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 만든 이름을 법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찾아보는(Searching) 과정이 필수입니다. 이 영어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스미스 이론’이라고 했다가 이 명칭을 좀 더 쉽게 표현하기 위해 요즘은 한글 자음을 따서 △□△(세모, 네모, 세모)라고 불러요.
우리는 네이밍 작업을 정신적 창작이라고 이해합니다. 당연히 지적, 정신적으로 왕성한 두뇌활동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정신씨는 관념의 물화를 유물론적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었습니다.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노동을 물질로 풀어내어 뇌와 손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창작을 하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작업이 한결 만만해 보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정성원: 그것을 생각해 낸 특별한 과정이나 동기가 있었나요.
정신: 그 질문에 짧게 답변을 드리자면 ‘없다’에요. 다만 자기 분야에서 10년 이상 파고들다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의 체계랄까 질서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20대부터 SK나 KTF 등의 신제품 이름을 만들었고 그런 과정을 한 15년 정도 거쳤어요. 그러다 홍진경씨의 김치 상품명을 ‘더김치’라고 지어 주었는데 그 과정을 지켜본 홍진경씨가 본인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더만두’라는 네이밍을 했어요. 그러면서 ‘너무 재미있고 나도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하게 되니 제가 직접 네이밍을 하는 것 보다 사람들에게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카피라이터이지 네이미스트가 직업이었던 적이 없었거든요. <DRAMA>, <JUNE>, <지식인의 서재> 이런 것들은 취미 삼아 스스로 해 본 거였고 그래서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성원: 수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요.
정신: 수업은 2가지로 나눠지는데요 보통 기업이나 기관, 단체에서 초빙해서 가는 경우 100명 정도의 대규모 강연 방식으로 이뤄져요. 이때는 2~3시간 정도 이름 짓는 방법과 예시를 설명하는 것으로 진행합니다. 개인이나 팀으로 이뤄지는 소규모 방식이 있는데 이때는 개별 참가자들의 이슈를 뽑아내고 설명 뿐 아니라 이름 만드는 과정까지 함께 이뤄집니다. 강의와 워크숍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직장을 다닐 때 네이밍이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일 년에 10개 정도 그러니까 15년 동안 150개 정도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 주었더니 양적 측면은 말할 것도 없고 질적인 면에서도 제가 놀랄 정도의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스스로 학생들에게 많이 배우기도 합니다.
정성원: 정신씨가 생각하는 좋은 이름의 기준이 있나요.
정신: 이름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자기다움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쉬우면서도 남들과는 차별성을 갖는 이름. 그 정도에요.
정성원: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 중에서 정신씨의 그 기준에 부합하는 이름은 어떤 것이 있나요.
정신: SBS 프로그램인가요? ‘K-POP STAR’에 나왔던 ‘이하이’씨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하이(hi)라는 느낌도 참 좋고 아주 쉬우면서도 그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독특함이 있잖아요. 그리고 제 수강생이 만든 이름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Know心心’이에요.
심리치료를 하고 싶어 하는 이 학생의 이름이 노민주예요. 이름 중에서 민주를 빼고 심리치료 일을 하니 마음 심자를 넣었죠. 그리고 본인의 성씨인 노를 영어 Know로 바꾸면 마음을 아는 심리치료사가 되는 거죠. 그것도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하면서도 쉽고 독특한 이름이어서 기억에 남아있어요.
정성원: 사람들은 좋은 이름을 만들고 싶어하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런 방법을 잘 익힐 수 있을까요.
정신: 초등학생들에게도 수업을 했는데 대체로 부모님들이 좋아하세요. 일반적으로 부모님들은 논술 학습을 시키시는데 저는 논리력이나 그런 것과는 반대로 가요. 논리 중심으로 가면 딱딱하고 어려워지거든요. 잘 되지도 않죠. 저는 단어에 민감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문장을 쓰고 읽고 하는 교육은 많이 받아왔는데 단어를 가지고 놀고 생각하는 훈련은 전혀 하질 않았잖아요. 우선은 단어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해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더하고 빼는 과정을 통해 노는 거죠. 이름을 짓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 필요하고 잘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성원: 그러면 정신씨는 작명을 위해 평소에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정신: 눈과 귀를 열어 두고 늘 메모를 해요.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스마트폰에도 메모를 해 놓죠.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도중에도 메모를 하죠. 좋은 요리사란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 가지고도 뚝딱 음식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전에 냉장고를 잘 관리하거든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얼마나 잘 메모하고 그 카드를 잘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작명 의뢰가 오면 저는 먼저 제 단어 카드를 점검하죠. 거기에 더해 그 제품이나 특성에 맞는 단어를 더 수집하고요.
좋은 이름 짓는 것은 일반인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A4 종이를 80개 조각으로 나누고 거기에 좋은 단어를 적은 후에 2개씩 연결해서 한번 시도를 해 보면 좋아요. 그렇게 여러 조합을 하다 보면 의외로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해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이름이 있어요. 나도 한번 이름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해 보세요. 자기가 만든 이름이 성장을 하다 보면 예상치 않은 보상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홍진경씨에게 ‘더김치’라는 작명을 해 주었을 때 홍진경씨가 매출 100억이 넘으면 샤넬백을 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지 못한 백이 생겼어요(웃음) 사과 농장 이름을 만든 수강생은 명절 때 사과를 보내기도 하고 어머니 수공예집 이름을 지은 학생은 실크로 된 방석을 보내기도 하고 참기름집에서는 참기름도 보내오고……
정성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정신: 아주 먼 계획까지 생각을 해 보진 않았어요. 그런 준비도 아직은 부족하고요. 다만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농산물의 이름,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가을 수확을 하면 수많은 농작물이 생기잖아요. 저는 농부는 굉장히 숭고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수고만큼의 대가를 제대로 받진 못하고 있잖아요. 쌀, 대추, 귤, 상추, 감자, 계란, 오이... 그냥 아무런 이름 없는 그 농산물 각각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 불러주면 좋을 것 같고 거기에 더해 제가 네이버에 근무를 했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검색에 잘 걸리게 할 것인지 좀 더 나아가면 이 제품을 어떻게 도시민과 연결시킬 것인지... 이런 일을 꼭 한번 해 보고 싶어요. 농촌에서 꼭 저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농산물 이름을 짓고 싶다는 정신씨의 바람이 이뤄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라면 당장 콜하겠습니다. 그리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니 다른 곳에서 초빙하기 전에 눈 밝은 분이 먼저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이름을 짓고 싶지만 머리에 쥐가 나는 경험, 다들 있으시죠? 그럴 때면 동료들에게 선물공세를 하면서 작명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저희 학습관에서도 가끔 작명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보태 달라는 전체 메일이 돌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좀 덜었습니다. 지난 겨울 직원 대상 네이밍 워크숍 이후 직원들 스스로 동아리를 결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워크숍의 효과에 근거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그 프로그램 홍보지에 실린 문구를 소개하면서 이번 호 기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2013년 올 가을, 수원시평생학습관 직원들은 콜마이네임 워크숍을 경험해보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서로 호응하며 멋진 이름으로 완성되기도 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어떤 단어들은 너무 익숙해서 뭔가 식상해보이기도 했습니다. 매 학기마다 새로운 교육을 기획하고 홍보하면서 우리 교육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이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저희에게 콜마이네임 워크숍은 재미있는, 유용한 이름만들기 방법을 알아보고 새로운 생각을 열어준 시간이었습니다.
홈페이지 http://callmyname.1px.kr/
이메일 callmyname@1px.kr
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