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과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학습계의 작은 거름이 되고 싶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퇴임 소감
진흥원 원장 재직 시절의 성과
개원 초기 3년간은 나일이 청사도 없이 여의도에 2개 층을 임대해서 살았는데, 지금은 독립 전용공간을 확보하여 새롭게 서초동 시대를 열어 전국의 평생교육 관계자들이 이 곳을 큰집 또는 친정이라 부르며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어 꽤나 행복하답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 정규직이 고작 29명이던 초미니 기관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커져서 정규직 직원만도 80명이 훌쩍 넘는, 모두 합하면 200여명이 넘는 큰 식구로 늘어났고요, 초기 30억 대에 머물러 있던 예산도 작년에는 추경 포함 790억 원대로 커졌으니 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성과겠지요.
문해교육사업이 커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절로 흥분 될 만큼 희망을 느낍니다. 문해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를 희망교육실로 확대 개편하고, 배울 마음만 있다면 그 누구도 이 땅에 교육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모든 이를 위한 교육과 학습의 소망을 일구어 내는 ‘희망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문해교육에 대한 국고 지원사업은 물론 문해교육에 관한 연구조사와 교재개발, 문해교원 양성 연수는 물론 전국 문해교육자들과 연대하여 광화문 한 복판에서 전국문해시화전을 열고, 포스트 문해교육으로서 시화전과 시집 출판, 자서전 쓰기 운동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지난 설 때 KBS와 함께 문해교육 어르신들의 눈물겨운 골든벨 프로그램을 진행한 일은 진한 감동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학습도시를 비롯해 여러 지역사회들과 네트워크를 맺어가면서 현장을 발로 뛰어 가면서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게 다 다녔습니다. 수많은 행사들에 참여하면서, 적어도 인사말과 격려사는 직원들이 써서 탁자위에 올려놓은 남의 말 같은 인사말이 아니라,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언어로 진심을 담아 즉석 연설로 마음을 전하곤 했습니다. 같은 길을 걷겠다고 나선 평생교육의 도반들이기에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인사말이 아닌 마음의 편지 같은 마음 그 자체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힘내시라고, 진심으로 당신들을 응원한다고, 당신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시라고, 오히려 책상에 앉아 데스크 정책을 만들고 연구나 하고 있던 제가 부끄럽다고 하면서, 전국의 평생교육인들을 만나고 함께 하며 전국을 누비던 일은 나일에서 보낸 40개월의 시간 중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장 크나 큰 보람의 하나로 오래 오래 남을 겁니다.
재직 중 못다 한 일들과 아쉬움
평생교육의 성패를 가르는 근간 척도로서의 평생교육사 문제도 제가 제대로 자리매김을 못해 놓고 나온 부분 중 하나입니다. 학교에는 교사가 있듯이 평생교육기관에는 평생교육사라는 전문가가 있어 평생교육을 전문적으로 돕고 일구어야 하는데, 이들을 위한 업무가 2014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진흥원으로 일원화되었고 이를 위한 기간 인프라와 인력, 예산 확보를 거의 하지 못한 상태에서 원장을 그만 두게 되어 걱정과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평생교육사들의 네트워크 구축, 전문적 역량강화, 일터 개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 조성 등을 시작만 하다 두고 나온 듯 하여 걱정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딜레마인, 교자체와 지자체간의 이원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교육법 개정을 통해 조정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 역시 결국 문제 제기로만 그치고 현실적 법 개정을 이뤄내지 못한 채 그만두게 되어 안타깝습니다. 광역 시도나 기초지자체인 학습도시들이 안행부나 지자체 산하인데, 진흥원은 교육부 산하기관이어서, 이원화에 따른 사업 집행이나 정책 조율 등에 있어 심각한 누수현상과 갈등 및 비효율의 문제가 제기되어 온지 오래입니다. 이 역시 해결이 요원한 실정이어서 안타깝습니다. 마치 난쟁이 통 속에다 넣어 놓고 왜 더 크지 못하냐고 야단치는 것과 같습니다. 태생적이고 구조적인 법제도적 한계들을 풀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겠지요. 모법으로서의 평생교육법 개정이나, 해당 부처를 넘어서는 범부처적, 초부처적 기구를 통한 종합 조정, 조율 기능이 마땅히 선제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요원하다보니 실질적 국가평생교육 추진체계 구축에 엄청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다 새롭게 일구고 다 할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 일 보다는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자성이 더 크게 남습니다. 마치 스님들이 동안거 마지막 시간에 자자自恣라고 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고 철저하게 자기 반성을 하듯, 저도 떠날 무렵 자자의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40개월 동안 쉬지 않고 새벽까지 하얗게 밤을 밝혀 가며 많은 일을 했고, 나름 많은 것을 일궈냈다고 스스로 위안도 해 보았지만, 참으로 부족함이 많았던 ‘많이 많이 미안한 리더’였음을, 한 일 보다 못한 일이 더 많았음을 깨닫고 떠나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156명의 진흥원 식구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손을 꼭 잡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는데, 마음 찡한 ‘겹겹 감동’을 담고 울컥하며 짐을 싸고 눈물 그렁그렁 거리며 서초동 나일 청사를 떠나왔답니다.
