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후레아이관》 지원이 아닌 협동과 공생으로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Mar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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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아이관》
지원이 아닌 협동과 공생으로

 

나의 연구영역은 평생교육 중에서도 다문화교육이라 불리는 분야이다. 한국에서는 2005년 이후 다양한 정책이 추진¹되면서 다문화교육, 다문화정책이라는 말이 사회에 확산되었는데 일본의 경우, 재일한국인 문제에서 촉발된 1970년대부터 재일외국인교육을 거쳐 현재의 다문화공생교육까지 그 역사는 한국보다 길다. 이러한 일본의 다문화교육실천으로서 한국에서도 많이 소개된 곳이 가와사키시의 《후레아이관》이라는 곳이다.

 

¹ 한국에서 다문화정책은 외국인 결혼이주여성이 증가하면서 본격화되는데 2005년에 외국인 이주여성문제가 대통령 지시과제로 되었고, 2006년에 대통령 자문기관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를 비롯한 12개의 정부부터가 여성결혼이민자가족의 사회통합지원대책을 세운 후 다양한 다문화정책들이 수립, 실시되기 시작한다.

 

지역교육실천이 만들어 내는 다문화평생교육실천

 

1988년에 설립된 가와사키시 후레아이관은 공설민영으로 사회복지법인 청구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평생교육시설이다. 지역의 시설이기도 한 점에서 그 대상은 어린아이에서부터 고령자까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문해교실부터 방과후 교실, 고령자 상담사업과 교류사업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후레아이관은 재일외국인과 지역주민들과의 교류와 상호이해를 목적으로 설립된 시설이라는 점, 재일한국인이 중심이 된 사회복지법인이 그 운영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던 것 같다.
이 곳의 시작은 1970년대의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으로부터였다. 외국인들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존재했던 시기²에 재일한국인과 일본인들에 의한 공민권운동이 시작되면서 재일한국인 아이들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재일한국인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국어와 민족음악, 무용을 가르치고 소위 통명(通名)이 아닌 본명(本名)이라 불리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민족교육활동이 1970년대부터 가와사키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재일한국인 아이들에 대한 교육활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재일한국인 자신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알게 하고 일본인들도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서 일본사회 속의 차별구조를 스스로 인식하게 하고 자각하게 한 것이 큰 원동력이 되었다.
지역사회의 활동들을 토대로 지방자치체에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활동을 보장하도록 요구하게 되었고 그것이 1986년의 가와사키시의 재일외국인교육기본방침의 제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재일한국인들뿐만이 아니라 일본인들 자신도 학습과 성찰을 통해 일본사회의 구조를 자각하고 변화하게 된 것이 후레아이관 활동의 토대가 되었고 ‘함께 사는 지역사회’의 창조를 향해 오늘도 다양한 사업에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² 일본에서의 재일외국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재일한국인 당사자에 의한 공민권 운동과 함께 1980년대 전후에 일본정부가 국제인권규약을 1979년에, 난민조약을 1981년에 비준하면서 그 이후 많이 개선되게 된다.

 

후레아이관1.jpg

후레아이관2.jpg

▲후레아이관 활동 모습

(출처: 후레아이관 홈페이지 http://www.seikyu-sha.com/fureai/)

 

우리들도 지역사회의 일원!

 

이러한 후레아이관의 활동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재일외국인 당사자들이 그 활동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설립 초기에는 일본사회 재일외국인의 대부분이 재일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재일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1990년대 이후에 새롭게 일본사회에 진입한 필리핀, 중국인(뉴커머 외국인) 등 다양한 외국인들이 증가하면서 후레아이관의 활동에도 직원으로서 뉴커머 외국인들이 일을 하고 있다.
국제결혼여성으로 일본에 들어와 우연한 기회에 직원으로 일하게 된 재일외국인 A씨는 자신의 나라 출신의 아이들에게 모국의 문화와 전통을 가르치는 어린이교실을 주재함과 동시에 자신과 같은 나라 출신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자조모임을 결성, 커뮤니티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물론 한국사회에도 국제결혼여성 등 재한외국인이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정직원으로 안정된 고용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경우는 적을 것이다.

 

함께 사는 지역사회의 창조를 위해서, 다문화공생을 위해서는 서로가 동등한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관계 형성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에서 쓰이는 다문화공생 중 공생(共生)이라는 말은 1980년대에 지문날인거부운동³을 하는 가운데 함께 살자(共に生きる)라는 말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1970년대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공민권운동을 하는 가운데 민족차별철폐를 위해 함께 싸우자(共に闘う)는 인식을 기반으로 생성된 것이다.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자기변혁, 그리고 지역사회의 활동들을 바탕으로 서로간의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서 생겨난 것이 공생이라는 개념이다.

 

³ 지문날인거부운동은 재일외국인은 1952년에 제정된 외국인 등록법에 의해 지문날인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휴대가 의무화되어있던 외국인등록증에 지문날인을 거부한 1980년대에 일어난 운동으로, 재일한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와 함께 전개된 운동으로 높은 사회적 관심을 받은 운동이였다. 이 운동의 결과 1993년부터 지문날인은 폐지되었다.

 

지원이 아닌 협동과 공생을!

 

한국의 다문화정책이 2005년 이후에 비약적으로 발전되면서 일본에서도 많은 연구자와 실천가들도 주목하며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을 보면-‘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는 독일의 마르켈총리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다문화사회 실현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통해 단순히 후레아이관의 활동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재한 외국인과 국제결혼가정의 아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원’이 아닌 그들과 함께 하는 ‘협동’과 ‘공생’의 시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지원을 하는/받는 관계 속에서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것은 할 수 없다. 대등한 수평적인 ‘시민/주민’의 시점에서 매조리티(majority)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라는 시점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매일 매일의 지속적인 실천을 축적해 가고 갈등과 마찰을 뛰어넘은 후에 실현되는 것이 서로 다른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2009년 전후부터 다문화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등장⁴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학교교육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학교가 아니라 생활권인 지역사회에 다문화의 시점이 없는 한,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사회 실현은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자성적인 시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셔널리즘을 강화해 가고 있는 일본사회를 보면서 새삼 생각하게 된다.

 

외국인에 대한 학습지원은 2001년부터 소외계층 평생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 2006년부터 성인문해교육지원 프로그램 등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지원이 본격화되는 것은 2009년부터 시작된 다문화가정 평생교육프로그램지원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학문연구에 있어서도 2009년 9월에 평생교육진흥원(현,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다문화교육학회 주최로 열린 제2차 평생교육정책 포럼 ‘다문화사회로의 이행, 평생교육의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에서 다문화교육을 평생교육으로서 파악하는 한편, 배영주의 ‘다문화 평생교육의 정립을 위한 체험적-호혜적 운영원리 탐색’(『Andragogy Today : Interdisciplinary journal of adult & continuing education』vol. 12 no. 2)과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본 다문화교육의 새 구상’(한국방송통신대학교 원격교육연구소『평생학습사회』제5권 제1호)가 나온 것도 2009년이었다.


글_김윤정(수도대학도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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