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dby 『시적 정의』공적 결정에는 문학적 정의(Justice)가 절대 필요하다

글작성자 평생학습동향리포트 신청일 Feb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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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서재

『시적 정의』(마사 누스바움, 박용준 옮김, 궁리, 2013)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작가가 될래요.” “안 돼!” 한 때 자타공인 문청(文靑)이었던 아버지는 단호했다. “왜요?” “하여튼, 안 돼! 안 된다구!” 아버지는 이 속물의 시대에 작가 수업이 얼마나 힘든지, 작가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지 사춘기 아들이 알아듣게 설명할 자신이 도저히 생기지 않더라고 했다. 아들도 나 같은 삶을 살게 할 수는 없잖아…….

 

마사 누스바움(Matha C. Nussbaum)의 『시적 정의』는 옮긴이(박용준) 말마따나 한마디로 ‘문학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자 하는 책이다.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학자 누스바움의 논지는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우리의 공적 결정에는 문학적 정의(Justice)가 절대 필요하다! 하여 책의 부제가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이다.
 『시적 정의』가 주로 기대고 있는 작품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소설 『어려운 시절』이다. 1850년대 영국의 공업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신자유주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오늘날을 낳은 사고방식의 원형질을 이렇게 보여준다.

 

  “비쩌.”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가 말했다. “말에 대해 정의해보아라.”

  “네발짐승, 초식동물, 이빨은 마흔 개로 어금니 스물네 개, 송곳니 네 개, 그리고 앞니 열두 개, 봄철에 털갈이를 하고 습지에서는 발굽갈이도 함. 발굽은 단단하지만 편자를 대어 붙여야 함. 나이는 입 안쪽의 표시로 알 수 있음.” 비쩌는 이런 식으로 (그리고 더 많이 보태서) 말을 정의했다.

  “자, 20번 여학생,”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말했다. “이제 말이 어떤 동물인지 알았지.”

 

디킨스는 특유의 방식으로 사실(事實), ‘빌어먹을’ 차가운 팩트(fact)로 짜인 권력을 풍유한다. 고뇌에 사로잡힌 딸과 아버지의 대화 장면을 하나 더 보자. “아버지 인생이 아주 짧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얘야, 인생은 정말 짧은 거란다. 그러나 최근엔 평균수명이 증가했음이 입증되었단다. 잘못될 리가 없는 계산  중에서도 여러 생명보험회사와 연금회사의 계산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오, 하느님 맙소사!
그 때나 지금이나 정책이 결정되는 공공의 영역에 이르면 문학적 공상(fancy)이나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국민기초연금 논의에는 파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야기할 자리가 한 뼘도 없다. 딱한 사정? 나도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재원이 없다. 이 한마디면 구체적인 삶의 고통과 희망은 모두 날아 가버리고 만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의심스러운 원리의 이름 아래  도구적 합리성과 차가운 계산만 남는 것이다.
그러나 누스바움은 문학작품이야말로 ‘공적 감정의 공기청정기’라고 단언한다. 문학, 특히 소설은 “좋은 삶을 위해 필수적인” 공상의 힘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공상이란 어떤 것으로부터 다른 것을 보아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공상, 즉 은유적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은 위험하다. 그들은 자신 외의 어떤 것도 개별 사연을 가진 자율적 존재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하나의 사물로, 욕망과 만족이 머무르는 몸뚱어리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로 이루어진 나라, 훌륭한 정부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공상의 능력부터 복원시켜야 한다.
누스바움이 보기에 합리성이라는 미명하에 감정을 추방하는 일도 부당하다. 그녀에 따르면 합리적 감정은 이성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특정 종류의 의미나 가치를 지각할 수 있게 해 주는 필수적인 요소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인의 고통과 역경에 공감할 방법 또한 없다. 따라서 우리가 보다 완벽한 사회적 합리성에 도달하려면 감정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왜 왕들은 그들의 백성들에게 동정심이 없는가? 그들은 인간 존재의 인간됨을 결코 믿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는 왜 가난한 사람에게 그토록 매정한가? 그들은 자신들이 가난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귀족은 평민을 그토록 멸시하는가? 그들은 결코 평민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인간 존재의 약함이다. 우리의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고통이다. 『에밀』

 

누스바움은 ‘분별 있는 관찰자(judicious spectator)’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논의를 종합한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 착안하고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도덕 감정론』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다. 『시적 정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 개념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사태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능력에 더해,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에 대한 깊은 공감 능력을 동시에 가진 제삼자’를 뜻한다. 동어반복이지만, ‘분별 있는 관찰자’를 기르는데 문학만큼 좋은 분야는 없다.

 

아쉽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분별 있는 관찰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학에서 문학 전공 학과는 갈수록 줄어들고, 중등과정의 문학 교육은 수능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한 때의 소문난 문청이 자기 아들의 작가 꿈을 막아서는 게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시적 정의』가 오늘 이 땅에서 그 제목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사실 『시적 정의』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다. 곳곳에 대가다운 통찰이 번득이기는 하지만, 문학 특유의 부드러움이나 관조의 문체가 아니라 법철학-경제철학의 문체로 써내려간 문학옹호론이기 때문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 자체가 시카고 대학 로스쿨의 <법과 문학> 강좌에 토대를 두고 있다. (마사 누스바움은 시카고 대학 로스쿨의 법학․윤리학 석좌교수다.)
  특히나 문학도들은 『시적 정의』가 마뜩찮을 수 있다. 로스쿨 교재 같은 문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껏 문학적 상상력과 감정을 옹호하다가 문득 본분을 잊지 않겠다는 듯, 자유주의적 형평과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누스바움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기 때문이다. 문학의 한계까지 사유를 밀어붙이는 글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자의 감응(affection)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누스바움은 그래도 고마운 인물이다. 지금 이 세계에는 과거 문학인들이 목청높이 외치던 ‘시적 정의’가 사라지고 들리지 않는 바 누스바움처럼, 현실을 주무르는 법학도-경제학도들을 향해 ‘시적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그래서 더 소중하다. 씁쓸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역설이다.
  누스바움이 고대하는 공감과 감응의 시대, ‘시적 정의’의 시대는 과연 언제쯤 다시 올까? 『시적 정의』 맨 앞에 인용된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의 시를 나직이 되뇌어 본다.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 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그것이 하느님의 손수건이라고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구석 어디엔가 그 주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그것을 본 우리가 누구 것이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것.

 

  아니면 나는 풀잎을 그 자체로 아이라고…… 식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략)

 

글_양훈도(한벗지역사회연구소 소장,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시적정의 표지.jpg

『시적 정의』 (마사 누스바움, 박용준 옮김, 궁리, 2013)

 

<목차>

 

서문

 

1장 문학적 상상력
2장 공상
3장 합리적 감정
4장 재판관으로서의 시인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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