후임 진흥원 원장님에 대한 당부
저는 처음에 가서 진흥원에 평생교육을 전공한 사람들이 너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평생교육 전공자나 전문가도 없고 혼을 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큰 착각이었습니다. 그 누구하나 귀하지 않은 보물이 없듯이 알고 보니 모두가 대단한 저력과 열정,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재능과 능력을 알았더라면, 더 많은 일들을 해 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반성과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처럼 처음에 시행착오를 겪지 말고, 이 분들과 바로 손잡고,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와 존중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나일의 가족들이 다른 이들의 평생교육만을 위해 일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앞서 자신의 전문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의 평생교육에 임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고, 그들이 참으로 신나서 일할 수 있는 일터문화를 만들어 주시고 이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흥원 식구들 뿐 아니라 전국의 평생교육계의 모든 관계기관 및 관계자들, 지자체, 시도진흥원, 거점 학습관들과 ‘강한 친구 맺기’를 지속적으로 해주셨으면 하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기관 대 기관 차원에서의 체계적이고 진솔한 네트워크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간의 휴먼 네트워크가 아직 충분치 못합니다. 강한 연대를 공고화해야 합니다. 현장 없는 진흥원은 있을 수 없고, 지역과 함께 어우러지지 않는 진흥원은 생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 모두와 진정한 파트너십으로 친구가 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평생교육은 한걸음도 나가갈 수 없을 것입니다. 늘 지역과 함께, 현장과 함께 소통하고, 손 꼭 잡고 함께 걸어 가 주시는 그런 3대 원장님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진흥원이 제3차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정성원: 작년 9월에 교육부에서 제3차평생교육진흥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그것을 책임 운영하는 중추 핵심기관이 국가진흥원 아닙니까. 제3차 기본계획이 4대 영역, 12개 과제 그리고 세부과제가 나열되어 있는데, 그것을 추진하기 위해서 진흥원이 적정한 기관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진흥원은 지금까지 해왔던 루틴한 업무들을 계속 해나갈 것인데, 기본계획 추진을 컨트롤하면서 추진할 수 있을까? 제가 볼 때 현재로서는 어려운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국가 계획은 별도로 있고 이것을 총괄하는 기구가 없다면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이냐 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동 계획 수립 과정에서, 교육부도, 진흥원도 굉장히 고민이 컸습니다. 교육부 평생학습정책과가 할 수 있는 계획만 담을 것인가 아니면 폭을 넓혀서 다른 부처나 다른 부서의 평생교육 유관 업무까지 망라하여 담을 것인가 하는 고민 말입니다. 이번에 나온 계획은 절충안에 해당됩니다. 이상과 현실의 절충안, 교육부와 교육부 외 여타 유관 부처 및 부서를 아우르는, 그리고 광역지자체와 학습도시들의 일감들을 포함하는 계획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초점은 교육부에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맞출 수밖에는 없었다는 것. 그런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합니다. 지자체에서 자체 계획을 수립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예시적 계획 또는 근간이 되는 디딤돌 계획 정도로 봐 주시면 됩니다. 국가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광역과 기초지자체들이 지역의 특성에 맞는 안을 짜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동 계획의 골간은 박근혜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예컨대 생애주기별 맞춤식 평생교육 설계, 대학의 평생교육체제로의 변신, 일과 학습의 병행을 위한 평생교육, 온라인과 오프라인 결합의 스마트 평생교육체제 구축 등 대한민국의 새로운 평생학습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다수의 핵심 국정철학과 국정 과제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평생학습 발전의 원동력
정성원: 대한민국 평생학습이 서구나 일본에 비해서 역사는 짧지만 굉장히 역동적이지 않습니까. 얼마 전 제가 일본에 다녀왔었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은 뭐랄까 정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청년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국가 예산이나 자원들이 크게 투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역동적인 이유, 이런 저력, 역동성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십니까?
최운실: 한중일 삼국을 동방학습지국이라고 부르는데, 삼국 간에는 매우 긴밀한 평생교육학자와 실천가들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서로 교류하며 모임을 갖고 서로 서로 배우고 벤치마킹을 합니다. 한일 간에는 특히 20여년의 교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 평생교육계에 큰 어른인 고바야시 분진이라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지한파이면서 굉장히 진보적인 학자인 분진교수님은 평생교육의 성장 발전에 있어 한국이 돌진형이라면, 중국은 약진형, 일본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 있는 정체형이다 라고 표현을 하십니다. 일본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노 원로학자들이 아직도 주축을 이루고 있는 반면 한국은 너무 빨리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매번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너무 젊은 신진 학자들을 중심으로 평생교육계가 재편되고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하시면서, 이는 좋을 수도 있지만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고 예리한 지적을 하셨지요. 이런 삼국간의 평생교육 역학 관계구도가 있습니다.
과연 그 저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국제활동을 해왔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발견하고 확신하게 됩니다. 원동력의 첫 번째는 바로 ‘사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 그것도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피플 퍼스트, 사람이 최고’입니다. 놀라운 사람들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 입니다. 평생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평생교육에 대한 놀라운 열정, 진정성, 모든 것을 바치는, 혼을 담은 최고의 정신적 가치를 지니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평생교육에 미쳐있고, 평생교육 하다 죽으면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의 평생교육은 분명 희망입니다. 이는 일본도 중국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부분입니다. 시도진흥원과 학습도시들에도 점차 사명감 넘쳐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시민단체와 지역 현장 실천가들 뿐 아니라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 명이 넘은 평생교육사 자격보유자들이 광역지자체와 학습도시에 공무원으로 포진되어 있습니다. 공무원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들과 시민단체 실천가들이 결합되면서 놀라운 역동의 파트너십이 구축되기 시작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실패하기 쉬운 탑-타운 방식, 즉 관주도의 수직적 평생교육 촉매 전략이 놀랍게 성공한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우리 국민들의 ‘할 수 있다’ 정신의 시작과 뿌리에는 이런 학습형 정신운동들이 존재합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대부분 탑-다운 방식의 관료적 추진 모델들이 실패하거나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상당히 성공적인 편입니다. 평생교육의 많은 사업들이 비록 전국 단위로, 중앙집중형 모델로 추진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같이 호응하고 도와주고 참여해 주는 파트너들이 많아서 성공하는 겁니다. 왜 비판이 없겠습니까? 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겠습니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 평생교육에 큰 힘이 된다고 믿고, 비판할 때는 하지만 함께 할 때는 손을 내밀어주고 함께 하는 젊고 새로운 역동의 흐름이 도처에서 일고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개혁지향적이고 진보적인 NGO에서도 협조해 주고 같이 손을 잡아 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하여
수만의 교육 공직 은퇴자, 은퇴교수들, 노블리스 오블리주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평생을 쌓아 오신 재능과 나누려는, 섬기려는 마음들을 모아 ‘100세 시대 대한민국 청춘대학연대’ 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노인교육이라는 말을 넘어서고 싶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아예 콘셉트 자체를 달리하는 그런 새로운 교육을 구상해 보려합니다. 일본의 경우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세대라 하여 신창년대학이라는 말을 쓰는데, 우리의 경우 노인을 ‘나이를 잊고 사는 영원한 청년’들로 보고 그분들 스스로가 엮어가는 ‘봄봄대학, 청춘대학’ 둥지를 틀어 드리고 싶습니다. 수원이 새로운 콘셉트와 포맷, 새로운 아이디어로 구성된 청춘대학의 발상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안에 희망을 주는 파랑새학교도 구상 중입니다.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 가장 낮은 곳에 서 힘겨워 하는 분들에게 배움의 기쁨과 희망을 나눌 수 있도록 파랑새학교를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내 집처럼 머물 수 있고, 행복한 배움을 맘껏 키울 수 있는 사랑방 같은 파랑새학교를 수원의 ‘누구나 학교’나 우리 동네 북적 북적 정다운 학교들과 함께 키워 나갔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일들을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실, 소중한 동행을, 평생교육의 도반님들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래 글은 저희가 최운실교수님에게 부탁드린 글입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생학습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에게 전하는 최교수님의 편지입니다. 봄 날의 향기도 함께 동봉했습니다.
인터뷰&글_정성원(수원시평생학습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